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10년 7월 25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국골 - 두류능선
* 산행거리 : 약 15km 안팎
* 산행시간 : 10시간 15분(운행시간 8시간 03분 + 휴식시간 2시간 12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1명(샐리, 지안, 아름단설, 포비야밥먹자, 적석, 산으로, 창덕궁, 사니조아라,
곰발바닥, 산골촌장, 선함)
지리산(智異山) 국골!
지리산 동북부에 위치한 경남 함양 땅에 자리 잡은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으로, 지리산 최고로 이름난 칠선계곡(七仙溪谷)과는 초암능선을 가운데에 둔
가까운 이웃입니다.
지리산의 수많은 지명 중에서 나라 國자를 쓰는 유일한 곳인 국골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 추성산성을 쌓고 신라의 침공에 대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두류능선과 초암능선 사이에 있는 국골은 두어 시간 오르면 좌골과 우골로 갈리는데,
좌골은 초암능선 정상인 영랑대(1746m)와 국골 사거리 사이로, 우골은 초암능선의 촛대봉
아래 안부로 이어진다고 하며, 처음 들머리는 비슷해 보이나 좌골이 수량이 많고 절경인 폭포가
줄줄이 이어져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좌골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좌골을 오르기로 하고 진주를 출발합니다.
진주 솔산악회의 일요탐구산행에 11명이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서진주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서 달리다, 산청군 생초 나들목에서 일반도로로 빠져나갑니다.
함양군 마천면 소재지인 가흥마을 입구에서,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의탄교를 지나며 지리산 자락으로
올라붙습니다.
칠선계곡과 벽송사가 있는 추성리 쪽입니다.
의탄마을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은 벽송사와 광점동으로 이어지며,
우회전은 추성마을과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입니다.
추성교를 지나 널따란 추성리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아침부터 몇 명의 영감들이 설치고 다닙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게 아니고 추성마을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주차료가 얼마냐고 물으니 5,000원이라고 합니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 전 갈림길 부근에도, 몇 대 정도는 주차할 공간이 있었으니
되돌아 나옵니다.
주차료가 너무 비싼데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필요 없는 경비를 쓸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산행채비를 하고선 대장정에 들어갑니다.
몇 시간이 걸릴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열 시간 정도로 어림짐작을 하지만 지리산의 계곡과 능선을 타는 건,
미리부터 예측은 금물이고 모든 건 가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추성교와 추성리주차장도 지나자, 두류정(頭流亭)이란 육각정이 기세 좋게 내려다보며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칠선계곡과 초암능선은 여기서 반드시 직진을 해야 하지만,
국골은 왼쪽의 포장도로를 타는 게 보는 눈을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어 속이 편합니다.
하지만 선두가 바로 가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추성마을회관을 지나 추성산장에 다다라서야 왼쪽으로 난 포장도로로 꺾어 올라갑니다.
노부부 한 쌍이 제일 뒤에 가는 날 보더니, 그곳은 들키면 비싸게 치이는 곳인데?라고 합니다.
씨익 한 번 웃어 주곤 내 갈 길을 갑니다.
안 그래도 그 정도는 알고 왔습니다 그려!
가파른 포장도로를 조금 올라 두류정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와 만나자, 출입금지 표지판이 길가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하라며 다독거립니다.
2008년 3월 1일부터 2017년 2월 28일까지 10년 동안 국골 - 하봉 - 중봉을 잇는 7.5km 구간을
통제한다는 것인데, 정상적으로 해제를 해도 이미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이며,
지금까지의 예로 봐선 그때도 해제한다는 보장이 없어 보입니다.
이미 내디딘 발걸음, 여기서 멈출 선 없습니다.
그대로 나아갑니다.
칠선계곡과 초암능선 초입인 용소 쪽을 바라보니 또 다른 욕심이 생기지만,
한꺼번에 두 숙제를 해결할 순 없어 다음 기회로 미뤄둡니다.
조금 처져 오르니, 앞서가던 일행들이 되돌아 내려옵니다.
국공파(國公派)가 있느냐 물으니, 외딴집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그 길이 아닌 것 같답니다.
바로 가는 계곡 쪽을 보니,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길이 있어 보입니다.
계곡 옆을 희미하게 따르던 길은 어느 순간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데,
차츰차츰 왼쪽으로 붙으면서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또렷한 길과 다시 만납니다.
알고 보니 그 외딴집을 통과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계곡을 오른쪽에다 끼고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다 다시 계곡으로 붙자,
해발 약 600m 지점에서 첫 폭포가 우릴 반깁니다.
비록 이름 없는 무명폭포지만 그래도 여름이고 아직은 장마철인지라,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위력이 있어 보이고, 그 아랜 그럴싸한 소(沼, 물웅덩이)
까지 갖춰 멋진 모습을 보여 줍니다.
4분 남짓 더 오르자 또 하나의 폭포가 반기는데, 편의상 제2폭포라고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럴듯한 벼랑에서 떨어져 폭포다운 형태를 갖췄다고 할 수 있으며,
주변의 이끼와 소가 이를 뒷받침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폭포를 둘러보고 오르자 바로 위에서 일행이 쉬고 있는데, 오늘따라 엄청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듭니다.
며칠 전부터 감기몸살을 앓고 있어 그러리라 생각하고, 좀 지나면 풀리려니 했는데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감기 걸린 채 한두 번 산에 간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간식을 먹어보나 별다른 맛도 느낄 수 없습니다.
10여 분 치올라 해발 약 750m 지점에서 첫 번째로 국골을 건너는데, 이제 그만 산길을 버리고
계곡치기로 들어갑니다.
신발을 신은 채로 곧바로 수륙양용 장갑차로 둔갑합니다.
버틴다고 될 문제도 아닌데다 여름철 계곡산행은, 빠지는 맛에 간다고 하는 게 아마도 맞을 겁니다.
10분 정도 오르자 제법 높은 곳에서 퍼지며 떨어지는 폭포를 만나는데,
이름이 없다기에 내 맘대로 제3폭포라고 지어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도 이름이 있는데, 그만하면 이름을 얻고도 남음이 있으리란 생각에섭니다.
또 10분쯤 오르자 나오는 세 갈래폭포를 제4폭포라고 불러줍니다.
가운데 물줄기는 상당한 위력을 자랑하지만, 양옆은 가느다랗게 떨어지긴 하나 조화를 맞추는 모습에서 하나보단 셋이 더 낫다는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바위를 타고 물을 건너서 30여 분을 오른 해발 약 890m지점에서 계곡이 나뉘는데,
국골 사거리로 이어지는 길이 건너는 벌떡선골이 국골 본류로 합류하는 곳입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차츰 몸이 돌아오긴커녕 갈수록 나빠집니다.
다리엔 힘이 없어 후들거리고 맥이 탁 풀리면서 움직이기도 싫어지지만,
그렇다고 아니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속이 더부룩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맨 뒤에 처져서 천천히 올라가지만 아무에게도 내색은 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내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은 모릅니다.
물길을 따라 20분쯤 오르자, 먼저 간 일행들이 쉬고 있습니다.
내가 제일 나중 도착한 것입니다.
아마존 헬파 곰발바닥이 메고 간 수박을 잘라 나눠 먹는데, 한 조각 들고 먹으려니까 휘청거리며
중심이 잡히질 않습니다.
물을 건너 바위 위에 걸터앉아 먹어 보나, 맛을 느낄 수가 없고 먹는 것조차도 힘이 듭니다.
얼굴을 물로 씻으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지만, 한 번 나간 얼은 좀체 제자리로 돌아오질 않습니다.
최근 계속되는 술과 산행 등으로 상당히 몸을 혹사한데다가, 심한 감기몸살까지 앓고 있으니
완전히 기력(氣力)이 바닥난 것 같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일행이 출발하기에 따라 가지만,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집니다.
해발 약 1050m 지점에서 국골이 좌골과 우골로 나뉘는데,
언뜻 보니 두 계곡의 규모가 비슷해 보입니다.
우골은 초암능선의 촛대봉 아래 안부로 이어지는 선골이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좌골인
날끝산막골입니다.
좌골로 들어서자 10분도 채 되지 않아 1폭포가 나타나더니, 총총총총 잇따라 폭포의
연속입니다.
오르지 못할 곳은 거의 없어 거의 다 계곡을 타고 오르지만, 난 오늘은 웬만하면 우회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람에 폭포가 있는 바위를 타는 건, 너무 위험하고 무리라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은 점점 더 회복과는 다른 방향으로 달아납니다.
폭포를 타고 직접 오르지 못하는 곳은, 우회로가 있어 그리로 해서 올라갑니다.
상당히 가파르고 밧줄이 달린 곳도 있지만, 오르지 못할 곳은 결코 없습니다.
기를 쓰고 힘들게 우회로를 오르는데, 이마에 뭐가 부딪치면서 눈에 불이 번쩍 납니다.
고개를 드니 바위가 삐쭉 튀어나와 있는데, 그걸 모른 채 들이받은 것입니다.
모자를 썼는데도 부딪친 부위가 화끈거리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또 생채기가 난 것 같습니다.
세 골짝이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해발 1350m 남짓 되는 곳입니다.
탐구산행의 기본메뉴인 삼겹살에다 온갖 진수성찬이 즐비하지만,
오늘의 나에겐 그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쳐다보기조차 싫어집니다.
그렇게 움직였는데도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속이 더부룩한 것도 아닌데 도무지 식욕이 생기질
않습니다.
원기(元氣)가 빠져서인지 축 늘어지는 게,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순 없어 사탕을 몇 개 깨물어 보고, 덜 녹은 단술도 마셔보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어서면 어질어질해서 중심잡기도 어렵고, 앉아있어도 흔들흔들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또 갈 길을 재촉합니다.
왼쪽의 마른 계곡으로 올라갑니다.
사태난 돌이 골짝을 메우면서 다져지지 않아 미끄럽기도 하지만,
돌이 구르는 경우도 더러 있어 사이를 두고 천천히 올라갑니다.
상당한 된비알이 이어지는지라 힘들기도 하지만, 더욱 어렵게 만드는 건 바로 나 자신의
몸 상태입니다.
갈수록 기력이 바닥이 나며 힘이 듭니다.
억지로 너덜지대를 오르고 나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흔들리며 비틀거립니다.
눈이 슬슬 풀리고 의식도 흐릿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본 산으로가 깜짝 놀라며 다가오고, 나머지 일행들도 걱정스런 맘으로 지켜봅니다.
산으로는 거제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인데, 나와는 일요산행을 여러 번 같이 하면서
제법 친해진 사입니다.
손가락에 침을 놓는 등 응급처치를 하고, 진주의료원 간호사인 샐리가 등을 두드리고 지압을
하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웁니다.
좀 있으니 속에서 뭐가 올라오더니, 입을 통하여 두어 번 내뿜습니다.
체한 것 같은데 이제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산으로, 나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은
들지만 몸이 회복되기엔 아직은 이르나 봅니다.
내 배낭을 샐리가 메고 샐리 건 창덕궁이 자기 거와 같이 앞뒤로 메고, 난 지팡이만 짚고
빈몸으로 올라가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소주 됫병을 마시고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가다 쉬다를 되풀이하다 마침내 동부능선으로 올라섭니다.
국골 사거리와 초암능선 정상인 영랑대 사이의 별 특징 없는 해발 1560m 남짓 되는,
지리산 태극종주를 할 때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그마한 공간이 있어 잠시 머물면서 또 산으로와 샐리가 달라붙어 응급처치를 하는데,
좀 지나자 이번엔 입에서 트림이 한 번 나옵니다.
차츰 정신이 맑아지고 다리에도 힘이 좀 실리는 느낌이 오자, 이제야 비로소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때문에 제법 지체한 것 같습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좀 내려가자, 국골 사거리(1490m)가 나옵니다.
태극종주 시 야간에 동부능선을 지나게 되면, 아주 주의해야 하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입니다.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엉뚱한 데로 빠지면서, 그만 태극종주를 망쳐버리는 산꾼들이 더러
나오기도 하는 곳입니다.
몇 년 전까지 국골 사거리란 안내문과 함께 새재방향(산청 삼장면 유평리) 소요시간 4시간,
국골방향(함양 마천면 추성리) 소요시간 4시간이란 안내판이 있었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그것마저 치워버리고 없어 밤이나 처음 가는 사람들이 까딱하면 애를 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진행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국골이요 오른쪽은 청이당고개이고, 뒤가 하봉이요 가야 할
두류능선(頭流稜線)은 직진입니다.
나무로 막아 놓았지만, 그걸 넘어서 그냥 지나갑니다.
곧이어 바위지대가 나오면서 괴상하게 뒤틀린 소나무를 지나자마자 멋진 바위 봉우리에 올라섭니다.
함양군에서 세운 정상석에는 영룡봉(1543m)이라 표기해 놨는데,
예전엔 여기를 두류봉이라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2009년 9월 26일 지리산 태극종주를 하면서 지날 때, 영랑대 맞은편 암봉에 두류봉 정상석
(1618m)이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형태로 봐선 아마도 두 개의 정상석을 같이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함양군에선 가라고 정상석까지 세우는데 반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선 가지 말라고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어 놓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어쨌거나 영룡봉에서 생환기념 사진을 남깁니다.
하마터면 다시는 햇볕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 돌아온 것이 무엇보다 고맙고 좋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 샐리에게 배낭을 달라하였으나, 아직은 아닌 것 같다며 거절합니다.
큰 덩치 못지않게 마음 씀씀이도 여간 아닌 샐리, 나완 스물네 살 차가 나는 띠동갑인 골드 미스
입니다.
산행을 몇 번 같이하며 안면을 익힌 사이로, 털털한 성격이 참 맘에 드는 아가씨라는 생각입니다.
두어 군데 밧줄구간이 있는 등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15분 정도 나아가자, 향운대 갈림길 안부(1430m)가 나옵니다.
무슨 표시가 있는 것은 아니나, 오른쪽 허공다리골 방향으로 길이 제법 뚜렷이 나 있어 찾기는
비교적 무난한 편입니다.
길을 따라 비스듬히 다시 15분 남짓 가자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는데, 이를 지리산 10대 가운데
하나라는 향운대(香雲臺)라 한답니다.
지리산 10대는 노고단 아래 질매재 가는 길의 문수대, 종석대 아래의 우번대, 반야봉 중봉 아래의
묘향대, 피아골대피소 위의 서산대, 불무장등 내림길의 무착대, 법계사 부근의 문창대,
영신봉 아래의 영신대, 장터목 산희샘 옆의 향적대와 뱀사골 부근에 있다고만 전해질 뿐
밝혀지지 않은 금강대를 포함하여 10대라고 합니다.
위를 쳐다보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며, 사진기에 담으려 하나 아무리 용을 써도 다 들어오질
않습니다.
앞의 공간이 넓지 않은 게 약간 아쉽긴 하나, 그 앞에 높지 않은 전망바위가 있어 이를 대신합니다.
산청 독바위가 하얀 모습을 드러내며 자태를 뽐내고, 그를 품은 동부능선도 멀리까지 눈에 담기며
날 보라 합니다.
향운대 밑엔 석간수(石間水)가 흐르나 관리를 하지 않아 당장 마시긴 어려울
것 같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충분히 비상식수 노릇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옆엔 바위 밑에 움막이 있어 누군가가 기거하며 기도도 하곤 했던 것 같지만,
좀 오래 전의 일이고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은 보이질 않습니다.
포비야밥먹자가 키위를 깎아 주며 기운을 차리라고 하는데, 나와는 오늘 처음 산행을 하는
아가씨입니다.
늘씬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가 인상적이며, 산행 실력도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몇 조각 먹으니까 다리에 힘이 붙으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깁니다.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갈 만은 한 것 같아 샐리에게서 배낭을
돌려받습니다.
어깨에 메니 묵직합니다.
그러고 보니 갖고 간 막걸리 두 통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여태까지 메고 온 샐리에게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합니다.
지금 상태론 마시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아까워, 무겁긴 해도 그냥 짊어지고 가기로 합니다.
내려가서 하산주 하면 되니까!
향운대를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좌우 갈림길에선, 왼쪽의 두류능선 쪽으로 오릅니다.
오른쪽 아래론 허공다리골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10여 분 뒤 두류능선에 합류하여 4분 남짓 가, 제단이 있는 전망대봉으로 올라섭니다.
아마도 1479m봉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작은 공간에다 낮은 돌담을 약간 둘렀는데, 그 앞에 작은 평평한 돌이 있는 걸로 봐선
제단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망대에 서자 마천 일대의 지리산 자락은 거의 다 들어옵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과 능선은 끝난 데를 알 수 없고, 아래론 우리가 오른 국골이 부끄럼없이
모든 걸 드러내 보입니다.
가야 할 두류능선도 한눈에 훤히 다 들어옵니다.
영랑대 쪽만 살짝 모습을 드러낼 뿐, 중봉(中峰, 1874.6m)과 천왕봉(天王峰, 1915.4m)은 구름이
비켜주질 않아 보이지 않음이 살짝 아쉬울 따름입니다.
조망을 즐기고 사진을 찍는 등 한동안 머물다 돌아서서 5분쯤 내려서자, 안부에 큰 바위군이
자리 잡고 있어 그걸 또 올라야 하는데, 큰 바위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습니다.
턱이 낮아 지나다닐 수도 있습니다.
큰 바위가 나오면 그걸 우회하고, 더러는 타고 오르기도 하면서 갈 길을 재촉합니다.
또 다른 전망대에 다다르자,
잠깐 동안이나마 중봉과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내며 팬 서비스를 합니다.
그래 고맙다!
멋진 소나무도 나오면서 눈요기를 시켜줘, 지루한 줄 모르고 기나긴 두류능선을 내려갑니다.
밧줄구간도 있고 산죽도 나오지만 진행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며, 비교적 부드럽고 순한 길이
이어집니다.
오른쪽 숲 사이로 함양 독바위의 웅장한 모습도 간혹 눈에 들어옵니다.
1479m봉에서 1시간 30분 남짓 내려서자 산허리를 감도는 임도를 만나는데,
황토를 채취한 구덩이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광점동과 성안을 잇는 임도를 건너 희미한 길로 붙어 포장도로로 내려서고,
두류정으로 빠져나가 추성리주차장과 추성교를 지나면서 산행을 마무리 짓습니다.
산을 다닌 이후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진행한 국골과 두류능선 산행!
오래 다니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하루, 비록 최악의 결과는 면했지만 참으로
아찔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은 쓸모가 있기에 그래도 살라고, 유능한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11명이 함께한 탐구산행!
죽을 고생을 한 하루였지만, 그러기에 더욱더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으리라 믿으면서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차에 오릅니다.
그리곤 떠납니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
* 산행일정
07:25 추성교
07:32 추성산장
07:48 외딴집 앞
08:20 제1폭포
08:24 - 08:34 제2폭포
08:55 제3폭포
09:05 제4폭포
09:35 - 09:45 벌떡선골 + 국골 합수지점
10:15 - 10:27 휴식
10:40 국골 좌우골 합수지점
12:00 - 12:50 세 골짝 합수지점
13:50 - 14:00 동부능선 합류
14:15 국골 사거리
14:18 - 14:25 영룡봉(1543m)
14:40 향운대 갈림길 안부
14:55 - 15:13 향운대
15:30 - 15:45 전망대봉(1479m)
17:10 임도(광점동 - 성안) 횡단
17:34 두류정
17:40 추성교
추성교
추성리주차장
두류정
추성마을회관
칠선교
외딴집 앞 계곡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
제4폭포
산으로
벌떡선골
국골 좌우골 합수지점
세 골짝 합수지점의 오른쪽 지계곡
세 골짝 합수지점의 마른 계곡
국골 사거리
영룡봉 가는 길의 소나무
영룡봉
두류능선
향운대에서 바라본 산청 독바위
향운대
향운대샘
향운대 움막
두류능선 전망대 제단
마천 쪽이고
산으로
지안
샐리
창덕궁
포비야밥먹자
영랑대, 중봉, 천왕봉
두류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청 독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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