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기대에 미치지 못한 왕의 강과 왕시루봉

큰집사람 2019. 2. 24. 19:58


* 날    짜 : 2019년 2월 24일(일요일)

* 날    씨 : 맑음(미세먼지)

* 산 행 지 : 왕시루봉

* 산행시간 : 8시간 05분(운행시간 5시간 34분 + 휴식시간 2시간 31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7명(오로라, 은아, 쓰리고, 고암, 유비, 백두, 선함)






* 산행일정

08:10          송정마을 지리산 둘레길주차장

08:37 - 08:43  의승재

09:10 - 09:16  552.4m봉(소삼각점)

09:39 - 09:45  휴식

10:31 - 10:37  계곡

10:59 - 12:04  헬기장(왕시루봉 정상 표지석)

12:13 - 12:34  선교사 유적지

12:39 - 12:48  왕의 강 전망대

12:59          1213.1m봉(하동 302)

13:07 - 13:17  왕시루봉(1240.2m)

13:24          1213.1m봉

13:26 - 13:35  사자바위

13:50 - 14:03  통천문

14:42          봉애산능선 - 산지밭골 지능선 갈림길

16:00          안한수내 내한교

16:15          송정마을 지리산 둘레길주차장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 지리산 둘레길주차장,

국도 19호선 한수교와 송정마을을 잇는 토지송정길이 지나며,

지리산 둘레길 제15구간이 끝나고 제16구간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데,

오미마을로 이어지는 제16구간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의승재로 올라,

왕시루봉과 봉애산을 거쳐 제15구간 지리산 둘레길로 돌아오는 원점산행,

이번 달 8일 마침표를 찍은 지리산 둘레길을 탐방하면서 머릿속에 그린 코스로,

올해의 두 번째 달 마지막 일요일을 맞아 지사모 회원들과 함께하는데,

과연 마음먹은 그대로의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을는지?

어느 정도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순간의 선택이 성패(成敗)을 좌우한다던가?(08:10)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

가탄 10.6km · 오미 10.4km를 가리키고

















곳곳에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상처가 남아 있는데,

2011년 1월 30일 발생한 산불로 임야 25ha가 피해를 입었다 하고


의승재,

정유재란 때 구례 사람들이 의병을 모아서 

왜군을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의승재라 부른다고 하며,

처음부터 쭉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라 꽤나 힘들었기에,

잠깐이나마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이면서 쉬었다 가기로,

이럴 때면 어김없이 지사모 공식주인 말아주가 등장하건만,

오늘따라 웬일인지 시부저기 물만 마시고선 그냥 앉아 있는 걸,

제조 기술자(?)가 당직 근무라 오지 못한 게 대번에 표가 나는데,

재료가 없는 건지 아니면 모두가 무면허(?)라 그러는 건지,

어쨌거나 여태까지 함께하던 지리산 둘레길과 헤어져 왕시루봉으로,

송정 1.1km · 오미 9.3km를 가리키고(08:37 - 08:43)





이틀 전(2.22) 지사모에 가입한 현오 권태화 표지기,

<현오와 걷는 지리산 둘레길, 산줄기 작가 현오 권태화>라 되어 있는데,

의승재 아래 길가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워다가 의승재에다 모셨는(?) 걸,

지리산 둘레길을 가다 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표지기라고나?


Forever 표지기,

진주중·고 7·31산악회의 홍성국(洪性局)씨가 주인공으로,

진주7·31산악회는 <진주중학교 7, 진주고등학교 31회 졸업생들의 산악회>라는 뜻으로,

그들의 산악회 이름과 높이가 같은 731m짜리 산인 공개바위 인근의 꽃봉산을 찾아내어,

2014731일 오전 731분에 진주에서 출발하여 731m가 새겨진 꽃봉산 정상석을 세우고,

이후 매년 731일 이 꽃봉산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하고


세석산장에서 우천 허만수와 진주 경상대에 근무하는 Forever 홍성국(洪性局, 1974년)






의승재 바로 위 경작지의 흔적,

 오른쪽 끄트머리로 붙어 올라가고








무덤



무덤 갈림길,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은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있는 둥 마는 둥한 희미한 길로 산줄기를 따라 올라가고











이건 뭘까?

<출입금지(샛길) 집중단속구간> 현수막이라는데


이거였다는데



552.4m봉,

국립건설연구소의 소삼각점(1963 - 44)이 자리 잡고 있지만,

볼거리나 잡목에 가려 별스레 보이는 건 없으며,

뒤처진 이들을 기다리다 오자마자 쉴틈도 없이 또 내빼버리는데,

처음으로 가는 길이라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지 아니한가?(09:10 - 09:16)





유인파평윤씨지묘(孺人坡平尹氏之墓),

돌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된 듯?(09:21)


무슨 표시일까?



얹힌바위(09:48)


















낡아빠진 비닐 뭉치,

꽤 오래 전에 누군가가 비박(Bivouac)을 한 듯?








 교통호(交通壕)인 듯,

참호(塹壕)와 참호 사이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파 놓은 구덩이로,

산허리를 따라 좌우로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썰렁개그의 1인자께선 빨치산들이 판 거라지만,

파는 걸 봤냐니까 입을 꾹!!!

교통호를 따라 오른쪽으로 나아가고(10:26)





교통호가 끝나자마자 계곡이 나올 줄이야?

송정마을에서 따끈따끈한 물이나마 어렵사리 구해 짊어지고 왔건만,

그 아까운 걸 죄다 버리고 왕시루봉 정기를 받은 물로 채울 수밖에는,

이럴 줄 알고 왔더라면 참 좋으련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10:31 - 10:37)


물 만난 여인네와 남정네,

마시고 씻고 하면서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나 뭐라나?











잣나무 조림지대,

멧돼지들의 놀이터나 다름없고


멧돼지 체력단련장






무덤,

제 발로 걸어와서 누웠을까?


무덤을 지나자마자 잣나무 조림지대 아래 습지가 나오는데,

 900m가 넘는 고지대에 습지가 있을 줄이야?

왕등재습지(973m)도 있더라만(10:46)











습지를 건너 조금 더 가자 뚜렷한 길은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데,

어쩌면 수 갈래 아니 수십 갈래의 희미한 길로 나뉘었는지도,

이제 느낌으로 봐선 왕시루봉 주등산로가 얼마 남지 않은 듯,

제대로 된 길은 보이지 않지만 어디로든 못 갈 정도는 아니기에,

곧장 치오르지 않고 마른 계곡을 건너자마자 치올라가고 





아니나다를까 떡하니 나타나는 왕시루봉 표지석,

요 바로 아랜 헬기장이 아니던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란 사슴이 아니라,

제자리를 잘못 잡는 바람에 가짜 왕시루봉이라며 괄시를 받는데,

구례군에서 어쩌다 여기에다 왕시루봉 정상석을 세웠을까?

헬기로 싣고 와 수월하게 가까운 곳에다 세운 게 아닐는지?

1212.0m란 것도 왕시루봉 정상과는 맞지도 않은데,

왕시루봉능선에서 봉애능선이 나뉘는 봉우리의 높이가 아닐까?

어쨌거나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선교사 유적지로 올라가기로,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는데(10:59 - 12:04)


















































고개 숙인 여인네,

다소곳해서 좋다나?

고개 숙인 남정네는 그게 아니지만




















선교사 유적지 갈림길,

명품 소나무가 길잡이 노릇을 하고(12:08)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

1920년 이질이나 말라리아 등으로 선교사 자녀 9명이 사망하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여름 기온이 서늘한 노고단을 적격지로 선정하여

미국 선교사들이 일제와 협의를 통해 노고단에 휴양시설을 마련한 것이 1925년,

하지만 노고단휴양소는 1940년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강제로 출국되면서

적산처리되어 1950년대 말까지 천막 휴양소를 유지하다가 

1962년 토지 소유주인 서울대의 허가를 얻어 왕시루봉으로 옮겼던 것, 

이후 10년 가까이 선교사 휴양기관으로 기능했으나,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외국인 선교사 수가 격감하면서 이용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지금은 인요한(印耀漢) 박사(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가 관리하고 있는 상태라는데,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각국의 고유 건축양식을 본떠 지은 목조주택과 토담집 12채가 있으며,

2013126일 시민들이 꼽은 <꼭 지켜야 할 자연· 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나완 두 번째 만남인 셈인가?(12:13 - 12:34)





















































































선교사 유적지 뒤로 해서 왕시루봉으로 올라가고






왕의 강 전망대,

며칠 동안이나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 때문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보이는 그대로로 만족할 수밖에는,

앙탈을 부린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도 아닌데,

눈만한 사진기는 없다던가?

그럭저럭 어느 정도 눈에는 들어오지만,

사진기로 담아낸 건 시원찮은 걸 어떡하랴?(12:39 - 12:48)


어슴푸레 들어오는 왕의 강이란 섬진강,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남도대교가 있건만,

겨우 어림짐작으로 가늠할 수밖에는


가까이 모셔도 나아지지 않고



봉애산능선 사자바위와 통천문 일대,

이따가 만나게 될 거고


사자바위,

여기서 봐선 영 아니지만


좀 더 가까이로



통천문 일대,

어쩌면 개대가리(견두, 犬頭) 같기도 하고
































* 2011년 3회 산사진 공모전에서 금상을 차지한 최정철 씨의 작품



아쉬움을 간직한 채 왕시루봉 정상을 향해



자연으로 돌아간 묵은 헬기장,

다 쓸모가 있어서 만들었으련만





1213.1m봉,

헬기장 바로 위 왕시루봉 표지석에 1212.0m로 되어 있는 봉우리로,

왕시루봉능선에서 봉애산능선이 나뉘는 곳이기도 한데,

정상부는 돌보는 이 없는 묵은 무덤이 차지하고 있으며,

 왕시루봉 정상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니,

결국은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셈인가?(12:59)


1213.1m봉 삼각점(하동 302)















그 모습을 드러내는 왕시루봉 정상부



진짜배기 왕시루봉 정상,

삼각점이 자리 잡은 1213.1m봉과는 400m 남짓 떨어져 있으며,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게 생겨 큰 시루를 엎어 놓은 것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2013년 가을엔가 대구마루금산악회에서 스테인리스(stainless steel)로 정상을 표시했으나,

2019년 1월 17일 국립공원공단으로 문패를 바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없애버렸는 걸,

2014년 3월 2일 왕시루봉을 산행하면서 선교사 유적지 창고에 처박혀 있는 걸 봤는데,

  비록 왕시루봉 일대가 비법정탐방로이긴 하지만,

애써 세운 걸 굳이 그럴 것까지야 있었을까?(13:07 - 13:17)



이게 뭡니까?
























다시 돌아온 1213.1m봉 삼거리,

묵은 무덤 20m 남짓 아래에서 봉애산능선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데,

작은홍골 갈림길인 통천문까진 그전에 간 적이 있어 안면이 있지만,

그 뒤로는 처음인데 산줄기를 잘 이어갈 수 있을는지?(13:24)








사자바위,

봉애능선에선 제일가는 전망대이기에,

여태까지 좀 고팠던 눈요기를 실컷 하고 가기로,

사자바위 이후는 봉애산에 가서야 조망이 열린다던가?(13:26 - 13:35)



봉애산으로 이어지는 가야 할 산줄기,

미세먼지란 놈이 훼방을 놓긴 왕의 강 전망대랑 다를 바 없다고나?


반야봉,

 엉덩이 두 쪽은 온데간데없고


반야봉과 명선봉을 잇는 지리 주릉,

그 앞엔 불무장등능선이 흘러내리고





촛대봉 뒤에선 천왕봉이 고갤 내밀지만,

눈에만 살짝 들어올 뿐이라 아쉽기 그지없고





황장산,

그 뒤엔 남부능선인 듯























돌아본 사자바위,

누군 강아지바위라 하더라만














통천문,

봉애산능선에선 최고의 볼거리라고나,


눈요기를 하면서 좀 머물다 갈 수밖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동지가 지난 지도 2달이 넘었으니,

알게 모르게 하루해가 엄청 길어지지 않았던가?(13:50 - 14:03)
































통천문을 뒤로하고 봉애산으로












명색이 지리산 자락이라고 한동안 산죽지대가 이어지기도 하고












거참,

요상하게도 꼬였는 걸


봉애산능선에서 산지밭골로 흘러내린 지능선이 나뉘는데,

봉애산능선과 봉애산으로 가자면 산허리를 돌아가야 하건만,

무심코 곧장 내려서는 지능선을 골라잡을 줄이야?

마치 뭣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14:42)


300m 정도 내려갔다던가,

봉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님을 알아차리건만,

잘못 내려왔으니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 보자,

 다시 올라가는 건 장난이 아니니까,

그냥 이대로 내려가자는 의견이 절대 우세,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데,

탄핵을 안 당하자면 일행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는,

이 또한 지리산 산신령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곤두박질치듯 쏟아지는 내리막으로 산지밭골 좌골에 무사히 안착(?),

골짝을 타거나 그 옆으로 해서 아래로 아래로


산지밭골 좌우골 합수지점 바로 위의 우골을 건너는데,

 한수천으로 흘러가는 산지밭골은 좌골 아닌 우골이 본류로 보이며,

어쩌다 있는 듯 없는 듯한 희미한 길이 이어지기도 하고(15:17)








풍도목(風倒木)이라는 건가?

천하의 회장님도 수그릴 수밖에는











누군가가 남긴 흔적,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낙엽이 심심찮게(?) 골탕을 먹이자,

때론 미끄러지기도 하고 나자빠지기도 하지만,

그나마 엎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나?








고로쇠 호스가 나타나는 걸,

이제 동네가 멀지 않았단 말씀인가?














암만,

빨리 벗어나야 하고 말고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접속,

송정마을로 내려가고


식겁하지 않았을까?















합수부로 흘러드는 산지밭골,

안한수내 주민들은 안한수내 좌골을 옥박골이라 하고,

우골인 나무골은 상류부에 절터가 있어 절골 또는 절터골이라 부른다는데,

안한수골 좌우골과 산지밭골이 만나 한수천을 이뤄 섬진강으로 간다던가?














한수천






사단법인대한노인회구례군지회 송정여성경로당,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내한마을(안한수내)이고








내한교(16:00)









송계정(松溪亭)



송정마을,

한수천(한수내)의 안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외한),

             새로 생긴 동네라 하여 새뜸(신촌),

소정리(원송) 등으로 칭하다 이를 통합하여 당초 때는 내한리라 불렀는데,

한수천 근처에 큰 나무 정자가 있어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송정리로 개칭하였다.


봉애산(烽愛山, 611.7m),

무덤이 주인이요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있다던데,

저길 갔어야 했건만














저 길을 따라 왔어야 했건만



자꾸만 따라다니며 약을 올리는 봉애산,

딴 데로 가지 말고 기다려라,

언젠간 반드시 갈 날이 있으리라!!!








8시간 05분 만에 다시 돌아온 송정마을 지리산 둘레길주차장,

어쩌다 엉뚱한 데로 빠지는 바람에 봉애산을 경유하진 못했지만,

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단 지리산 산신령이 장난(?)을 부렸는지도,

언젠가 또다시 들르란 음흉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나,

이랬거나 저랬거나 마치 봄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포근한 날,

멋들어진 지사모 회원들과 함께한 왕시루봉,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