국내여행과 풍경

진주 남강변을 거닐며 2(석류공원 - 새벼리 - 남강변 - 석류공원, 2020.2.19. 화요일)

큰집사람 2020. 2. 19. 08:21





진주시 가좌동 석류공원주차장 자연보호헌장탑  



자연보호헌장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의 삶의 자원이다.

자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으로 오묘한 법칙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땅을 금수강산으로 가꾸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향기 높은 민속문화를 창조하여 왔다.

그러나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공기의 오염, 물의 오탁,

녹지의 황폐와 인간의 무분별한 훼손 등으로 자연의 평형이 상실되어

생활환경이 악화됨으로써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유지하는데 정성을 다 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이 땅을 보다 더 아름답고 쓸모 있는 낙원으로 만들어

길이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자연보호헌장을 제정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한 실천을 다짐한다.

  1.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일은 국가나 공동단체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의무다.
  2.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문화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은 인류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3. 자연보호는 가정, 학교,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교육을 통하여 체질화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4. 개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며, 자연의 보존이 우선되어야 한다.
  5. 온갖 오물과 폐기물과 약물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자연의 오염과 파괴는 방지되어야 한다.
  6. 국민 각자가 생활 주변부터 깨끗이 하고 전 국토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1978년 10월 5일

















망원정(望園亭)












망원정기(望園亭記)

고향을 사랑하는 이 고국(故國)을 어찌 기리지 않으랴

동몽(童蒙) 15(十五)에 큰 뜻을 품고 현해탄(玄海灘) 건너가

비바람 부대끼기 於焉 50년(五十年)

꿈에도 고국산하(故國山河)를 잊지 못하고​

​각고성실(刻苦誠實)로 살아온 동포(同胞)

그가 바로 김삼조(金三祚) 씨다

그는 만년(晩年)에 이르러 고향(故鄕)에 갚고 싶던 뜻이 있더니

급기야(及其也) 이병내(李 炳 奈) 진주시장(晋州市長)을 만나

석류공원(石榴公園)에 팔각정(八角亭)을 세우기로 했다

진주(晋州)의 관문(關門) 망경산(望京山) 기슭

새벼리 위에 우뚝 솟은 이 정자(亭子)는

진주시가(晋州市街)를 한눈에 바라보게 한다

그가 멀리서 고향동산을 바라보듯

그의 아호(雅號) 망원(望園)으로 정자(亭子)의 이름은 지어졌다

이 정자(亭子)에 오르는 이

마땅히 고향을 아끼고 그의 마음을 새길 것이다

1978815

완산(完山) 최재호(崔載浩) 적다


















































형평운동가(衡平運動家) 강상호

백촌(栢村) 강상호(姜相鎬, 1887 ~ 1957) 선생은

1887년 진주군 정촌면 가좌리에서

진주군 대안면장을 지낸 강재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한 뒤

늦은 나이에 진주공립보통학교와 진주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남 돕기를 좋아하는 부모의 뜻을 이어

1917년부터 9년 넘게 가난한 마을 농민들의 호세(戶稅)를 대납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구한말과 일제강점시대를 살면서 국채보상운동 경남회 결성(1907),

진주사립봉양학교 운영(1915), 진주 삼일운동 주도(1919),

일신고보 설립 발기인(1920), 진주노동공제회 회계(1923),

일본인 목화부정사건 해결 실행위원(1924),

신간회 진주지회 간사(1927) 등의 일을 맡아 하였다.

이런 여러 사회활동 중에서 선생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형평사를 창립하여 형평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던 일이었다.

조선시대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백정들의 신분해방과

교육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것이다(1923 ~ 1935).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을 빗대어

당시 사람들 중에는 선생을 <새백정>이라 비웃기도 하였다.

1957년에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진주 사람들은 한국축산기업조합연합회장으로 성대히 장례를 치르고

선산인 이곳 새벼리 언덕에 안장하였다.

정부에서는 2005년에 애국지사로 추서하였다.

2012425

형평운동 기념사업회


강상호(자료사진)









애국지사 백촌 강상호지 처(愛國志士 栢村 姜相鎬之 妻)

전주이씨 갑례지 묘(全州李氏 甲禮之 墓)


형평운동가 독립유공자

백촌 강상호지묘(栢村 姜相鎬之墓)

(1887 ~ 1957)

2005년 애국지사 추서 - 대통령 표창






전주이씨시덕불망비(全州李氏施德不忘碑)

이 시덕불망비는 구한말 진주군 대안면장을 지낸

부호 강재순의 처 전주이씨의 공덕을 기념하는 비이다.

전주이씨(1863 ~ 1916)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에 진주지역의

홍수와 흉년으로 굶주림을 겪고 있는 정촌면 가좌리 주민들에게

곡간을 열어 식량을 나누어 주는 자선을 베풀었다.

훗날 아사(餓死)를 면한 사람들이

그의 은덕을 기억하고자 아래와 같은 불망비를 세웠다.


부족한 곳 누추한 마을

복전을 돌보아 농사 짓게 해주시고

천금을 바르게 쓰시어

많은 집이 돈을 얻으니

혜택이 산과 바다 같으매

아! 마음이 넓고 뜻이 크시도다

돌에 새겨 잊지 않고

백세에 전하리라

1917년 가좌리 주민 세움


* 전주이씨는 온순한 성품으로 아들 넷을 두었는데,

장남은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둘째 강기호는 다재하였으나 일찍 병사하였고,

셋째는 아동문학가로 방정환 선생과 색동회를 창립한 강영호 선생,

넷째는 근대 서양화가 강신호이시다.


자료사진



정삼품통정대부강공재순지처숙부인전주이씨시덕불망비

(正三品通政大夫姜公在淳之妻淑夫人全州李氏施德不忘碑, 가로 38cm * 세로 130cm * 폭 17cm)
















































































새벼리









월아산 국사봉과 장군대봉



























새벼리 난간에는 촉석루 지붕 모형과 남강의 물결,

진주 성곽, 논개 가락지와 비녀 등을 모티브해

디자인, 시가지와 남강을 조명할수 있도록 했으며

보도 난간 기둥 상단부에 시화인 석류 형상의 조명과

야경을 특색 있게 연출하였습니다.
























































































































































상평교,

진주시 상평동과 가호동을 잇는 대신로가 지나고









































석류공원



석류공원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