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19년 4월 28일(일요일)
* 날 씨 : 흐리고 비
* 산 행 지 : 광점동 - 두류암터 - 청이당 - 국골 사거리 - 향운대 - 광점동
* 산행시간 : 9시간 05분(운행시간 5시간 42분 + 휴식시간 3시간 23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6명(오로라, 솜다리, 고남, 큰골, 참꼬막, 선함)
* 산행일정
08:30 광점동주차장
08:40 어름터골 철다리
08:50 지산대
08:59 어름터 독가
09:08 - 09:38 세 번째 어름터골 건넘
09:46 네 번째 어름터골 건넘
09:51 허공달골 + 싸립재골 함수지점
09:57 - 10:08 독바위 북릉 삼거리
10:17 의병장석상용지송공비(묘)
10:18 - 10:22 두류암터 너럭바위
10:26 두류암터 부도
11:21 동부능선 접속(1260.8m봉 아래)
11:23 - 13:13 청이당(1230m)
13:56 - 13:59 국골 사거리(1480m)
14:02 - 14:24 말봉(1543m)
14:33 허공달골 끄트머리
14:40 향운대 갈림길
15:10 - 15:30 향운대(1340m)
16:47 안부 삼거리
16:55 759.8m봉(△ 운봉 423)
17:06 어름터 독가
17:16 - 17:19 지산대
17:25 어름터 철다리
17:35 광점동주차장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광점동주차장,
광점동(筐店洞)은 1500년경 정심 스님이 한 노파와 함께 싸리를 꺾어 광주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렸다는 데서 광주리점으로 불리던 게 변했다는데,
광점동엔 옛날 석빙고였던 어름터와 왕이 올랐다는 어영골이 있고,
허공달골과 싸립재골이 만나면서 어름터골을 이룬다지만,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공식적인 지명은 의탄천으로 되어 있으며,
두 골짝의 합수지점에서 허공달골의 두류암지를 거쳐 청이당으로 올라,
국골 사거리에서 두류능선을 따라 향운대와 최마니굴을 경유하여 돌아오기로,
산행거리와 난이도가 만만찮은데다 계획보다 30분이나 늦게 출발하는데,
마음먹은 그대로 쭉 이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정 안 되면 향운대에서 어름터 독가로 내려가도 되는 걸,
일단 나서면 답은 나오기 마련이라고나?(08:30)
밥값하느라 개지랄을 하는 자그마한 견공,
큰놈은 못 본 척하고 가만히 있는 양반이라고나?
어름터골 철다리,
2011년 8월 7일 밤부터 8일 새벽까지 세찬 바람과 함께
엄청난 비를 뿌리면서 지리산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제9호 태풍 무이파,
통행에 별 지장이 없어서 그런지 그때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은 채로 있으며,
두 가닥의 비상활주로용 철판(동그랗게 구멍난, 아나방)이 수십 년 동안 다리 역할을 하다가,
2007년 2월경에야 지금의 철다리가 가설되었다고 하는데,
허공다리골이라 부르기도 하는 허공달골,
<골짜기가 넓어 허공에 걸린 달이 아름답게 보이는 골>이라 허공달골이라 하다,
허방다리(구멍난 다리)가 생기면서 허공다리골과 허공달골로 뒤섞어 부르지 않았을까?
허방달골을 허방다리골로 풀어서 부를 수도 있겠지만,
물론 믿거나 말거나 선택은 자유(08:40)
2011년 2월 18일엔 이랬건만
상내봉능선(벽송사능선) 장구목이 갈림길,
어름터골 철다리를 지나자마자 외딴집과 범종(梵鍾) 사이이고
범종(梵鍾),
절에서 쓰는 종을 가리키며 순수한 우리말로는 인경이라 한다는데,
언제나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지산대(芝山臺),
지리 10대는 아니지만,
지리 50대엔 그 이름을 올린다던가?
그전엔 어름터 독가로 이어지는 길이 지산대를 거쳐갔지만,
2011년 여름부터 2012년 여름까지인가 비포장임도가 개설되면서부턴,
비포장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바로 옆인데도 놓치기 쉬운데,
수문장처럼 지키고 선 바위가 길잡이 노릇을 한다고나,
수문장바위 아래 큰 소나무 한 그루와 어우러진 바위지대가 지산대로,
비포장임도에서 낡은 철망이 처져 있는 곳으로 몇 걸음만 올라가면 되며,
주변에 약초로 쓰이는 지초(芝草)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던가?(08:50)
지산대 수문장바위
두류능선이 살짝 들어오고
어름터 독가,
그전엔 임대봉 씨가 꽤 오랫동안 소유하며 살기도 했지만,
몇 년 전부터인가 수도하는 젊은 처사가 들어와 살고 있다는데,
독가 입구에 자동차가 2대나 있는 걸로 봐선 누가 있는 것 같기에,
혹시라도 실례가 될까 봐 조용히 그냥 지나치고(08:59)
어름터골을 건너자마자 출입금지구역이라는데,
가지 말라지만 가야만 하는 걸 어떡하랴?
발자국도 남기지 말고 아니 간 듯이 살짝,
어름터 독가와 향운대를 오르내리는 갈림길이기도 한데,
이따가 향운대에서 이리로 내려올 줄이야?
출입금지(2011.1.1 - 2029.12.31),
허공다리골 가시오갈피나무 자생지 보호를 위해서라는데,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길만 따라가는 것도 안 될까요?
금낭화
품개동마을터 석축,
논밭 또는 집터의 흔적이라고나?
???
철다리와 독가에 이어 세 번째로 어름터골을 건너는데,
사정상 아침을 못 먹고 온 이들을 위한 라면타임과 더불어 소맥도 함께,
지리산 청정수에다 갓 딴 다래나무순을 넣어 끓인 라면이 꿀맛일 수밖에 없겠지만,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섰기에 관심 밖이요 소맥에만 눈길이 가더란,
누가 술꾼이 아니랄까 봐?(09:08 - 09:38)
나뒹구는 고로쇠통
네 번째로 어름터골을 건너고(09:46)
이름 없는 폭포,
꽤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싸립재골과 허공달골이 만나 어름터골을 이루는 합수지점,
허공달골을 건너 두 골짝 사이로 뻗어 내린 지능선으로 올라가는데,
무슨 지명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독바위 북릉으로 통한다던가?(09:51)
싸립재골
독바위 북릉 삼거리,
쑥밭재와 청이당으로 길이 나뉘는데,
산청 독바위 아래 1276.2m봉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으론 쑥밭재로 이어지며,
허공달골을 따라 두류암터를 지나 청이당으로 올라갈 건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참꼬막을 찾으러 다시 합수지점으로 내려가,
길을 잃고선 허공달골로 치오르려는 참꼬막을 돌려세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잘 모르는 길에선 절대로 혼자 처지면 안 되는데(09:57 - 10:08)
의병장석상용지송공비(義兵將石祥龍之頌功碑),
두류암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석상용(石祥龍, 1870.10.29 ~ 1920.10.26)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태생의 한말 의병장으로,
지리산 일대의 화전민들을 규합하여 의진을 구성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으며,
주변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양한규(梁漢奎), 고제량(高濟亮),
문태수(文太洙) 등과 제휴하여 함양, 산청, 남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의 별명은 비호장군으로,
일본군마저 공포에 떨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실상사전투와 지리산 쑥밭재, 벽소령 및 삼성재전투 등이 있다.
실상사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석상용은 1908년 4월 29일
50여 명의 병력으로 이들을 습격하였다가 접전 끝에 노루목으로 퇴각하였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5월 1일 마천면 도마리 서당에
주민들을 모아 놓고 집단학살하려 하였으나,
면장 노지현의 설득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석상용 의병부대는 1907년 말부터 5년 동안
지리산을 은신처로 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지만,
1911년 석상용이 일본군에 체포되면서 해체되었다.
이 일로 석상용은 5년 간의 수형생활을 하고 1916년 석방되었는데,
출옥 후 병마에 시달리다 1920년 10월 26일 사망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0:17)
1983년(辛酉) 정월 초10일 세웠다고 되어 있고
두류암터 너럭바위,
법성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수양하다가,
돌확
두류암터 부도(10:26)
가까이 붙어 가는 허공달골
동부능선에서 허공달골로 흘러드는 지계곡,
1276.2m봉과 1260.8m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게 아닐까?(10:34)
얼레지
1260.8m봉 아래에서 동부능선에 접속,
청이당고개와는 딱 2분 거리가 아니던가?(11:21)
쑥밭재(청이당고개),
예전엔 약쑥이 많아 애전령(艾田嶺)이라 불렀다는데,
쑥밭재를 한자로 표기하면 애전령(艾田嶺)이 되므로,
쑥밭재가 <하룻밤을 쉬어가는 숙박(宿泊)재>에서 비롯된 유래는 아니라나?
1276.2m봉 아래 허공달골 갈림길을 위쑥밭재,
여긴 아래쑥밭재 또는 옛쑥밭재라 부르기도 하지만,
쑥밭재 또는 청이당고개라 하는 게 맞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 듯,
청이당은 동부능선을 오가거나 지리태극 종주를 하는,
산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라고나?(11:23 - 13:13)
청이당터,
예전에 청이당(淸伊堂)이란 당집이 있었다던가?
현호색이 군락을 이루고
???
언젠가 누군가에겐 요긴하게 쓰일 날이 있겠지?
청이당터 계석(溪石),
김종직 일행이 쉬어 간 곳이라나?
진달래 뒤로 들어오는 산청 독바위
비빕밥 제조,
청이당에서 무려 1시간 50분이나 머물렀는데,
향운대와 최마니굴을 다 들른다는 건 도저히 무리일 듯,
아무래도 향운대에서 어름터 독가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국골 사거리 올라가는 길,
떠나간 동장군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럴까?
가려거든 곱게나 물러갈 것이지,
이 무슨 놀부 심보란 말인가?
중봉 오름길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아래서>란 그 가문비나무,
겨우 밑둥치만 남기고 똑 부러지고 말았다는데,
아무리 끊임없이 변하는 게 자연의 섭리요 이치라곤 하지만,
그야말로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팔팔했건만,
지금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까?
도저히 믿기지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인 걸 어쩌랴?
국골 사거리,
바로는 국골이요 왼쪽은 하봉과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로,
두류능선을 따라가자니 오른쪽으로 틀 수밖에는,
동부능선에 접속하면서 함께한 지리태극 산줄기와도 헤어져야 하는데,
조만간에 하봉과 중봉 그리고 상봉으로 가는 날이 있을는지?(13:56 - 13:59)
옛 국골 사거리 안내판,
사라진 지 오래이고
말봉,
2009년도엔가 함양군에서 영룡봉(靈龍峰)이란 정상석을 세웠다가 철거한 봉우리로,
1618m봉(1617.4m봉)에 세운 두류봉이란 정상석도 똑같은 신세였다나?
두류봉(頭流峰)으로 되어 있는 지도도 더러 있는데,
두류능선에선 가장 높고 첫 봉우리이기도 하니,
개인적인 생각으론 여길 두류봉이라 하는 게 맞을 듯,
1618m봉은 두류봉 아닌 말봉(末峰)이라 하면 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차례대로 상봉과 중봉 또 하봉과 말봉의 관계가 정립되며,
아울러 두류봉까지도 함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류능선에서 가장 멋진 전망대이고(14:02 - 14:24)
옛 영룡봉 정상석
옛 두류봉 정상석
초암능선 뒤로 들어오는 상봉과 제석봉
저 멀리서 고갤 내미는 반야봉과 만복대
반야봉
영룡봉,
그 뒤엔 삼봉산이고
함양읍
산청 독바위와 새봉,
멀리 황매산이 보이고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비둘기봉인 듯?
말봉을 뒤로하고 향운대로
처박혀 있는 영룡봉 정상석,
어쩌다 저런 신세가 됐을까?
여기서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을 줄이야?
말봉에서 9분쯤 갔을까,
허공달골을 탈출하는 끄트머리를 지나게 되고,
다시 7분 남짓 뒤엔 안부의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 향운대 갈림길로 접어들어,
조금 내려가다 두류능선과 거의 평행한 사면길을 25분 정도 비스듬히 나아가면 향운대인데,
국골 사거리랑 다를 바 없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나무가 길을 막는 바람에 골탕을 먹고
향운대 아랜 사태지역이고
향운대(香雲臺),
두류능선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지리산 10대의 하나로,
향운대는 구름향기란 뜻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는데,
예전에 벽송사 부속암자인 미륵암이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수행처로 주민들은 영감절터 또는 춘삼이절터라 했다고도,
또 수행한 스님의 법명(法名)이 향운(香雲)이라 향운대라 불렀단 설도 있다고 하며,
최마니굴을 가는 건 무리란 생각에서 어름터 독가로 내려가기로,
언젠가 기회는 또다시 있지 않을까?(15:10 - 15:30)
석간수(石間水),
식수로 사용해도 좋을 듯?
제단
산청 독바위가 가까이 다가서고
향운대 석굴
향운대(자료사진)
향운대(자료사진)
향운대(자료사진)
향운대 석굴에서 잠깐 내려서다 왼쪽의 산죽지대로 비스듬히 나아가,
있는 둥 마는 둥한 길을 헤집으며 어름터 독가로 흘러내린 지능선으로 붙는데,
향운대에서 두류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다 내려서도 되는 걸로,
지능선으론 제법 뚜렷한 길이 이어지기에 헷갈릴 것도 없을 듯하고
지능선 바위(15:57)
멧돼지 보금자리였던 듯,
산줄기를 따르던 길이 왼쪽의 큰빈막골 쪽으로 틀고(16:03)
차츰차츰 계곡으로 붙는가 싶더니,
한동안 큰빈막골을 왼쪽으로 두고 나란히 내려가고
서서히 계곡을 벗어나면서 다시 산줄기로 올라가고
안부 삼거리,
오른쪽은 품개동이요,
어름터 독가는 봉우리를 우회하는 왼쪽으로(16:47)
759.8m봉 삼각점(운봉 423, 16:55)
마침내 어름터골이 보이고
어름터 독가,
아까완 달리 아무도 없는 듯?(17:06)
다시 들른 지산대,
올라갈 땐 나 홀로였지만,
이번엔 4명이나 되고(17:16 - 17:19)
짝퉁 지산대,
진짜배기 노릇을 하면서 헷갈리게 하는 것 같더란(17:21)
9시간 5분 만에 다시 돌아온 광점동주차장,
산행거리에 비해 꽤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요,
애당초 계획했던 최마니굴도 가지 못하고 말았는데,
다른 데선 별스레 농땡이를 치진 않았지만,
청이당에서 머문 1시간 50분이 결정적인 타격이었을 듯,
1시간 남짓이면 점심시간으론 충분했을 텐데,
나 홀로 간 것도 아닌데 어떡하랴?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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