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21년 10월 31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묵곡마을 - 엄혜산 - 도내고개 - 토현교 - 법륜암 - 묵곡마을
* 산행시간 : 5시간 02분(운행시간 2시간 56분 + 휴식시간 2시간 06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명(나 홀로)
* 산행일정
09:55 묵곡마을주차장
10:05 - 10:08 경호강6교 갈림길
10:23 - 10:33 산불무인감시카메라
10:39 - 10:44 205m봉 아래 원지(법륜암) 갈림길
10:55 - 11:01 226.2m봉(지형도상 엄혜산)
11:04 - 11:20 234m봉(엄혜산 정상석, △ 경남 330)
11:33 - 11:50 수미산(250m)
11:52 묵곡고개 갈림길
12:10 - 12:16 도내고개 부근 포장도로 합류지점
12:18 성관선원(성관사)·해룡사 갈림길
12:21 - 12:25 도내고개
12:28 - 12:43 성관선원(성관사)·해룡사 갈림길
12:45 도내고개 부근 포장도로 합류지점
13:08 토현교
13:26 원지인도교
13:30 - 13:33 엄혜산 갈림길
13:38 - 13:52 잠수교
13:55 - 14:05 법륜암
14:12 - 14:20 전망대
14:24 쉼터(1)
14:28 - 14:31 쉼터(2)
14:38 - 14:41 묵곡양수장
14:44 - 14:47 성경재
14:52 경호강6교
14:57 묵곡마을주차장
*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9> 성철스님 순례길
성철스님께서 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 받았을 때,
추대식에 참석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기셨다.
이 한마디로 스님은 전국민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게 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함께 사람들 곁에 큰 가르침과 깨달음으로 다가온 말씀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경남 산청에 조성된 성철스님 순례길과 겁외사 순례를 떠났다.
진주에서 승용차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세속의 시공을 벗어나 진리와 함께 하는 절’이란 뜻을 가진 겁외사,
성철스님을 기리기 위해 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절로 진리를 깨달아
영원한 자유인이 되고자 했던 스님의 생애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벽해루에 들어서자 근엄한 모습의 성철스님 동상이 눈앞에 서 계셨다.
대웅전 옆 스님의 기개가 느껴지는 백송을 지나
솟을대문인 혜근문을 들어서면 바로 스님께서 탄생하신 생가다.
생가는 전시관인 포영당과 사랑채인 율은재, 그리고 안채인 율은고거 3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포영당에 들어서자 스님께서 평소에 입으셨던 누더기 두루마기가 맨 먼저 눈에 띄었다.
40여 년 동안 입은 누더기 두루마기와 깁고 기워서 다시 신은 덧버선 등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스님의 모습을 보는 듯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스님께서 늘 화두로 삼으셨던 ‘삼 세 근(麻三斤)’ 글씨,
출가 이전에 책읽기를 즐겨했음을 알 수 있는 독서목록 등
어린 시절부터 열반하실 때까지 쓰신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게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고 전시관 이름도 포영당(泡影堂)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필자에게 두루마기 긴 소매로 후려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안채인 율은고거(栗隱故居)는 스님의 모친께서 생활했던 공간을 재현해 놓은 곳이고,
사랑채인 율은재는 부친께서 거처했던 곳을 재현해 놓았다.
생가 마당에는 일원상과 함께 스님께서 출가 전 쓰시던 서책, 옷, 신발 등을 조형물로 조성해 놓았다.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큰 깨달음을 얻겠다는 일념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물과 산이 어우러진 ‘성철스님 순례길’
어느 날 한 노스님이 건네준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읽고 심안(心眼)이 밝아짐을 느껴
그 길로 지리산 대원사로 가서 불철주야 참선 정진하였고,
정진 40일 만에 깨달음을 얻은 성철스님은 1936년 봄 해인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수행하기 위해 떠난 길의 들머리인 ‘겁외사-묵곡대나무숲길-양수장-
경호강변과 엄혜산 기슭 데크길-법륜암-원지대나무숲길-양천강 둔치주차장’까지의
3km 구간을 성철스님 순례길이라 이름 지어 생태길을 조성해 놓았다.
겁외사를 나와 포장된 도로를 500m 정도 단성 방면으로 올라오자
새로 조성해 놓은 생태숲공원인 성철공원이 있었다.
습지생태원, 은행나무숲, 잔디광장, 어린이놀이공간, 무궁화동산 등 테마별로 다양하게 꾸며 놓았다.
휴일인데도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찾는 이들이 적은 것이 다소 아쉬웠다.
성철공원에서 나와 성철스님 순례길을 걸으려니 안내판이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
도로 바닥에 생태길이란 표시와 엄혜산 등산로 안내도만 있고,
방향을 표시해 놓은 안내판이 없다 보니 처음 찾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렸다.
성철스님 순례길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방향표지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야자매트가 깔린 묵곡대나무숲길은 이제 막 조성된 듯 대나무들이 한창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야 무성한 숲을 이룰 것 같았다.
양수장을 지나자 법륜암까지 약 1km 거리를 나무데크로 강변길을 만들어 놓았다.
엄혜산 기슭 중간중간에 쉼터를 마련해 놓았는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강 가운데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림과 유유자적한 삶이 주는 행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잔물결을 일으키며 소리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반짝이는 윤슬(잔물결)을 바라보며
필자가 걸어온 삶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떠올려 보았다.
두물머리에 닿자 넓은 강폭의 경호강이 작은 줄기의 양천강물을 껴안고 흐르는 풍경이 무척 다정스럽게 보였다.
법륜암에서 다시 대나무숲길을 지나자 양천강 잠수교가 나타났다.
웅장한 현대식 다리보다 훨씬 정겨워 보였다.
잠수교를 지나면서 발밑에 흐르는 강물에 말을 걸어도 보고,
혹시 노니는 물고기들이 있는지를 찾아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잠수교를 건너면 바로 성철스님 순례길의 종점인 경호강 둔치주차장이다.
강물처럼 느린 걸음으로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법륜암에 닿자 경호강변으로 난 성철스님 순례길과 엄혜산 등산로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갈 때는 순례길 대신 산행을 통한 수행을 선택했다.
초입부터 밧줄을 잡고 오를 정도로 매우 가팔랐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성철스님의 삶을 떠올리며 걸었던 순례길과는 달리
엄혜산 산행은 온 힘을 다해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10여 분을 오르자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 무렵 긴 의자가 놓인 바위전망대가 나타났다.
내려다본 조망이 정말 비경이었다.
경호강와 양천강, 아파트가 점령해 버린 원지와 단성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 산과 강이 어우러져 탄생시킨 성철큰스님
엄혜산과 경호강이 만나서 빚어낸 이 비경,
성철스님께서도 마을 뒷산인 엄혜산을 오르며 강물이 흐르는 이치와
건너편 웅석봉에 걸린 구름이 일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경험과 도를 깨친 선승으로서의 철학이 어우러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득도에 이른 스님께서 일체망상을 떨쳐버리고 바라본 ‘산과 강’에서
얻은 법어가 곧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일 것이다.
높은 산은 낮게 흐르는 강물에 제 그림자를 담가 놓고 늘 자신을 헹군다.
그래서 산은 푸르다.
물은 산을 씻어주면서도 스스로를 산속에 가둬 놓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강물은 겸손하다.
산은 우뚝 솟아있음에도 늘 푸르고, 물은 쉼없이 흘러가면서도 깨끗함을 유지하는 비결을
성철스님 순례길이 필자에게 들려주는 것 같았다.
경남일보(2020.7.21.)
걷고 싶은 길 <88> 산청 성철스님 순례길
경남 산청군 성철스님 순례길은 20대 청년 시절의 스님이 수행을 위해
사찰을 향하며 걸어간 순례의 길을 묵곡생태숲 등과 함께 걸어볼 수 있게 조성한 탐방로다.
1912년 산청군 묵상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또 조계종 종정으로 한국불교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던 개혁가였고 사상가였으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 길은 탐방객을 숲과 사색의 길로 초대한다.
이 길을 걷고 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이 알듯 말듯 다가온다.
또 스님의 사상을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스님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다.
■ 성철스님을 추모하다
이 탐방로는 성철스님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지리산 겁외사에서 묵곡생태숲~묵곡교~법륜암~대나무 생태숲길~잠수교~
원지마을 둔치주차장을 돌아 원점회귀하는 6㎞ 구간이다.
반대로 원지마을 둔치주차장에서 차를 세워 두고 탐방에 나서도 무방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지리산 겁외사로 향한다.
일주문 대신 기둥 18개가 누각을 받치는 사찰인 겁외사가 위용을 자랑한다.
겁외사 중심부로 걸어가면 성철스님 동상을 마주한다.
숙연한 마음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성철스님의 다비식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 뒤에 성철스님의 생가가 있다.
생가는 부친인 이상언 옹의 호를 따 율은 고거라 부른다.
해근문을 들어서면 성철스님 생가를 재현한 포영당과 율은 고거 등이 있다.
포영당에는 스님의 유품과 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수없이 손질하여 누더기를 보는 듯한 승복 두루마기나
이면지를 모아 만든 메모장은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느끼게 하고,
속명(俗名)인 ‘이영주(李英柱)’라는 이름으로 묶인 젊은 날의 도서목록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였던 한 인간의 뜨거운 젊은 시절을 상상하게 한다.
겁외사 건너편에는 성철기념관이 있다.
좌판을 벌이고 가져온 농산물을 파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 온몸으로 따뜻한 볕을 안다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좌측에 묵곡생태숲이 있다.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에 걸쳐 조성된 묵곡생태숲은 14만2000㎡ 규모를 자랑한다.
남강댐 상류 지역의 수자원 보호와 겨울철 거센 모래바람에 시달려야 했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9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생태숲으로 거듭난 곳이다.
은행나무숲과 습지생태원, 잔디광장 등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쉬이 걸으며 바라볼 만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 곳곳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있어 이 나무들의 모습과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푸른 소나무 한 그루를 가운데 두고 산이 물결치듯 한 모습을 형상화한 광장이 나온다.
중앙광장이다.
중앙광장에서 시작해서 중앙관찰로를 따라 걸었다.
넓은 공원은 겨우내 묵은 마음을 탁 틔워준다.
갈대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모양새가 기분 좋다.
흙길에 뿌려진 굵은 모래를 밟자 ‘아작아작’ 다정한 소리가 함께한다.
긴 의자에 앉았다.
햇살에 샤워하듯 온몸으로 따뜻한 볕을 안았다.
가져간 캔커피 한 모금을 마시자 풍경은 곧 야외 카페로 변한다.
둑으로 걸음을 옮겼다.
덕천강과 경호강이 산청을 휘휘 감아 돌아 한 몸으로 남강으로 향해 흘러간다.
회색빛에 날개 끝부분에 노란빛이 도는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여유롭게 거닌다.
까치 한 마리는 하늘을 수영하듯 두 날개를 활짝 펴서 날더니
비행기가 비행장에 착륙하듯 두 다리를 내려 잔디밭에 앉는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날렵한 몸짓을 즐기며 가다가 걸음을 멈춘 곳은 하트 모양의 습지생태원이다.
생태원을 반환점 삼아 다시 걸음을 돌렸다.
묵곡생태숲에서 묵곡교~양수장 간 1.5 ㎞ 구간은
주민이 농사용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라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온 왼쪽의 통영대전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지리산 초입인 단성면 풍경은 청량감을 준다.
■ 빼어난 경관이 시야를 압도하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설치한 묵곡양수장을 지나면
나무덱으로 조성된 탐방로가 법륜암까지 1㎞ 정도 계속된다.
인쪽 경호강의 빼어난 경관이 시야를 압도한다.
청동오리 등 겨울 철새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룬다.
탐방로 오른쪽에는 책을 포개 놓은 듯한 엄혜산 절벽 풍경이 아름답다.
탐방로 중간에 의자가 마련된 쉼터가 있어 탐방객이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법륜암은 대나무생태길과 전망대의 갈림길이다.
나무덱 전망대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아득하다.
그 아래로 산들이 정렬해 있다.
구곡산과 석대산, 웅석봉 둔철산 백마산이 보인다.
그 앞으로 푸른 남강이 넘실거리며 고산 준봉들의 힘찬 정기를 조율한다.
소설가 이태의 ‘남부군’에 나오는 달뜨기능선이 옛 기억을 더듬게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법륜암에서 잠수교 간 0.5 ㎞구간의 대나무생태길을 걷는다.
하늘로 치솟은 대나무 사이로 걷다 보면 짙고 푸른 초록에 눈이 시원해진다.
탐방객을 감싸는 상쾌한 공기가 코를 자극한다.
기분마저 한결 가벼워지는 듯하다.
3m 너비의 잠수교를 건너면 원지마을 둔치주차장이다.
원지는 지리산 길목으로 산청읍과 진주의 중간지점에 있어
아파트가 크게 늘면서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국제신문(2020.3.1.)
[산&길] <621> 산청 엄혜산
경남 산청에 있는 엄혜산은 성철스님 생가에 지은 겁외사를 품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많이 찾는 산이기도 하다.
엄혜산과 이웃하는 검무봉과 잇는 등산로는 겨울철이 아니면 걷기 힘들다.
그만큼 수풀이 우거져 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을 보듬은 엄혜산과 조망이 탁월한 검무봉을 모두 걷는 묘미를 만끽해 본다.
등산로는 총길이 8.4㎞에 산행시간은 5시간으로 원점회귀 방식이다.
우선 검무봉으로 올라간다.
들머리를 잡기 위해 통영대전고속도로 밑으로 난 차도를 따라 직진한다.
오른쪽이 성철스님기념관이다.
퇴옹교 아래를 지나 대형차량 주차장이 끝나는 지점 건너편에 검무산 등산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잘 닦인 오르막이다.
이 일대 옛 등산로들이 고속도로 준공 후 사라졌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랜 만에 이곳을 찾은 등산객이 이 산행기를 꼭 참조해야 할 이유다.
기억에 의존해 등산했다가는 고속도로에 막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분 가량 초겨울 추위에 놀란 몸을 달래다 보면 벤치가 있는 평지에 닿는다.
숨을 돌린 뒤 길을 나서자마자 검무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기서 평탄한 길을 10분가량 걸으면 된비알이 나온다.
그곳을 오르면 왼쪽이 검무봉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전망대다.
나무덱 전망대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아득하다.
눈이 내렸는지 산정수리가 하얗다.
그 아래로 산들이 정렬해 있다. 구곡산과 석대산, 웅석봉이 보인다.
소설가 이태의 <남부군>에 나오는 달뜨기능선이 옛 기억을 더듬게 한다.
둔철산, 정수산, 백마산이 옹기종기하다.
그 앞으로 푸른 남강이 넘실거리며 고산 준봉들의 힘찬 정기를 조율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 검무봉으로 향한다.
전망대로 올라갔던 쪽으로 되돌아 나온다.
10분 가량 오르면 지적삼각점을 표시한 봉이 나온다.
누군가 지적삼각점 안내판에 손글씨로 검무봉을 조그마하게 써 놓았다.
그게 산행팀끼리 산꾼의 취향을 얘기하는 계기가 된다.
'봉 팀'은 봉우리에 올라가는 걸 최고로 여기는 등반가들을 말한다.
그걸 '봉을 딴다.'고 한단다.
등산로가 어떻든 정상에만 올라가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자신이 100봉, 1000봉, 1만봉을 밟았노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그들이다.
매직펜으로 써 놓은 검무봉 글자를 그들 중 한 명의 작품으로 추측하는 이유다.
반면 '맥 팀'은 능선을 중시한단다.
산의 맥락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이들이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한반도 산이 홀로 서 있는 게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과 산이 사람과 사람처럼 사회를 이루고 있다면 억측일까?
■ 두 산을 잇는 수고로움
검무봉 정상에서 20분쯤 내려오면 묘지공원에 도착한다.
한 문중에서 조성한 곳이다.
이 일대에는 여러 묘지가 산재해 공동묘지를 방불케 한다.
최근에 만들어졌는지 공사 흔적이 뚜렷하다.
마구 파헤쳐져 옛 등산길을 찾기가 어렵다.
여기서부터 엄혜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에 올라가는 순간까지 긴장해야 한다.
약 한 시간 걸리는 이 길은 언뜻언뜻 드러나는 엄혜산을 바라보며 수풀을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다.
양쪽 계곡으로 빠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적다.
얼굴에 닿은 나뭇가지를 손으로 제치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
이 구간이 이번 산행의 주목적이란 점을 떠올리면 다소 용기가 난다.
도전은 난관을 극복하는 촉매제가 된다.
엄혜산과 검무봉을 잇는 등산로는 수풀이 우거져 여름철에는 도전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파란 하늘에 우듬지가 양보심을 발휘하는 이때가 제철이다.
묘지공원 위쪽을 타고 직진한다.
그 끝자락에 도착해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묘지 조성을 위해 공사 차량이 올라온 흔적이 뚜렷하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만나는 묘지 쪽으로 좌회전한다.
이제부터 고난이 시작된다.
능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내리막을 걸어 내려와야 한다.
아래쪽 성철로 차도에 닿을 때까지 약 20분이 걸린다.
도로를 만드느라 생긴 절개지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길이 끊어졌다고 당황하지 말고 하산하다 보면 수로를 만난다.
여기서 20m 정도 내려가다가 우측 내리막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영산악회 리본을 참조하면 된다.
그 아래 논밭에서 성철로 쪽으로 올라간다.
■ 시공을 초월한 사찰
차도 건너편 '금당자미원' 표지판 옆길을 따른다.
이어지는 묘지에서 직진하다가 능선을 향해 왼쪽을 선택한다.
길 모양이 불분명하지만, 지척에 있는 능선을 향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곧 만나는 능선길은 이제 '고생 끝'을 알리는 표시다.
오른편으로 10분쯤 올라가면 226.9m봉 갈림길에 접어든다.
오른쪽은 봉으로 올라가고, 반대편은 엄혜산 행이다.
왼쪽으로 10분쯤 걸으면 토현갈림길에 이른다.
산행 리본을 보고 직진한다.
40분 후 엄혜산 정상이다.
멀리 양천이 설핏 보일 뿐 전망은 탁월하지 않다.
양천은 남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천이다.
정상에 있는 멋진 표지석과 아름다운 목판들이 엄혜산을 향한 등산객들의 깊은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다른 봉우리가 있다.
평상이 놓여 있어 이채롭다.
지형도상에는 이곳이 정상으로 표시돼 있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겁외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비교적 잘 닦여진 길이라 헷갈릴 개연성은 낮다.
다만 15분쯤 내려가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선택한다.
이어 바로 만나는 갈림길에 직진하면 된다.
대나무 숲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수로 옆으로 고속도로 굴다리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면 날머리인 묵곡마을에 도착한다.
산행을 서두느라 방문을 미뤘던 겁외사에 들른다.
겁외사는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란 의미다.
1993년 열반에 든 성철대종사 생가터에 들어선 사찰이다. 2001년 창건됐다.
입구에 새겨진 오도송(悟道頌)이 발길을 잡는다.
사찰 입구에서 정면에 보이는 성철스님 동상을 마주한다.
숙연한 마음에 옷매무시를 가다듬는다.
그러면서도 스님이 살아계셨다면 그 동상에 대해 불호령을 내리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스님이 대웅전에서 끝 모를 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에 성철스님 친견을 위해 3,000배를 했던 중생들의 소망이 겹쳐지는 듯하다.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묵곡마을주차장

이따가 성철스님순례길(양천 엄혜산 생태길)을 따라 돌아올 거고



묵곡마을주차장


묵곡마을주차장에서 표지기가 걸려 있는 골목길을 따라가고



통영대전고속도로(고속국도 제35호선) 굴다리,
겁외사 0.5km·엄혜산 정상 2.0km를 가리키고



남강 지리태극 산줄기가 시작되는 왕봉산과 망해봉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축사가 나오고



삼거리 갈림길,
바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포장도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어,
조금 가다 합천 이씨 묘지가 자리 잡은 곳에서 산줄기로 붙어도 되지만,
도수로 옆으로 난 길로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곧장 산줄기로 붙기로 하는데,
겁외사 0.56km·엄혜산 정상 1.89km를 가리키고


큰재골


나무다리


경호강6교 갈림길,
겁외사 0.7km·엄혜산 정상 1.8km를 가리키고





뾰족하게 보이는 250m봉,
수미산 정상이라던가?






산불무인감시카메라,
시원스레 조망이 열리는 건 아니지만,
엄혜산 일대에선 가장 멋진 전망대라고나?









원지(법륜암) 갈림길,
안부로 내려서자 합천 이씨 묘지를 경유하여 겁외사(묵곡마을)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고,
10m쯤 위엔 성주 이씨 묘지와 법륜암을 경유하여 원지로 이어지는 갈림길인데,
원지 1.39km·겁외사 1.76km·엄혜산 정상 0.69km를 가리키고


철부지 철쭉

평상이 놓여 있는 226.2m봉,
지형도상으로는 엄혜산으로 나와 있는 봉우리로,
오르기에 앞서 엄혜산 정상석이 서 있는 234m봉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고,
양천강 인도교와 잠수교 사이로 이어지는 원지 갈림길이기도 하며,
원지를 비롯한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엄혜산을 에미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듯,
도내고개 1.7km·원지인도교 1.5km·겁외사 2.5km·묵곡생태공원 2.2km를 가리키는데,
그전의 낡은 이정표는 원지 0.81km·겁외사 2.45km·도내고개 2.03km였던가?



234m봉,
226.2m봉에서 살짝 내려서자 우회하는 길과 만나고,
조금 더 내려서다 밋밋하게 치오르자 엄혜산 정상석이 서 있거늘,
2000년 7월 16일 창립한 <진주산깨비>에서 2012년 2월 17일 세웠다는데,
국도 3호선이 지나는 도내고개에서 회원들이 번갈아 지게로 지고 왔다는 걸,
여긴 지형도상의 엄혜산(226.2m)보다 높은 234m라지만,
왜 234m가 아닌 226.2m봉의 높이를 따와 226m라 했는지,
혹시 정상석의 위치를 잘못 잡은 게 아닐까?
지리산에서 내려다보면 산의 모양이 물고기의 꼬리와 같다 하여 어미산(魚尾山)이라 한 게,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하여 엄혜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연히 만난 사람,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옛 직장의 선배요,
지금은 진주교정동우회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보단 세 살 더 많은 형인가?









펑퍼짐한 공터로 된 수미산(250m) 정상부,
호젓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나아가 수미산(須彌山)으로 올라서는데,
그전엔 그 이름조차 없는 250m봉으로 불렀지만,
지난해 4월 14일 해룡사 입구에 수미산 해룡사로 되어 있는 걸 봤으며,
수미산이란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산>을 일컫는다던가?
2020년 7월 29일 산청군에서 준공금을 지급한 <엄혜산과 수미산 등산로 정비사업 및 관급자재 구입시행>에 의하면,
각각 67,291,000원과 59,960,000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엄혜산과 수미산 일대의 등산로를 정비했는데,
도내고개와 가까운 성관선원 경내를 지나는 기존의 수미산 등산로를 폐쇄하고,
도내고개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0.3km 떨어진 지점에서 새로운 수미산 등산로를 개설했으며,
이번에 엄혜산과 수미산을 찾은 것도 새로운 등산로를 확인하러 온 것이라고나?
수미산은 검무봉(283.8m) 아닌 엄혜산 일대에선 가장 높은 봉우리요,
성관선원(성관사)에서 만난 현각 스님도 성관선원과 해룡사 뒷산이 수미산이라는 걸,
수미산 정상석이 없어 헷갈리고 또 아쉽다고 하니까,
언젠가 틈을 내어 정상석을 세워야겠다는 약속 아닌 약속을 하는데,
그날이 좀 빨리 왔으면 좋지 않을까?
나보다 조금 늦게 올라온 가까운 단성면 백곡에 산다는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한동안 머무르다 도내고개로 내려가고

수미산 정상부 아래 자리 잡은 무덤,
상태로 봐선 돌보는 이가 없는 듯?


신경수·송영희 표지기,
<우리산줄기이야기>의 주인공 자하 신경수(紫霞 申京秀, 1951.5.11. 생 )님,
2021년 5월 1일 검무단맥을 답사하면서 남긴 거라는데,
진양기맥이 지나는 집현산과 광제산 사이의 326.9m봉(옛 324.1m봉, △ 삼가 450)에서 분기하여,
191.7m봉-도내고개-묵곡고개-검무봉-중부고속도로 산청3터널 위를 지나 남강변과 나란히 가다,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동 하옥방마을에서 진양호로 스러지는,
약 13.6km에 이르는 산줄기를 검무단맥이라 한다는 걸.



Y자 삼거리,
수미산에서 100m 정도 내려섰을까,
그전엔 없던 이정표와 함께 Y자로 된 삼거리가 나오는 걸,
성관선원 경내를 지나는 기존의 등산로는 묵은 듯한 느낌이며,
지난해(2020년) 여름 개설했다는 왼쪽으로 난 새로운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엄혜산 정상 0.9km·수미산 정상 0.6km·도내고개 0.8km·성관선원 0.7km라니까,
엄혜산 정상 0.9km라는 건 234m봉 아닌 226.2m봉이요,
수미산 정상 0.6km라는 건 거리상으로 봐선 234m봉인 것 같지만,
수미산은 250m봉을 일컫는 걸로 0.1km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양천강,
그 뒤엔 집현산이고



진주와 산청을 잇는 국도 3호선


도내고개 부근 포장도로 합류지점,
산줄기를 빠져나가 도내고개와 토현교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내려서자,
엄혜산 정상 1.4km·도내고개 0.3km·성관선원 0.2km·원지인도교 2.1km를 가리키는데,
성철스님 순례길을 경유하여 돌아가자면 원지인도교로 가야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도내고개를 모른 척하고 그냥 갈 수야?




해룡사·성관선원 갈림길,
도내고개부터 갔다가 돌아갈 때 성관선원만 들르기로 하는데,
도내고개 0.2km·엄혜산 정상 1.5km를 가리키고



성관선원(성관사) 입구,
그전엔 왼쪽으로 난 포장도로가 성관선원을 경유하는 등산로였는데

밥 먹고 공부하는 절!
성관사(性觀寺)


도내고개,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와 산청군 신안면 신기리를 잇는 국도 3호선이 지나며,
토현교와 성철스님 순례길로 가기 위해 내려간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되돌아서는데,
그전엔 겁외사 4.48km·원지 3.53km·엄혜산 정상 2.03km였지만,
겁외사 4.2km·묵곡생태공원 3.9km·엄혜산 정상 1.7km·해룡사 입구 0.2km라는 걸,
엄혜산 정상은 정상석이 서 있는 234m봉 아닌 쉼터가 있는 226.2m봉을 가리키고







해룡사·성관선원 갈림길,
대한불교 관음종 해룡사는 그전에 갔기에 가까운 성관선원만 들르기로 하는데,
도내고개 0.2km·엄혜산 정상 1.5km를 가리키고



대한불교 조계종 성관선원(성관사),
산청군 신안면 원지로 122번길 148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 혜암 대종사의 조카 현각스님이 주석(駐錫)하고 있으며,
12년에 걸쳐 성관선원을 가꾸고 있다는 성관선원장 현각스님(속명 조병권)을 마당에서 만나,
기존의 등산로 폐쇄와 이전 개설 및 수미산에 대하여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는데,
성관선원을 가꾸는 일이 마무리되면 뒷산에다 성관선원 둘레길을 조성할 예정이라던가?


공부하다 죽어라
이 말씀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0대 종정(宗正) 혜암(慧菴, 1920~2001) 대종사님의 말씀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을 힘을 다하여 공부하라.
공부하다 죽는다면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죽음이다.
부모님 인연으로 태어나기 전 나의 본래 진면목은 무엇인가.
본인의 혜안으로 보일 때까지, 만질 수 있을 때까지 멈추지 마라.
이 뭣꼬! 이 뭣꼬! 이 뭤꼬! !!! ???......
이것을 모르고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


대한불교 관음종 수미산 해룡사


지금이 어느 땐데,
철부지라고나?




도내고개 부근 포장도로 합류지점,
이제 토현교와 원지인도교로 가고



양천강,
멀리 황매산과 허굴산이 보이고













꿈나무어린이집

토현교,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끼리를 잇는 원지로 122번길이 지나며,
원지인도교 경유 엄혜산 1.3km를 가리키고













나임아파트






원지인도교,
길이 150m, 폭 2.5m의 규모로 2012년 완공했다 하고

신안어린이집,
그 뒤엔 강물에 그림자가 비치는 양지리버빌아파트와 서전골든뷰아파트이고


신안초등학교,
그 뒤엔 대동아파트와 금강블레스아파트이고

석대산능선,
그 뒤엔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이고


엄혜산 갈림길,
원지인도교와 잠수교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엄혜산 정상 1.1km·도내고개 2.8km·겁외사 3.6km·묵곡생태숲공원 3.3km를 가리키는데,
이 또한 엄혜산은 234m봉 아닌 226.2m봉을 일컫는 거고




잠수교,
양천강이 남강(경호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점 조금 위에 놓여 있으며,
이제 겁외사 2.3km를 가리키고

















법륜암(法輪庵),
성주 이씨 묘지를 경유하는 엄혜산 갈림길이기도 하며,
입구에 서 있는 아주 키가 큰 플라타너스가 눈길을 끄는데,
법륜암에는 스님이 거주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된 듯,
원지에서 멀지 않은데 언제부터 빈 절이 되고 말았을까?
겁외사 2.1km를 가리키고















전망대,
겁외사 1.7km를 가리키고


둔철산 일대와 백마산, 적벽산

둔철산 일대와 백마산


담수성 거북인 남생이라던가?


혜산(惠山)
그 옆에 이상규(李祥奎)와 이영규(李瑩奎)라 새겨져 있는데,
혜산(惠山)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 이상규(李祥奎)의 호(號)로,
이곳의 엄혜산(嚴惠山)에서 따온 거라고 하며,
이상규(李祥奎)와 이영규(李瑩奎)은 형제라던가?




남강(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

쉼터(1),
겁외사 1.5km를 가리키고

환구정(喚鷗汀)
그 옆에 이상규(李祥奎)라 새겨져 있는데,
<갈매기를 부르는 물가>라는 뜻인가?
이상규(李祥奎, 1847(헌종 13)∼1923)는 조선 말기 유학자로,
자(字)는 명뢰(明賚)이며 호(號)는 혜산(惠山)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무양리(武陽里)이다.
증조부는 사복시정에 증직된 죽와(竹窩) 이광호(李光浩),
조부는 증 이조참의(贈吏曺參議) 이기덕(李基德)이며, 부친은 이제권(李濟權)이다.
처부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우진(金佑鎭)이다.
어려서 종조부를 따라 향교에 가서 석전례(釋奠禮)를 보고 온 후로
친구들과 놀 때조차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숙부에게서 『소학(小學)』을 배웠다.
1864년(고종 1)에 과거에 응시하여 자신의 포부를 펼치려고 하였으나 낙방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소정(韶亭) 조성교(趙性敎)에게
출처대절(出處大節 : 군자가 벼슬에 나갈 때와 나가지 말아야 할 때)을
배우고 이후 과거 공부를 포기하였다.
1872년(고종 9) 동생 이영규(李榮奎)와 함께 당시 김해부사(金海府使)로
와 있는 성재(性齋) 허전(許傳)에게서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배웠다.
이어 그는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 : 1824∼1894),
단계(端磎) 김인섭(金隣燮 : 1827∼1903), 해려(海閭) 권상적(權相迪) 등
당시 지역의 이름난 선비를 찾아가 성명(性命)을 비롯한 성리학에 대해 질정하였다.
1876년(고종 13)과 1877년(고종 14) 아버지와 어머니의 회갑에 흉년이 들자,
그는 부모의 회갑연 대신 빈민에게 곡식을 나눠주었다.
1880년(고종 17) 고성에서 단성(丹城) 묵곡(墨谷)으로 옮긴 이후
번잡한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더 전념하였다.
당시 지리산 아래서 학문에 정진 중이던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세재(李世宰)가
그를 보고 뛰어난 선비라며 조정에 천거하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제수(除授)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스승인 성재 허전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심상(心喪) 3년을 입었으며,
단성 이택당(麗澤堂)에 스승 허전의 영정을 모시는 일을 주도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울분을 시로 토로하였으며,
탁청대(濯淸臺)와 환구정(喚驅亭)을 지어 은거하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때에는 비록 나라는 망하였지만
마음까지 망할 수는 없다고 하며 더욱 학문에 정진하였다.
1921년 제자들에게 '숭정학(崇正學)' 세 글자를 유언으로 남겼다.
저서로 문집 『혜산선생문집(惠山先生文集)』이 있다.




쉼터(2),
겁외사 1.4km를 가리키고














묵곡양수장





중부고속도로(고속국도 제35호선)가 지나는 경호강6교,
교량 길이는 630m라 하고

성경재,
성철스님(1912~1993)의 8대조인 국헌 이정석 공의 재실이라 하고

성경재 중건 기념비(誠敬齋 重建 紀念碑)
국헌 이공정석(菊軒 李公 廷奭, 1611~1671)은
합천이씨(陜川李氏) 강양군(江陽君) 24세로,
배산서원(培山書院)에 배향(配享)되신
청향당 이원 선생(淸香堂 李源 先生)의 종회손(從會孫),
죽각 이광우 선생(竹閣 李光友 先生)의 손자(孫子)시다.
공(公)은 조선 중기 이 고장의 유학자(儒學者)로서
학문을 떨치고 후학(後學)을 입성하셨다.
평소 <스스로를 숙이지 말며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는
<무자기 신기독, 毋自欺 愼其獨>을 좌우명으로 생활하셨다.
배양(培養)에서 처음 묵곡리(默谷里)로 옮기셨으니
우리의 입향조(入鄕祖)시다.
8 ·15 광복(光復) 후 공의 학덕을 기려 성경재(誠敬齋)를 건립했으나,
1997년 고속도로 개설로 훼철당하매, 종회(宗會)에서 이의 복원을 결의,
후손(後孫)들의 정성(精誠)을 모아 재건립(再建立)을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앞으로 이 성경재를 구심점으로 뭉쳐,
공의 고귀한 정성을 이어 받아 성실(誠實)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준공식(竣工式)에 즈음하여 이 기념비(紀念碑)를 세우고 헌성록을 붙인다.
2004년 4월 18일
성경재 재건추진위원회(誠敬齋 再建推進委員會)

경호강6교



묵곡교,
그 뒤는 왕봉산과 망해봉이고


경호강6교













묵곡마을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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