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서산대와 무착대를 찾아서 피아골로

큰집사람 2010. 10. 5. 19:39

* 날    짜 : 2010년 10월 3일(일요일)

* 날    씨 : 비가 오거나 구름 조금

* 산 행 지 : 피아골-서산대-임걸령-삼도봉-불무장등-피아골

* 산행거리 : 16km 안팎

* 산행시간 : 9시간 40분(운행시간 6시간 29분 + 휴식시간 3시간 11분)

* 산행속도 : 약간 빠른 걸음

* 산행인원 : 5명(순옥언니, 적석, 산으로, 강동섭, 조광래)

 

 

 

 

 

진주 솔산악회의 일요탐구산행에 5명이 일행이 되어, 같은 차에 타고 지리산 피아골로 가기 위해

진주공설운동장을 출발합니다.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 속에 새벽까지 비가 왔으나, 구름 사이로 하늘이 빠끔히 열려 참 다행이란

생각으로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서진주요금소에서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조금 달리다, 남강을 건너서자마자 얼마 안 가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아직은 아침나절이라 그런지 우릴 위해 비워둔 듯 확 뚫려, 맘껏 속도를 내며 고속도로를

내달립니다.

하지만 하동으로 막 들어서려는 찰나, 하늘이 어두워지며 차창에 빗방울이 부딪칩니다.

폭우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지리산이 가까운 지형적인 영향 탓으로 돌리며 그치겠지 하지만 좀체 그치진 않으며,

좀 가늘어지긴 했으나 연곡사를 지나서 직전마을 주차장에 닿을 때까지도 멈추질 않습니다.

행정구역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리 직전마을이며, 마을 맨 끝집인

산아래첫집 아래 계곡 옆에 승용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차단시설이 되어 있어 더 이상은 차가 갈 수 없으며, 진주를 떠난 지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산행채비를 하며 비옷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며 그냥 가랍니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산아래첫집을 지나며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갑니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아닌 잘게 부순 자갈길이어서 기분도 좋고 다행스런 생각인데,

그러고 보니 피아골을 찾은 지도 몇 년 된 것 같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 2분쯤 되었을까, 오른쪽으로 제법 뚜렷한 능선길이 보입니다.

나중에 내려올 때 이용할지도 모른다며, 산행대장격인 적석이 슬쩍 귀띔을 합니다.

모르긴 해도 무착대를 이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마에 땀이 나며 몸이 풀릴 즈음, 피아골 탐방안내소와 표고막터(496m)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다다릅니다.

직전마을 1.0km·피아골대피소 3.0km·임걸령 5.5km라 되어 있으며.

불그스럼한 표고막터교를 지나자마자 예전 표고버섯을 재배했다는 표고막터가 있다지만,

그리로 가지 않고 바로 가는 옛길을 따릅니다.

두 길은 삼홍교에서 만납니다.

고즈넉한 옛길을 따라 5분쯤 가니 연곡천으로 흘러드는 지계곡을 건너고,

다시 10분쯤 가니 삼홍교(三紅橋, 600m)에 다다르며 정규 등산로에 합류합니다.

단풍이 물들은 산이 붉고,(山紅) 그게 비친 물도 붉으며,(水紅) 그걸 보는 사람도 붉어(人紅)

삼홍(三紅)이라 한다는데, 좀 이른 탓에 붉게 칠한 삼홍교와 그 위에 흩어진 낙엽과 술독에

빠진 내 얼굴이 묘하게 어우러져 삼홍을 이룹니다.

직전마을 2.5km·피아골대피소 1.5km·구계포계곡 0.5km라는 이정표가 있어,

직전마을에서 피아골대피소까지의 거리가 4.0km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가 꽤 왔는지, 물불은 계곡이 제법 볼 만합니다.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서 10분을 더 오르니 붉은 출렁다리인 구계포교를 건너고,

곧이어 구계포계곡 이정표(700m, 피아골대피소 1.0km·삼홍소 0.5km)가 있는 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섭니다.

하얗게 부서지며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구계포폭포의 아름다움에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한 번 준 눈길을 한참동안이나, 차마 거두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예술 작품입니다.

간식을 먹으며 기력을 보충하고선, 또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비는 그쳤지만, 대신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어제 속이 더부룩한 게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괜찮긴 해도

아마도 그 후유증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좀 조심한다고 해도 남보다 적게 마시는 편은 아니니, 오랜 세월 술에 찌든 몸이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젠 정신을 좀 차려야겠습니다.

지금도 늦긴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제발 좀!!!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쭉 함께 가던 등산로가 계곡과는 멀어지며 왼쪽 사면으로 꺾어지는 데가

나오는데, 우린 이를 못 본 체 하고 계곡 쪽 옛길을 그냥 따릅니다.

계곡 아래론 꽤나 그럴싸한 폭포가 힘차게 물줄기를 뿜으며 날 좀 보라지만,

뭐가 바쁜지 모두 안 본 척하고 그냥 지나쳐 갑니다.

너무 처질까 싶어 내려가진 못하고, 나무 사이로 급하게 그 모습을 담고선 일행을 뒤따릅니다.

 

2분 남짓 가니, 조금 전 헤어졌던 길과 다시 만납니다.

철계단이 길게 이어지는 들머리에 말없이 서 있는, 위가 떨어져 나간 세 개의 큰 가지와 밑둥치만

남은 아주 큰 고사목이 있는 곳입니다.

피아골대피소 바로 밑에 있는 합수지점의 그럴싸한 폭포가 눈길을 끄는데,

다른 일행은 모두 대피소로 올라가고 나만 홀로 폭포로 가봅니다.

대피소 쪽 계곡이 아닌 용수골 쪽에다 발을 걸친 폭포는, 별로 높진 않으나 제법 넓게 퍼지며

떨어지는 물줄기의 위용은 꽤나 그럴듯해 보입니다.

널따란 물웅덩이까지 갖춰 더욱 그러합니다.

다시 돌아와 신선교를 지나며 피아골대피소(789m)에 다다릅니다.

37년간이나 지리산의 산장을 돌보며 피아골대피소의 대명사로 불리던, 지리산 호랑이 털보 함태식

(83살) 영감이 2009년 봄 자리를 비운 이후, 지금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답니다.

아직은 단풍철이 아니라 그런지 별로 붐비진 않는데, 아침까지 비가 와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대피소 오른쪽으로 피아골 삼거리와 임걸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으며, 이정표엔 직전마을 4.0km·

임걸령 2km라 씌어져 있습니다.

잠시 머무르며 물맛도 보고 서산대로 가는 길을 확인하는데, 샘터 뒤 계곡 옆으로 능선으로

올라붙는 길이 보입니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것 없이 재빠르게 들어섭니다.

한참 동안 상당한 기울기의 가풀막이 이어집니다.

산죽이 더러 있긴 해도 진행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나, 모두들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다행히 난 오르막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게 그들의

뒤를 따릅니다.

제법 뚜렷한 흙길이기에, 오히려 오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30분 정도 올랐을까 작은 바위를 사이에 두고 Y자로 길이 갈라지는데, 시계에 달린 고도계를

보니 1080m를 가리킵니다.

왼쪽이 서산대로 가는 길이요, 오른쪽은 돼지평전 부근의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너덜지대를 지나 5분쯤 가니, 서산대(西山臺)가 기다리다 버선발로

우릴 반깁니다. 

처음 대하는 서산대!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수양한 곳이라고 하며, 지리산 10대(문수대,

우번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와 반야봉

7대(문수대, 묘향대, 종석대, 만복대, 금강대, 무착대, 서산대)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뒤쪽의 높은 바위를 병풍 삼아 빙 둘러 돌담을 쳤으며, 예전엔 암자인지 기도터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무슨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이를 철거하면서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훌쩍 자란 수목 속에 널브러진 모습은 흉물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쭈그러진 냄비, 찢어진 천막 조각, 내려앉은 화장실 등등......

서산대 앞엔 또 다른 전망바위가 있어 그 위에 오르니 조망이 열리는데,

좌우로 불무장등 능선과 왕시루봉 능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무장등 쪽으로 보이는 몇 개의 바위 중에 무착대가 있는 것 같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보이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장담을 할 순 없습니다.

좀 이따 우리가 가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피아골대피소 부근과 그 아래 피아골 일대도 잘 보입니다.

잡목 속엔 오미자와 초피나무 열매도 있지만, 오미자만 몇 개 따서 맛을 볼 뿐입니다.

 

좀 이르긴 해도 서산대 앞 평평한 빈터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오리고기와 돼지고기 주물럭에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등, 오늘따라 참 다양한 식단입니다.

강 모 씨의 오래된 매실주와 내가 갖고 간 막걸리를 반주(飯酒) 삼은 서산대에서의

오찬이란, 어디에도 빠질 게 없이 훌륭하며 원기를 불어 넣기에 충분합니다.

배는 무거워졌지만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짊어지고선, 서산대와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언제 또 올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이별입니다.

온 길로 되돌아나가 아까의 갈림길에서, 이번엔 오른쪽 길을 따릅니다.

좀 오르니 하늘이 열리며 능선을 만나는데, 주능선인가 했더니 주능선은 아니고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입니다.

전망바위와 멋진 적송이 어우러진 곳인데, 서쪽 앞을 막아선 봉우리는 왕실봉

(왕시루봉, 1263m) 같아 보입니다.

북동쪽으로 열린 길을 따라 오릅니다.

잡목과 산죽이 방해를 하긴 해도 못 갈 정도는 아니며, 앞장을 서다 어느 순간

속도를 내며 일행을 떨쳐 냅니다.

한동안만이라도 홀로 가고픈 몹쓸병이 도진 셈입니다.

때마침 오르막이라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힘대로 치오릅니다.

거치적거리는 잡목은 뒷사람을 위해 정리를 하면서, 맘껏 가속기를 밟고 오르니

사람소리가 들립니다.

주능선에 거의 다다랐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윽고 돼지평전의 주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추락주의(falling) 경고판이 있는

바위봉우리(1382m)입니다.

노고단에서 가면 돼지평전 끝봉이며, 임걸령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헬기장이

있습니다.

오른 곳으론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바람에 팔랑입니다.

4분 남짓 기다리니 일행이 올라와 합류하며, 잠시 숨을 고르며 목을 축입니다.

헬기장(노고단고개 2.1km·피아골삼거리 0.7km·반야봉 3.4km)을 거쳐

조금 더 가 피아골대피소로 이어지는 피아골 삼거리(1336m, 피아골 대피소 2.0km·

노고단고개 2.8km·천왕봉 22.7km)를 지나고, 비교적 좋은 길을 따라 임걸령(1320m)에

닿습니다.

샘터엔 물이 철철 나오는데, 물맛 또한 예나 다름없이 참 좋습니다.

갈 길이 바빠 오래 머물진 못하고, 또 다시 삼도봉 쪽으로 떠납니다.

한참 동안 가풀막이 이어지다 좀 평평해지는가 싶더니, 반야봉 갈림길이 있는

노루목(1498m, 반야봉 1.0km·노고단고개 4.5km· 천왕봉 21.0km)에 다다릅니다.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목을 축입니다.

아가씨 하나가 쉬고 있어 물어 보니, 2박 3일 예정으로 홀로 지리산 종주를 하는

중이랍니다.

요샌 지리산 종주도 대부분 당일치기로 하는 편이지만, 참 느긋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됩니다.

빠른 것도 느긋한 것도, 나름대로의 장단점은 있으리란 생각입니다.

 

반야봉과 묘향대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소금장수 무덤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누군가 말끔히 벌초를 해놔 보기가 좋습니다.

작년 9월 말 대구 가야, 인천 시골연가와 셋이서 지리산 태극종주를 하면서,

무덤가에서 잠시 쉬어가려다 그냥 지나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온갖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성공한 지리산 태극종주!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인간 승리의 하나란 생각입니다.

지난 9월 27일 1주년을 맞아 둘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우의(友誼)를 되새겼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용수골과 불무장등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갈림길을 지나, 잠시 뒤에 삼도봉

(三道峰, 1499m)으로 올라섭니다.

예전 이름은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이라 하였으나, 경남과 전남 또 전북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지금은 삼도봉으로 굳어진 채 불리고 있습니다.

정상석 대신 3도를 새긴 삼각형의 동판에다 1550m라고 새겼으나,

정작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1499m로 나와 있습니다.

이정표엔 노고단 5.5km·천왕봉 20.0km라 되어 있으며,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으며

좀 머물다 삼도봉을 뒤로 합니다.

3.4km를 함께 했던 지리산 주능선과 작별하고, 불무장등 능선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로선 처음 맛보는 길인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갈 만합니다.

6분을 내려서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아까 소금장수 무덤을

지나자 주능선을 벗어나는 희미한 길입니다.

삼도봉을 거치지 않는 지름길인 셈입니다.

 

여기서 4분을 더 가니 오른쪽 용수골로 이어지는 갈림길 안부가 나오고,

곧이어 바로 위 크지 않은 전망바위에 올라섭니다.

다른 건 별로 보이는 게 없으나, 깎아지른 바위가 떠받치는 삼도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바위와 맞닿아 빨갛게 물든 단풍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죽도 있지만 진행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며, 비교적 부드럽고 순한 흙길이 쭉

이어집니다.

별스레 오르내림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용수골 갈림길 안부에서 20분 정도 나아가니, 불무장등(不無長嶝, 1441m) 바로 아래의

불무장등과 무착대 갈림길(Y자)이 있는 안부에 다다릅니다.

왼쪽은 불무장등으로 가는 주능선이요, 오른쪽은 무착대로 가는 지능선입니다.

작은 돌이 박혀 있는 평평한 빈터인지라, 불무장등 능선을 오가는 산꾼들이 많이

쉬어가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잠시 쉬기로 하는데, 좀 어두워진다 싶더니 난데없이 비가 쏟아집니다.

워낙 숲이 짙어 별로 맞지는 않으나 걱정이 되긴 하는데, 한 5분 정도 오더니

거짓말처럼 뚝 그칩니다.

지형적인 영향 탓으로 한 줄기 한 것 같으며, 천만다행(千萬多幸)이란 생각입니다.

한숨을 돌리며, 오른쪽의 무착대 가는 길을 따릅니다.

7분 남짓 가니 양쪽의 제법 큰 바위 사이로 길이 난 바위협로가 나오는데,

오른쪽의 더 큰 바위에다 뿌리를 박은 소나무가 참으로 신기해 보입니다.

언제 그곳에다 보금자리를 틀었는지는 몰라도 꽤 큰 편이며, 바위틈에 낀 소나무가

죽을지 바위가 벌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으며,

어쩌면 지금처럼 사이좋게 오래도록 공존공생(共存共生)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산죽이 더러 기승을 부리지만, 우리가 가는 길을 막진 못합니다.

 

바위협로에서 6분을 더 가 좀 평평한 안부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보이고 표지기도 달려 있습니다.

고도계를 보니 1330m 정도 되는데, 능선으로 오르는 더 뚜렷한 길을 버리고 가이드를

따라 들어갑니다.

능선을 따라 그대로 올라 1342m봉에서 내려서야 하는 걸, 좀 일찍 방향을 꺾어버린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임은 아직은 모르고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지만, 그 땐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뒤입니다.

처음 가는 덴 미리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가는 편인데, 이번 산행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이드만 믿고 그냥 따라 나섰습니다.

희미한 길이 끊어지지는 않고 이어지며 지능선으로 올라붙더니, 제법 뚜렷해지며

길가의 나무에다 낡은 솥을 올려둔 곳에 다다릅니다.

무착대 산행기의 사진에서 솥을 본 것 같다는 사람까지 두어 명 나옵니다.

맞는 줄 알고 좀 더 내려가지만, 고대하던 무착대는 끝내 나오질 않아 우릴

실망시킵니다.

아니 잘못된 선택인데, 나올 턱이 없습니다.

그때서야 안부에서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자는데,

한사코 내가 반대하자 그대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오후 4시나 되었으니 해가 지기까지 겨우 두 시간 남짓 남았는데,

다시 올랐다 가기엔 이미 너무 늦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길을 간다는 건, 어쨌거나 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무착대는 다음의 숙제로 남기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그냥 내려갑니다.

솥 있는 데서 25분 정도를 내려가니, 그나마 있던 희미한 길은 산죽 속으로 빨려들며

슬며시 없어져 버립니다.

흩어져 길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길은 없습니다.

이럴 땐 산죽이 있는 능선보다는 아무래도 계곡이 편한 법이기에, 계곡 있는 데를

찾으러 내려갑니다.

무슨 뼈인지는 몰라도, 큰 뼈가 더러 나뒹굽니다.

이런 곳에 웬 뼈가?

보아하니 짐승 뼈 같은데 제법 큰 동물 같고, 한두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의 것으로

여겨집니다.

동물의 공동묘지라고 함이 맞을 것 같습니다.

동물이라고 죽지 않을 순 없고 아무데서나 죽을 순 없기에, 여기 와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저 그렇게 짐작을 해봅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너덜지대가 나오고, 곧이어 고로쇠를 채취하는 호스가

보입니다.

사람이 다닌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좋으며, 너덜을 타고 호스를 따라 내려갑니다.

너덜은 투박하긴 해도 발판이 되어 주며, 우릴 아래로 또 아래로 이끌어 줍니다.

산죽 속으로 길이 사라진지 30분 만에, 물이 졸졸 흐르는 제법 큰 비스듬한

이끼바위에 다다릅니다.

한참 동안 구경도 못했던 물을 너덜지대에서 보니 느낌이 새로워,

부근에서 마지막 간식을 먹으며 기력을 보충합니다.

 

어둡기 전에 내려가기엔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서둘러 배를 채우고선

또 너덜을 타고 내려갑니다.

가도 가도 너덜은 끝없이 이어지며 좀체 물러나질 않더니, 피아골 주계곡에 합류할

즈음인 맨 끝에 가서야 물이 조금 흐릅니다.

계곡 이름은 뭔지 모르지만, 완전히 마른 계곡인 셈입니다.

바로 위에 폭포가 있는 곳에서 주계곡에 합류하며, 폭포 바로 밑에서

주계곡을 건넙니다.

오를 때 봤던 폭포인지라 안면이 있습니다.

비록 큰 폭포는 아니지만, 바위를 타고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그런대로 볼 만하단 생각입니다.

폭포 옆 피아골 정규 등산로로 올라서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이젠 좀 늦어도 되겠단 생각이 들며, 그만 마음이 놓인 것입니다.

그래도 모두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갑니다.

구계포교를 건너자 지계곡을 만나는데, 무착대를 제대로 타면 그리로 나올 것이라고

산으로가 말하지만, 맞을 것도 같고 그를 것도 같아 보입니다.

삼홍교를 건넙니다.

아까 옛길로 올라갔으니, 내려갈 땐 정규 등산로를 따르기로 한 겁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길이긴 해도 정비를 잘 해놔 갈 만은 한데, 암만해도 옛길 같은

정겨움과 운치는 덜한 것 같습니다.

표고막터교가 가까울 즈음, 괜찮은 작은 폭포를 또 하나 만납니다.

모두 그냥 지나치지만, 인정 많은 나까지 그럴 순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기어이 그 모습을 담아 옵니다.

비록 이름 없는 작은 폭포지만, 높이나 수량이나 모습을 봐도 그럴만한 폭포는

흔치 않을 겁니다.

 

예전 표고버섯을 재배한 곳이라는 표고막터를 지납니다.

그렇게 넓지 않은 평평한 빈터가 있으며, 피아골을 아시나요? 란 안내판도 한쪽에

있습니다.

거기에 의하면 예전 연곡사의 스님들이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피(기장)를

재배하여, 배고픔을 달랬다고 하여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해서 피아골로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마을 이름을 기장 직(稷) 밭 전(田)를 써서

직전(稷田)마을이라 한다고 합니다.

표고막터교를 건너서 작은 자갈을 밟으며, 마지막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서서히 어둠이 몰려드는지, 산골엔 벌써 어둑어둑한 느낌입니다.

마침내 직전마을 주차장에 다다르며, 오늘의 산행일정을 그만 접습니다.

가까운 계곡에서 알탕을 하며 땀과 피로를 씻어내는데, 물이 차갑긴 해도 1주일

앞의 대원사 계곡보다는 덜합니다.

어쨌거나 알탕을 즐기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년 여름까지 기다리자면 안달이 나긴 하겠지만, 자연이 하는 걸 어째볼 방도는

없는 일입니다.

오락가락 하긴 했어도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 속에, 그 정도면 축복 받은 산행이란 생각으로

차에 오릅니다.

무착대를 찾지 못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 그리곤 떠납니다.

울긋불긋 유등축제가 열리고 있는 내 사는 곳 진주로!

 

 

 

* 산행일정

08:44          직전마을 주차장

08:58 - 09:00  표고막터교

09:15 - 09:18  삼홍교

09:28 - 09:39  구계포계곡

09:51          옛길 갈림길 폭포

09:59 - 10:00  합수지점 폭포

10:02 - 10:13  피아골대피소

10:43          서산대 갈림길

10:48 - 12:30  서산대

12:35          서산대 갈림길

12:45 - 12:47  적송 바위전망대

13:14 - 13:23  돼지평전봉(1382m)

13:30 - 13:35  헬기장

13:44          피아골 삼거리

13:51 - 13:55  임걸령

14:18 - 14:21  노루목

14:36 - 14:46  삼도봉

14:52          소금장수 무덤 갈림길

14:56          용수골 갈림길 안부

14:57 - 15:00  용수골 갈림길 안부 위 전망바위

15:19 - 15:27  불무장등 - 무착대 갈림길 안부 쉼터

15:34          바위협로

15:40          안부 능선 오름길에서 오른쪽으로

15:50 - 15:55  능선 나무 위 솥

16:20          산죽 속으로 길은 사라지고

16:50 - 17:00  이끼바위

17:30 - 17:32  피아골 주계곡 합류(폭포)

17:42          구계포교

17:52          삼홍교

18:04          표고막터교 위 작은 폭포

18:11          표고막터교

18:24          직전마을 주차장

 

 

 

 

 

 

직전마을 피아골 입구 

 

 피아골 탐방지원센터

 

 표고막터 이정표

 

표고막터교 

 

표고막터교 위 

 

삼홍소 이정표 

 

 삼홍교(1)

 

삼홍교 위  

 

삼홍교(2) 

 

구계포교 위  

 

구계포교 

 

구계포계곡 이정표

 

구계포폭포(1) 

 

구계포폭포(2) 

 

산으로 

 

적석 

 

나 

 

 

구계포폭포(3) 

 

구계포교 

 

옛길 갈림길 폭포 

 

 갈림길 철계단(고사목)

 

 합수지점 폭포(1)

 

 합수지점 폭포(2)

  

신선교 

 

피아골대피소 

 

피아골대피소 화장실 

 

피아골대피소 샘터 옆  

 

피아골대피소 이정표

  

피아골대피소 샘터 

 

 버섯(1)

 

버섯(2) 

 

서산대 갈림길(1) 

 

서산대 갈림길(2) 

 

서산대 돌담(1)

 

서산대 돌담(2)

 

서산대(1)

 

서산대(2)

 

 서산대(3)

 

서산대(4)

 

서산대(5)

 

서산대(6)

 

 

서산대(7)

 

 

산으로 

 

적석

 

강동섭 

 

나 

 

 

산으로

  

피아골 

 

 불무장등

 

무착대 추정지점 

 

서산대 화장실 

 

오미자

 

서산대 앞 전망바위(1)

 

서산대 앞 전망바위(2)

 

나+순옥언니+산으로

 

오찬

 

서산대샘

 

 적석과 적송

 

 안부 위 적송 전망바위

 

 돼지평전봉(1)

 

돼지평전봉(2) 

 

 

돼지평전봉(3)  

 

 헬기장 이정표

 

 헬기장에서 돼지평전봉

 

피아골 삼거리 이정표 

 

임걸령(1) 

 

임걸령샘 

 

임걸령(2) 

 

 노루목 삼거리 이정표

   

삼도봉 이정표

  

삼도봉(1) 

 

삼도봉(2)

 

삼도봉(3)

 

순옥언니 

 

강동섭 

 

나 

 

산으로

 

 

 

불무장등 

 

용수골 갈림길 안부 위 전망바위에서 삼도봉 

 

오메 단풍들었네 

 

 

 Y자 갈림길 안부 쉼터

 

하나가 된 솔과 바위 

 

바위협로 

 

여기서 오른쪽으로(잘못된 선택)  

 

나무 위 낡은 솥 

 

이끼바위(1) 

 

이끼바위(2) 

 

피아골 합류지점 폭포

 

 표고막터교 위 작은 폭포 

 

 

피아골을 아시나요?  

 

 

집 없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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