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10년 6월 13일(일요일)
* 날 씨 : 흐린 후 맑음
* 산 행 지 : 순두류 - 광덕사골 - 천왕 동릉 - 지리산 천왕봉 - 천왕 남릉
* 산행거리 : 12km 안팎
* 산행시간 : 9시간 55분(운행시간 6시간 29분 + 휴식시간 3시간 26분)
* 산행속도 : 약간 빠른걸음
* 산행인원 : 6명(적석, 적석2, 산으로, 영스, 곰발바닥, 나)
민족의 영산 지리산(智異山)!
봉(峰)도 많고 골도 참 많습니다.
오죽하면 지리산만 평생 파고들어도, 그래도 못가본 데가 있다는 말이 나올까요?
가고 또 가도 끝이 없는 게 아마도 지리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겁니다.
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곳이 더 많으니, 더더욱 그럴 겁니다.
지리산 자락에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기려 중산리로 갑니다.
꼭 일주일 만에 다시 또......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경상남도 자연학습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법계사에서 운영하는 중형버스인데, 법계사로 가거나 천왕봉을 갈 때 법계교보다 순두류로
오르는 게 거리도 짧은데다 훨씬 수월하기에, 이용객이 갈수록 느는 것 같습니다.
요금은 따로 정해진 게 없으나 최소한 1,000원 이상이라야 하며, 보시함이란 곳에 넣어야 하는데
거스름이란 개념이 없으므로, 꼭 잔돈을 준비하는 게 속도 편하고 손해도 덜 봅니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요리조리 요동치며 오르더니, 자연학습원 입구에서 멈춰서며 더 가지 않으니
내리랍니다.
3.4km 정도 되는 콘크리트길을 걸어 오르자면 땀깨나 흘려야 하는데,
일천 원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곧바로 산행에 들어갑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왔지만, 그전에 제법 다니던 길이라 낯이 설진 않습니다.
산도 그대로요 물도 그대론데, 나만 늙은 건 아닌지?
좀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이정표가 있는 너른 빈터를 지납니다.
중산리 3.4km, 법계사 2.4km, 천왕봉 4.4km 지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계곡에 걸친 제법 긴 출렁다리를 지나면, 중봉골(마야계곡)로 가는 길이 두 번 열리며,
약간 짧은 출렁다리를 건너 10분 남짓 오르면 고개로 올라서면서 쉼터가 나옵니다.
쉬기 좋게 군데군데 바위가 깔려 있으며,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많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우리도 잠시 숨을 고릅니다.
비는 오지 않지만 습도가 높은데다 안개까지 자욱해, 벌써부터 많은 땀으로 범벅을 합니다.
쉬면서 보니 중산리 4.7km, 순두류 1.7km, 법계사 1.1km, 천왕봉 3.1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목을 축이고 갈 길을 재촉합니다.
광덕사교를 지나자마자 순두류 2.1km, 법계사 0.7km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살짝 벗어나며 광덕사골로 들어갑니다.
3분 정도 계곡을 따라 오르니, 반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삼단폭포가 나옵니다.
수량이 많지 않아 아쉽긴 해도, 처음 가는 산객을 반기느라 모양새를 내는 모습이 앙증맞기도
합니다.
좀 더 일찍이 널 찾았으면 좋으련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조금 더 오르니 이번엔 두갈래폭포가 미소를 짓습니다.
밑에는 그럴싸한 소(沼, 연못)까지 갖췄는데, 왼쪽이 조금 더 나아 보이며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나, 오른쪽은 거의 말랐습니다.
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운 계곡을 조심조심 3분 정도 오르니, 제대로 된 폭포다운 폭포가 나옵니다.
계곡을 막고선 제법 높은 벼랑 위에서 떨어지는데 물의 양이 적어 약간은 아쉬울 뿐,
광덕사골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여러 폭포 중 그중 낫다는 생각입니다.
폭포를 타고 올라도 되고,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따라도 됩니다.
약 10분 뒤 계곡에서 다시 만나니까요.
고개를 숙이고 무심코 올라가는데, 뭔가 부딪치더니 이마에서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고개를 드니 끝이 부러진 꽤 큰 나무둥걸이 보입니다.
아뿔싸! 저걸 내가 박았단 말인가!
모자를 썼기에 망정이지, 참말로 큰일날 뻔한 순간입니다.
대번에 지난 봄 팥을 갈았던, 이마부위가 화끈거립니다.
남보다 넓은 이마를 가진 난, 유난히 이마가 수난을 많이 당하는 편입니다.
피가 나는가 싶어 손바닥을 댔다 떼니, 불행 중 다행히도 묻어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행에게 물으니 약간 찍힌 찰과상이랍니다.
그것도 팥을 갈았던 이마부위가 정확히 조금 더 연장되었다네요.
이러다 그 유명한 쓰리랑 부부의 일자눈썹이 되지나 않을는지?
어째 이런 일이!
아직도 다 지워지지 않은 상처의 흔적에 붙어서 표시는 덜 나지만,
너그러운 옆지기 마저 산행금지령을 내릴까봐 걱정이랍니다.
반쯤 둥그스럼한 큰 바위가 계곡을 막고 있어 진행이 어려울 때,
오른쪽의 마른지계곡으로 오르자마자 길이 있습니다.
길을 따라 2분 남짓 가니 갈래길이 나오는데, 일부러 오른쪽의 희미한 길을 따릅니다.
근처에 제1기도터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나 다를까 산죽을 헤치고 조금 가니 기도터가 나옵니다.
꽤 큰 바위사이에 공간이 있고 들어가서도 또 공간이 있는데,
부직포 등이 있는 걸로 봐서 그렇게 오래지 않은 시절에 사람이 기거했던 걸로 보입니다.
오르내린 돌계단도 있어 이를 말해줍니다.
산죽이 앞을 막아 불편하긴 했겠지만......
되돌아서서 아까의 갈래길을 타고 조금 오르니, 3개의 거대한 바위와 제법 빈터가 있는
제2기도터(1316m)에 다다릅니다.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50대로 보이는 가냘픈 몸매의 여인네가 산죽 속에서
불쑥 나타납니다.
일행이 있느냐 물으니 혼자랍니다.
아니 이런 곳에 혼자라니?
인사를 나누고 알고 보니, 혼자서도 잘 다닌다는 부산아지매입니다.
여기도 벌써 왔다갔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 혼자서 이런 델 다니다니!
참으로 간 큰 여자입니다.
잠시 일행이 되기로 합니다.
기도터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3분쯤 가니, 큰 바위덩어리 아래 널따란 빈터가
나오는데, 예전에 광덕사가 있던 자리라 하여 광덕사지(1376m)라고 합니다.
온돌 아궁이가 아직도 남아 있고 바위 밑으로 샘이 있는데, 손보는 이 없어도 물은 나오고,
마셔보니 맛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간식을 먹으며 잠시 머무르며 기력을 보충합니다.
갖고 간 막걸리 3통 중 1통을 비우는데, 소주와는 달리 막걸리는 산행 중 요긴한 간식거리가 됩니다.
특히나 내겐 더더욱 그렇고요.
작년부턴가 산행을 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막걸리가 일용할 양식이 되어 줍니다.
광덕사지에서 2분을 가니, 계곡에 넓고 평평한 바위와 수량은 적지만 폭포가 자리 잡고 있는데,
계곡을 타든 우회로를 따르든 약 8분 후에 계곡에서 다시 만납니다.
또 하나의 그럴싸한 폭포를 지나, 거대한 바위가 막아선 곳을 왼쪽으로 돌아 오르니,
태조 이성계(太祖 李性桂)의 기도터라는 암법주굴(巖法主屈, 1570m)이 우릴 맞습니다.
보는 순간 그만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런 데 뭐 이런 게 다 있노!
끝 간 데를 모르는 거대한 바위 앞부분엔 한길 가량 높이의 넓고 커다란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고, 배바위라 부르는 기다란 바위가 마치 담장인 양 그 앞에 버티고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배바위 한가운데에 갈라진 틈이 있는데, 그걸 본 적석2님이 천안함바위라고 이름을 갖다 붙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해 보입니다.
비록 역사의 아픈 상처지만, 천안함이 지리산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배바위에 올라보니 약간 비스듬하긴 해도, 밑에서 볼 때와는 달리 생각 밖으로 넓습니다.
배바위에 바짝 붙은 쭉 곧은 두릅나무 끝에, 먹기 딱 좋을 만큼의 순이 나와 있으나 못 본 척합니다.
암법주굴과 배바위 사이의 꽤 넓은 빈터에 주방을 차립니다.
닭다리가 나오고 삼겹살을 굽는 등 먹음직스런 재료가 줄을 잇고, 빠질 수 없는 막걸리와 맥주가
이에 가세합니다.
먹고 마시고 웃고 즐기면서 배를 채웁니다.
부산아지매가 작별인사를 합니다.
우리랑 같이 가자고 했으나, 끝내 제 갈 길로 갑니다.
온 길로 약간 내려가, 개선문(凱旋門) 조금 아래로 빠지는 길로 간답니다.
안녕히 가시라요, 다음에 또 만나겠지!
지리산 자락 어디에선가!
우리도 길을 나섭니다.
돌아서서 왼쪽의 산죽이 많은 길을 밟고 갑니다.
천왕봉 동릉이라는 곳인데, 광덕사골과 중봉골을 가르는 산줄기입니다.
7분 남짓 오르니, 좀 큰 바위가 있는 곳으로의 길이 약간 더 뚜렷하나,
그건 중봉골로 이어진다고 하며, 진행방향은 왼쪽의 산죽 속으로 난 길입니다.
잠깐 동안 산죽이 함께하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고, 이후 비교적 잘 난 길을 따라 오릅니다.
바위에 뿌리를 박은 크고 멋진 소나무가 있는 델 올라서니, 밑둥치만 남은 고사목이 있는 곳에서
조망이 열리는 것 같으나, 구름과 안개가 막아버려 보이는 건 그 둘 뿐입니다.
바로 앞의 큰 소나무 밑에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10분을 더 나아가니 아주 거대한 바위가 앞을 막아서는데, 동봉 전위봉이라고 불러봅니다.
앞으로는 오를 방법이 없고 좌우로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왼쪽으로 진행합니다.
큰 바위가 짓누르는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한참을 가고 또 가도 끝이 없습니다.
겨우 끝인가 싶더니 사람소리가 왁자지껄한데, 아마도 천왕샘 근처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주등산로 곁에 거의 다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하여 올라갑니다.
조금 오르니 바로 옆에 등산객이 보이는데, 천왕봉 조금 아래의 깔딱고개를 오가는 사람들입니다.
완전히 우회하여 오르니 동봉 밑에 제법 넓은 빈터가 있는데, 주변에 기와 조각이 더러 있는 걸로
봐서, 예전에 아주 작은 암자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딱 알맞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고개를 살짝 내미니, 천왕봉이 바로 앞에 마주 보입니다.
오늘도 다름없이 많은 등산객들로 북적거립니다.
동봉 왼쪽으로 천왕봉으로 바로 가기엔 너무 멋쩍은 생각이 들어, 우회하는 길이 있는가 싶어
살펴도 보이질 않습니다.
돌아서니 아까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접어들자마자 왼쪽의 중봉 방향으로, 아주 희미한 갈림길이 보입니다.
따라 내려갑니다.
넝쿨이 막고 잡목이 거치적거려도, 가야하기에 그냥 나아갑니다.
아니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른바위폭포가 있는 계곡에선, 바위 위로 좌회전하여 동봉을 바라보며 올라갑니다.
허연 고사목이 길게 누워 있는 중봉골 최상단으로, 천왕봉 동봉에서 중봉골이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게 됩니다.
아래로도 중봉골을 따라 길이 나 있습니다.
아무리 막아도 사람이 가지 않는 곳은 없나 봅니다.
상당히 가파른 길이 이어집니다.
어찌나 된비알인지 마지막엔, 네 발로 기다시피 동봉으로 올라섭니다.
동봉이란 별도의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아니고, 천왕봉과 바로 붙어있는 동릉의 정상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천왕봉으로 곧바로 가려다, 천왕굴(天王屈)을 가 보자고 해 그리로 갑니다.
말만 들었지 나도 가 보진 않아, 군말 않고 따라 나섭니다.
마주보는 중봉엔 금세 구름이 끼었다 벗어나길 되풀이하고, 좀 먼 남해 쪽엔 온통 구름이 덮은 데다, 더 멀리는 바다와 섬까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니 모두 다 구름이 만드는 작품입니다.
중봉 가는 길로 조금 내려서면 널따란 바위에 밧줄을 매달은 곳이 있는데,
중봉은 줄을 잡고 약간 좌회전이지만 우린 그대로 직진합니다.
바로 아래에 뾰족한 바위 하나가 솟아 있는 곳에 천왕굴이 있지만,
바로 갈 수는 없고 바위를 타고 끝까지 가다 벼랑으로 갈 수 없을 때쯤, 오른쪽으로 길이 열립니다.
위험한 데는 나무받침이나 밧줄이 있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가면 커다란 바위굴인 천왕굴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뒤쪽 위로 볕이 드는 걸로 봐서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나와는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셈인데, 천왕굴의 위용에 놀라다 더 놀라운 광경을 보고선,
이내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흰 페인트로 벽면에 새겨진 특정종교를 믿으라는 글귀와 문양은, 실망과 당혹감에 이어 분노를
자아내게 합니다.
누가 왜 이런 짓을 여기다 했는지?
사진에 보면 글씨가 붉었다가 희었다가 하는데, 누군가 쓰면 또 누군가는 지우고 하다 보니
그런 모양인데, 제발 자연 그대로 그냥 두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포교하려다 어쩌면 역효과가 날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찝찝한 기분으로 되돌아섭니다.
첫 만남이었는데!
천왕봉으로 올라가 물증을 남기고선, 정상주(頂上酒)를 한 잔씩 합니다.
메고 다닐 땐 무겁기도 하지만, 이럴 땐 막걸리가 한몫 단단히 합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도 천왕봉을 밟았으니, 너무 자주 가는 것은 아닌지?
나완 친한 천왕봉이기에 이해하리라 믿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요?
천왕봉을 내려서며, 이제 하산에 들어갑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깔딱고개를 오르며 힘들어 합니다.
얼마나 남았냐고 묻기에 100m 남짓이지만, 그런 걸음이라면 10분은 가야한다며 그들을 실망시킵니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건 옛날 방식이고, 지금은 바른말을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소신이기도 합니다.
어렵게 오를수록 더더욱 반갑게 그들을 맞을 겁니다.
천왕샘의 물이 거의 말랐습니다.
지난 봄 쓸데없는 비가 그렇게도 오더니만, 쓸모가 있는 요즘은 뚝 그치고 말아,
애간장이 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소식입니다.
특히나 농촌엔 가뭄을 겪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많아도 탈, 적어도 탈인 게 한둘은 아니겠지만, 그중에 으뜸은 바로 물이란 생각입니다.
천왕봉이 빤히 쳐다보이는 천왕샘고개를 내려서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이 끝나고 20m 남짓 가면
산행로는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는데,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살짝 들어갑니다.
10m쯤 가서 뚜렷한 직진하는 길을 버리고, 좌회전하는 희미한 길로 접어듭니다.
직진은 통신골로 이어지는 길인 것 같습니다.
미지의 세계 천왕봉 남릉!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칼날 같은 바위를 타고 갑니다.
아차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바위에서 내려서는 것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때론 바위를 타고, 또 때론 우회를 하면서 내려갑니다.
군데군데 표지기가 달려있긴 하나 워낙 희미한 길이라,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가 좀은 버겁습니다.
50여 분 진행하여 노송이 멋진 바위로 올라서는데, 법계사에서 오를 때 왼쪽 능선으로 아주 큰
바위덩어리가 보이는 곳입니다.
여기서도 한때 신문창대로 알려진 법계사 쪽의 전망바위도 보입니다.
잠시 쉬면서 구경과 간식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20분 남짓 가니, 오른쪽 앞으로 유암폭포가 보이는
남릉 최고의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바위가 크고 높아 좋기도 하지만, 막힘없는 조망으로 더욱더 좋습니다.
바로 앞엔 거의 같은 높이의 큰 바위가, 좁은 틈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간이 부었거나 아주 큰 사람은, 뛰어 건널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린 되돌아섭니다.
아직은 제정신이고, 할 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회하여 다가서니 1m도 되지 않는 기다란 틈새가 있고, 양쪽 다 깎아지른 직벽(直壁)입니다.
그야말로 칼로 벤 것 같습니다.
밧줄을 매달아 올라갈 수도 있고, 우회해도 물론 됩니다.
바위에서 내려와 희미한 길을 따르다 어느 순간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을 땐,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가끔 있던 표지기도 보이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남릉을 벗어난 것 같긴 한데 안개와 구름으로 잘 보이지도 않아,
어디가 어딘지도 분간할 수도 없습니다.
알고 보니 남릉은 왼쪽에서 우릴 기다리는데, 오라는 말을 않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요!
오늘따라 지리산 산신령도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가끔씩 문자도 보내고 하더니, 서운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왜 그러지?
이젠 무턱대고 내려갑니다.
잃은 길을 찾는다는 건 무리라는 생각으로, 조금이라도 빠끔한 데가 있으면 그리로 갑니다.
등성보다는 계곡이 좀 나을 것 같아 계곡을 따릅니다.
산죽이 막는 곳은 헤치고, 넝쿨이 막는 곳은 둘러서 갑니다.
지리산 오지탐험(奧地探險)을 하는 셈입니다.
좀 내려가니 고로쇠 채취용 호스가 보여, 우릴 안심시킵니다.
적어도 사람이 다녔다는 자취는 있으니까요.
비에 젖은 계곡을 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거의 1시간에 걸친 고생 끝에 정규 등산로에 합류합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객지에서 오랜 씨동무를 만난 기분입니다.
홈바위 좀 아래의 아주 큰 고사목이 누운 곳이며, 긴급통신중계기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조금 내려가 계곡물에 낯을 씻으며, 고생의 흔적을 지워냅니다.
별의별(別의別) 것이 다 묻은 목도 물로 씻어냅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또 떠납니다.
얼마 안 가 두 개의 긴 철계단이 연거푸 나오는 데를 지납니다.
몇 년 전 사태가 난 곳을 정비한 곳입니다.
아직은 밝아야 할 시각이지만, 찌푸린 지리산은 벌써 어두컴컴합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숨은골 출렁다리 직전의 고개에 다다릅니다.
정상적으로 내려왔다면 이리로 오는 건데, 꽤 어긋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는 없는 법,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하산은 어찌나 빠른지, 모두들 뛰다시피 내려갑니다.
순식간에 칼바위 위 출렁다리를 건너고, 칼바위도 그냥 스쳐 지납니다.
앞서가는 산객들을 차례차례 제칩니다.
젖어서 미끄러운 길도, 속도를 줄일 순 없습니다.
그러다 때론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지만......
법계교에 다다르며 속도를 줄이면서, 비로소 산행을 마무리 짓습니다.
어지간히 많이 산을 다녔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좋은 구경도 많이 했지만, 고생 또한 이에 못지않은 산행이었습니다.
산을 다니다보면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는 고생, 어쩌면 그런 재미로 산에 가는지도 모릅니다.
다는 아니고, 내가!
돌아가는 길에 추어탕과 맥주로 고픔을 해갈합니다.
그래도 또 산으로 가잡니다.
차에 오릅니다.
그리곤 떠납니다.
여름엔 덥지만 겨울엔 추운 내 사는 곳 진주로......
* 산행일정
08:35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08:42 너른 빈터(중산리 3.4km, 법계사 2.4km, 천왕봉 4.4km)
08:49 긴 출렁다리
08:55 짧은 출렁다리
09:05 - 09:15 고개 쉼터(중산리 4.7km, 순두류 1.7km, 법계사 1.1km, 천왕봉 3.1km)
09:22 광덕사교(순두류 2.1km, 법계사 0.7km)
09:25 삼단폭포
09:32 두갈래폭포
09:35 광덕사골 제일폭포
10:05 - 10:11 제1기도터
10:15 - 10:20 제2기도터
10:23 - 10:38 광덕사지
11:00 - 12:35 암법주굴
12:42 중봉골 갈림길 바위
13:08- 13:13 동릉 솔바위 전망대
13:25 - 13:30 동봉 전위봉 앞(우회)
13:40 - 13:50 동봉 전위봉(빈터)
14:00 중봉골 최상단 마른폭포
14:11 - 14:16 동봉
14:23 - 14:33 천왕굴
14:40 - 14:55 지리산 천왕봉
15:03 천왕샘
16:00 - 16:10 남릉 솔바위 전망대
16:30 - 16:35 유암폭포 전망대
17:40 긴급통신중계기
17:42 - 17:52 계곡(휴식)
18:05 숨은골 출렁다리
18:13 칼바위 위 출렁다리
18:30 법계교
너른 빈터 이정표
중봉골 갈림길 이정표
고개쉼터 이정표
광덕사교 이정표
광덕사교
두갈래폭포(1)
두갈래폭포(2)
제1기도터
제2기도터
나
나
광덕사지샘
두릅(1)
두릅(2)
광덕사지에서
광덕사지 수석(욕심은 나지만?)
광덕사지
가냘픈 폭포
이끼
배바위
암법주굴 수석(모두를 위해?)
나
암법주굴
배바위와 암법주굴
동릉 솔바위 전망대의 솔
솔바위 전망대에서 나
동봉 전위봉(1)
동봉 전위봉(2)
중봉골 최상단 마른바위폭포(1)
중봉골 최상단 마른바위폭포(2)
중봉(1)
중봉(2)
중봉(3)
구름바다(1)
구름바다(2)
천왕굴(누가 이런 짓을?)
천왕굴(1)
천왕굴(2)
천왕굴 바위
천왕굴 갈림길 밧줄구간
천왕봉 이정표(1)
천왕봉 이정표(2)
나
곰발바닥, 영스
곰발바닥
천왕샘 이정표
천왕샘
천왕샘 남강(덕천강) 발원지 안내판
유암폭포 전망대 사이 공간
날머리 고사목
날머리 긴급통신중계기
숨은골 출렁다리
칼바위 위 출렁다리
칼바위
법계교 부근 날머리
* 아래 사진은 적석님이 찍은 것임을 밝혀드립니다.(감사)
삼단폭포
삼단폭포 상단폭포
광덕사골 제일폭포
높은 폭포
제2기도터
배바위
남릉 유암폭포 전망대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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