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18년 8월 11일(토요일)
* 날 씨 : 구름 조금
* 산 행 지 : 성삼재 - 노고단고개 - 반야봉 - 묘향암 - 이끼폭포 - 와운교 - 반선
* 산행시간 : 11시간 20분(운행시간 7시간 20분 + 휴식시간 4시간 00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0명(앵경, 현지인, 쓰리고, 바람소리, 신난다, 고암, 유비, 큰골, 어울림, 선함)
* 산행일정
02:10 성삼재(1090m)
02:48 - 03:00 노고단대피소(1350m)
03:08 - 03:11 노고단고개(1440m)
03:50 돼지령(1370m)
04:00 피아골 삼거리(1336m)
04:07 - 04:20 임걸령(1320m)
04:50 - 04:53 노루목(1480m)
05:02 반야봉 삼거리(1550m)
05:28 - 06:03 반야봉(1732.1m)
06:12 - 07:25 반야 중봉(1731.8m)
07:56 - 08:48 묘향암(1500m)
09:10 - 09:15 밧줄지대
10:21 - 10:25 이끼폭포(950m)
11:07 함박골 쇠다리(800m)
11:19 제승대
11:30 - 11:54 옥류교
12:00 병풍소
12:05 병소
12:30 탁용소
12:36 - 12:51 와운교(572m)
12:52 요룡대
13:16 돗소
13:30 반선(480m)
성삼재,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와 광의면 방광리를 잇는 지방도 861호선이 지나며,
지리산 종주 및 노고단과 반야봉을 찾는 이들로 사시사철 북적대는 곳이기도,
올해 7월 7일 노고단의 장쾌한 일출과 운해의 감동과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천왕봉 · 노고단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봉우리로 불리는 반야봉 일출산행에 나서기로,
이미 3월 31일 지리산에서 가장 높다는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봤으니,
올해에 지리산의 3대 봉우리 모두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마치 축복이라도 하듯 아직도 캄캄한 밤하늘엔 촘촘한 별이 총총,
반야봉으로 올라 해님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던가?
시간은 넉넉하기에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가기로,
빨리 간다고 해가 일찍 떠오르는 건 아니기에,
만복대 5.5km · 천왕봉 28.1km · 노고단고개 2.6km를 가리키고(02:10, 1090m)
성삼재의 유래,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여,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을 달궁이라 불렀다 합니다.
그 당시 마한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하여 팔랑재(八郞峙),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여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다 하여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다 하여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무넹기로 가지 않고 지름길인 나무계단으로,
성삼재 1.5km · 노고단고개 1.1km · 화엄사 5.9km · 노고단고개(편안한길) 3.2km를 가리키고(02:35, 1259m)
무넹기를 경유하는 편안한 길과 다시 만나자,
성삼재 1.5km · 노고단고개 1.0km · 화엄사 5.8km · 성삼재(편안한길) 1.9km를 가리키지만,
나무계단 아래에서 1.5km라던 성삼재가 여기서도 1.5km로 되어 있는데,
성삼재에서 노고단고개는 2.6km라니까 성삼재 1.6km가 맞을 듯,
무넹기가 아닌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면 0.3km가 짧은 걸 알 수가 있고(02:37, 1293m)
편안한 길이 아닌 돌계단 길을 따라 노고단대피소로,
노고단고개(편안한길) 2.4km · 성삼재(편안한길) 2.3km · 성삼재 1.9km를 가리키는데,
지름길로 가는 노고단고개는 0.7km가 아닐는지?(02:42, 1315m)
편안한 길과 다시 만나는 노고단대피소,
노고단고개(편안한길) 3.1km · 성삼재(돌계단길) 2.15km를 가리키는데,
아직은 입산시간지정제에 따른 개방시간(03:00) 전이라 기다릴 수밖에는,
단 1분의 에누리조차 없이 정확히 그 시간에 문이 열리는 걸로 봐선,
적어도 지리산국립공원에선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란 게 사라졌는 듯,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란 약속시간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는 행동이나 그 버릇을 이르는 말로,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한국인은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다.'라고 하여 생겼다는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996년 12월 가입) 회원국인 지금은 이미 옛말이 되어 버렸는지도,
나날이 발전하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02:48 - 03:00, 1350m)
노고단(老姑壇)의 유래,
노고단(길상봉, 吉祥峰)은 해발 1,507m로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 老姑)를 모시던 곳(단, 壇)이라 하여
노고단(老姑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노고할매라던가?
굳게 닫힌 문,
낮은 포복을 하면 통과할 수는 있을 듯,
굳이 그럴 필요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기다리기로,
그래 봤자 10분 정도인데
노고단대피소 이정표,
천왕봉 25.9km · 반야봉 5.9km · 노고단고개 0.4km · 노고단고개(편안한길) 1.05km를 가리키고
정확히 제시간에 열리는 문,
올라가면 주릉 통제소 앞에 걸어둔 밧줄 좀 걷어버리고 가세요.
노고단고개,
어둠이 걷히지 않은 노고단으론 닫혀 있고,
지리 주릉은 개방시간에 맞춰 열리는 걸,
이제 가야 할 반야봉은 5.5km라 하고(03:08 - 03:11, 1440m)
노고단고개 이정표,
노고단대피소 0.4km · 노고단대피소(편안한길) 1.3km · 전망대 0.5km를 가리키는데,
노고단대피소에선 노고단고개(편안한길) 1.05km라더니?
영미!
혼자서 어딜 가?
다 같이 가지 않고
또 하나의 노고단고개 이정표,
천왕봉 25.5km · 반야봉 5.5km · 삼도봉 5.5km · 피아골삼거리 2.8km를 가리키는데,
반야봉과 삼도봉이 똑같은 5.5km라지만,
거리가 같다고 그게 그거라고 보면 계산을 잘못하는 걸,
가 보면 알게 된다는,
그게 그거가 아니라는 걸
노고단 가는 길,
철통같은 방어태세라고나 할까?
이제 다 함께 반야봉으로
노고단고개를 뒤로하자마자 곰아저씨의 상냥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면 곰과 마주칠 수 있어 위험하므로 어쩌고저쩌고,
요즘은 지리 주릉의 정규 등산로에도 종종 곰이 출현한다는데도?
지남 01 - 02지점 이정표,
천왕봉 24.5km · 피아골삼거리 1.8km · 노고단고개 1.0km를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가야 할 반야봉은 4.5km가 아니던가?(03:29, 1410m)
지남 01 - 02지점,
삼도봉 24.5km · 노고단고개 1.0km를 가리키는데,
같은 지점의 이정표보단 22m나 낮은 걸,
어느 것 하나로 바로잡을 순 없는 걸까?
반야봉 4.0km · 피아골삼거리 1.3km · 노고단고개 1.5km를 가리키고(03:37, 1380m)
노고단고개 2.0km · 천왕봉 23.5km · 피아골삼거리 0.8km를 가리키고(03:46, 1360m)
돼지령,
돼지평전과 마찬가지로 멧돼지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노고단고개 2.1km · 반야봉 3.4km · 피아골삼거리 0.7km를 가리키고(03:50, 1370m)
반야봉 3.0km · 피아골삼거리 0.3km · 노고단고개 2.5km를 가리키고(03:55, 1350m)
피아골 삼거리,
피아골대피소와 피아골 갈림길이기도 하며,
천왕봉 22.7km · 노고단고개 2.8km · 직전마을 6.0km · 피아골대피소 2.0km를 가리키고(04:00, 1336m)
임걸령,
양 많고 맛 좋기로 소문난 임걸령샘이 있거늘,
그 물맛을 보지 않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왠지 임꺽정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임꺽정과는 상관없고,
조선 명종 때의 산적 두목인 임걸년(林傑年)이 주로 활동하던 근거지로서,
그 꽤 유명한 산적 두목의 이름에서 임걸령이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여태까지 함께하던 유비와 쓰리고 부부가 생이별을 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질 줄이야?
비정규직의 비애라면서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유비,
워낙 썰렁 개그의 1인자인지라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았는데,
반야봉 일출보단 생업이 우선인 걸 어떡하랴?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더라지만,
어쩔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인 걸 어쩌겠는가?(04:07 - 04:20, 1320m)
기력이 많이 떨어진 임걸령샘,
이 가뭄에 이 정도라도 나오는 게 대견하지만,
나의 오줌줄기랑 엇비슷한 형편인 걸?
지남 01 - 07지점 이정표,
반야봉 2.0km · 삼도봉 2.0km · 노고단고개 3.5km를 가리키고(04:28, 1380m)
지남 01 - 08지점 이정표,
천왕봉 21.5km · 삼도봉 1.5km · 노고단고개 4.0km를 가리키고(04:39, 1420m)
노루목,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 잠시 멈춘 곳으로,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노루목이란 지명이 붙었다는데,
오늘만큼은 삼도봉이 아닌 그 짓(?)을 할 때면 늘 그냥 지나쳤던 반야봉으로,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빚이자 외상값을 갚는다고나,
반야봉 1.0km · 노고단고개 4.5km · 천왕봉 21.0km · 삼도봉 1.0km를 가리키고(04:50 - 04:53, 1480m)
반야봉 삼거리,
노루목과 마찬가지로 반야봉과 삼도봉 갈림길이기도 한데,
반야봉 0.8km · 노고단고개 4.7km · 천왕봉 20.5km를 가리키고(05:02, 1550m)
여명(黎明)의 중봉(中峰)과 천왕봉(天王峰),
그 앞에 펼쳐진 구름바다는 또 어떻고,
아무래도 반야봉 일출산행을 제대로 맞춘 듯,
글자 그대로 시시때때로 변하는 지리산이긴 하지만,
눈이 고자(鼓子)가 아닌 한 탄성이 절로 나올 수밖에는
꽤 오랜만에 오른 반야봉(般若峰),
늘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던 반야봉과 중봉의 엉덩이 두 짝,
일출산행 덕분에 모처럼 실컷 쓰다듬고 어루만질 기회가 생긴 셈인데,
늙은 말이 콩을 마다하지 않듯이,
이 어찌 좋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리산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방팔방이 구름바다요,
그 위에 떠 있는 중봉과 천왕봉 또 촛대봉이 신비롭기조차 한데,
어디에서 이런 장관을 또다시 볼 수 있을 것이요,
해만 헤집고 나온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련만,
좀 더 기다리고 있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05:28 - 06:03, 1732.1m)
노고단고개 5.5km를 가리키는 반야봉 이정표,
중봉이 살짝 드러나며 어서 오라는 걸?
반야봉 아래 덕동마을에서 영남민박을 운영하는,
민박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일출산행에 동참했다는데,
여기까지 아니 이따가 중봉에서 아침을 먹을 때까진 좋았겠지만,
임걸령에서 돌아선 유비랑은 오십보백보요 같은 신세가 아니던가?
산오이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던가?
일출을 보긴 글렀으니 인증샷이나,
구름이 심술을 바람에 해는커녕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데,
날이면 날마다 뜨고 또 지는 해,
아니 그게 아닌 지구가 도는 거라던가?
옳다구나,
살짝 하늘이 열리는 듯?
또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봉과 천왕봉,
지리산에선 2등과 1등인 그 이름값을 하려는 걸까?
이런이런,
제각각인 걸!
반야봉이란 지명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으니,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그 옛날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다는데,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서 살았다.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두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 명씩 전국 팔도로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에 숨을 거두고 마는데,
그때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는데,
그 후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금줄을 넘어 반야 중봉으로,
가지 말라지만 가야만 하는 걸,
안내방송이 나오고 감시카메라가 작동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걸 어떡하랴?
아니 간 듯 살며시,
발자국도 남기지 말고
반야봉과 중봉 사이 안부에 자리 잡은 헬기장,
온갖 야생화가 지천인 걸(06:08)
반야 중봉,
김해김공창숙(金海金公昌淑) 무덤이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 높은 곳에다 묘를 썼으며,
후손들은 얼마나 발복(發福)하여 잘 살고 있는지?(06:12 - 07:25, 1731.8m)
그전엔 표지석이 있었는데,
웃자란 수풀 때문인지 보이진 않고
반야 중봉의 또 다른 연안김씨(延安金氏) 무덤,
언제 왜 어떻게 여기다가?
뒷면에 전북 김제란 글자가 있더라만
반야 중봉 헬기장에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싱싱한 문어를 데쳐낸 국물에다 라면을 넣어 끓인 맛이란,
앵경표 문어숙회와 1인자표 돔찜을 비롯한 갖가지 반찬이 산해진미(山海珍味)요,
황금백수가 오랜만에 맛보는 진수성찬(珍羞盛饌)이자 푸짐한 조찬(朝餐)이 아니던가?
지사모 공식주 말아주는 또 어떻고,
내가 가져간 산청한방촌동동주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실컷 짊어지고 다니며 호강을 시키다 와운교에서 요긴하게 먹었다만,
언제부턴가 지사모에서 사라진 경로우대(敬老優待),
경로우대(敬老優待)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경로우대(警老愚待)는 마시길!
재빨리 탈출(?)하는 여인네,
아직은 거기서 서성이고 있을 때가 아니지?
명선봉 일대가 반야봉의 엉덩이 노릇을 하는가 하면,
그 뒤엔 중봉과 천왕봉 및 촛대봉이 살짝 드러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더니만,
여간해선 나타나지 않아 좀체 볼 수가 없는 신비로운 사나이,
교대근무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걸,
나 또한 비스무리한 생활을 많이 하지 않았던가?
현지에 산다는 현지인은 현지로 내려가고자 돌아가고,
우린 반야 중봉과 묘향대 아래 자리 잡은 묘향암으로,
결국은 또다시 만나겠지만
요상스럽게도 배배 꼬인 주목(朱木),
지리산의 모진 비바람과 거친 눈보라에 맞서 살아남자니 본의 아니게,
여태까지 참고 견디며 버틴 세월이 그 얼마일까?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데
이왕이면 좌청룡 우백호였더라면 더욱 좋으련만,
1인자 아닌 쓰리고가 주인공인가?
1인자,
나잇살이나 훔친 늙수그레한 주목이 애잔한 듯한 표정이지만,
사람이나 나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형편인 걸?
거의 다 말라죽어 가는 구상나무,
꼬이고 휘어져도 꿋꿋하게 버티는 주목과는 대조적이라고나 할까,
지리산 일대의 기후변화가 몰고온 대재앙이라는데,
얼마 안 가 살아 있는 구상나무를 보기란 쉽지 않을 듯?
함박골로 내려가기에 앞서 묘향암부터,
그냥 간다는 건 묘향암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라는 지리산 반야성지 묘향암(妙香庵),
반야 중봉과 묘향대(妙香臺)를 병풍 삼아 그 아래 자리 잡았으며,
황금색 지붕이라 지리 주릉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도 하는 걸,
묘향암에는 2004년부터 호림(虎林) 스님이 수행하고 있다는데,
수행이라기보단 그냥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한데 어우러져 곡차인지 곡주를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는 채 한동안 머물 수밖에는,
또다시 오겠단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선 함박골로,
인연이 닿으면 언제든 들르겠지만(07:56 - 08:48, 1500m)
아무리 찬물을 마시고 또 마신들?
하나뿐인(?) 서방님과의 생이별이었는데
품앗이로 흔적을 남기지만,
엉성한 건 어디서나 변함없는 걸?
묘향대
오르내리기가 고약한 바위지대,
그나마 밧줄이 걸려 있어 한결 수월하더란(09:10 - 09:16)
1인자,
방위 출신은 아니라는데 영?
자세 좋고,
어디서 유격훈련 좀 받은 듯,
아니면 지리산에서 갈고 닦은 실력?
여군 중사 출신이라는데,
도무지 믿음이 안 가더란?
영미!
서방님의 응원에 힘입어 수월하게?
119 출동,
벌집 제거?
아니,
그럼 뭐 하러?
버섯 따러!
에라이!!ㅎㅎ
마침내 함박골로 내려서지만,
이건 뭐 마른 계곡이나 다름없는 걸?(09:52)
웬 산딸기,
지금이 어느 땐데,
이미 맛이 갔더라만
여기서 그만 꽈당,
살짝 튀어나온 바위를 디디다 미끄러지면서 사정없이 엉덩방아를 찧을 줄이야?
마른 하늘에 별이 보이는가 싶더니 금세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골반뼈라도 나갔는가 싶어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골반뼈 아닌 살이 깊은 오른쪽 엉덩이 아랫부분에 강한 충격이 오는 걸,
회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오른쪽 옆구리까지도,
나름대로 조심을 안 한 것도 아니건만,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이끼폭포,
함박골 최고의 볼거리요 실비단폭포라 부르기도 하는데,
국골 날끝산막골에 비하면 턱도 없는 모양새지만,
그전엔 자주 달력에 등장할만큼 유명세를 탄 곳이기도,
이 가뭄에 저 정도나마 유지하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요,
조금이라도 훼손된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알게 모르게 산꾼들의 의식수준도 꽤 높아진 게 아닐는지?(10:21 - 10:25, 950m)
이끼폭포에서 계곡치기나 왼쪽으로 난 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자 여기서 슬그머니 계곡으로 사라지고 마는데,
점점 계곡과는 멀어지는 듯한 희미한 흔적을 좇아갈 수밖에는,
어느 순간 공습경보가 울리면서 비상이 걸리기에,
점점 폭포수골로 붙는단 느낌으로 비스듬히 나아가다,
함박골과 폭포수골 사이의 지능선으로 해서 아래로 또 아래로
가까스로 함박골과 폭포수골 사이의 뱀사골 등산로로 탈출,
바로 아래 이정표는 반선 6.4km · 화개재 2.8km를 가리키고(11:03)
지북 17 - 12지점,
반선 6.0km · 화개재 3.2km를 가리키는데,
부근에 있는 이정표와는 거리가 맞지 않은 걸?(841m)
큰얼음쐐기골,
단심폭포가 수문장처럼 버티는 걸?
함박골 쇠다리,
이 부근으로 빠져나오는 게 정석이건만,
생각지도 않았던 공습경보가 울릴 줄이야?(11:07, 800m)
거의 말라버린 함박골,
제발 좀 큰비가 쏟아져야 할 텐데
등산로를 돌리는 바람에 폐쇄된 재승교
무명교
소원교
반선 5.5km · 화개재 3.7km를 가리키고(11:16)
제승대 위 신선교
제승대(祭僧臺),
1,300여년 전 송림사 고승인 정진 스님이
불자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祭)를 올렸던 장소로,
소원의 영험이 오늘까지 이어져 제승대라 불리어 오고 있으며,
주변의 기암, 괴석, 청류는
지리산을 찾는 탐방객의 탄성과 발길을 묶어 놓고 있다.
제승대(11:19)
작은얼음쐐기골을 가로지르는 대웅교,
지북 17 - 10지점이기도 하며,
반선 5.0km · 화개재 4.2km를 가리키고(11:23, 741m)
옥류교,
1인자에게서 전화가 오길 이제야 함박골을 탈출했다나?
벌써 다 내려가고 나 홀로 처진 줄 알았건만,
계곡으로 내려가 땀에 찌든 얼굴을 씻고 쉬면서 기다리기로,
혼자 먼저 내려간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기에(11:30 - 11:54)
명선교
병풍소,
반선 4.0km · 화개재 5.2km를 가리키고(12:00)
병풍소(屛風沼),
뱀사골계곡에는 여울과 소(沼)가 골고루 분포하여
수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소(沼)는 계곡물이 흘러가다 균열이 많이 생긴 약한 바위를 만나면
집중적으로 바위가 깎여 형성되게 됩니다.
뱀사골계곡에는 간장소, 병풍소, 병소, 뱀소, 탁용소 등 다양한 소(沼)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 병풍소는 계곡물에 의해 깎인 모양이 마치 병풍과 같이 생겼다 하여
병풍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병소 위 병풍교
병소(12:05)
병소(甁沼),
뱀사골 계곡에는 많은 명소들이 있는데
요룡대, 탁용소, 뱀소 등은 용이나 뱀과 관련된 명칭이고,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 등은 지형의 형태 또는
전설과 관련된 명칭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중 병소는 웅덩이의 모양이
마치 호리병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병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금포교
탁용소(濯龍沼),
이곳은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
이곳 암반 위에 떨어져 100여 미터나 되는 자국이 생겨나고,
그 자국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의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탁용소라고 합니다.(12:30)
와운교 뱀사골 탐방로,
성삼재에 주차한 차량을 회수하는 이들이 차를 타고 먼저 떠난 가운데,
짊어지고 다니면서 호강을 시킨 산청한방촌동동주를 비우고 내려가기로,
아직도 뚜껑조차 떼지 않았으니 1.7f리터가 남은 셈이지만,
몇이서 주거니 받거니 홀짝이다 보니 금세 동이 나더란,
출출할 땐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리가 제일이라고나,
와운마을 0.7km · 천년송 0.8km · 화개재 7.1km · 반선 2.1km를 가리키고(12:36 - 12:51, 572m)
요룡대(12:52)
요룡대(搖龍臺),
이곳 바위의 모습이 마치 용이 머리를 흔들고
승천(昇天)하는 것과 같다 하여 요룡대라고 하며,
일명 흔들바위라고 함.
와운마을 1.3km ·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1.2km를 가리키고(13:06)
멧돼지가 목욕을?
깊은 옥색 물빛이 아름다운 이곳은 돗소로,
과거 이곳에선 멧돼지가 목욕하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돼지의 지방어인 '돗'이
이 소(沼)의 이름이 되어 돗소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돗소(13:16)
뱀사골 신선길,
이제부턴 포장도로를 따라가야 하는데,
와운마을 2.3km · 화개재 8.7km · 반선 0.5km를 가리키고(13:21)
와운교,
이제 거의 끝나가는 걸,
뱀사골야영장 0.1km · 화개재 8.9km · 반선 0.3km를 가리키고(13:25)
뱀사골의 유래,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년 전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송림사에서는 매년 칠월 백중날(음력 7월 15일) 스님 한 분을 뽑아
그날 밤 신선바위에서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다음날이 되면 매번 스님이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그 스님이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기이하게 생각하여
그해에 뽑힌 스님 옷자락에 독을 묻혔습니다.
날이 밝은 뒤 사람들은 신선바위로 향하였는데,
바위에는 이무기가 죽어있었습니다.
그동안 사라진 스님들은 이무기의 제물(祭物)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이 계곡의 이름은 이무기 즉, 뱀이 죽은 골짜기라는 뜻의 뱀사골이 되었습니다.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반선마을에 위치한 반선교,
뱀사골의 물줄기가 만수천으로 흘러드는 곳이기도 한데,
반야봉 일출산행의 마무리는 여기서,
그다지 바쁠 것도 없어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진행했기에,
애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가슴속엔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또 하나 쌓이지 않았을까?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 가기에 앞서,
하산주를 겸한 민생고를 해결하고자 덕동마을 영남민박으로(13:30, 48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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