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과 풍경

진주 남강변을 거닐며 1(천수교 - 진주교 - 진양교 - 진주교 - 천수교, 2020.2.15. 토요일)

큰집사람 2020. 2. 16. 16:53





천수교,

진주시 망경동과 신안동을 잇는 천수로가 지나고


천수교건립기념비(千壽橋建立紀念碑)















千壽橋

千壽橋는 이 고장의 역사 천년에 즈음하여 晋州千年紀念事業會가 뜻을 일으켜

시민 성금과 정부지원금 一百四拾六億 五千五百萬 원으로 一九九二十四일에

착공하여 一九九五일에 준공 개통한 歷史紀念物이다.

인류 문명의 始源으로부터 南江을 젖줄로 삼아

풍성한 삶의 터전을 다듬은 이 고장이 그 이름을 晋로 삼은 때는

大東地志에 근거한 高麗 太祖 二十三(AD 九四0) 내력과

新增東國輿地勝覽에 근거한 高麗 成宗 十四(AD 九九五) 내력이 있거니와

어디에 근거하든 진주의 역사는 천년을 헤아린다.


십년 세월에도 강산이 바뀐다 했거늘

헤아릴 수 없는 시련을 이기며 천년을 한 이름으로 간직해 온

도도한 역사를 어찌 명예롭다 하지 않을 것이며,

충절의 혼과 창조와 슬기로 다듬어 온

빛나는 문화 전통을 어찌 자랑스럽다 하지 아니하랴.

진주의 역사 천년이 되는 해에 강을 남과 북으로 잇는

다리를 놓고 紀念碑를 세워 역사의 表迹으로 남기는 뜻은

천년 역사를 가꾼 뜨거운 晋魂을 길이 후대에 전하고자 함이니

누구든지 이 다리를 건너는 이는 겸허하게 옷깃을 여며

자랑스러운 진주 역사를 영원토록 이어 빛내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서기 1995년 6월 2일

社團法人晋州千壽橋紀念事業會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진주성












촉석루











































































진주교,

 진주시 강남동과 중앙동을 잇는 진주대로가 지나고  

























































































경남문화예술회관과 야외공연장



뒤벼리




























































진양교,

 진주시 칠암동과 상대동을 잇는 대신로가 지나고




































































경상대학교병원






새벼리



































































































塔의 象徵

전체의 구도를 의 두 날개로 형상화하여 晋州市市鳥인 백로를 상징하면서

우아하고 고결한 晋州市民의 기품과 창공으로 飛翔하려는 무한한 발전의 氣像을 나타냈으며,

中心部에 배치된 대칭적 과 커다란 가슴은 對話和合 結束協同의 강열한 意志表現하며,

양쪽 날개에 배치된 몇 개의 은 아래로부터 위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로

指向해 가는 市民의 드높은 理想希望을 상징하였음.


忠節氣像和合叡智濤濤히 이어온 <晉州얼>

億劫을 하루같이 흘러온 남가람 위 불꽃으로 떠 永遠하다.

이에 眞實公平 友情公益追求하는 로타리精神을 그 얼에 보태어

크나큰 飛翔의 뜻을 탑으로 높여 晋州市民 모두에게 바치는 바이다.

서기 1983년 6월 24일











형평운동기념탑

공평(公平)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愛情)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라.


1923424일 이곳 진주에서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선각자들이 모여 형평사(衡平社)를 창립하였다.

형평사는 각지의 성원에 힘입어 전국 조직으로 자라면서

1935년까지 평등 사회를 이루려는 활동을 펼쳤다. 

멸시와 천대에 시달리던 백정들과 그들의 처지에 공감한 분들이

힘을 모아 펼친 형평운동은 수천 년에 걸친 신분 차별의

고질을 없애려는 우리 나라 인권 운동의 금자탑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인간 존엄을 누리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회를 만들자던 형평운동의 높은 이상은 오늘날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인류의 꿈으로 남아 있어서 그때의 운동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70여 년 전 어둡고 힘겹던 시절에 거룩한 인간 사랑의 햇불로

타올랐던 형평운동의 정신을 드높혀 기리고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뜻있는 분들의 열의와 정성을 모아 유서 깊은 진주성 앞에 이 탑을 세운다.

1996년 12월 10일

형평운동 기념사업회





형평운동기념탑

이 탑은 조선시대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의 신분 해방과

인간 존엄의 실현을 도모한 <형평사>의 활동(1923 - 1935)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곳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인 활동으로 발전한 형평운동은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금자탑으로 평가된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형평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국내외 여러분들의 성금을 모아 이 탑을 건립하였다.

1996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준공된 이 탑은

모든 시민들의 자산이 되기를 바라면서 진주시에 기증되었다.







































































因緣으로 이름 붙인 이 彫像은 이 고장의 千年文化集約하고 있는

남가람文化거리에 市民精誠을 모아 建立造形物이다.

높이 6.6M의 화강석 좌대 위에 높이 7M靑銅男女彫像으로 만든 因緣

넉넉하고 따스한 人性雜草 같은 生命力으로 悠久歷史

찬란한 文化傳統을 갈고 다듬어온 晋州人의 자랑스러운 예지와

드높은 氣像敍事的具象技法으로 表現作品이다.

晋州市民의 하나된 뜻을 모아 鄭文鉉彫刻하고 鄭命壽題字를 쓴 因緣

永遠토록 남가람文化거리와 더불어 이 고장을 지키면서

뜨거운 晉州人靑史에 길이 하여 빛낼 것이다.

1993년 4월 21일

晋州市長 徐廷焄























松竹梅동산


















천년광장

































동기시비(東騎詩碑)



저 언덕

내가 쏜 화살은

어디만치 가는고

구름 날고 바람 부는

저 언덕 고개 너머

오늘도

겨냥판 거리가 멀다


동기 이경순 비문(東騎 李敬純 碑文)

1905년에 나서 1985년에 가다.

돈키호테를 닮고자 아호를 東騎라 하다.

孤高한 鶴처럼 행맑은 모습

저항하며 살아온 淸貧 한세상

東京유학 치과의사가 교육자가 되시니 

타협을 모르는 별난 교장선생님이셨다.

오로지 晋州만을 지키신 아나키스트로 

허무주의 문학 속에 즐긴 白鷗의 노래

不義를 향하여 쏜 님의 화살은

지금도 낚시대에 해가 걸린 공중에서 울고 있다.

李命吉 글짓고

金炯翰 글쓰다








촉석루(矗石樓)

촉석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의 누대(樓臺)로,

전시에는 장졸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고려 고종 28년(1241년) 창건된 이래 수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년)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하여 1948년 국보로 지정된 바 있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다시 불탔으며,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중건하였다.


촉석루란 이름은 남강변에 직각으로 솟은

절벽 위에 누각을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 부르기도 했다.​


미국 CNN에서 한국 방문 시 꼭 가 봐야 할 곳 50선에 선정된 

촉석루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등의 유래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은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3,800명의 적은 군사로 2만의 왜군을 맞아 싸울 때,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 신호로 풍등(風燈)을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운 데서 비롯되었으며,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막는 군사전술과 진주성의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쓰였다는데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듬해 전투 때 순절한 7만 명의 민 · · 군의 애국혼을 기리고

전통 유등놀이를 계승 · 보전하기 위해 오랜 세월 이어져 오던 유등 풍습을

1949년 우리나라 지방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부터 유등놀이로 정착시켰고,
​2000년부터 특화하여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천전동 주민자치위원회


중앙광장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는 우리나라 향토문화예술제전의 효시다.

1949103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1주년을 기리고,

예술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세워 비롯된 이 제전은

195062519791026사태로 두 차례 치르지 못하였다.

민간주도형으로 연면히 이어온 개천예술제는

예술대한의 앞소리꾼으로 소임을 다해 왔으며,

반세기의 역사를 접어내고 새로운 세기를 향해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이 뜻깊은 시점에서 참다운 인간정신 위에 위대한 예술을

꽃 피우고자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의지를 담아

20021224일 재단법인 진주문화예술재단에서 이 기념물을 세우다.

조각 : 김방희








설창수상

서기 2001103

문화예술인들의 뜻을 담아

재단법인 진주문화예술재단에서 세우다.

글씨 정도준

조각 박찬걸





남강(南江)가에서(설창수)

진양성외(晋陽城外) 수동류(水東流)

왜 남강(南江)으로 이름했음일까?

아무도 모른다.

 

언제 어드메서 처음되었는지

너 강줄기의 족보를 아무도 모른다.

 

멍던 선지피로 흘렀던 짓밟힌 청강(靑江)의 젖가슴에

말없이 남아 있는 돌 하나 -

그 묵어(默語)를 아무도 모른다.

 

둥근달과 뭇별을 눈망울에 담고도

차라리 여울마다 목메이는 서러움을

아무도 모른다.

 

천지(天地) 보군(報君) 삼장사(三壯士)로 읊조렸던

왕이란 것 따로 없는 만백성의 나라 -

역사(歷史)란 얼굴을 비쳐 주는 푸른 거울임을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