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지리산 중봉골과 천왕 동릉 이어가기

큰집사람 2010. 8. 13. 14:23

 

* 날    짜 : 2010년 8월 8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순두류 - 중봉골 - 지리산 천왕봉 - 천왕 동릉 - 광덕사골 - 순두류

* 산행거리 : 약 11km 안팎

* 산행시간 : 12시간 35분(운행시간 8시간 51분 + 휴식시간 3시간 44분)

* 산행속도 : 보통이거나 약간 빠른 걸음

* 산행인원 : 6명(순옥엉가, 레드아이, 적석, 산용호, 박용원, 조광래)

 

 

 

 

 

 

 

진주 솔산악회의 일요탐구산행에 6명이 일행이 되어, 진주공설운동장을 출발하여 지리산으로

떠납니다.

원래 오늘은 일정을 비워 두었으나, 어제 초저녁에 레드아이가 전화를 걸어 함께 하자고 해

그러기로 한 겁니다.

나와는 산행을 몇 번 같이 했으며, 날 큰행님이라 부르는 서부 경남의 호방한 여걸입니다.

1시간이 채 못 돼 중산리 탐방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섭니다.

고개를 드니 천왕봉(天王峰)이 어서 오라며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몇 시간만 기다려라!

법계사(法界寺)에서 운행하는 순두류(順頭流)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이리저리 굽이치며 올라갑니다.

3km가 조금 넘는 콘크리트길을 걷는 건, 시간낭비요 아깝다는 생각에 기꺼이 버스에

올라탄 것입니다.

정해진 요금은 없으나 1인당 1,000원 이상을 보시(布施)해야 하며,

거스름돈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어떨 땐 5,000원이나 10,000원을 넣을 경우도 생기며,

공짜는 절대로 되지 않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입구에서 내리자마자 산행에 들어갑니다.

순두류는 그 이름 그대로 두류산(지리산)에서 순하게 흘러내려 평원을 이루고 있는 걸 일컬으며,

자연학습원 부근 해발 약 700 ~ 900m에 위치한 3만여 평에 이르는 완만한 땅을

가리키는 거라 합니다.

널따란 길을 따라 10분을 채 가지 않아 넓은 공터에 이르는데, 중산리 3.4km· 법계사 2.4km·

천왕봉 4.4km 이정표가 있는 곳입니다.

예전엔 화장실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더 짓지는 못할망정 있는 걸 없애버리다니!

관리상의 문제라든지 하는 무슨 사정이야 있겠지만, 버스가 운행되고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순두류 코스를 애용하고 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겁니다.

중봉골만 타면 좀 더 올라가도 되지만, 지리산신제단을 들러보기로 한터라

공터 바로 밑에서 오른쪽 넓은 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물론 출입금지구역입니다.

지리산 평화제 때 말곤 못 들어가게 막아두는 곳입니다.

좀 들어가 계곡을 건너서 조금 더 가자, 큰 바위 아래 자리 잡은 지리산신 제단이 나옵니다.

입구엔 智異山神祭壇이란 표지석이 있으며, 앞은 석축을 쌓았고 바위 아랜 커다란 제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매년 10월경 열리는 산청 지리산 평화제 때, 이곳에서 고사를 지내며 무사안녕(無事安寧)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적석이 약간의 제물을 놓고 절을 하고, 우린 고개를 숙이며 경건한 가운데 예(禮)를 표합니다.

지리산신이여, 굽어 살피소서!

제단 앞으로 난 희미한 산죽 길을 따르면 늦은목이로 오르는 황금능선이라고 하나,

살모사가 많은 곳이니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오늘은 가야 할 곳이 아니기에 돌아 나옵니다.

되돌아 나와 계곡에 붙기 직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중봉골로 들어섭니다.

그리곤 곧이어 둥글둥글하고 모나지 않은 너덜지대를 만납니다.

광덕사골과 중봉골이 합류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신선너덜이라고 하는데,

그전엔 순두류 아지트로 들어서는 길에 신선너덜 1km라는 표지판이 있었다고 하나,

아주 오래 전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신선너덜을 기점으로 위쪽을 중봉골이라 하며, 아래론 법계교 아래 합수지점까지를

순두류계곡이라고 한답니다.

신선너덜은 “그 옛날 마고할미가 장독간에 모래를 깔고 싶어 치마에다 모래를 싸가지고 가던 중

구멍 뚫린 치마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렸는데, 이 모래가 커져 바위가 되어 신선들이 공기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하여 신선너덜이라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너덜지대 한가운데 둥글게 너덜을 조금 쌓아올린 곳이 있는데, 이곳에 앉아 수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이며, 간식이나 점심을 먹기에 안성마춤인 장소입니다.

고갤 살짝 드니 천왕봉의 웅장한 자태가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천왕봉을 다 보다니!

뜻하지 않은 행운이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좋은 날씨 속에 복 받은 하루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신선너덜은 용추폭포 바로 아래 있다고도 하는데, 중봉골을 쭉 타면서 봐도 너덜다운 너덜은

여기 말곤 없습니다.

 

계곡을 따라 물길을 건너고, 바위를 타면서 서서히 올라갑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맑은 물이 있어 참으로 좋습니다.

땀이 나면 손을 씻으며, 또 때론 낯에 물을 끼얹으며 더위를 식힙니다.

못 볼 걸 많이 본 눈안도 씻고, 못 먹을 것 많이 먹은 입안도 헹궈내며,

오욕(汚辱)으로 얼룩진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 내립니다.

첫 폭포에 다다릅니다.

별로 높진 않지만 넓고 큰 바위에서 떨어지며, 완벽하진 않지만 폭포의 형태를 그런대로 갖춰

눈길을 머물게 합니다.

어느 순간 그만 계곡물에 슬며시 들어서며, 수륙양용 장갑차가 되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계곡산행을 하면서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 중의 하나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경험이 있기에 고뇌에 찬 결단은 아니고, 제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결정입니다.

레드아이도 기꺼이 나랑 행동을 같이합니다.

순두류 아지트 앞 너럭바위로 올라섭니다.

너럭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도, 그럴싸한 폭포를 이루며 볼거리를 선사합니다.

 

법계사로 이어지는 출렁다리를 건너며 중봉골로 들어서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인 순두류 바위

아지트가 바로 옆에 있으며, 계곡 건너 맞은편으로 20m 남짓이면 또 하나의 순두류 굴아지트가

산죽 속에 숨어 있습니다.

큰 바위로 된 굴 입구는 좁으나 안으로 들어가면 꽤 넓은 공간이 있고,

여러 갈래의 통로가 있어 아지트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으며,

빨치산 지휘본부가 있던 법계사와는 1.8km 정도 떨어져 있다 합니다.

좀 머물며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합니다.

과일이랑 빵이랑 술이랑 참 많이도 싸왔습니다.

오디주 한 잔을 마시니, 온몸이 다 짜르르하며 약발을 받습니다.

마치 처음 마시는 사람처럼 금세 알딸딸해지지만, 물속으로 몇 발짝 가지 않아 또 본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계곡을 요리조리 타면서 중봉골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군데군데 이름 없는 폭포가 번갈아 나오면서, 눈요기를 시키며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중봉골은 마야독녀탕이 있어 마야계곡이라고도 하며, 용추폭포와 용소가 있다 하여

용소골이라고도 한답니다.

 

쉬엄쉬엄 30분 남짓 오르니 해발 약 1050m 지점에 멋진 두 갈래폭포가 나오는데,

이를 용추폭포(龍湫瀑布)라고 하나 봅니다.

좀 더 위에 있는 마야폭포를 용추폭포라 소개한 데도 더러 있긴 하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5m가 약간 더 됨직한 높이에서 별로 크지 않은 바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내리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그 위용이 참으로 대단해 보입니다.

협곡을 이루며 좁고 길게 형성된 용소(龍沼)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검푸르며,

워낙 음침한 기운이 도는 지라 앞에만 들어서서 사진만 몇 장 남길 뿐입니다.

용추폭포 밑의 동굴을 따라 들어가면 청학동(靑鶴洞)에 이른다는 전설이 있다지만,

아무리 쳐다봐도 동굴 같은 건 보이질 않습니다.

용소에 묻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용추폭포는 계곡을 타는 사람들은 볼 수 있지만, 산길을 따르다 보면 잘 보이지도 않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일 것 같습니다.

폭포 위로 올라가니 널따란 바위가 펼쳐져 있어, 신선이 노닐고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용추폭포에서 약 300m쯤 더 오르자, 폭포가 있는 양옆의 큰 바위 사이로 목욕탕 같은 인상을

주는 검푸른 소(沼, 물웅덩이)를 만나는데, 이를 마야독녀탕(摩耶獨女湯, 1110m)이라 한답니다.

마야부인은 석가모니여래(釋迦牟尼如來)의 어머니로서, 싯다르타 고타마 태자를 낳고 7일 만에

죽었다고 하는데, 중봉골의 이 작은 물웅덩이가 마야부인의 전용 목욕탕이었다는 건 참으로 놀랍고

황당한 일이 아닐까요?

인도의 성녀(聖女)가 이 먼 곳까지 와서 목욕을 했다?

전설은 전설일 뿐 너무 믿지는 말자!

믿거나 말거나 선택은 자유입니다.

마야독녀탕도 멋지지만, 폭포 또한 이에 못지않습니다.

마야독녀탕과 짝을 이루니 마야폭포라 함이 마땅할 것 같으며, 힘차게 퍼지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꽤나 위력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이야 마야독녀탕으로 바로 떨어지지만, 물이 더 많을 땐 건너편 바위에 부딪치며 더욱 장관을

연출할 것 같습니다.

더러는 여길 용추폭포라 한 곳도 있긴 하나, 그럴 경우 마야독녀탕이 아닌 용소가 될 것이요,

그렇다면 마야독녀탕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용추폭포 조금 위에 마야독녀탕이 있다는데, 이 위론 마야독녀탕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은 없으니까요.

폭포 위 널따란 바위 위에서, 팥빙수를 간식으로 곁들입니다.

지리 중봉골에서 팥빙수를 다 먹다니!

참 좋은 세상이란 생각입니다.

 

마야독녀탕에서 300m 남짓 오르자, 그럴싸한 물웅덩이와 폭포수가 있는 윗용소에 다다릅니다.

힘찬 물줄기의 작은 폭포도 나름대로 멋진 편이지만, 제법 깊고도 너른 물웅덩이가 더욱

맘에 듭니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알탕이라도 하고픈 충동이 일기도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가까스로

눌러 앉힙니다.

윗용소 바로 아랜 황금능선의 물가름재로 이어지는 길이 있습니다.

조금 더 오르자 양쪽으로 꽤 떨어진 두 갈래폭포가 비스듬히 흘러내리는데,

윗용소보다야 못하지만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춘 물웅덩이까지 갖춰, 그런대로 볼 만하단

생각이 듭니다.

두 갈래폭포 바로 위 길가엔 아주 큰 바위가 버티며 금세라도 찍어 누를 듯이 위압감을 주는데,

중봉골 산길은 계곡과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는 않아 계곡을 타다 산길을 타다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후론 이렇다 할 폭포도 물웅덩이도 없는, 평범한 계곡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다른 일행은 산길로 가고, 적석과 난 계곡을 그대로 치오릅니다.

어느 순간 오른쪽으로 중봉 우골이 갈리는 합수지점(1320m)을 지나지만, 거의 마른 계곡

수준인데다 별 특징이 있는 건 아니어서 어딘지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중봉샘과 천왕 동릉으로 이어지는 본류(本流)를 따릅니다.

좀 더 올라 일행과 합류하여, 물길을 건너 왼쪽 사면으로 붙는 계곡 한가운데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반반한 바위는 없지만 돌멩이 몇 개를 메우고 포개고 하니, 훌륭한 식탁이 되고 앉을 자리까지

마련됩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순옥엉가가 준비한 미국산 소갈비 주물럭입니다.

순옥엉가는 50대 중반인데도 부지런히 산을 찾으며 만만찮은 산행실력을 자랑하는 열정적인

여인네이며, 단술과 복분자를 비롯한 온갖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요탐구산행의 물주(物主)이기도

합니다.

폭염 주의보가 내린 날씨라지만, 금세 땀이 식으며 서늘해집니다.

말도 많던 LA갈비를 반찬으로 또 안주삼아 계곡주를 들이키는데, 복분자주·오디주·막걸리 등

오늘따라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아, 우릴 아니 날 기쁘게 합니다.

살다보니 중봉골에서 한 잔 하는 날이 다 있네요!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귀한 손님이 찾아듭니다.

도롱뇽이란 놈이 그 주인공으로, 생각보다 빠르고 민첩하기조차 합니다.

깜찍한 모습을 담고자, 너도나도 사진기를 들이대며 열심입니다.

이놈들 때문에 지율 스님이 경부고속철도(KTX)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오랜 기간 단식을 하며 목숨까지 내걸었던 생각이 퍼뜩 떠오릅니다.

 

느긋한 오찬(午餐)을 즐기고선, 또 다시 중봉골을 치오릅니다.

계곡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좀 오르니, 중봉골의 비경(秘境)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한동안 없던 폭포가 줄줄이 나타나며, 눈길을 끌고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20분쯤 오르자 상당히 높은 데서 떨어지는, 멋진 두 갈래폭포를 만납니다.

반주(飯酒)에 취하고 폭포에 취해 배낭을 짊어진 채로 폭포에 주저앉아, 물맞이를 하면서

더위를 씻고 피로도 씻어 내립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계곡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어진 것 같으며, 그걸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며, 장관(壯觀)이란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합니다.

좁은홈폭포를 지납니다.

높고 좁은 바위 사이에서 힘차게 떨어지며,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게 참으로 가관(可觀)입니다.

좁은홈폭포에서 15분 남짓 오르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난 길을 따릅니다.

이단으로 된 실폭포가 흘러내리며, 오른쪽으론 쫙 퍼지며 떨어지는 멋진 폭포가 보입니다.

중봉샘으로 가는 갈림길인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쪽으로 갈 까닭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쭉 계곡을 따르면 동봉으로 올라서리란 확신이 서기에,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갈림길에서 5분을 오르니, 좀 떨어진 두 갈래폭포가 나옵니다.

더 높은 데서 바위를 타며 떨어지는 오른쪽이 훨씬 멋져 보이나,

낮긴 해도 퍼지는 맛이 있는 왼쪽이 물은 더 많으며, 둘은 중간에서 만나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사실상의 중봉골 마지막 폭포이며, 점심을 먹은 뒤 10개 정도의 폭포와 만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러는 살짝살짝 우회도 하며, 계곡을 치올라갑니다.

차츰차츰 물이 줄더니 마침내 마른 계곡으로 변해 가면서, 중봉골도 상류임을 알게 해줍니다.

물이 흐르진 않으나, 비스듬한 폭포의 형태를 갖춘 마른바위폭포에 다다릅니다.

하얀 고사목이 길게 누워있는 곳으로, 올 6월 13일 동릉을 타면서 동봉을 우회하느라 지났던 터라

나완 안면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담으려 사진기를 찾으니, 어라!

사진기가 보이질 않습니다.

이럴 수가!

마지막 폭포까지 담고서 배낭 옆 주머니에 넣었는데, 어딘가에서 흘려버린 것입니다.

아까운 마음에 찾아보려 몇 발짝 내려가다, 이내 뜻을 접고 되돌아섭니다.

찾기도 어렵겠지만 나완 인연이 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중봉골에다 그만 묻어두기로 마음을 정한 것입니다.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된비알을, 한동안 타며 천왕 동봉(東峰)으로 올라섭니다.

천왕봉과는 수십 미터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독립된 봉우리는 아니며,

천왕봉 동쪽에 있다하여 산꾼들 사이엔 동봉으로 통하고 있는 봉우리입니다.

동봉을 지나자마자 바로 천왕봉(天王峰, 1915.4m)에 다다릅니다.

오후 4시가 가까운 천왕봉은 비교적 한산한 편입니다.

몇몇이 오르내리고는 있으나, 여느 때와는 달리 붐비지는 않아 참 좋습니다.

남겨둔 막걸리로 정상주를 한 잔씩 합니다.

다 같은 정상주인데도 지리산 그것도 천왕봉에서의 그 맛은, 어딘가 좀은 달리 느껴지나 봅니다.

하산시간이 빠듯하여 오래 머물진 못하고, 천왕봉을 뒤로 하고선 발길을 옮깁니다.

하산코스는 동릉을 타고 가다 암법주굴을 거쳐, 광덕사골로 빠져나갈 예정입니다.

중산리 방향의 깔딱고개로 내려서서 수십 미터만 가면 동릉으로 붙는 길이 열리며,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니 동봉 아래 절터였던 것으로 보이는 공터에 다다릅니다.

여기도 지난 6월 13일 들렀던 곳입니다.

그땐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암릉을 천왕샘 쪽으로 우회하며 올랐는데,

이번엔 중봉골 쪽으로 우회하여 내려갑니다.

 

비탈지고 투박하긴 해도 길은 이어지며, 그런대로 내려갈 만도 합니다.

우회가 끝나고 능선을 타면 잠시 후 나오는 밑둥치만 남은 고사목이 있는 데가 전망대 노릇을

하는 곳이나, 오늘도 구름과 안개가 덮어 별스레 보이는 건 없어 실망을 시킵니다.

바위에 뿌리를 박은 크고 멋진 소나무와 어우러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긴 하나 뭔가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동릉 내림길이 신경을 쓰이게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길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산죽 속에서 빠끔히 열리는 암법주굴 갈림길에서, 동릉을 벗어나며 오른쪽으로 꺾어 갑니다.

동릉을 그대로 타는 게 더 빠르긴 하나, 별 볼거리도 없고 조망도 열리지 않는데다,

여기까지 와서 암법주굴과 광덕사지를 둘러보지 않을 순 없기 때문입니다.

두 달 만에 다시 들른 암법주굴,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우릴 맞이합니다.

큰 덩치만큼이나 입도 무거운 모양입니다.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의 기도터였다는 암법주굴(巖法主屈)!

담장 노릇을 하는 배바위와 더불어,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떠받치느라 애쓰는 여인네 둘이 있으니,

그냥 애교로 봐야 할지? 미련하다고나 해야 할지?

 

암법주굴에서 1분 남짓 내려가자 광덕사골 너머로 길이 보이는데, 그걸 따르면 개선문(凱旋門)

좀 아래에서 중산리 코스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끊어질 듯 희미한 길과 바위를 타며, 산죽을 헤치고선 광덕사지에 닿습니다.

예전 광덕사란 절이 있었다고 하여 광덕사지라 하며, 큰 바위덩어리 아래 널따란 공터와 샘이

있어 그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바빠 오래 머물진 못하고, 발걸음을 또 재촉합니다.

산죽 속을 4분 남짓 가니, 3개의 거대한 바위와 제법 너른 공터가 있는 제2기도터입니다.

힐끔 한 번 눈길만 주고 그냥 지나칩니다.

제1기도터는 아예 들르지도 않고 내려갑니다.

모두들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따라가기가 좀은 버겁다는 생각입니다.

아직은 완쾌가 덜된 오른쪽 무릎이, 오늘따라 좀 더한 부담으로 다가오며 발목을 잡습니다.

오를 때보다 더욱 힘들고 어렵습니다.

제2기도터에서 4분쯤 내려가니 계곡을 건너고, 10여 분 뒤 다시 다른 계곡을 만납니다.

이번엔 건너지 않고 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틀어 내려가자마자, 조금 아까의 계곡과 만나는

합수지점에 다다르며 계곡을 건넙니다.

그렇게 뚜렷하진 않으나 희미한 길이나마 이어지는 게, 그나마 다행이란 마음으로 다들 빠르게

내려갑니다.

스멀스멀 안개가 밀려오는 지리골은 벌써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게, 밤을 맞을 채비를 하면서

맘의 여유마저 빼앗아갑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데?!

 

순두류 2.1km·법계사 0.7km 이정표가 있는 광덕사교에 닿으면서 순두류 코스에 합류하니,

그때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며 마음이 놓입니다.

뚜렷한 길을 따라 40분 가까이면, 끝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점차 걸음이 더 빨라집니다.

고갯마루 쉼터(순두류 1.7km·법계사 1.1km)가 있지만, 쉬지 않고 스쳐지나갑니다.

동릉과 중봉골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고, 계곡에 걸친 기다란 출렁다리도 건넙니다.

기나긴 산행도 막바지에 접어든 셈입니다.

아침에 잠시 지나쳤던 널따란 빈터와 다시 만나선,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가 자연학습원 입구에

닿으면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쏟아지는 폭포수를 맞으며 더위를 식힌 즐거운 기억이 있는가 하면, 근 1년 가까이 나랑 함께 한

사진기를 중봉골에다 묻는 아픔도 맛본, 지리산에서의 하루는 참 길고도 길었습니다.

모든 건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먼 훗날 꺼내 우려먹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하산주 생각이 나며 마음이 바빠집니다.

중산리 주차장으로 가는 막차에 오릅니다.

그리곤 떠납니다.

내 돌아갈 곳 진주로.

 

 

 

 

 

 

* 산행일정

08:30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입구

08:37          너른 공터

08:46 - 08:55  지리산신제단

09:00          신선너덜

09:28 - 09:45  순두류아지트

10:05 - 10:15  용추폭포와 용소

10:30 - 10:45  마야폭포와 마야독녀탕

10:55          윗용소

11:05 - 11:10  작은 두 갈래폭포

11:40 - 13:10  계곡(점심)

13:30 - 13:40  멋진 두 갈래폭포

13:55 - 14:00  좁은 홈폭포

14:20 - 14:25  떨어진 두 갈래폭포

15:00 - 15:20  마른바위폭포

15:40 - 16:05  천왕봉

16:32          천왕 동릉 솔바위 전망대

17:02          암법주굴 갈림길

17:07 - 17:17  암법주굴

17:47 - 17:50  광덕사지

17:54          제2기도터

18:30          광덕사교

18:39          고갯마루 쉼터

18:51          출렁다리

18:59          너른 공터

19:05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신제단 입구의 절구통(돌확)

 

  

 지리산신제단

 

  

 

 

   

 신선너덜

  

 

 

 

 

 

 

 

 순두류아지트 바로 아래의 자그마한 폭포 

 

 

 순두류바위아지트 

 

 

 

 

  

 산용호 

 

 

 순옥엉가

 

 

 

 

 

 

 

 

                                                     

 

 

                                                용추폭포

 

  

 순옥엉가, 레드아이 

 

 

 나

  

 

 

  

 

 

 

  

                                             마야독녀탕

 

 

 

 

 

 

 

 

 윗용소

 

 

 큼지막한 바위와 어우러진 너럭바위 아래 자리 잡은 멋진 폭포

 

  

 적석, 박용원, 나, 레드아이, 순옥엉가, 산용호

 

  

 도롱뇽을 만나기도                                           

      


 멋들어진 두 갈래폭포

 

  

 

 

 

 

 

 

 중봉골 풍경(1)

  


 중봉골 풍경(2)

 

  

   중봉골 풍경(3)                                 

 

  

 중봉골 풍경(4 - 1)

  

 

                              중봉골 풍경(4 - 2)

  

 

                                                중봉골 풍경(5)

  

 

                                               중봉골 풍경(6)

 

 

                                              중봉골 풍경(7)

  

 

         중봉골 풍경(8)

 

  

 떨어진 두 갈래폭포

 

 

 마른바위폭포

 

 

 

 

  

 

 

 

 동릉 절터에서 레드아이, 순옥엉가

 

 

 동릉 절터의 기와 조각 

 

 

솔바위 전망대의 멋진 소나무

 


 암법주굴 

 

 

 

 

 

 배바위와 암법주굴 

 

 

 배바위

  

 

 

 

 

 

 

 

 

 

  

 광덕사지에서

 

  

 제2기도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