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산행기

놀기 삼아 다녀온 진주 광제산

큰집사람 2020. 6. 28. 18:12

 

 

 

 

* 날      짜 : 2020년 6월 28일(일요일)

* 날      씨 : 구름 많음

* 산  행 지 : 홍지주차장 - 광제서원 고려고분군 갈림길 - 덕곡마을 갈림길 - 광제산 - 약샘 - 홍지주차장

* 산행거리 : 3.9km

* 산행시간 : 2시간 10분(운행시간 1시간 36분 + 휴식시간 34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명(나 홀로)

 

 

 

 

 

* 산행일정

11:30            진주시 명석면 계원리 홍지주차장

11:46            광제서원 고려고분군 갈림길(광제산 - 11지점)

12:09            덕곡마을 갈림길(광제산 - 10지점)

12:20 - 12:50  광제산(420m, 광제산 - 9지점)

12:54            약샘 삼거리 안부

13:02 - 13:06  약샘(광제산 - 7지점)

13:39            지방도 1006호선(광제산로) 광제산 등산로 입구

13:40            홍지주차장

 

 

 

 

 

진주시 명석면 계원리 홍지주차장

 

 

 

 

 

 

광제산과 415m봉

 

 

 

 

 

 

 

 

 

 

 

 

 

 

 

 

 

 

 

 

 

 

 

 

광제산 - 11지점,

광제서원 고려고분군 갈림길이기도 하며,

광제서원 고려고분군 0.1km · 홍지소류지 0.6km · 광제산봉수대 0.8km를 가리키는데,

광제산 등산로 안내도에서 홍지소류지와 광제산봉수대의 거리가 1.8km라 했거늘,

여긴 왜 1.8km 아닌 1.4km로 되어 있는 걸까?

광제산봉수대는 0.8km 아닌 1.2km가 아닐는지?

여기서 광제서원은 0.1km요,

광제서원에서 고려고분군까지는 또 0.1km 남짓 되고

 

 

 

 

 

 

 

광제산 - 10지점,

덕곡마을 갈림길이기도 한데,

덕곡마을 2.2km · 홍지소류지 1.4km · 광제산봉수대 0.4km를 가리키고

 

 

 

 

 

 

 

 

 

 

 

집현산 일대

 

 

한우산과 자굴산

 

 

 

 

 

 

 

 

 

 

진주 광제산 봉수대(경상남도 기념물 제158호)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기록상으로는 고려 중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하였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이곳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봉수로(烽燧路) 중에서

동래 다대포에서 시작하여 서울로 이르는 제2봉수로에 속하는 곳이다.

이곳은 남으로 망진산,북으로 산청군 단성면의 입암산 봉수와 서로 연결되었다.

불구덩이(火口)와 돌로 쌓은 축대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발굴을 통하여 복원하였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광제봉수대를 아십니까?

☞ 광제산의 특징

* 명석(鳴石)은 <보국충석, 報國忠石>으로 널리 알려진 자웅석(雌雄石, 도민속자료 제12호)의 애국혼을 바탕으로

  태동한 고장으로, 자연생태계가 살아 있는 아늑한 광제산 자락에서 순박하고 근면한 사람들이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 광제산(廣濟山)은 백두대간인 덕유산에 뿌리를 두고 금원산, 황매산을 거쳐 집현산을 일구었고, 두 줄기로 나뉘어져

  동쪽으로 달려나간 진주 비봉산세와 함께 서쪽으로 부드러운 형상으로 뻗어나가 후덕한 봉우리를 이룬 산입니다.

  이 산세는 진주 숙호산으로 이어져 이현, 신안, 평거, 판문동 일대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 광제(廣濟)라는 말은 <넓게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큰 덕을 의미하는 덕곡(德谷)마을이 산 아래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북쪽의 집현산 봉우리 사이 고개를 <무넘이고개>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천지개벽 시 물이 넘나들던 고개라는

  의미이며, 당시 물에 잠기지 않은 산이 집채만큼 남았다고 하여 <집현산>, 광주리만큼 남았다고 하여 <광제산>

  이라 전합니다.

 

☞ 광제봉수대의 역사

* 조선시대 봉수는 경봉수, 연변봉수, 내지봉수로 구분되어 모두 서울 남산으로 연결되었으며, 직봉 402,

  간봉 271개가 있었습니다.

* 봉수대는 정세의 완급에 따라 평상 시 1거, 적이 해상에 나타나면 2거, 적이 해안 가까이 오면 3거,

  병선과 접전하면 4거, 왜적이 상륙하면 5거씩을 올렸습니다.

* 광제봉수대는 전국의 5개 직봉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서울에 이르는 제2간봉으로 남쪽으로 남해 금산 →

  창선 대방산 → 사천 각산 → 사천 안점 → 진주 망진산과, 북쪽으로는 산청 신안 벽계봉수대 → 합천 금성산 →

  충주 망이산으로 전달되었습니다.

* 봉수대는 수령이 관장하고 오장과 봉수군인 방정 2명, 백정 30명이 근무하였으며, 녹봉은 평전 1결씩을

  지급하였습니다. 봉수군은 출퇴근 교대근무를 위해 부근 주민을 채용하였고, 봉화간이라는 낮은 신분을 주었습니다.

* 광제봉수대는 420m 높이의 낮은 산에 소재하지만 주변의 시야가 완벽하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아

  봉수대가 비바람에 무너진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돌을 사용 2004년 복원을

  완료함으로써 광제봉수대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이 고장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우리 모두가 아끼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월아산 국사봉과 장군대봉

 

 

 

 

 

 

달뜨기능선과 웅석봉

 

 

 

 

 

 

 

 

 

 

약샘 삼거리 안부,

415m봉 아닌 약샘을 경유하여 내려가기로 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약샘의 <약>을 지워 그냥 샘이 되어 버렸는 걸.

 

 

 

 

 

 

 

 

 

 

 

약샘

 

 

 

 

 

 

 

 

 

 

 

 

 

 

 

 

 

 

 

 

 

 

 

 

 

 

잘록이가 진양기맥이 지나는 청현재이고

 

 

 

 

 

 

 

 

 

 

홍지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