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17년 12월 20일(수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원효사주차장 - 목교 - 서석대 - 입석대 - 장불재 - 중봉 - 동화사터 - 원효사주차장
* 산행시간 : 5시간 17분(운행시간 3시간 34분 + 휴식시간 1시간 43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3명(진주비경마운틴 회원들과)
* 산행일정
10:30 원효사주차장
10:35 원효분소(370m)
10:49 - 10:52 금곡동제철유적지
10:55 주검동 유적
11:06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
11:52 - 11:55 목교(958m)
12:05 - 12:10 바위 전망대
12:13 - 12:20 서석대 전망대
12:25 - 12:38 서석대(1100m)
12:45 승천암
12:47 - 13:36 점심
13:40 - 13:48 입석대(1017m)
13:55 - 13:58 장불재(919m)
14:08 중봉복원지(911m)
14:17 - 14:20 무등산 중봉(915m)
14:35 동화사터 상단
14:45 - 14:51 동화사터 삼거리
14:54 - 14:57 동화사터 쉼터
15:42 원효분소(370m)
15:47 원효사주차장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주차장,
원효사(元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며,
금곡동제철유적지와 목교로 해서 서석대 정상으로 올라,
장불재와 중봉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는 원점산행에 나서는데,
나로선 2013년 1월 19일에 이어 4년 11개월 만에 다시 찾은 무등산(無等山),
그때랑 마찬가지로 무등산 정상부인 인왕봉(1140m), 지왕봉(1180m),
천왕봉(1187m)은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인걸(人傑)은 변해도 산천은 의구(依舊)하다 했거늘,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날 맞을는지?(10:30)
그전엔 원효분소에서 곧장 무등산 옛길로 올라갔지만,
상가지구를 지나 원효계곡을 따라가다 금곡동 제철유적지에서 만나기로,
석불암 5.8km · 규봉암 5.5km · 꼬막재 2.0km · 장불재 6.4km ·
서석대 4.0km · 토끼등 3.2km 를 가리키고(10:35, 370m)
풍암제와 제철유적지를 잇는 무등산 의병길인 듯,
제철유적지에서 무등산 옛길과 만나게 되고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원효계곡,
무등산의 정상부에서 발원한 물이 산의 북동쪽으로 약 9km 정도 흘러
충효동에 이르는 골짜기가 원효계곡입니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원효계곡의 물줄기와 창계천의 물줄기가 만나 광주호를 이루게 됩니다.
원효계곡을 따라 우거진 녹음과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광주시민의 땀을 식힐 수 있는 휴식처로 유명합니다.
무등산 의병길과 옛길이 만나는 금곡동제철유적지,
원효분소와 서석대로 이어지는 옛길 2구간을 따라 올라가기로,
서석대 3.3km · 목교 2.8km · 원효분소 0.7km · 풍암제 3.5km를 가리키고(10:49 - 10:52)
금곡동제철유적(金谷洞製鐵遺蹟,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1호).
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부른다.
1992년 발굴조사 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가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촉, 추 모양 철기, 못, 찌꺼기 등이 발견되었다.
철의 원료는 가까운 계곡에 있는사철(砂鐵)이었고,
무등산의 풍부한 산림을 연료로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등산과 김덕령 장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덕령(1567년 - 1596년) 장군은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충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용기가 남달랐던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활동에 참가해 여러 차례 왜군을 무찔렀으나,
선조 29년(1596년) 이몽학의 반란을 토벌하다 무고로 투옥되어 옥사하였습니다.
그는 민초들의 가슴에 구국의 영웅으로 새겨져 있으며
이와 관련된 이야기, 유적지 등이 무등산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주검동 유적(鑄劍洞 遺蹟).
여기는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이곳 원효사 계곡 부근에서
칼과 창을 만든 곳으로 지금도 주검동(鑄劍洞)이라 부르고 있으며,
의병활동과 거병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무술을 연마하여 수련했던 골짜기이다.
이 바위에는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萬曆癸巳 義兵大將 金忠將公 鑄劍洞)
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만력(萬曆)은 1573년부터 16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이고,
계사(癸巳)란 선조 26년(1593년)으로 의병으로 활약한 시기를 뜻하며,
충장(忠將)이란 시호(諡號)를 쓴 것으로 보아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새긴 것으로 보인다.(10:55)
무등 10 - 17지점,
서석대 3.0km · 원효분소 1.0km를 가리키고(10:57, 512m)
자연쉼터(11:00)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
이곳은 옛날부터 나무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산중길로 이용되어 왔으나,
1966년대에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던 길로서,
1980년대 이후는 사용하지 않고 있는 길입니다.
그러다 무등산이 국립공원 승격과 더불어 탐방객이 더욱 늘어나게 되면서
무등산 옛길로 복원하게 된 것입니다.(11:06)
무등 10 - 18지점,
서석대 2.5km · 원효분소 1.5km를 가리키고(11:08, 594m)
무등 10 - 19지점,
서석대 2.0km · 원효분소 2.0km를 가리키고(11:17, 656m)
원효계곡 시원지(元曉溪谷 始原地),
원효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라던가?(11:21)
무등 10 - 20지점,
서석대 1.5km · 원효분소 2.5km를 가리키고(11:31, 770m)
나무다리,
서석대 1.2km · 목교 0.7km · 원효분소 2.8km · 제철유적지 2.1km를 가리키고(11:38)
무등 10 - 21지점,
서석대 1.0km · 원효분소 3.0km를 가리키고(11:40, 846m)
무등 10 - 22지점인 목교,
입석대 1.0km · 서석대 0.5km · 누에봉 1.6km · 원효분소 3.5km ·
중머리재 1.6km · 중봉 0.6km를 가리키고(11:52 - 11:55, 958m)
서석대가 보이고
바위 전망대,
조망이 제대로 열리는 첫 번째 전망대가 아니던가?(12:05 - 12:10)
중봉과 광주 시내가 한눈에 쏙 들어오고
눈 아랜 광주호가 내려다보이고
서석대가 바로 코앞이고
갈 수 없는 인왕봉이 내려다보며 아쉬워하고
서석대 전망대,
원효분소 6.8km(3.8km?) · 서석대 0.2km · 입석대 0.7km를 가리키고(12:13 - 12:20)
서석대(瑞石臺),
서석대(1100m)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일부로,
입석대보다 풍화작용을 적게 받아 한 면이 1m 미만인 돌기둥들이
약 50여m에 걸쳐서 동서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 돌병풍같은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립니다.
서석(瑞石)은 선돌의 한자식 표현(음 차용)으로
고대 선돌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었습니다.
입석대, 서석대로 대표되는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2005년 12월16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무등산 서석대(無等山 瑞石臺),
군사시설로 인왕봉(1140m), 지왕봉(1180m), 천왕봉(1187m)은 갈 수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무등산은 서석대가 정상 노릇을 하는 셈인데,
무등산 정상을 다시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줄 날이 그 언제일지?
언제가 되든 꼭 들르리라 마음을 다지며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는,
중봉 1.2km · 원효분소 4.0km · 입석대 0.5km를 가리키고(12:25 - 12:38, 1100m)
무등산 정상,
무등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왕봉(1187m)에 올라서면 광주뿐 아니라
담양, 영암, 나주, 전북 순창 등 호남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며
맑은 날엔 지리산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지왕봉은 꼭대기에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고
담력을 길렀다는 뜀바위가 있습니다.
인왕봉은 세 봉우리 중 가장 낮으며 서석대 쪽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를 품고 있는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무등산과 광주가 유일합니다.
무등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짜기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 무등산이 광주를 품은 듯 보인다 하여
광주 시민들은 무등산을 어머니산이라고 부릅니다.
서석대(瑞石臺),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의 남서쪽에 병풍처럼 서 있는 서석대는
해발 1,050 ~ 1,100m에 위치해 있습니다.
87 ~ 85백만 년 전 화산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석영안산암질응회암이 1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를 거쳐 지표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긴 시간 비바람을 맞으며
현재의 수려한 주상절리와 주변의 너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무등산이 예로부터 서석산이라 불린 것은 서석대의 이러한 빼어난 경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무등산이 광주를 품 듯 시가지의 전경과 멀리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고,
해질녘 서석대에 비치는 노을이 장관을 이룹니다.
* 응회암 : 화산재가 쌓이고 눌려 굳어진 암석
* 주상절리 : 마그마가 냉각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여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돌
승천암에서 바라본 백마능선,
백마능선은 해발 800m ~ 900m 사이의 2.5km 대규모 능선으로,
백마의 잔등모양 지형 위 억새의 모습이 백마의 갈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이 길은 호남정맥 길로 큰 경사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장불재를 시작으로 능선을 따라 낙타봉을 거쳐 안양산 정상으로 이어지며,
봄에는 철쭉 군락이 능선구간을 빨갛게 물들이고,
가을철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백마능선
승천암(昇天岩).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12:45)
이제 장불재가 얼마 남지 않앗고
쉴 곳이 필요하단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한두 가지씩 꺼내놓은 반찬이 모이니 진수성찬(珍羞盛饌)이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따로없는 푸짐한 오찬(午餐)인 것을,
곁들이는 소주맛은 또 어떻고,
이러려고 무등산으로 오지 않았던가?(12:47 - 13:36)
입석대(立石臺),
서석대 0.5km · 장불재 0.4km를 가리키고(13:40 - 13:48, 1017m)
입석대(立石臺)
입석대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일부로,
한 면이 1 ~ 2m인 5 ~ 6각 또는 7 ~ 8각의 돌기둥 30여 개가
수직으로 솟아 40여m 동서로 줄지어 서 있습니다.
입석(立石)은 선돌이라는 뜻으로
고대 선돌 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었습니다.
입석대, 서석대로 대표되는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2005년 12월 16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천연기념물 제465호),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서석대, 입석대, 규봉이 대표적이다.
입석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겅은
이러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이다.
서 있는 바위나 너덜겅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이므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장불재,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과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사이의 평평한 고개이며,
여러 갈래로 길이 만나고 또 헤어지는 곳이기도 한데,
원효분소 6.4km · 중머리재 1.5km · 만연산 3.4km · 안양산 3.1km ·
증심사주차장 5.1km · 증심사 3.6km · 토끼등 3.1km를 가리키고(13:55 - 13:58, 919m)
돌아본 장불재
무등 01 - 08 - 01지점,
버스정류장 6.3km · 장불재 0.3km를 가리키고(13:55 - 13:58, 919m)
임도 삼거리에서 중봉으로,
중봉 0.7km · 서석대 0.8km · 장불재 0.5km를 가리키고(14:04)
중봉이 바로 앞에 보이고
무등 01 - 09지점인 중봉복원지,
중머리재 1.4km · 중봉 0.4km · 장불재 0.7km · 누에봉 1.8km · 입석대 1.2km ·
서석대 0.7km · 버스정류장 5.9km를 가리키고(14:08, 911m)
무등산 중봉,
서석대 1.1km · 중머리재 1.0km · 동화사터 1.5km를 가리키며,
원점회귀를 위해 중머리재가 아닌 동화사터로 내려가고(14:17 - 14:20, 915m)
돌아본 서석대와 중봉
동화사터 상단,
동화사터 0.6km · 장불재 1.9km · 중머리재 1.6km ·
서석대 2.0km · 중봉 0.9km를 가리키고(14:35, 894m)
동화사터 삼거리,
증심교 2.4km · 동화사터 20m · 중봉 1.5km를 가리키고(14:45 - 14:52)
동화사터 쉼터,
장불재 2.5km · 서석대 2.6km ·
토끼등 1.0km · 늦재 1.5km를 가리키고(14:54 - 14:57, 824m)
삼거리 갈림길,
어디로 가든 전망대 바로 아래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늦재 1.1km로는 전망대를 거치지 않는 쭉 산길이 이어지며,
늦재 1.1km · 서석대 3.0km · 중봉 1.9km를 가리키고(15:06)
원효분소와 무등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서서 전망대로,
장불재 3.2km · 동화사터 0.5km를 가리키고(15:11)
전망대
전망대를 지나자마자 임도에서 벗어나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임도는 이따가 늦재쉼터 바로 위에서 다시 만나 건너가게 되며,
장불재 3.3km · 늦재 0.8km · 원효분소 3.1km를 가리키고(15:14)
아까 이정표 삼거리에서 헤어진 산길과 다시 만나자,
서석대 3.1km · 늦재 0.8km · 원효분소 3.1km를 가리키고(15:16)
아까 전망대를 지나자마자 헤어진 임도와 다시 만나,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을 따라 원효분소로 내려가는데,
서석대 5.7km · 장불재 4.8km · 중머리재 3.0km ·
동화사터 1.5km · 늦재 0.2km를 가리키고(15:29)
원효사지구 원주민촌 식생복원,
이곳은 과거 원주민촌으로 공원 상류 계곡의 오염 방지 및 노후 시설로 인한 경관 개선을 위해
1996년부터 2000년도까지 약 5년에 걸쳐 건물 23동 및 지장물 436건을 철거하였으며,
군락식재기법을 적용하여 주변 자연식생구조를 모형으로
졸참나무, 층층나무, 산벚나무 등을 식재하여 식생복원을 실시한 지역이다.
원효분소 위 무등산 옛길 들머리,
서석대 3.9km · 목교 3.4km · 제철유적지 0.6km를 가리키고
원효분소(15:42)
5시간 17분 만에 다시 돌아온 원효사주차장,
오랜만에 찾은 무등산이었지만 낯설지 않아 좋았고,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속에서 널널하게 즐겼다고나 할까,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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