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비가 와도 좋아 바람 불어 더 좋아, 거림에서 영신봉과 촛대봉 올라 제자리로

큰집사람 2010. 9. 12. 08:58

* 날    짜 : 2010년 9월 11일(토요일)

* 날    씨 : 비

* 산 행 지 : 거림 - 지리산 영신봉 - 촛대봉 - 거림

* 산행거리 : 약 14km 안팎

* 산행시간 : 7시간 40분(운행시간 5시간 23분 + 휴식시간 2시간 17분)

* 산행속도 : 약간 빠른 걸음

* 산행인원 : 4명(레드아이, 적석, 평생여행, 조광래)

 

 

 


 

 

진주 솔산악회의 토요새벽산행에 4명이 일행이 되어,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진주공설운동장을 출발합니다.

많은 비가 온다고 예고된 걸 뻔히 알지만, 그런다고 산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출 순 없는 일입니다.

잔뜩 토라진 시누이 얼굴처럼 찌푸린 하늘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시한폭탄이란 생각으로,

인적이라곤 없는 3번 국도를 따라 산청 방면으로 내달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남짓 가니, 기어이 비를 뿌려놓기 시작합니다.

내렸다 그쳤다 변덕을 부리는 속에서도, 45분 만에 산청 시천면 내대리 거림마을로 들어섭니다.

어느새 날은 샜고, 비가 오지도 않습니다.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산행채비를 다시 하고선, 거림 탐방안내소를

지나며 산행에 들어갑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돌배나무가 탐방안내소와 이웃해 있고, 1분도 채 못 가 멋진 소나무를 만납니다.

넓고도 비스듬한 바위 끝자락에 자리 잡고서, 수백 년 세월 동안 거림골을 지켜온 터줏대감입니다.

커다란 둥치에 쫙 펼쳐진 가지, 불그스럼한 자태는 뭇사람들의 이목을 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소나무와 반대쪽인 산비탈의 희미한 길은 시루봉을 거쳐 촛대봉으로 이어 진다고 하며,

어쩌면 나중 내려올 때 이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눈길만 슬쩍 한 번 주곤, 지금은 그냥 지나칩니다.

 

날이 샜다고는 하지만 숲이 짙은 계곡은, 아직도 어둠의 흔적이 남아 있어 때론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10분 남짓 갔을까 후드득 뭔가 떨어지더니, 점차 개수도 많아지고 굵어집니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빨리 왔을꼬?

어쨌든 고생깨나 하게 생겼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아무래도 레드아이의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아 보입니다.

자꾸만 힘들어하는 게, 평소의 그가 아닙니다.

작은 체구에 날렵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은 간 곳 없고, 휘청휘청하는 게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연을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인 즉,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고 먹는 걸 좀 줄였다고 하네요.

이럴 수가!

예뻐지는 것도 물론 좋긴 해도, 히죽히죽 힘을 못 쓰면 모든 게 물거품입니다.

갖고 간 김밥이랑을 먹이며, 기운을 차리라고 다독입니다.

아무리 다이어트도 좋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 그런 것도 필요한 게 아닐는지요?

 

퍼붓는 빗소리에 비례하여, 계곡의 물소리는 점차 소리를 더해갑니다.

계곡이 갈리기도 모이기도 하는 곳인, 합수지점 근처를 지납니다.

세석대피소 3.6km, 거림 2.4km란 이정표가 있으며, 10분 정도 더 오르니 그럴듯한 두 갈래폭포가

모양을 뽐냅니다.

유난히 비가 잦은 올 여름인데다 때맞추어 비까지 오고 있으니, 그걸 등에 업고선 더욱 위세를

부리며 떵떵거립니다.

그래, 네 잘 났다!

천팔교(千八橋)를 지납니다.

별스레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이곳의 해발 고도가 1008m라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누가 작명(作名)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번득이는 재치만은 알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차고 다니는 시계의 고도(高度)가 1020m를 가리킵니다.

12m의 오차가 있긴 해도 천팔교가 1008m가 맞을 것도 같으며, 그러고 보니 내 시계도 영 엉터리는

아닌 듯해 보입니다.

천팔교에서 조금 더 오르니, 세찬 물줄기가 위용을 자랑하는 아직은 이름 없는 폭포에 다다릅니다.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올 8월 14일 찾을 때도 벌어진 입을 다무느라 애를 먹었는데, 오늘은 그때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가운데다 제일 그럴싸한 폭포를 두고선, 위에도 아래도 멋진 물줄기가 나름대로의 매력을 풍기는

이른바 삼단폭포입니다.

비가 와서 불편하긴 해도 이런 광경을 본다는 건, 또 한편으론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뒤 북해도교(北海島橋)를 건넙니다.

북해도란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한 섬 북해도(홋가이도)를 가리키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국립공원 그것도 지리산에다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부터 북해도와 같이 춥고 기상환경의 변화가 많아진다 하여 그랬다는데,

그런 뜻에서라면 대한민국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지명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리를 건너서면 세석대피소 2.8km, 거림 3.2km란 이정표가 있으며, 정규 등산로는 계곡을

오른쪽에다 두고 한동안 가게 됩니다.

어디로 갈까요?

산행대장격인 적석이 의견을 묻습니다.

당초(當初)엔 거림 옛길을 따라 세석교로 오르기로 했는데, 워낙 많은 비가 쏟아지니

어쩔거냐는 겁니다.

위험부담이 좀 있긴 해도 뭐 어쩔 것도 없이 처음 예정대로 가자고,

강력히 내가 주장하니 모두가 동조하는 눈치입니다.

사실 거림에서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길만큼, 지리산에서 재미없고 밋밋한 곳도 없을 겁니다.

울창한 산림과 계곡이 있긴 하나 조망이 전혀 열리지 않는 지루한 길이기에,

상당한 끈기와 인내가 없고선 오르내리기가 꽤나 버거운 코스입니다.

나의 의견대로 거림 옛길을 타기로 합니다.

 

북해도교를 건너서자마자, 못 가게 막아둔 바로 가는 길을 넘어섭니다.

희미하지만 길은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우린 나아갑니다.

7분 남짓 가니 계곡을 건너게 되는데, 바로 위엔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춘 이단폭포가 우릴

맞이합니다.

그간 사람의 내왕이 드물었던지, 반기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때는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온갖 부귀영화(富貴榮華)와 귀염도 받았을 성 싶지만,

오래 전 다른 데로 길이 나고선 세월무상(歲月無常)을 곱씹으며 신세타령(身世打令)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도 아주 오래 전 옛날, 난생처음 촛대봉을 오르면서 이 길을 따라 오른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한 기억이 남아있는 건 없어 장담을 할 순 없습니다.

계곡을 옆에다 끼고, 산죽 속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위로 치올라갑니다.

세월 따라 차츰차츰 잊혀져가는 길이기에, 흔적조차 자꾸만 지워져가고 있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때론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키가 넘는 산죽을 헤치기도 합니다.

계곡을 타기도 하고 계곡과 그렇게 멀어지지는 않으면서, 악천후(惡天候) 속에서도 뜻을 이루고자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하는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곡물이 불긴 했어도, 건너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계곡 한가운데 섬처럼 생긴 곳에다 뿌리를 내린 고목나무가 있는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빠져버린

기력(氣力)을 보충합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크진 않으나, 보아하니 나잇살이나 먹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잘못 선택한 환경 속에서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을 꿋꿋이 이어왔을

생명의 신비로움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하며, 언제 또 만날지도 모를 기약 없는 이별을 합니다.

위로 좀 더 오르니, 해발 고도 약 1265m 지점에서 멋진 폭포를 만납니다.

계곡 오른쪽에 바싹 붙은 평평한 바위에서 퍼지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높이와 수량을 골고루 갖춰 거림 옛길골 최고의 폭포로 보여 집니다.

어딜 가도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이요, 그 중에서도 지리산(智異山) 이란 생각입니다.

적석과 평생여행은 계곡 오른쪽의 희미한 길로 오르고, 레드아이와 난 그냥 계곡을 타고 오릅니다.

이미 젖었을 바엔 계곡을 타는 게, 어쩌면 더 편한지도 모릅니다.

물이 많긴 해도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 그런대로 진행할 만합니다.

세석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찰나, 적석이 내려오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못 들은 척 그대로 계곡을 따릅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내려가긴 왜 내려가!

어차피 또 오를 거면서......

 

이윽고 세석교(細石橋)가 희뿌옇게 눈에 들어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객지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기분입니다.

한달음에 세석교로 올라섭니다.

세석대피소 1.3km, 거림 4.7km란 이정표가 있으며,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조금 있으니

슬슬 추워집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적석에게 전화를 걸어보나, 아쉽게도 전화기는 꺼져 있어 통화가 되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먼저 오른 건 맞는데, 어디로 빠졌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깊은 산중 그것도 악천후 속에선 행동을 같이 하는 게 상책인데 하는 때늦은 후회지만,

그런다고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고함을 지르고 또 지르며 한참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더니, 어느 순간 비바람과 물소리를

뚫으며 나지막한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이 또한 어찌 반갑지 아니하랴!

잠시 후 30년 아니 30분 만에,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相逢)을 하게 됩니다.

두 번 다신 헤어지진 말잔 언약을 하며, 아직도 많이 남은 길을 서둘러 떠납니다.

세석대피소에서 내려오는 산님들을 더러 만납니다.

천왕봉 쪽을 통제하는데 뭐 하러 오르냐고, 충고 반 핀잔 반의 말을 하며 기를 죽입니다.

그런다고 내려 갈 우리가 아니지!

천왕봉은 안 가고 촛대봉만 갔다 올 거라 하면서, 그들을 안심시키며 우리 갈 길을 그대로 갑니다.

 

안 그래도 물이 흔한 세석 가는 길은 아예 개울이 되어 흘러내리고, 고인 물은 발목까지 빠지게

하며 골탕을 먹입니다.

세석과 남부능선 갈림길로 올라섭니다.

오른쪽 세석대피소는 0.5km 남았고, 왼쪽의 청학동은 9.5km를 더 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올라온 곳 거림은 5.5km이며, 반대쪽 의신은 8.8km를 가리킵니다.

다시 한 번 적석이 의견을 떠봅니다.

세석대피소로 바로 갈까요, 아니면 음양수로 갈까요?

뭘 또 물어, 애초에 그리로 가기로 해놓고선!

톡 쏘는 한마디에 군말 없이 앞장을 서며, 가야 할 곳 음양수로 떠납니다.

적석은 진주의 고등학교 교사(敎師)로 근무하며, 나와는 올해 많은 산행을 함께 하면서

퍽 친해진 사입니다.

좋은 산 동무 하나를 사귄 셈입니다.

비교적 완만한 길을 따라 음양수로 다가갑니다.

평평한 고원지대엔 예전 청학동(靑鶴洞)이라 믿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군데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갈림길에서 10분 남짓 가니, 신비로운 음양수(陰陽水, 1450m)에 다다릅니다.

샘 위 바위엔 돌멩이를 쌓아 둘러친 제단(祭壇)이 있는데, 음양수는 예전 빨치산의 은거지

(隱居地)였다고 합니다.

적석과 레드아이가 배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합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알 순 없고 절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지만, 정작 난 구경만 할 뿐

절을 하진 않습니다.

 

언제 봐도 신비로운 음양수의 양 샘에선, 바위틈을 뚫고 물이 펑펑 흘러나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산신께 기도를 하고 이 물을 마시면,

소원대로 아들과 딸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합니다.

비가 오는데다 굳이 마실 필요도 없기에, 난 그냥 돌아섭니다.

늦둥이 하나 볼까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이정표를 보니 세석대피소 1.2km·쌍계사 15.3km·청학동 8.8km·의신 7.9km이며,

이정표엔 없지만 천왕봉까진 6.3km의 거리입니다.

제단 뒤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길입니다.

푹신푹신한 흙길이 한동안 밟히고, 잡목도 별 방해를 하지 않는 등 생각보다 길 상태가 좋습니다.

군데군데 전망대가 나오며 유혹해 올라보지만, 보이는 건 안개와 구름과 비뿐 조금 먼 곳 조망은

어림도 없습니다.

안 보이는 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올라보면, 결과는 역시나 여서 우릴 실망시킵니다.

자살바위란 곳도 지납니다.

국군에 포위되어 오갈 데 없게 된 빨치산 여전사들이, 수십 길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려 삶을

마감했다고 하니, 역사의 아픈 상처가 서려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음양수를 떠난 지 20분이 가까워오자, 창불대(唱佛臺)가 눈에 들어옵니다.

창불이란 예불(禮佛)에서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곧 구도(求道)에 정진함을 이르는 말이니,

창불대란 부처님을 찬양하며 구도에 정진하는 곳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또 창불대로 올라보지만, 결과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조망은 커녕 그냥 서 있기에도 버겁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안개 사이로 직벽(直壁)의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나는데, 어찌나 높고도 높은지

끝내 끝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 일대는 뾰족뾰족한 바위가 서로 잘 났다고 경쟁하듯 서 있는 곳인데,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정말 진짜로 아쉽습니다.

지리산 주능선과 남부능선 일대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하나,

오늘은 그저 상상 속에서만 다가올 뿐입니다.

창불대를 내려와 1분쯤 나아가니 제단인지 기도터인지가 나오는데,

음양수 것과 거의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게 이채롭습니다.

차츰차츰 철쭉 등 잡목이 우거져 옷깃을 잡기도 하나, 길은 비교적 뚜렷하게 이어져 있어

헷갈릴 염려는 없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나지막한 큰 바위 옆에 자리 잡은, 옛 헬기장을 지나 오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헬기장으로의 역할을 다하고 2009년 11월 용도폐기 (用途廢棄)되어,

지금은 어린 나무를 심어 놓고 생태계 복원이 진행 중입니다.

헬기장 왼쪽으로 가까운 영신대(靈神臺)로 이어지는 길이 있지만, 오늘은 그만 못 본 척 합니다.

장대 같은 비를 맞고서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행여 지리산 산신령이 노할까 봐서요.

가고프고 보고파도 때론 참을 줄도 아는 게, 세상을 사는 슬기로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는지요?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영신봉 이정표 있는 데서 주능선 등산로를 만나고, 우린 길을 가로질러

영신봉(靈神峰, 1651.9m)으로 올라갑니다.

이정표엔 세석대피소 0.6km·벽소령대피소 5.7km·연하천대피소 9.3km라 되어 있으며,

이를 토대로 천왕봉까진 5.7km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분도 가지 않아 영신봉 정상에 올라섭니다.

펑퍼짐한 제법 너른 땅에, 바위가 몇 개 박혀 있는 영신봉!

여기도 조망이 좋은 곳이나, 오늘은 이마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가까운 정상부만 조금 보일 뿐, 먼 곳 조망은 턱도 없는 일입니다.

영신봉은 지리산 주능선이기도 하지만,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잠깐 흔적만 남기고 서둘러 내려옵니다.

주능선을 오가는 산행객을 더러 만납니다.

대부분 주능선 종주를 한다고 보면 되는데,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그들의 산행 의지를 꺾지는

못하나 봅니다.

세석대피소에 다다릅니다.

아직은 점심때가 아니어서 그런지 취사장 안은 몇몇만 보일 뿐, 대체로 한산한 편입니다.

대피소 주변에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아무리 산꾼이라도 그렇지 오늘 같은 날 지리산을 찾는 이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가 봅니다.

 

11시도 안 된 시각이라 좀 이르긴 해도, 때 이른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여길 나가면 어쩌면 점심 먹을 데도, 마땅한 곳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차림표는 돼지고기 주물럭에다 김밥 몇 줄이 전부이며, 여기에다 내가 갖고 간 막걸리

한 통이 곁들여집니다.

참 조촐한 식단이지만, 진수성찬(珍羞盛饌)이요 산해진미(山海珍味)란 마음으로 감사해합니다.

비에 젖은 몸으로 들이키는 막걸리도, 좀은 청승맞긴 해도 그런대로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배를 불리고선 세석대피소를 뒤에다 두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러 촛대봉으로 오릅니다.

모진 비바람이 진행을 방해하지만, 그렇다고 아니 갈 순 없는 일입니다.

세석평전의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 모양새를 뽐내며 보고 가라지만,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촛대봉(1703.4m)으로 올라섭니다.

안개에 싸인 바위 봉우리가 유령처럼 다가오지만, 이곳 역시 조망은 전혀 없어 우릴

또 실망시킵니다.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이는 곳이지만, 10m 앞이 겨우 보일까 말까할 뿐입니다.

이정표엔 세석대피소 0.7km·장터목대피소 2.7km·천왕봉 4.4km라 되어 있으며,

드센 비바람에 머물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가 어찌나 따갑고 아픈지, 우박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얀 고체 덩어리가 아닌 걸로 봐선, 결코 우박은 아닌데 말입니다.

 

촛대봉 능선을 타고, 청학연못으로 내려갑니다.

납작 수그린 구절초가 애처러워 보입니다.

촛대봉 일대는 바래봉 부근의 팔랑치와 더불어, 소문난 구절초 군락지입니다.

올핸 하도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별로 크지도 못한 채,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으니

참 안타깝단 생각입니다.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아름다움도 덜하단 느낌입니다.

좀 내려가다 크지 않은 바위가 예닐곱 개 모여 있는 곳에서, 삼거리 갈림길을 만납니다.

왼쪽의 제법 뚜렷한 길은 시루봉으로 가는 길이요, 바로 가는 좀 희미한 길은 청학연못으로

가게 됩니다.

바위에 동그라미(○)가 희미하게나마 되어 있어, 이를 참고하면 좋을 듯 합니다.

갈림길에서 5분 정도 내려서며, 이윽고 청학연못에 닿게 됩니다.

여기도 입구 바위에 흰 원점 표시가 되어 있어,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비스듬하면서도 어마어마한 바위 아래 연못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안개 낀 날의 청학연못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더니, 비가 오는데다 옅은 안개마저 낀 날에도

나름대로의 매력을 발산하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가을이나 겨울에 와야 좋다지만, 언제와도 좋은 게 청학연못인 것 같아 보입니다.

 

연못 한 쪽 낮은 데로 물이 흘러나가고, 이 물은 지계곡을 이루며 길잡이 노릇을 단단히 합니다.

보고 또 봐도 감탄이 나오는 청학연못을 뒤로 하고,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시루봉으로 갈까는 생각을 아니한 건 아니나,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인해 좀은 아쉽지만

그만 뜻을 접기로 합니다.

살다보면 기회는 또 있겠지요?

작은 개울을 따라, 산죽 속으로 난 희미한 길을 타고 갑니다.

그전엔 개울을 따라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청학연못을 찾는 사람들이 자꾸 오가다보니 자연스레

길이 생긴 겁니다.

아직은 완전한 길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길 흔적에 가깝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길에서 벗어나며 개울을 타고 내려가다, 쭉 미끄러지며 옆으로 넘어지면서 사정없이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는 대형사고가 터집니다.

오른쪽 장골부위를 세게 부딪쳤는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평평한 바위라서 터지지는 않고 머리만

띵합니다.

뇌진탕(腦震蕩)이 걱정될 정도의 충격이었으나, 뒤통수가 아닌 장골이라 후유증이 좀 있긴 해도

별탈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개울을 타고 더러는 희미한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 거림골 주등산로에 합류합니다.

거림에서 오르면 작은 나무다리 두 개가 연거푸 나오는, 지계곡의 첫 번째 다리 부근입니다.

제대로는 첫 번째 다리 입구로 정확히 나오는데, 거림 쪽으로 쪼매 내려간 것입니다.

첫 다리 입구엔 노각나무 한 그루가 있고, 크지 않은 둥근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탐방안내소에서 통제를 하지 않더냐고 물으니, 그러진 않더란 대답이 돌아옵니다.

큰 계곡마다 다리가 놓여 있는데, 비가 온다고 굳이 통제할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아주 큰 태풍이 오지 않는 한 말입니다.

꽤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순식간에 샘터를 지납니다.

샘 치곤 어찌나 많은 물이 흐르는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가 왔다는 걸 짐작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세석대피소 2.1km·거림 3.9km 지점에 있는 이 샘은, 많은 산꾼들의 오아시스 노릇을 단단히 하며

사랑을 받습니다.

북해도교를 건넙니다.

세석대피소와 거림의 거의 중간지점에 놓여있는 다리이며, 여기서부턴 아까 올랐던 길입니다.

 

그새 계곡물이 상당히 불었습니다.

온종일 비가 오는데, 제까짓 놈이라고 불지 않고 버틸 순 없었을 겁니다.

삼단폭포도 많은 물이 흘러내리며 장관(壯觀)을 연출하는데, 비오는 날이 아니면 보지 못할

정말 멋진 광경(光景)입니다.

천팔교를 건너서 바삐 내려가는데, 하늘에 별이 번쩍번쩍합니다.

대낮에 웬 별이?

그것도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고갤 드니 바위란 놈이 떡 버티고 있습니다.

저걸 내가 받았단 말인가!

보아하니 바위는 멀쩡한데, 왼쪽 이마부위가 화끈거립니다.

아무래도 생채기가 났나 봅니다.

여태껏 바위와 겨뤄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데, 그러고도 또 바위를 들이받는 참 멍청한 짓을

한 것입니다.

좀 아까는 오른쪽 장골을 바위에다 내동댕이치더니, 이번엔 왼쪽 이마에다 흠집을 남겼으니

어쨌거나 균형은 맞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핸 유별나게도, 얼굴부위가 수난을 많이 당합니다.

팥 농사를 두 번씩이나 짓는 이모작(二毛作)을 했는가 하면, 바위와 나무에 부딪쳐 상처가 난 건

그야말로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이거야 정말 환장(換腸)할 노릇입니다.

 

거림골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갑니다.

이정표가 있는 지계곡에도 많은 물이 넘쳐흐릅니다.

1.3km만 가면 산행을 끝낼 수 있습니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완만한 길을 한동안 타고서, 멋진 소나무가 있는 바위로 올라섭니다.

거림 탐방안내소가 바로 눈앞입니다.

거림골을 지키고 선 의연한 모습은 올곧은 기상이 서려 있어, 더더욱 사랑을 받는 행복한

소나무입니다.

100m도 남지 않은 종착지(終着地), 지리골에서의 하루는 또 그렇게 흘렀습니다.

오늘 산행을 콕 집어 말하자면, 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 불어 더 좋아란 생각입니다.

주차한 곳 가까이의 사모교 밑에서 알탕을 하며, 비에 젖고 땀에 절은 몸을 씻어 내립니다.

알탕이 있어 좋은 계절 여름이 가는 소리가 아쉽긴 해도 내가 잡고 또 막는다고 안 갈 것도

아니니, 내년에 다시 오라고선 이대로 고이 보낼까 합니다.

차에 오릅니다.

그리곤 떠납니다.

제91회 전국체육대회(2010.10.6 ~ 10.12)가 열리는 내 사는 곳 진주로!

 

 

 

 

 

* 산행일정

06:20          거림 탐방안내소

06:37          지계곡 이정표(세석대피소 4.7km·거림 1.3km)

07:00          합수지점 부근 이정표(세석대피소 3.6km·거림 2.4km)

07:10          두 갈래폭포

07:15 - 07:25  천팔교

07:27          삼단폭포

07:32          북해도교(세석대피소 2.8km·거림 3.2km)

07:39          거림 옛길골 1차 계곡 횡단(이단폭포)

07:55          거림 옛길골 2차 계곡 횡단(1160m)

08:10 - 08:25  계곡 고목나무

08:40 - 08:50  1265m 폭포

09:10 - 09:20  세석교(1370m: 세석대피소 1.3km·거림 4.7km)

09:35          남부능선 - 세석 갈림길(세석대피소 0.5km·거림 5.5km)

09:45 - 09:55  음양수(세석대피소 1.2km·청학동 8.8km)

10:13 - 10:20  창불대

10:35 - 10:40  영신봉(세석대피소 0.6km·벽소령대피소 5.7km)

10:50 - 11:40  세석대피소(촛대봉 0.7km·거림 6.0km·백무동 6.5km)

11:55          촛대봉(세석대피소 0.7km·천왕봉 4.4km)

12:10          시루봉 - 청학연못 갈림길

12:15 - 12:30  청학연못

12:42          거림골 주등산로 합류(제1 나무다리)

12:50          샘터(세석대피소 2.1km·거림 3.9km)

13:00          북해도교

13:05 - 13:10  삼단폭포

13:12          천팔교

13:17          두 갈래폭포

13:26          합수지점 부근 이정표

13:42          지계곡 이정표

14:00          거림 탐방안내소

  

 

 

 

 

 

 거림 옛길골 이단폭포(제2 계곡횡단지점) 

   

 레드아이  

 

 거림 옛길골 폭포(제2 계곡횡단지점)

   

 바위를 타고(1) 

  

 바위를 타고(2) 

 

 계곡 가운데 고목 

 

 

 1265m지점 폭포(1) 

 

  1265m지점 폭포(2) 

 

세석교 

 

남부능선 - 세석 갈림길 이정표 

 

 음양수 이정표

  

 음양수(양수) 

 

 음양수(음수)

 

촛대봉과 시루봉 

 

 

                                                                      창불대(1)

 

 

창불대(2) 

 

창불대에서의 자살바위 

 

창불대에서의 세석대피소와 천왕봉 

 

 창불대에서의 반야봉 

 

 창불대 옆 제단

 

영신봉 

 

 평생여행+레드아이 

 

 나 

 

 영신봉 

 

 영신봉 이정표 

 

 점심 식단

  

촛대봉 이정표

  

 레드아이+적석+평생여행 

 

 촛대봉(1)

 

  

촛대봉(2)

 

    

 청학연못 - 시루봉 갈림길 바위

  

  청학연못 - 시루봉 갈림길 바위(표시)  

 

 청학연못 입구(원점 표시) 

 

 평생여행 

 

 평생여행+레드아이 

 

 레드아이 

 

 

 

  

 

 

  

 청학연못(1) 

 

 청학연못(2) 

 

겨울의 청학연못(1)

  

겨울의 청학연못(2) 

 

 

청학연못 암봉 

 

샘터 

 

샘터 이정표

  

북해도교 이정표

  

 북해도교

 

  

 삼단폭포(위)

  

 삼단폭포(가운데-1) 

 

 삼단폭포(가운데-2) 

 

 삼단폭포(아래)

  

 천팔교

  

 두 갈래폭포

 

  

합수지점 부근 이정표

  

 거림골 

 

지계곡 이정표

  

멋진 소나무(1) 

 

멋진 소나무(2)  

  

 돌배나무 

 

 거림 탐방안내소 

 

 도장골 간이교(1) 

 

도장골 간이교(2) 

 

 도장골 간이교 위 

 

사모교(1) 

 

 사모교(2) 

  

 사모교(3) 

 

 사모교 표지석 

 

 사모교 위 

 

 사모교 아래 

 

 사모교 위 거림골-도장골 합수지점 

 

 사모교 바로 위(1) 

 

 사모교 바로 위(2) 

 

 소용돌이 

 

 이대로만 하세요 

   

  가을(1)

   

 가을(2) 

  

  가을(3)  

 

 

    

   

 

 무궁화(1)  

 

 무궁화(2)

 

 강아지풀(1) 

 

 강아지풀(2) 

 

 백일홍 

 

 수수  

 

 제1회 이현 하이클래스웰가 한마음 축제(1) 

 

 

 제1회 이현 하이클래스웰가 한마음 축제(2) 

 

이현 웰가 중앙광장(1)  

 

 이현 웰가 중앙광장(2)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1)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2)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3)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4)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5)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6) 

 

진주 이현 하이클래스웰가(7)  

 

 진주 나불천(1) 

 

  진주 나불천(2)  

  

진주 나불천(3)  

 

진주 나불천(4)  

 

 9년지기 나의 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