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과 풍경

한여름 해질녘에 들른 진양호(2020.8.28. 금요일)

큰집사람 2020. 8. 29. 07:02

 

 

 

 

 

 

 

가요황제 남인수 동상(歌謠皇帝 南仁樹 銅像)

 

 

일년계단(소원계단)

 

 

 

 

 

 

호반에 와 서면

물 아래 들어간 고향 까꼬실이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보게 되네

멱감던 덕천강(德川江)이 앞내로 흐르고

피리 잡던 경호강(鏡湖江)이 뒷내로 흐르듯이

물은 예대로 흘러와

진양호(晋陽湖)를 질펀히 채우는데

마을은 저 물을 딛고 오르지 못하고 이리

사람 가슴에 들어와 가슴을 두드리고 있네

그 골목 다정한 이웃

그 물가 백사장 눈부신 햇발

마을을 떠나 어디로 가 있는가

앞들과 뒷들 새미골 들판의 탐스런 오곡들

녹두섬 밭고랑에 알알이 고구마 감자

그렇게 살지고 영글어서 지금 어디로 가 있는가

삼재(三災)도 들어오지 못하는 천하지낙양(天下之洛陽)

사람의 역사와 함께하여 인재와 문화

수풀에 수놓이듯 문채가 빛났는데

그 인재 그 이룸 다 얻다 놓고

마을은 이리 사람 가슴에 들어와

가슴만 두드리고 있는가

아 까꼬실 사람 호반에 와 서면

고향이 물 아래 들어가 눈시울에 어리지만

까꼬실 사람으로 사는 길이 가슴에

와 있음을 보게 되네 보게 되네

2003년 8월15일​ 강희근 짓고 정문장 쓰다

 

 

 

두 강물이 서쪽에서 흘러와 감싸는 곳에

이름난 수양가문 대대로 살고 있다네

감도는 맑은 기운 두 섶을 여민 듯하고

평온하고 맑은 풍광 만 가지 갖추었네

다섯 마을의 숲은 거북도 어울릴 만하고

백여 년의 터전은 자손을 위한 계책이었네

앞나루터에 귀한 손이 오지 않으면

나는 한가로이 노닐며 이 강을 독차지하네

<서호 정광학 선생의 시 가호>

 

내 고향 까꼬실

백두대간이 두류로 뻗어 내려 황학으로 멎은 자락

경호 덕천이 만나 남강을 이루어 기름지게 적신 곳

그 이름 까꼬실 우리의 고향

귀곡 아랫마을 샛골 큰마을 분딧골 한골 새미골

듣기만 해도 정답고 그리운 이름들

사래 긴 앞들 뒷들 새미골들은

무 배추 고구마 감자 수박의 명산지였고

드넓은 너우니 은빛 모래톱 황어 은어 떼 지어 노닐던 곳

낙토가 따로 없는 넉넉한 삶의 터전이었다

진주 진양으로 일컬은 영남의 웅부 서쪽 20리

글자도 아름답고 귀하게 가귀곡리 가이곡리 가곡리 귀곡리 귀곡동이라 불려왔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청사에 빛나는 충의공 농포 정문부 선생을 모신

충의사 가호서원 부조사당이 있었고

도문화재인 충의사 액호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었으며

선생의 후손들이 해주 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다른 씨족과 더불어

오손도손 효와 우에 힘쓰며 마르지 않는 인정의 샘물을 나누었다

황학의 길지에 세운 서당 각후재는 인재의 산실이었고

그곳에 둥지를 튼 귀곡초등학교는 우리의 모교였다

뭍을 물에 묻으니 이 아니 상전벽해인가

1939년에 첫 삽을 뜬 남강댐이 전쟁으로 두 차례나 중단되었다가

1969년에 준공되면서 황학에 걸린 해를 붙들고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뿔뿔이 헤어졌던 우리들

조상대대로 일군 터전과 함께 개굴바위 톳재비고개 중산골 뿔당골 시루봉 꽃동실 등

골골에 서린 전설과 추억이 물에 잠기고 잊혀져 간 지 어언 30여 년

더불어 앉고 설 자리조차 없는 실향의 애달픈 한을 달랠 길 없던 터에

진주시와 한국수자원공사의 도움으로 고향이 건너다 보이는 진양호 언덕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고향 자취 돌에 새겨 세우니

내 고향 까꼬실 가슴가슴에 영원할지어다

 

2003년 8월 15일

귀곡동망향비건립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