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산행기

2019년 지사모 시산제 함양 금대산

큰집사람 2019. 2. 10. 16:45


* 날    짜 : 2019년 2월 10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금대암주차장 - 금대암 - 금대산 - 금대암주차장

* 산행인원 : 21명(앵경, 현지인, 거북이, 연하천, 바람소리, 나들이, 여인1, 요새비, 고남, 신난다,

                  고암, 왜그냐면, 갑짱, 쉬블링, 큰골, 구름, 금종, 담비, 덕영, 노력하는삶, 선함)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금대암주차장






















금대암(金臺庵)

전통사찰 제84호 (등록 1973.11.3)

이 사찰은 신라 태종 무열왕 3년(656)에

행호조사(行乎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로서 금대사(金臺寺)라고도 한다.
1950년 6.25 전란 때 소실된 뒤 금대암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

금대암은 신라 도선국사가 참배지로 인정했으며,

고려 보조국사 서산대사가 수도 성취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금대사3층석탑』과

문화재 자료인 금대암 동종(제268호), 금대암 신중탱화(제269호),

그리고 경상남도기념물 제212호인 금대암 전나무가 있다.

조선조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이 쓴 기행문(1489년 4월 16일)의 기록에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선생과 함께 산사를 찾으니

20여 명의 스님이 정진도량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뇌계 유호인(㵢溪 兪好仁) 선생의 시(詩) 중에

"잘있느냐 금대절아 송하문(松下門)이 옛날 같구나.

송풍(松風)에 맑은 꿈 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구려."

라는 시가 남겨져 있는 고찰이다.





함양 금대암 전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


전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한 늘 푸른 큰키나무(喬木, 교목)로,

대략 25m 내외까지 자란다.

재목이 곧아 건축 자재로 많이 쓰인다.

껍질은 잿빛을 띤 갈색에 작은 비늘이 있고,

잎은 납작한 바늘 모양이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녹갈색의 솔방울 같은 열매가 달린다.


이곳 전나무는 1403년(태종 3년)에

행호조사(行乎祖師)가 창건한 금대암의 입구에 서 있다.

나무의 나이는 대략 5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40m, 둘레가 2.92 m로,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 성종 때의 문인이었던 유호인(兪好仁, 1445 - 1494)은

이곳 금대암을 둘러보고 난 뒤 쓴 시(詩)에서

"잘 있느냐 금대암(金臺庵)아, 송하문(松下門)이 옛 같구나.

송풍(松風)에 맑은 꿈 깨어 잠꼬대를 하는도다." 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건데 금대암 주위에는 조선 중기에도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도재와 법화산



왕산과 필봉산 뒤로 보이는 황매산





















금대암 - 금대산 - 금대암주차장 갈림길



금대산






삼정산 뒤로 보이는 반야봉과 만복대



바래봉과 덕두봉 및 금대산과 가까운 백운산



바래봉과 덕두봉



삼정산과 만복대



만복대와 큰고리봉을 비롯한 서북능선



오도재와 법화산



왕산과 필봉산 뒤로 보이는 황매산



오도재를 사이에 둔 삼봉산과 법화산






삼정산 뒤로 살짝 드러나는 반야봉









삼봉산 아래 자리 잡은 창원마을






금대산과는 이웃사촌인 백운산






삼봉산

























































안국사









뒤풀이는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영남민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