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산행기

황암사에서 황석산과 거망산 종주

큰집사람 2026. 3. 23. 04:46

 

 

 

* 산행날짜 : 2026년 3월 22일(일요일)

* 날      씨 : 흐리다 차차 갬 

* 산 행  지 : 함양 황석산 - 거망산

* 산행거리 : 14.2km(이정표 기준, GPS 15.3km?)

                   황암사 - 5.1km - 황석산 - 4.3km - 거망산 - 3.4km - 사평 - 

                   0.6km - 지장골입구 - 0.6km - 도수골입구 -0.2km - 일주문주차장 

* 산행시간 : 8시간 40분(운행시간 6시간 40분 + 휴식시간 2시간 00분)

* 산행속도 : 보통걸음 

* 산행인원 : 14명(앵경, 거북이, 신난다, 고암, 갑짱, 해랑, 담비, 선함, 

                           남원옵서버 2명, 통영옵서버 4명)

 

 

 

 

 

* 산행일정

08:28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38-1번지 (서하면 육십령로 2989) 황암사

08:42              사방댐      

08:48              황석산 등산로 갈림길(황석산 3.9km · 황암사 1.2km)

08:49              첫 번째 계곡 횡단 

08:53              두 번째 계곡 횡단

09:03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4-1지점

09:04              세 번째 계곡 횡단

09:12              네 번째 계곡 횡단

09:38 - 09:45  T자 지능선 삼거리(황석산정상 2.1km · 황암사 3.0km)

09:52 - 09:58  전망대

10:10              이중 석문

10:46              유동마을 갈림길(유동마을 3.4km · 황석산정상 0.6km ·

                       황암사 4.5km)                      

11:06 - 11:30  황석산성 동북문지(황석산정상 0.1km · 유동마을 4.1km · 

                       우전마을 4.4km)             

11:37 - 11:48  황석산(1,192m) 

11:58 - 12:45  황석산성(황석산정상-거북바위 사이)

12:54 - 12:58  거북바위

12:59              북장대 추정지

13:16              묵은 헬기장

13:22              뫼재(탁현마을 · 유동마을 갈림길: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1-5지점)

13:52 - 13:55  큰골(청량사-장자골) 갈림길(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1-6지점: 큰골 2.2km · 황석산 2.5km · 거망산 1.8km)

14:00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거망산 3-1지점

14:05              1,205m봉(작은 공터)

14:22              1,089.9m봉(남쪽 능선 분기봉,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거망산 3-1지점: 황석산 3.3km · 거망산 1km

14:25              1255.1m봉 직전 능선 삼거리(능선로-우회로 갈림길,

                       황석산 3.4km)

14:26 - 14:30  1255.1m봉(또는 1245m봉?)

15:04 - 15:07  거망샘 안부 사거리(119구조대 함양 거망산 2-3지점:

                       황석산 3.9km · 거망산 0.14km · 지장골입구 3.3km)

15:08              거망샘

15:09              거망샘 안부 사거리

15:13 - 15:24  거망산(1184m)

15:34              장골 삼거리(1180m, 동쪽 능선 분기봉)

15:40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거망산 1-3지점

15:41              은신치 갈림길(은신치 3.35km · 거망산정상 0.62km · 

                       태장골입구 2.74km)

16:06              119구조대 함양 거망산 1-2지점

16:24              태장폭포

16:27              119구조대 함양 거망산 1-1지점(거망산정상 2.41km · 

                       태장골입구 0.95km)

16:45              사평마을 사거리(태장골 거망산 3.4km · 시흥골 기백산 4.4km ·

                       일주문주차장 1.4km)

16:54              지장골 입구(지장골 거망산 3.5km · 일주문주차장 0.9km · 

                       용추산자연휴양림 1.7km)

16:58              용추사 갈림길

17:04              도수골입구(기백산 갈림길)  

17:08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0번지 일주문 공영주차장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38-1번지(서하면 육십령로 2989)에 위치한 황암사,

두류산방 2026년 3월 정기산행 황석산-거망산 종주 출발점으로 낙점된 곳으로,

회원 8명과 옵서버(observer) 6명으로 구성된 오늘의 일행은 총 14명,

그러고 보니 배랑 배꼽이랑 어금버금이요 엇비슷한 셈인가?

황석산과 거망산 모두 대여섯 번은 간 것 같고,

탁현마을과 우전마을 또 유동마을과 장수사 일주문으로 오르내린 적은 있지만,

이번과 같이 황암사 코스로는 처음이요,

황석산까지 5.1km에 이르는 꽤 긴 거리인 걸 보면,

 잘 모르긴 해도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단 가 보면 알 수 있을 테지만,

가자,

황석산 그리고 거망산으로!!!

황암사 충의문(黃巖祠 忠義門)

 

 

 

황암사(黃巖祠)

이곳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 명 중 우군 75천 명이

음력 816일에 가또, 구로다 등의 지휘로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3일간(816~818)의 처절한 공방전이었다.

 

이때 안의현감 곽준(郭)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의 7개 고을(거창, 초계, 합천, 삼가, 함양, 산음, 안의)

주민들을 모아 관민남녀(官民男女)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피아간의 포격과 함께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과 투석전으로

대항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마침내 음력 818일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 전투에 참여한 주민 및 병사의 수를

일부 사서(史書)에서는 500여 명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수 천에 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숙종 40(1714)에 황석산 밑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라 사액되어

당시 황석산성 싸움에서 순절한 모든 분들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왔으나,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에 사당이 헐리고 추모행사마저 중지되었다.

1987년 황석산성이 사적 제322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지역민의 정성을 모아 2001년 호국의총(護國義冢)을 정화하고 사당을 복원하여

순국선열(殉國先烈)들의 숭고한 호국정신(護國精神)을 이어받고자 한다.

 

20019

함 양 군

황암사(자료사진)

 

황암사중건기념비(黃巖祠重建記念碑)

여기 전통적 충절의 고장에 깃든 거룩한 호국정신은 천추에 길이 빛나리로다.

참담했던 임진왜란을 겪은 뒤 정유년(1597)에 이르러

왜적은 다시 14만 대군으로 침략해 왔으니,

이 어찌 비분하지 않으랴.

영남을 짓밟고 호남으로 넘어가기 위해 27천 명의 왜군이

음력 816일 이곳 황석산성을 공격해 왔도다.

 

곽준(郭䞭) 안의현감과 조종도(趙宗道) () 함양군수는 수축한 이 성에서

소수의 병력과 인근 고을 주민들을 모아 목숨 걸어 수성(守城)을 맹약하고,

관민 남녀가 혼연일체로 삼일 동안 처절한 격전을 벌였도다.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로 혹은 투석전으로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육박전으로까지 항전했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어찌 성을 사수할 수 있었으랴.

왜군은 무자비하게 살육을 자행하여 참혹한 희생으로 시신은 산을 덮고

비명은 골을 메웠으며 계곡은 피로 물들었도다.

 

조선 숙종 40(1714)에 황석산하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黃巖祠)라 사액(賜額)되어 위령제를 지내다가,

일제침략기에 사당이 헐리고 행사마저 중지 당했으니,

이 또한 통탄하지 않았으랴.

 

1985년 김재연 선생을 비롯한 지역 유지 분들이 뜻을 모아

黃石山城殉國先烈追慕委員會(황석산성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발족하여

다시 추모행사를 年年(연) 봉행하였으니,

순국영령들이 얼마나 기뻐하였겠는가.

1987년 황석산성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되어,

허물어진 성곽을 수축하고 1998년 사당 복원계획을 세워 국 · · 군비 보조와,

안의면 출신 재미교포 장용진 · 성용 형제께서 뜻있는 일에 희사한 거액과

지방민의 정성을 함께 모아 20019월 호국의총 정화(護國義塚 淨化)

사당(祠堂) 중건(重建)으로 면모를 갖추었으니,

이 어찌 감격하지 않으랴.

이제 우리는 이곳을 세세연년(歲歲年年) 순국선열의 원혼을 위로하고,

충의(忠義) 교육의 장으로 삼아 호국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노니,

민족혼이 만세에 영원하리로다.

 

20019

함 양 군 수

황석산성순국선열충혼비

황석산 아래 이 자리는

이 고장 선열들의 의충과 사당을 모신 빛나는 민족혼의 성지(聖地)다.

그 역사적 사실을 간추리면 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에 이어

14만 명의 대병력을 투입하여 또다시 우리 강토를 침략한 1597년 정유재란 때

영호남 경계의 요충지인 이곳 황석산성을 작전진로로 삼았는데,

이미 이를 예측한 우리 조정에서도 명령을 내려 관민이 그 보수정비를 진행하고 있던 중,

해 음력 816일 적의 주력부대의 하나인 27천 명의 대군이

총포로 무장하고 충천의 기세로 공격해 오자,

이에 맞서 수성장 곽준(郭䞭) 안음현감과 조종도(趙宗道) 전임 함양군수는

결사항전을 선포하고,  성내의 일곱 고을에서 집결한 의병과 장정, 심지어 부녀자들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수성에 사력을 다하여 이틀 동안 치열한 공방전에 나아갔으나,

마침내 동북문 방어가 무너지면서 적군이 밀물과 같이 쳐들어 와

성중은 살육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성내(聖內)가 적의 수중에 들자 곽준 현감과 조종도 군수는

멀리 북녘 하늘을 우러러 재배한 뒤 의연한 자세로 최후를 마쳤으며,

곽공의 두 아드님은 순사(殉死)하고 따님과 며느님들은 자결하고

조공의 부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또한 이 고을의 이름 있는 선비들을 비롯해 무명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남녀노소들이  순사(殉死) 순절(殉絶)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개중에는 암벽 위에서 몸을 던져 그 아래 바위에 선혈이 물들어

오늘날에도 피바위라 불리고 있다.

일본 문헌에도 성중(城中)에서 353명의 병사와 수천 명의 민간인들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어느 때 어느 싸움에서 이런 충의와 충용과 충절에 빛나는 호국의 충혼을 찾을 것인가?

그래서 재란이 끝난 뒤 그 충의의 영령들을 나라에서도 기리기 위해

황암사(黃巖祠)라는 사액(賜額)을 내리고 제관을 보내어 제향으로 모셔오던 중,

일제 치하에서 중단되어 이 고장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간직해 오다가,

1985년에 이르러 지방 유지들이 추모위원회를 발족하여 의총을 조성하고

사당을 중건하여,  구천(九泉)을 헤매시던 님들의 고혼(孤魂)을 다시 모시어

산성이 함락된 음력 818일에 해마다 제례(祭禮)를 지내오고 있다.

한편 이 산성은 국가사적지 322호로 지정되어 머지않아 완성될 것이므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이 제단 앞에 선열들의 후광을 누리고 사는

우리 고장의 후예들이 마음 가난한 정성을 모아 이 충혼비를 세우는 바이다.

 

글: 구 상

2001년  월  일

황석산성순국선열추모위원회

 

 

 

 

 

 

 

 

 

 

 

 

崆峒山外生猶幸(공동산외생유행)

巡遠城中死亦榮(순원성중사역영) 

忠毅公 大笑軒 趙宗道 詩碑(충의공 대소헌 조종도 시비)

 

公(공)의 諱(휘)는 宗道(종도)요, 號(호)는 大笑軒(대소헌), 本貫(본관)은 咸安(함안)이며, 

丁酉再亂(정유재란) 때 黃石山城(황석산성)에서 倭敵(왜적)과 싸우다가

壯烈(장렬)하게 殉節(순절)하신 前(전) 咸陽郡守(함양군수)이다.

公(공)께서는 城(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애국심에 불타는 詩(시)를 남기셨다.

 

崆峒山外生猶幸(공동산외생유행

巡遠城中死亦榮(순원성중사역영

 

"공동산 밖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 하겠지만,

張巡(장순), 許遠(허원)처럼 성을 지키다 죽는 것 또한 영화롭다."

 

* 공동산: 진시황이 신선을 구하던 산

* 張巡(장순), 許遠(허원): 안록산 난 때 성을 지키다 죽은 당나라 충신

 

公(공)께서 義(의)롭게 죽음을 택하겠다는 愛國忠節(애국충절)의 情神(정신)이

後世(후세)들에게 龜鑑(귀감)이 되겠기에 殉節(순절)하신 城(성) 아래에

詩碑(시비)를 建立(건립)하게 되었다.

서기 2006년 병술 음 8월 18일

시비건립위원회에서 삼가 짓고

후손 영제(英濟) 삼가 쓰고

함안조씨 대소헌공파종사운영회에서 세우다

 

* 조종도(趙宗道, 1537~1597)

함안조씨 17대로 자(字)는 백유(伯由), 시호(諡號)는 충의(忠毅),

남계공파(南溪公派) 지파인 대소헌공파(大笑軒公派)의 파시조(派始祖)

황석산 그리고 거망산을 향하여 출발

 

황석산청소년수련원 갈림길,

황석산 5.1km를 가리키고

 

 

 

 

 

 

 

 

 

 

황석산 4.9km · 황암사 0.2km를 가리키고

 

사방댐

 

사방댐에서 돌아본 풍경 

 

 

 

황석산 등산로 갈림길,

여태까지 함께하던 포장임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황석산 산행에 들어간다고나,

황석산 3.9km · 황암사 1.2km를 가리키고

 

 

등산로로 들어서자마자 물이 많지 않은 자그마한 계곡을 건너는데,

이후 3번을 더 건너면서 서서히 황석산으로 다가가게 되고

 

 

 

 

두 번째로 계곡을 건너고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4-1지점

 

세 번째로 계곡을 건너고

 

황석산정상 3.0km · 황암사 2.1km를 가리키고

 

마지막인 네 번째로 계곡을 건너자,

얼마 안 가 계곡과는 점점 멀어지면서 왼쪽의 지능선으로 올라붙더니,

기울기가 장난 아닌 길이 쭉 이어지면서 골탕을 먹이려 들지만,

가풀막길을 야금야금 베어먹으며 올라가는 게 산행의 재미요 맛있다고나,

맛있긴 커녕 죽을 맛이라는 이들도 더러 있긴 하더라만

 

 

앞장서서 올라오는 회장님,

지난달 총회에서 큰 벼슬을 하더니 어딘가 달라 보이더란 것,

감투란 게 좋긴 참 좋은 모양이지?

 

 

가풀막길을 맛있게 베어먹으며 T자 지능선 삼거리로 올라서자,

왼쪽으로 난 내리막길은 등산로가 아니라며 나무로 막았으며,

가야 할 황석산은 우회전을 해서 올라가라는 걸,

잠깐이나마 좀 쉬면서 칼칼해진 목을 축이고 가기로 하는데,

통영 옵서버(observer) 민우님이 나눠주는 풀빵이랑 별반 다를 바 없는 크기의 찐빵,

한입에 털어 넣자 마자 굳이 씹을 것도 없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 버리는 걸,

배부를 때 진주성찬보단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나,

황석산정상 2.1km · 황암사 3.0km를 가리키고

전임 회장님,

오늘같이 잔뜩 찌푸린 날 색안경은 왜?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보면 안 된다는데

밧줄지대를 지나자 마자 처음으로 조망이 열리는 전망대가 나오면서,

드디어 황석산 일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며 어서 오라는 걸

 

 

 

 

황석산 남봉과 꼭대기만 살짝 내미는 황석산 정상부 

 

전망대 

 

 

 

멀리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천왕봉과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을 가운데다 두고

 

감악산과 황매산이 뒤쪽에 자리하고 

 

감악산 

 

좀 더 앞으로 모신 감악산

 

 

 

 

 

황석산정상 1.9km · 황암사 3.2km를 가리키고

 

2중 석문,

아직까진 별스런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제법 훌륭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고나?

 

 

 

 

 

 

 

 

황석산정상 0.9km · 황암사 4.2km를 가리키는 이정표,

이제 0.3km만 더 가면 황석산과 유동마을을 잇는 등산로에 합류하게 되는데, 

한동안 쭉 지능선을 따르던 등산로가 왼쪽으로 꺾이면서 비스듬히 나아가고

이건 뭘까?

 

유동마을 갈림길,

비교적 수월하게 황석산과 유동마을을 잇는 등산로에 합류,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1-4지점으로,

우회전하면 유동마을이요 좌회전하여 황석산으로 올라가는데,

유동마을 3.4km · 황석산정상 0.6km · 황암사 4.5km를 가리키고

 

 

 

 

황석산 남봉과 정상부

 

 

 

황석산 남봉

 

황석산 정상부 

 

거북바위와 황석산 북봉 

 

좀 더 가까이 

 

황석산 정상부와 그 오른쪽의 북봉

 

황석산 정상부 

 

유동마을로 이어지는 산줄기,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망월대(望月臺)라던데,

그 너머 조금 아래 바위지대 전망대(황석산 0.9km · 유동마을 3.1km)를

망월대라 부르기도 한다던가?

금원산과 기백산 

 

황석산 북봉(1168.3m) 아래 비스듬히 흘러내린 피바위,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라고나?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우전마을에서 시구목골로 황석산을 오르내리는 곳에도  

안내판이 서 있는 비스듬히 흘러내린 피바위가 또 있는 걸. 

피바위

선조 30년 정유년(1597)에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 명 중 우군 27천 명이

그해 음력 816일에 왜군의 가또, 구로다 등의 지휘로 이곳 황석산성을 공격해 왔다.

 

이때 안의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을 모아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관민남여 혼연일체가 되어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처절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음력 818일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왜구와의 격전이 벌어지면서 여인들도 돌을 나르며

부서진 병기를 손질하는 등 적과의 싸움에 온갖 힘을 다하였으나,

황석산성이 함락되자 여인들은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십 척의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꽃다운 여인들이 벼랑으로 줄줄이 몸을 던졌으니,

이 어찌 한스러운 비극이 아니겠는가.

그때의 많은 여인들이 흘린 피로 벼랑 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그 흔혈은 남아 있어

이 바위를 피바위라 한다.(실제론 안내판이 없고 자료사진)

황석산 정상부

 

황석산 남봉(1109.6m) 

 

천왕봉과 중봉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

 

남덕유산에서 뻗어 내린 진양기맥이 지나는 황매산 일대 

 

확 당긴 황매산

 

 

 

마침내 황석산성 동북문지로 올라서자,

이제 황석산정상이 0.1km라니 바로 코앞인 셈인데,

앞서간 일행과 해후하는 한편 뒤처진 일행들을 기다리는 틈을 이용하여 말아주타임,

자그마치 2리터 짜리 페트병 맥주를 배낭에서 꺼내자 모두들 끔쩍 놀라더란,

거망산에서 정상주로 할 것만 조금 남기고선 우리들의 입을 거쳐 뱃속으로,

누가 뭐래도 술 중에 최고는 단연코 낮술이요,

등산의 꽃은 바로 낮술이라던가?

 

 

 

 

 

 

황석산성 동문북지 이정표,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1-3지점으로,

황석산정상 0.1km · 유동마을 4.1km · 우전마을 4.4km를 가리키고

 

 

 

 

 

 

함양 황석산성(咸陽 黃石山城)

함양 황석산성은 안의면과 서하면의 경계에 위치한

황석산(그전엔 해발 1,190m요 요즘은 1,192m)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으로,

황석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을 따라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가는 길목에

축성되어 있다.

 

형식은 계곡을 감싸듯이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인데,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정유재란(1597)때는 이곳 황석산성에서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의현감 곽준 등이

왜적과 격전을 벌여 500여 명이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750m, 높이는 3m 정도이고 산성의 면적은 444,609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산성의 둘레가 29,240(8.9km)이며,

성안에는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성문은 동 ·  ·  · 동북쪽의 4곳에 있으며,

산성 안의 계곡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이곳 동북문지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공격하던 주요지점이었다.

감악산과 황매산

 

망월대 뒤로 멀리 보이는 비계산과 오도산

 

수도산과 단지봉 그리고 가야산

 

 

 

황석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덱 계단,

제법 오랜만에 왔더니 산천도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낄 수가,

어쨌거나 그전보단 위험하지 않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어 참 좋긴 하더란

 

 

황석산 북봉,

거망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펼쳐지는가 하면,

맨 뒤엔 덕유산 삿갓봉과 무룡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황석산 정상,

함양군 안의면 산 156-1번지에 위치하고,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및 봉전리와는 경계지점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나랑은 대여섯 번은 만난 것 같은데, 

30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탁현마을에서 처음으로 황석산을 올랐으며,

2009년에도 '황석산정상 1190m'란 정상석이 서 있었지만,

2012년 12월에 오자 지금의 정상석으로 바뀌어 붙어 있었던 걸로,

정상부의 바위들이 누르스름한 데서 황석산(黃石山)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황암사(黃巖祠) 또한 황석산(黃石山)에서 따온 듯한 느낌이고,

물론 믿거나 말거나 선택은 자유

정확히 언제인진 알 수 없지만,

함양군에서 관내의 정상석을 통일하여 설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거망산 옛 정상석과 같은 시기에 설치한 듯하고

 자료사진(2009년 3월) 

 

자료사진(2012년 10월)

 

자료사진(2012년 12월)

 

 

 

 

 

 

 

 

 

 

 

 

 

 

 

 

 

 

 

 

 

 

 

 

 

 

 

 

 

 

 

 

 

 

 

 

 

 

 

 

도숭산 왼쪽 뒤엔 지리산 반야봉이요,

대봉산 천왕봉 왼쪽 뒤엔 서북능선 만복대이고,

대봉산 천왕봉 오른쪽엔 대봉산 계관봉이요,

대봉산 계관봉 좀 오른쪽으론 백두대간이 지나는 백운산이고

대봉산 천왕봉과 대봉산 계관봉

 

황석산 북봉 뒤엔 1255.1m봉이요,

그 뒤엔 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산이 고개를 내밀고

좀 더 앞으로 모시고 

 

황석산 남봉 

 

황석산 남봉과 천왕봉-반야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 

 

백운산과 장안산

 

황석산 정상부론 직등하지 말고 우회하라는 걸

 

거북바위로 가기에 앞서 황석산성 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는데,

각지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진수성찬(珍羞盛饌)과 다를 바 없는 오찬(午餐)이요,

 거기다 반주(飯酒)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고나?

 

 

 

 

실컷 배를 채우고 단체로 흔적까지 남기고선 거망산을 향하여 출발

 

 

 

 

 

돌아본 황석산 정상부 

 

 

 

거북바위,

어째 좀 비스무리한가요?

 

 

 

 

 

 

 

 

 

 

거북바위에서 바라본 기백산 조망 안내입니다

기백산은 크고 작은 계곡과 중간중간 아름다운 경관이 많으며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하며, 심원정에서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주위의 기암괴석과 함께

산세가 웅장하며, 특히 정상에서 금원산까지 3km에 달하는 능선의

억새 풀밭이 장관이다.(자료사진) 

북장대 추정지,

"황석산 북봉은 암벽능선으로 위험구간이오니

안전한 우회 등산로(좌측)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암만,

그렇게 하고 말고,

어차피 착한 산행만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북장대 추정지(北將臺 推定地)

황석산성의 내부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고,

외부를 관측하기에 편하기 때문에 장대(將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서쪽 경사면을 따라 11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은

과거에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 장대(將臺): 장수(將帥)가 올라서서 명령 · 지휘하던 건물

 

 

황석산 북봉을 에돌아가는 덱 계단 등산로,

그전에 비하면 훨씬 수월해졌다고나?

도숭산 뒤엔 반야봉이요,

도숭산 오른쪽으론 대봉산 천왕봉과 계관봉이고 

백운산과 장안산 

 

가운데 우뚝 솟은 1255.1m봉,

오늘 가는 산줄기 중에선 가장 높은 봉우리이고

황석산 북봉 서사면(西斜面)

 

 

 

묵은 헬기장

 

뫼재,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1-5지점이요,

오른쪽 사면으로 난 길은 탁현마을과 유동마을로 이어지는데,

그나마 근근이 버티던 낡은 이정표는 사라져 버렸는 걸,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라 새로이 정비를 좀 하면 안 되는 걸까?

자료사진 

 

전망 덱을 설치하려는 걸까?

 

큰골(청량사-장자벌)  갈림길,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황석산 1-6지점이요,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 4명이 그만 탈출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는데,

그전엔 큰골 아닌 장자벌 입구 3.14km란 게 있었으며,

큰골 2.2km · 황석산 2.5km · 거망산 1.8km를 가리키고

 

 

자료사진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거망산 3-1지점

 

자그마한 공터봉,

1205m봉인 듯?

1089.9m봉(남쪽 능선 분기봉),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거망산 3-1지점,

황석산 3.3km · 거망산 1km를 가리키고

 

 

1255.1m봉 직전 능선 삼거리,

1255.1m봉을 경유하는 길과 살짝 에도는 길로 나뉘는데,

돌아가지 마 인생은 직진이야!!!

황석산 3.4km라니까 이제 거망산은 0.9km이고 

능선로를 따라 곧장 올라선 1255.1m봉,

오늘 진행하는 산줄기 중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북쪽의 거망산(1184m)과 남쪽의 황석산(1192m)보다도 높지만,

두 산 사이에 끼여 있어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은 처량한 신세라고나,

대부분의 지도와 산행기에선 1245m봉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높은 봉우리답게 오랜만에 조망이 열려 눈요기를 좀 하고 가기로,

앞서간 일행들은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지만,

좀 빠르고 또 늦은들,

그게 뭣이 중헌디?

돌아본 황석산,

그 뒤 왼쪽은 황매산이요 오른쪽은 웅석봉이고

좀 가까이 모시고

 

도숭산-대봉산 천왕봉-대봉산 계관봉이 마루금을 그리고

 

백운산과 장안산 

 

기백산 

 

거창읍,

그 뒤 왼쪽 끄트머리는 가야산이요,

 살짝 왼쪽 뒤는 비계산이고

보다 가까이 모신 비계산

 

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산,

오른쪽 끄트머리 앞뒤엔 월봉산과 삿갓봉이고

왼쪽 끄트머리에선 월봉산과 삿갓봉이 고갤 내미는가 하면,

오른쪽으론 무룡산과 북덕유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지고,

눈 아랜 큼지막한 거망산 정상석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고나?

 

 

1255.1m봉을 내려서자마자 에도는 길과 만나고

 

 

 

드디어 앞서간 일행들을 따라잡는 데 성공(?),

눈과 얼음이 얼어붙었다 살짝만 녹아 미끄러운 길에 장사가 어디 있던가? 

그 누구라도 거북이가 될 수밖에는,

정작 거북이는 벌써 탈출하고 여기엔 있지도 않지만

두류산방 2인자이자 1일 1인자,

늙은 말이 길을 알고 노련한 뱃사공이 물길을 안다더니,

노익장 산꾼은 산귀신 내지 산신령이 거의 다 되어 가는 걸까,

봄이 무르익은 3월도 하순에 아이젠(eisen)을 챙겨 올 줄이야?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또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는데,

계절만 봄인 줄 알았지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왜 몰랐을까?

 

 

상황에 따라 아이젠을 찼다가 벗었다 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리는데,

한 짝이라도 좀 하사하면서 고통 분담을 했으면 참 좋으련만,

이럴 땐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요 복무방침이라던가?

 

 

 

 

 

 

 

 

때론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기도 하면서 조심 또 조심

 

 

 

거망샘 안부 사거리,

왼쪽(서쪽)으로 50m 남짓 내려가면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거망샘이요,

오른쪽(동쪽)으론 지장골로 해서 거망산을 오르내리는 등산로가 있는데,

오랜만에 와서 거망샘 물맛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야?

그건 거망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모두들 서둘러 곧장 거망산으로 올라가지만,

나 홀로 거망샘으로,

거망샘 50m란 건 새로이 이정표를 설치하면서 사라지고 없으며, 

황석산 3.9km · 거망산 0.14km · 지장골입구 3.3km를 가리키고

자료사진

 

등산로 이용 안내

지장골 구간은 계곡 구간(1.16km)이 있어 우천 전 · 후에 등산로 이용이 위험하오니,

안전을 위하여 사평(태장골) 또는 장자벌 등산로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졸졸졸 물이 흘러나오는 거망샘,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산 64-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을 다니면서 샘물의 맛을 보는 재미 또한 꽤나 쏠쏠하다고나?

대낮에 산꾼이 거망산에 가다가 인사하러 왔다가 맛도 보고 가지요.

 

 

다시 올라온 거망샘 안부 사거리,

이젠 먼저 간 일행들이 있을 거망산으로 고고-씽

 

 

국가지점번호 라마 2143 4187이요,

119구조대 함양 거망산 2-3지점이기도 하고

 

 

 

 

거망산(擧網山, 1184m),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산 176번지에 위치하고,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와는 경계지점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함양군에서 세운 크고 작은 정상석이 두 개씩이나 되는 행복한 산인데,

은신암(隱身庵)에 머물던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

불법(佛法)의 그물을 던져 중생(衆生)들을 제도(濟度)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데서,

또는 산세가 그물을 던져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지만,

주변의 산보다 높지도 않고 볼품이라곤 없는 봉우리가 문패를 꿰찬 건,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여기다 측량점을 설치하고 거망산이라 표기한 덕분이 아니었을까?

  •                                * 제도(濟度): 고해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게 

거망산 측량점

 

옛 거망산 정상석 

 

거망산에서 돌아본 1255.1m봉 

 

 

 

 

 

 

 

 

 

 

 

 

 

왜 정상석 글씨가 빨간색일까요?

빨간색은 주변 환경과 대비되어 잘 띄는 색상이므로,

눈에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태극을닮은사람들 거제지부(거달사)",

태달사 몸통은 식물인간 내지는 뇌사상태에 빠진 지 오래 되었지만,

전국의 8개 지부 중 유일하게 아직도 활동을 멈추지 않은 채, 

매월 1회 장거리 산행을 이어가고 있는 진짜배기이자 알짜배기 거제지부,

나 또한 거제지부 회원이기도 한데,

 몇 년째 마음만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라 아쉽고 안타깝기도,

언젠간 나에게도 쨍하고 해뜰 날이 오지 않을까?

장골 삼거리로 이어지는 암릉지대에 설치한 덱 계단 

 

 

 

 

 

함양군 서상면 일대

 

지나온 산줄기 

 

 

 

한눈에 들어오는 감악산과 황매산 

 

진양기맥이 지나는 기백산 

 

장골 삼거리(1180m, 동쪽 능선 분기봉),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이 기둥에서 떨어져 있으며,

장골 삼거리라 하지만,

동쪽으로 흘러내린 지능선으론 길이 보이지 않으니,

 그전엔 있었으나 세월 따라 묵어 버린 건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던 건지는 알 수가 없는데,

오가지도 않을 건데 굳이 알 필요도 없지 않을까?

 

 

 

 

 

 

119구조대 현위치번호 함양 거망산 1-3지점

 

은신치 갈림길,

곧장 나아가면 은신치에서 큰목재를 지나 월봉산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은신치에서 수망령을 지나 금원산과 기백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우린 우회전하여 태장골을 따라 사평마을로 내려가기로 하는데,

은신치 3.35km · 거망산정상 0.62km · 태장골입구 2.74km를 가리키고

 

 

 거망산 1.6km · 태장골입구 1.8km를 가리키고

 

119구조대 함양 거망산 1-2지점 

 

아직도 남아 있는 태장골의 얼음폭포,

풍경만으로도 지금이 어느 때란 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는지?

 

 

 

 

 

 

 

 

태장폭포,

별스레 볼거리가 많지 않은 태장골에선 제일가는 눈요깃거리라고나?

계곡을 꽤 많이 타야 하는 지장골과는 달리,

태장골은 한 번도 계곡을 건너거나 들어가지 않은 채,

쭉 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내려서는 길이 이어지고

119구조대 함양 거망산 1-1지점,

 거망산정상 2.41km · 태장골입구 0.95km를 가리키고

 

 

사평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접속,

우회전하여 내려가고

 

 

수액채취 허가구역에 설치된 고로쇠 수액통,

기백산 4.6km · 거망산 3.2km · 태장골 0.3km를 가리키는데,

이제 태장골입구인 사평마을 사거리는 0.2km 남은 건가? 

용추폭포로 흘러내려 가는 지우천 

 

사평마을 사거리,

태장골 경유 거망산은 3.4km요,

시흥골 경유 기백산은 4.4km이고,

가야 할 일주문주차장은 1.4km쯤 된다던가?

장수산장 

 

 

 

지장골입구,

지장골과 거망샘 안부를 경유하여 거망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로,

거망산 3.5km · 일주문주차장 0.9km · 용추산자연휴양림 1.7km를 가리키고

 

 

 

 

용추사 갈림길,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눈에다 담고 또 사진으로 남기려다 보니,

맨 끄트머리인지라 용추사는 들르지 않고 그냥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하고 

도수골 경유 기백산 등산로입구,

기백산 4.2km · 금원산 7km · 거망산 4.7km라는데,

기백산은 일주문에서 4.2km라니까 여긴 4.0km가 맞을 듯,

아니나다를까 황색 이정표는 기백산 4.0km · 일주문 0.2km를 가리키는 걸.

 

 

 

 

 

 

자태를 뽐내는 감나무,

감나무치곤 키도 크고 미끈하게 잘 빠지지 않았나요?

 

 

 

 

 

 

 

 

 

 

 

 

옛 장수사(長水寺) 터

장수사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新羅) 소지왕(炤知王) 9

(서기 487)에 각연조사(覺然組師)에 의해 창건(創建)된 고찰(古刹)로서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寺刹)들을 말사(末寺)로 거느렸으며,

이 곳 심진동(尋眞洞)계곡에만도 열 개가 넘는 암자(菴子)를 둔 대찰(大刹)로서,

계곡 어디에서나 낭랑한 염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장수사 경내(境內)에는 대웅전, 산신각, 천왕문, 명부전, 서신당, 동신당,

사천왕문, 일주문 등으로 그 규모가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하며,

이곳에 기거하던 승려(僧侶)만 해도 항상 이백 여 명에 달했다 한다.

그러나 강희 19(1680)에 첫 번째 화재를 입은 이후 2번의 화()를 더 입었으나,

그때마다 모두가 합심하여 복원을 하였으나,

아쉽게도 6.25전란 때 장수사는 물론 계곡마다 즐비했던 암자들은 소실 되었고,

일주문만이 현존되고 있으며, 용추암을 복원하여 용추사로 불리우고 있다.

용추사 일주문(龍湫寺 一柱門)

일주문은 사찰 바깥문 중의 하나로,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문으로서,

2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는 건물이다.

 

용추사의 일주문은 숙종 28(1702)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5년에 고쳐 지었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德裕山 長水寺 曹溪門)'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데,

이는 원래 옛 장수사 일주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주문은 화려한 다포계 건물로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하는 나무쪽인 공포(栱包)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이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지붕 때문에

지붕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이다.

 

혀를 말아 올린 듯이 길게 뻗어 나간 장식들은 기둥 위에서 구름과 연꽃으로 피어오르고,

기둥머리의 봉황 조각은 길게 돌출된 서까래와 함께 처마 선을 타고 올라

천상 세계가 바로 여기라고 보여 주는 듯하다.

용추사 일주문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은

일주문으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장엄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0번지에 위치한 일주문주차장,

황암사에서 황석산과 거망산을 거쳐 오는 두류산방 3월 정기산행이 완성된 셈인데,

그다지 늑장을 부린 것 같진 않은데 생각보단 좀 더 시간이 많이 걸린 듯,

개인적으론 황석산과 거망산 모두 몇 번씩은 왔다 갔지만,

그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조차도 가물가물하니,

무척 오래간만에 다시 찾아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요,

언제나 또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100세 인생이라는데,

설마하니 끝은 아니겠지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