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겨울과 봄이 엇갈리는 지리산 천왕봉

큰집사람 2010. 4. 7. 22:27

* 날    짜 : 2010년 4월 4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법계교 - 로타리대피소 - 지리산 천왕봉 - 장터목대피소 - 유암폭포 - 법계교

* 산행거리 : 12.4km

* 산행시간 : 8시간 10분(운행시간 5시간 24분 + 휴식시간 2시간 46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4명(박광식, 황진배, 정연근, 조광래)

 

 

 

 

   

오랜만에 맞은 봄 날씨다운 화창한 휴일입니다.

직장동료 4명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진주에서 중산리로 갑니다.

천왕봉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자주 가지는 못합니다.

몸은 하난데 오라는 데는 너무 많습니다.

길가의 벚나무는 꽃망울을 머금은 채 터질 준비를 하고 있으나, 아직은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법계교로 올라갑니다.

법계교 부근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 추모비가 있는 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갑니다.

이따가 돌아올 곳이기도 합니다.

우천은 1916년 진주 옥봉동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산꾼으로, 결혼 후 한때는 진주에서 가장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지리산에 빠지면서 모든 걸 내팽개치고 세석평전에 움막을 짓고

30년을 기거하면서,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길을 열고 조난자를 구조하는 등,

지리산에 관한한 감히 견줄 자가 없는 산신령으로 통했다고 하며, 환갑이던 1976년 6월

부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이제 지리산으로 영원히 들어간다. 한 달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내 배낭 속의 소지품은

모두 불살라 달라.”는 말을 남기고 지리산으로 홀연히 떠난 후 종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그를 따르는 몇몇이 지리산을 찾아 헤맸으나, 백골은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산행로 곳곳에 돌을 깔아 놓았는데, 지리산 등산로가 자꾸 돌로 메꿔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천왕봉을 자주 찾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포근하여 얼마 안 가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난 목 위로만 땀이 나는 특이체질입니다.

경계도 불분명한 이마와 머리는 특히 더합니다.

이러니 머리카락이 남아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두 개의 칼바위가 날 반깁니다.

2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셈입니다.

의연하게 서 있는 칼바위, 별로 크지는 않지만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칼바위 위의 출렁다리가 있는 삼거리에선, 장터목대피소와 법계사로 가는 길이 나뉩니다.

법계사 쪽으로 오릅니다.

장터목대피소 쪽은 내려올 몫으로 남겨둡니다.

여기서부터 망바위까지는 본격적인 가풀막이 이어집니다. 

바쁠 게 없기에 천천히 올라갑니다.

일행 중 40대 두 명이 슬슬 처지기 시작합니다.

50대 두 명은 생생합니다.

어차피 돌 지나면서부터 걸었으니, 경력이 많은 50대가 잘 걷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요?

 

망바위에 다다릅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 형상입니다.

간식을 먹으며 한참을 쉬고 있으니, 그제서야 40대 둘이 올라옵니다.

힘든 기색이 역력합니다.

산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아니 거짓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산을 멀리한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봅니다.

망바위에서 히어리 하영희를 만납니다.

천왕봉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이랍니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다섯 시간 정도면 다다르는 일등 산꾼입니다.

망바위에서 법계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입니다.

커다란 바위 틈새의 문창대샘에서 물이 나옵니다.

문창대샘에 물이 다 있다니, 봄비가 잦긴 잦았나봅니다.

 

로타리대피소에 닿기에 앞서 헬기장에서 천왕봉을 올려다봅니다.

세 무더기의 바위 덩어리로 된 천왕봉, 웅장하기 짝이 없습니다.

건너편의 써리봉 일대도 봅니다.

산줄기가 농기구인 써래를 닮았다고 하여 써래봉이라고도 하며, 아기자기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로타리대피소(1335m)에 다다릅니다.

포근한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산행객들로 북적거립니다.

샘에서 목만 축이고 바로 올라갑니다.

기다란 바위가 누워있는 낙뢰다발지역을 지납니다.

파이프를 박고 줄을 쳐놓은 곳입니다.

예전에 출입을 통제하던 출입문은 뜯어내고 없습니다.

 

어느 순간 문득 보니, 또 40대 둘이 보이질 않습니다.

50대 둘이 우리끼리 올라가자고 입을 모읍니다.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바위굴을 지나, 개선문(1700m)을 통과합니다.

예전엔 개천문이라고 했다고 하며, 풍화작용으로 바위조각이 점차 떨어져 나가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개선문을 뒤로 하니,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밟힙니다. 

선바위를 지납니다.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등산로 바로 곁에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라 그전부터 난 그렇게

부른답니다.

이제 천왕봉까지 0.6km가 남았습니다.

 

천왕샘(1850m)에서 잠시 목을 축입니다.

위쪽에 매달린 고드름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습니다.

녹은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봄이 오긴 왔나봅니다.

천왕샘은 남강의 발원지라고 되어 있는데, 두 개의 남강 지류 중 하나인 덕천강의 

발원지입니다.

또 다른 남강 지류인 경호강의 발원지는, 남덕유산 중턱에 있는 참샘이고요.

두 강은 진주 진양호에서 만나 남강으로 이어집니다.

남강은 낙동강으로 빨려 들고요. 

바로 위의 천왕봉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300m만 가면 되지만, 깔딱고개라 일컫는 상당한 된비알입니다.

이래봬도 명색이 지리산 중에서도 천왕봉이 아닌가?

 

이윽고 지리산 천왕봉(1915.4m)으로 올라섭니다.

법계교를 떠난 지 3시간 5분이 걸렸습니다.

여유롭게 오른 만큼 많은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본래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였다는데, 언젠지는 몰라도 한국인으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자세히 보면 약간 패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천왕봉엔 많은 산꾼들로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날씨가 포근하여 더욱 많이 오른 것 같습니다.

바람도 전혀 없어 아주 따뜻합니다.

반 소매를 입었더라도 추운 줄을 모를 정돕니다.

천왕봉에 이런 날이 1년 중 며칠이나 될는지?

가까운 곳은 잘도 보이나, 약간 희뿌연 편이라 먼 곳은 그다지 맑게 보이진 않습니다.

반야봉과 지리산 서북능선 등이 아련히 들어옵니다.

 

좀 기다리자 40대 하나가 천왕봉으로 올라섭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제법 처졌다고 합니다.

짊이 제법 무거웠는데, 아무래도 고생깨나 하는 것 같습니다.

부실한 엔진에다 과적까지 했으니 쌕쌕거릴 수밖에.

조금 빠르고 늦고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루나 이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뒤늦게 오른 40대와 한데 어울려 정상주를 주고받습니다.

천왕봉에서 한잔 하는 그 맛이란?

어쩌면 이런 재미로 산을 다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장터목대피소 쪽으로 내려갑니다.

응달이 많아 법계사 쪽과는 달리,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문(1814m)을 지납니다.

온통 얼음 투성이라 잔뜩 신경이 쓰입니다.

겉은 녹아 있어 상당히 미끄럽습니다.

조심조심 내려가지만 내 뜻과는 달리 결국 미끄러지면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맙니다.

지리산에 겨울과 봄이 엇갈리는 걸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고사목지대로 유명한 제석봉(1808m)도 지납니다.

고사목도 부러지고 사그라져, 이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이러진 않았는데,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장터목대피소(1653m)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포근하여 바깥에다 주방을 차립니다.

삼결살에다 소주를 곁들이니, 지리산 산신령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오늘 만큼은 내 팔자가 산신령보다 더 나은 지도 모릅니다.

산희샘에도 물이 흘러나옵니다.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봄이기에, 산희샘에도 물이 올랐나 봅니다.

이쯤 되면 명선봉 자락의 총각샘에도 물이 나오겠지요?

이래저래 봄이란 참 좋은 계절인 셈입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합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일부러 더 요란스럽게 구는지도 모릅니다.

 

유암폭포(1240m)의 물소리가 우렁찹니다.  

겨우내 덮혔던 얼음이 걷히고, 세찬 물줄기가 흘러내립니다.

겨울엔 그런대로 나의 오줌줄기도 견줄만 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아예 상대가 되질 못합니다.

세월따라 노래따라 늙어가는 인생과는 달리, 자연은 언제라도 회생이 가능한가 봅니다. 

숨은골에 걸친 출렁다리 조금 못 미처 있는, 법천폭포의 물소리가 웅장합니다.

소문이 덜 나 찾는 사람은 드물지만, 지리산의 폭포답게 그 규모는 보통이 넘습니다.

잎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법천폭포의 위용은, 예나 지금이나 장엄하기

짝이 없습니다. 

들렀다 가길 권해보나, 모두 그냥 가자고 합니다.

다음에 혼자 오면 반드시 널 찾으마!

 

칼바위 위 출렁다리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망바위로 해서 법계사로 올라갔던 곳입니다.

법계교까지는 1.3km가 남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아까 올라갔던 길입니다.

이번엔 내려갑니다.

칼바위를 지납니다.

볼수록 새로운 느낌이 드는 신통한 바위입니다. 

칼바위골의 물과 한데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법계교에 도착하여 실제적인 산행을 마무리 짓습니다.

8시간 10분 만에 제자리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오랜만에 널널산행을 했습니다.

빠른 것도 좋지만, 늦다고 해서 그렇게 나쁠 것도 없습니다.

때론 느긋함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자가 너무 빨라도 대접을 못 받는 수가 종종 있다네요.

대체 뭔 소린지?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지리산 천왕봉!

자주 온다고 귀찮아하지도 뜸하다고 서운해하지도 않고, 한결같이 포근하게 맞아줍니다.

높은 데서 보는 세상은 달라 보일지도 모른다면서.

 

 

 

 

   

* 산행일정

09:00           법계교

09:22           칼바위

09:25           칼바위 위 갈림길

09:55 - 10:10   망바위

10:28           문창대샘

10:40 - 10:45   법계사

10:57 - 11:02   낙뢰다발지역

11:15           암법주굴

11:30           개선문

11:35           선바위

11:45 - 11:55   천왕샘

12:07 - 12:55   천왕봉

13:07           통천문

13:22 - 13:27   제석봉

13:40 - 14:53   장터목대피소

15:16           명성교

15:24           병기막터교

15:40 - 15:45   유암폭포

15:52           홈바위교

16:30           법천폭포 갈림길

16:44           칼바위 위 갈림길

16:47           칼바위

17:10           법계교

 

 

 

 

 

* 구간별 거리(12.4km)

법계교 - 1.3km - 칼바위 위 갈림길 - 1.1km - 망바위 - 1.0km - 법계사 - 1.2km - 개선문 -

0.2km - 선바위 - 0.3km - 천왕샘 - 0.3km - 천왕봉 - 0.5km - 통천문 - 0.6km - 제석봉 -

0.6km - 장터목대피소 - 0.8km - 명성교 - 0.2km - 병기막터교 - 0.6km - 유암폭포 - 0.3km -

홈바위교 - 2.1km - 칼바위 위 갈림길 - 1.3km - 법계교

 

 

 

 

 

 

 

 

내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탐방안내소 

 

 

법계교

 

중산리 야영장 

 

우천 허만수 추모비 

 

법계교 부근 이정표

 

칼바위

 

칼바위

 

칼바위 위 출렁다리 

 

망바위 이정표 

 

망바위 

 

문창대샘

  

로타리대피소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왕봉 

 

헬기장에서 바라본 써리봉

 

헬기장에서 바라본 법계사 

 

 

로타리대피소 이정표
 

법계사 입구 이정표 

 

비스듬한 바위지대에서 돌아본 문창대 

 

낙뢰다발지역 경고판

 

바위굴

 

 

 

개선문 이정표

 

개선문

 

 

 

선바위 

 

천왕샘

 

 

 

천왕샘

 

 

 

 

 

 

천왕봉 이정표 

 

천왕봉에서 바라본 하봉과 중봉

  

반야봉

 

 촛대봉

 

황진배, 조광래, 박광식

 

박광식, 정연근

 

이래도 봄인가? 

 

 

 

제석봉 이정표 

 

제석봉에서 돌아본 천왕봉

 

 

 

제석봉에서 바라본 일출봉,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 고사목지대

 

유암폭포에서

 

홈바위교
 

만개한 벚꽃(2010.4.9 진주)

 

 개나리(2010.4.9 진주)

 

개나리(2010.4.9 진주)

 

 

 

목련(2010.4.9 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