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우번암과 종석대 그리고 문수암과 노고단

큰집사람 2019. 6. 30. 19:41


* 날    짜 : 2019년 6월 30일(일요일)

* 날    씨 : 구름 많음

* 산 행 지 : 성삼재 - 우번암 - 종석대 - 문수암 - 노고단 - 성삼재

* 산행시간 : 7시간 05분(운행시간 4시간 07분 + 휴식시간 2시간 58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1명(오로라, 쓰리고, 소리, 고남, 고암, 네츄럴, 유비, 큰골, 담비, 구름, 선함)






* 산행일정

09:05          성삼재(1090m)

09:30          무넹기 전망대

09:39          종석대 갈림길

09:46          차일봉능선 갈림길

09:54 - 10:14  우번암(1200m)

10:16          상선암 갈림길

10:28 - 10:31  전망대

10:36          돌탑 삼거리

10:53 - 11:10  종석대(1360.9m)

11:17          우번암 갈림길

11:24          무넹기 전망대

11:25          무넹기 이정표(지남 27 - 12지점, 1257m)

11:28 - 11:31  무넹기(1300m)

11:38 - 11:44  옛길 전망대

11:51 - 12:01  전망데크

12:09          KBS 전주방송총국 노고단중계소(광주문화방송송신소)

12:27 - 14:00  문수암(1280m)

14:19          KBS 전주방송총국 노고단중계소(광주문화방송송신소)

14:35 - 14:38  노고단고개(1440m)

14:52 - 15:07  노고단(1507.4m)

15:16          노고단고개

15:24 - 15:32  노고단대피소(1350m)

16:10          성삼재







성삼재,

5월 15일이던가,

시원찮은 노고단 일출과 철 지난 털진달래,

그만하면 아쉬운 대로 그럭저럭 괜찮기도 하더라만,

1달 보름 만에 다시 찾은 셈이요,,

애당초 칠선계곡과 연계한 제석봉골로 가고자 했건만,

하필이면 심술궂은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우번암과 종석대 그리고 문수암과 노고단으로 바뀌었는데,

지리산 그 어딘들 하루해야 보내지 못하랴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요 꿩 대신 닭이긴 하지만,

꿩이면 어떻고 또 닭이면 어때서?

2019년 상반기 마지막 날,

지사모 산행은 또 이렇게 시작된다.(09:05)


성삼재의 유래,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여,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을 달궁이라 불렀다 합니다. 

그 당시 마한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하여 팔랑재(八郞峙),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여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다 하여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다 하여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해발 1,090m)


반야중봉과 반야봉인가?






성삼재탐방지원센터



아름다운 국립공원,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을 국가에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고,

수많은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배려 있는 탐방에티켓 준수는

아름답고 건강한 자연생태계를 지켜 나가는 큰 힘이 됩니다.




















우번암 법종 스님이 주인이라던가?






무넹기 전망대,

잠깐 눈요기를 하고선 우번암으로,

다니지 말란 길이지만 가야만 하는 걸 어쩌랴?(09:30)


가까이서 손짓하는 노고단,

안 그래도 이따가 간다.

지긋이 기다려라!


<무넹기>의 의미를 아시나요?

여러분이 서 계신 이곳은 무넹기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1929년 구례군 마산면 소재에 큰 저수지를 준공하였으나,

유입량이 적어 만수를 하지 못해 가뭄이 들었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 이듬해인 1930년에 해발 1300고지 노고단에서

전북으로 내려가는 물줄기의 일부를 구례 화엄사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유도수로 224m를 개설,

저수량을 확보하여 지금까지도 해년 풍년농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넹기는 물이 부족하여 노고단 계곡물의 일부를 화엄사계곡으로 돌렸다고 하여,  

<물을 넘긴다>는 뜻에서 <무넹기>라 불리고 있습니다.


화엄사계곡









금줄을 넘어 우번암과 종석대로,

성삼재와 노고단을 잇는 정통 백두대간 산줄기로 난 길이건만,

마음을 졸이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인 걸,

길만이라도 산꾼들에게 양보하면 안 되는 걸까?


만복대




노고단






종석대 갈림길,

우번암부터 들르고자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벗어나는데,

종석대에서 무넹기로 내려갈 때의 몫이라고나?(09:39)


종석대






차일봉능선 갈림길,

언젠가 딱 한 번 올라온 적이 있는데,

진주의 그 유명한 비경마운틴클럽과 함께하지 않았을까?(09:46)

















튼실해 보이는 우번암 별채(요사채),

50m 정도 더 가야 본당이 나오고


별채 해우소









별채보다 허름해(?) 보이는 우번암(牛飜庵) 본당,

40년 넘게 홀로 수행 중이라는 법종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굳게 닫힌 법당에서 간간이 염불 소리만 새어 나오는데,

할일 없는 우린 거시기타임이나 가지면서 쉬었다 가기로,

바람소리표 삶은 햇감자와 회장님이 가꿨다는 고암표 복숭아를 안주 또는 간식 삼아,

 지금의 암자는 법종 스님의 스승인 백운 스님이 50여 년 전에 지었다고 하는데,

범어사와 봉암사에서 수행하던 법종 스님이 들어오기 전에는 작은 토굴이었으며,

텃밭으로 변한 옛 토굴은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이 전부였다던가?(09:54 - 10:14)


텃밭



우번암의 소박한 산신각,

자그마한 바위에 산왕지위(山王之位)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고


산왕지위(山王之位)















돌확,

경상도에선 도구통이요,

전라도에선 확독이라던가? 


종석대가 내려다보고



우번대의 전설,

신라 때 젊은 스님 우번이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동안의 좌선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서 열심히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우번이 정진하던 9년째 되는 어느 봄날이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절세미인이 암자 앞에 홀연히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닌가?

그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번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정답게 손짓을 했다.

유혹에 홀린 우번은 젊은 피가 끓어올라

자신이 수도승이란 것도 잊은 채 그 여인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 미모의 여인은 보일 듯 말 듯 앞서가며

온갖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하고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수림 속을 나는 듯 가볍게 지나쳐 상봉을 향해 높은 곳으로 올라만 갔다.

우번도 놓칠세라 그 여인을 따라 숲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허겁지겁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종석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요염하게 웃으며 손짓하던 그 여인은 갑자기 사라지고,

난데없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고 위엄스레 서 있었다.

우번은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관세음보살이 자기의 도심을 시험하기 위해 미녀로 변신한 것임을 비로소 깨닫고,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음과 허튼 마음을 뉘우치고 참회했다.

우번이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관세음보살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우번은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이때부터 더욱 분발하여 수도정진하기로 결심했다.

상선암으로 다시 내려가는 대신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을 계속했다.

우번은 수 년 동안 수도를 한 끝에 마침내 성불하여 신라의 이름난 도승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우번 스님이 도통하는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石鐘) 소리가 홀연히 들려왔다.

바로 이 석종 소리가 울렸다고 하여 이 산봉우리를 <종석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종석대(鐘石臺)는 다른 이름도 함께 갖고 있는데,

우번조사가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한 곳이라 하여 <우번대, 牛翻臺>,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여 서 있던 자리라고 하여 <관음대, 觀音臺>라고도 불린다.





우번암 텃밭을 지나 100m 가까이 갔을까,

조망이 살짝 열리는 삼거리 갈림길인데,

내려가는 건 상선암(上禪庵)이요,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종석대로 가자면 올라가야 하며,

비교적 순하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10:16)





전망대,

그냥 갈 수 없잖아,

별스레 바쁠 것도 없는데,

우번암에서 입요기는 했으니 눈요기나 해야지.(10:28 - 10:31)


안개가 살짝 가린 종석대



차일봉능선





















작은 돌탑 삼거리,

지금은 잃어버린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다시 올라섰으며,

시암재와 성삼재로 내려서는 길은 왼쪽이요,

우리가 가야 할 종석대와 노고단은 오른쪽으로(10:36)


살짝 드러나는 반야봉과 노고단















종석대 가는 길



안개 속으로 사라지려는 노고단과 종석대






종석대는 어디에?































































저쪽에서 보면 베토벤바위라는데



자료사진


















눈 아래 보이는 우번암






종석대 정상부,

암봉의 모양새가 종을 닮아서

또는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돌종을 울리는 소리가 나서,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는 그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종석대는 돌종(石鐘)과 관련이 있는 이름으로 명칭도 여러 개라는데,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牛翻臺),

또는 관음대(觀音臺)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종석대를 우번대라 부르게 된 전설을 보면, 

옛날 종석대 아래 암자에 사미승(沙彌僧)과 노스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천은사계곡을 오르던 중 사미승이 남의 밭에서

조 세 알을 손으로 훑어 쥐었다 

이를 본 노스님은 사미승에게 남의 곡식을 훔쳤으니

주인집에서 3년 동안 일해 빚을 갚으라 하고 그를 소로 바꿔 버렸다 

그래서 그 소는 주인집으로 가 살았는데,

그 소가 눈 똥이 땅에 떨어지면 빛을 내면서 곡식이 잘 자랐다

그 후 이곳 마을 이름을 방광리라 했는데,

지금의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가 바로 그곳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그 소는 주인에게

<이젠 빚을 갚았으니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한 뒤 산 위로 올라갔는데,

그 주인이 하도 신기해 뒤따라 올라간 곳이 우번대라나?(10:53 - 11:10)





차일봉능선






베토벤바위와 씨름하는 네츄럴



작은고리봉과 만복대를 비롯한 서북능선  



작은고리봉과 만복대



천은저수지



혼자서 왜 저러실까?















지나온 산줄기















시시때때로 변하면서 조화를 부리고












돌아본 종석대






아깐 들어갔는데,

이번엔 빠져나오고(11:24)




















무넹기 이정표,

그전엔 코재라는 이정표가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코재에서 무넹기로 바뀌었는 걸,

코재는 깔딱고개가 끝나는 곳 아닌 시작되는 곳으로 이사갔는데,

화엄사계곡 쪽으로 0.2km 내려간 지남 27 - 11지점(1194m)이 코재라던가?

진짜배기 무넹기도 여기가 아닌 100m쯤 위지만,

화엄사는 5.7km를 가리키고(11:25)





진짜배기 무넹기 이정표,

성삼재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과 지름길인 나무계단으로 나뉘는 곳으로,

무넹기 현장을 둘러보고선 지금은 잊혀진 옛길인 마루금을 따라 올라가는데,

어제까지 많은 장맛비가 내렸는지라 무넹기의 물줄기가 장난 아닌 걸.(11:28 - 11:31)








무넹기



 



















전망대,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지만,

요즘 같은 한여름에 뙤약볕이 내리쬐는지라 포기할 수밖에는,

그나저나 담비 고문은 어디쯤 올라오고 있을까?

따라가다 아니다 싶어 추월하면서 묻자 속이 메스껍다고 했는데,

한시바삐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알고 보니 그러고도 남을 짓(?)을 하지 않았던가?

오랜만에 종석대에 갔으면 종을 쳐야 정상이지,

쓸데없이 통째로 나팔은 왜 불어?(11:38 - 11:44)





월령봉능선과 차일봉능선 사이에 자리 잡은 화엄사계곡















옛길에서 빠져나가,

노고단대피소와 노고단고개를 잇는 길에 합류하여 전망데크로 올라가는데,

그쪽은 노고단대피소로 가는 길인데 왜 그리로?

누가 모르나?





전망데크 삼거리,

문수암으로 가자면 송신탑 쪽으로 올라가야 하건만,

그리론 탐방로가 아니라며 감시용카메라가 버티고 있는 걸,

저 좋은 길을 왜 못 가게 하는 걸까?

무슨 방법이 없을까?


전망데크,

보이는 거라곤  춤추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밖에 없는데,

이걸로 최대 101명이 이용 가능하긴 할까?

한꺼번에가 아닌 하루 동안이라면 또 모르지만(11;51 - 12:01)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두어 명 보이는 저기가 바로 거긴가?

돌아가는 삼각지(12:02)





돌아가는 삼각지에서 이리로 빠져나오는데,

나중에 노고단고개로 갈 땐 여기가 돌아가는 삼각지가 되고(12:04)


가까이 다가서는 노고단












광주문화방송송신소와 KBS 전주방송총국 노고단중계소,

종석대와 노고단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바로 정문 앞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문수암으로 내려가고(12:09)











살짝만 드러나는 노고단 정상부









너덜지대,

그럴싸한 전망대 노릇을 하는 곳이지만,

그래 봤자 오늘은 그게 아닌 걸?














인공구조물인 듯?






문수암 ,

스님은 안 계시는 듯,

많이는 아니지만 올 때마다 언제라도 그러하듯이,

50m는 넘어 보이는 바위지대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아 아늑한 느낌이라고나,

문수암(文殊庵)은 1803년경 화엄사의 초운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그 후 세월이 흐르고 또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폐허가 되었으나,

 천은사와 화엄사 주지를 지낸 평전 스님이 복원하였다는데,

지금은 화엄사에서 공부하러 올라오는 스님이 어쩌다 있을 뿐,

우번암처럼 거처하는 스님이 없어 평상시에는 비어 있는 것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장마철에 여름소풍이라도 온 듯한 기분이요,

 마치 우리가 문수암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떡하니 차지하고선,

시간이 얼마나 가는 줄도 모르는 채 푸짐한 오찬을 즐기는데,

바람소리표 흑돼지 제육볶음과 소리표 즉석 떡볶이,

또 오로라표 잘 익힌 호박잎과 고암표 상추와 풋고추 등등,

거기다 곁들이는 각양각색의 반주(飯酒),

지리산 산신령이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문수암에서 이렇게나 입이 호강할 줄이야?(12:27 - 14:00)

















문수대 아래 자리 잡은 문수암,

문수대는 우번대와 마찬가지로 지리 10대

(우번대, 문수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요,

또한 우번대와 마찬가지로 반야 5대(우번대, 문수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이기도 하고



























얼굴바위(?)



초운대사가 창건한 문수암이 있었던 자리,

수풀이 웃자라는 바람에 겨우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고  














왕시루봉능선 뒤로 보이는 불무장등



당귀






문수암과 문수대 사이의 공간,

그전엔 텃밭이었는지도?











해우소,

왕시루봉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지나고





흘러가는 구름이 깜짝 놀란 듯,

쓰리고,

왜 그러시나요?

점심을 잘못 먹었나?





























문수암을 뒤로하고 온 길을 되돌아 노고단으로,

언제나 또다시 올 수 있을지?


노고단 정상부가 바로 위에 보이지만,

마루금으론 가지 말란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초를 서고 있는 걸,

노고단 정상이야 노고단고개에서 올라가도 되는데,

굳이 억지를 부리며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착한 탐방,

그게 정답이요,

누가 오라고 또 가라는 것도 아닌데(14:19)











진입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쭉 내려가면 어떡해?

거기서 들어가야지.


옳지,

잘하네.

그렇게 들어가야지.





아깐 올라갔던 곳으로 빠져나와,

노고단고개로 올라가고






노고단고개,

그 짓(?)을 할 때만도 열세 번이나 지나갔으니,

내 고향 함안의 진산(鎭山)이란 여항산(艅航山, 770m)보다도 더 낯이 익었다고나,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가면 되는 건가?(14:35 - 14:38) 











반야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지리 주릉,

그러고 보니 반야봉 간 지도 꽤 됐나?


노고단의 유래,

노고단(길상봉)은 해발 1507m로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 老姑)를 모시는 곳(단, 檀)이라 하여
노고단(老姑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또한 이곳은 고산지대로서 전망이 매우 좋고 시원해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과거 1920년대에는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곳 노고단 지역은 한여름에도 기온이 서늘한 아고산(亞高山)지대로서

백운산원추리, 복주머니란, 지리터리풀 등 다양한 식물들이 생육하고 있습니다.











노고단 군부대 생태복원,

노고단 일원은 1970년대 초부터 군사상

중요한 목적으로 군부대가 주둔하였던 곳이었으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노고단 본래의 자연경관 및 생태복원을 위하여
군부대 이전 후 노고단 본래의 경관 및 생태환경을 복원하였습니다.

군부대가 있던 곳에 지금은 신갈나무, 미역줄나무, 붉은병꽃나무,

국수나무 등 노고단의 자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나무,

옆에 서 있는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구상나무(Abies Koreana E. H. Wilson)라고 합니다.


학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오직 우리나라 높은 산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무등산) 정상부에만 있습니다.

이 나무의 나이는 약 100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의 모양이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이것은 바람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곳 노고단 정상지역은 바람이 많은 곳으로

주변에 있는 나무들도 아주 키가 작거나

한쪽으로만 가지가 뻗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료사진



















불무장등과 왕시루봉



왕시루봉

































섬진강,
여기서 바라보이는 섬진강은 총 길이가 212km에 달하며,
멀리 전북 진안군 팔공산(八空山)에서 발원하여 곡성군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과 합류한 후 지리산 남부의 협곡을 지나

경남, 전남의 도계(道界)를 이루면서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섬진강은 천영기념물 330호인 수달을 비롯하여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자란다는 은어, 참게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을 뒤로한 채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의 맑고 푸른 강물과
하얀 백사장이 어우러진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지리산의 십경(十景)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노고단 삼각점(운봉 12)






노고단 돌탑의 유래,
노고단은 신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과 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화랑들이 쌓은 탑과 단은 1,0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초석으로 짐작되는 몇 개의 큰 돌만이 남아 있었으나,
지난 1961년 7월 갱정유도(更定儒道 : 1928년 창교된 민족종교)에서  

다시 축조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년 중양절(重陽節 : 음력 9월 9일)이 되면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산신대제를

정유도에서 봉행하여 노고단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처럼 숭고한 의미를 가진 탑의 보존을 위하여

원형을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15:52 - 15:07)











지리산은 196712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83km²로서 3개 도, 5개 시 · 군에 걸쳐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수많은 능선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져

매우 다양한 야생 동 · 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서기 554년 창건된 화엄사를  비롯하여 쌍계사, 대원사등 

유서 깊은 사찰과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노고단의 과거와 현재,

노고단 지역은 오랜 세월 동안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환경을 유지해 왔으나,

취사 · 야영 등 인간의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식물이 살기 어려운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생태계 파괴는 빠르지만,

복원에는 오랜 세월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고산 생태계,

저산대와 고산대 사이에 있는

해발 1,500 - 2,500m 지대를 아고산(亞高山)지대라고 합니다.

이곳은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으며 안개일수가 많아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등 침엽수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노고단과 세석평전과 같은 아고산대 상한 부근에서는 수고가 낮아져

키 작은 나무와 철쭉, 진달래, 원추리 등 초 · 목본류를 볼 수 있습니다.

아고산지대는 갖가지 야생초, 서늘한 기후, 뛰어난 조망 등

자연과 균형을 이룬 지상의 낙원과 같은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대이나,

훼손될 경우 자연 스스로의 회복이 어렵습니다.

탐방객 모두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지역입니다.








노고단고개,

이제 성삼재로 내려가면 끝인가?(15:16)











노고단대피소,

담비 고문이 하사하신 말아주 아닌 캔커피타임을 갖고선,

  오랜만에 돌계단길 아닌 편안한 길을 따라 편안하게 내려가고(15:24 - 15:32)

















저 건물은 무었일까요?

현재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는 이곳은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인 1920년 무렵

외국인 선교사들이 풍로병 등을 피하기 위해

아고산 지역인 현 위치에 건물들을 지었습니다.

본래는 수십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50년 전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반달곰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전체적으로 몸색깔은 검고 주둥이는 비교적 길게 튀어나와 있으며,

귀는 둥글고 큰 편입니다.

특히 가슴의 뚜렷한 반달 모양 흰무늬가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며,

3개의 발가락에 길고 말카로운 발톱이 있어 나무를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어른 곰의 몸길이는 130 - 190cm이고,

몸무게는 수컷이 100 - 150kg,

암컷이 65 - 90kg입니다.

 지구상에는 북극곰, 불곰, 팬더 등 8종이 있는데,

우리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습니다.


야! 반달가슴곰이다,

반달가슴곰은 단군신화에 조상(웅녀)으로 나오는 상징동물입니다.

옛날에는 지리산에 많은 반달가슴곰이 살았었는데,

많은 밀렵꾼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달가슴곰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살까요?

반달가슴곰은 높은 산악지역에서 주로 생활하며,

겨울이 다가오면 먹이를 찾아 낮은 지역으로 내려옵니다.

버찌, 오디, 산딸기, 도토리 등 나무열매와 새순 등을 주로 먹는데,

벌꿀을 가장 좋아하고

나무껍질이나 땅을 파헤쳐 개미 같은 곤충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반달가슴곰은 열매를 먹기 위해 나무에 오르거나,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나무줄기에 발자국을 남기며,

먹이가 풍부한 가을에 배불리 먹고,

12월쯤 바위굴이나 큰 나무 구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잡니다. 





함박꽃(산목련)



돌계단길과 만나고(1315m)


















성삼재,

지사모 산행이란 게 본디부터 그다지 빡세지 않았는데다,

환갑 진갑 다 지난 노인네(?)가 산행대장을 맡고선 더더욱 그러했는데,

오늘따라 이건 뭐 산행이 아니라 여름소풍이라도 온 듯한 기분이라고나,

어느 누구도 재촉하거나 서두르지도 않고 온종일 느긋하기만,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지사모(智思募),

이 능선 또 저 골짜기로 지리산을 헤집고 다니더니,

어느새 그 지리산이라도 닮아 버린 걸까?

신선 선(仙),

산에 사는 사람을 신선(神仙)이라 한다는데,

산으로 드는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산주 없는 지사모,

좋은 현상이다만,

복무방침을 바꾼 걸까?

말짱한 맨정신으로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