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과 풍경

진주 망진산(2026.2.20. 금요일)

큰집사람 2026. 2. 20. 21:36

 

 

 

 

 

 

 

 

 

 

 

 

 

 

 

 

 

 

 

 

비거 이야기 망경공원 종합안내소

 

 

 

 

 

 

 

 

 

 

 

 

 

 

 

 

 

 

 

 

 

 

 

 

 

 

 

 

 

 

 

 

 

 

 

 

 

 

 

 

 

 

 

 

 

 

 

 

 

 

 

'(사)진주문화사랑모임' 이 시민과 함께 건립한 망진산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통일기원 전국 봉화제의 일환으로

'(사)진주문화사랑모임'이 중심이 되어 망진산 봉화제를 올린 뒤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2,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6,500여 만 원의 성금을 모아 1996년 8월 15일,

이 자리에 망진산 봉수대를 건립하였다.

 

망진산 봉수대 건립은 민족 통일의 염원을 담아 이루어진 것으로

백두산 돌과 한라산 돌, 지리산 돌, 독도의 돌, 진주의 월아산 돌을 모아 기단에 심었고,

금강산 돌은 통일이 되는 날 가져다 심기로 계획하였다.

 

2022년 7월 망진산 봉수대가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려

진주시에서는 문화유산 지표조사와 정밀 발굴조사를 거쳐 임진왜란 전후

봉수 유구(遺構)의 위치를 망진산 정상부(KBS 송신탑 앞)로 확인하였다.

 

2025년 8월 기존 봉수대의 돌을 재활용하여 본래의 위치에 새 봉수대를 복원함으로써 

진주시민이 지켜온 문화유산을 계승한다는 상징성을 더했으며,

진주시민의 뜻이 담긴 기단의 돌은 현 위치에 그대로 두어,

'(사)진주문화사랑모임'이 시민과 함께 건립했던

망진산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진주 망진산 봉수대

 

진주 8경 중 제5경인 진주 망진산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적의 침략을 알렸던 통신수단으로 진주목사가 관장하였다.

조선 초기에 조성된 봉수로서 1895(고종 32)에 폐지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다.

보조 봉수로서 남해 금산, 사천 안점의 봉수를 받아 명석 광제산 봉수대로 전달하였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통일기원 전국봉화제재현운동의 일환으로

사단법인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 100년 만에 망진산 봉화제를 올렸다.

또한 복원을 위한 시민운동을 벌여 2천여 명의 진주 시민이 참여하여

65백여 만원의 성금을 모아 원래 위치인 방송탑 아래에 1996815일 복원했다.

 

진주 망진산 봉수대 복원은 통일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백두산 돌과 한라산 돌지리산 돌, 독도의 돌, 진주의 월아산 돌을 모아 기단에 두었고,

금강산 돌은 통일이 되는날 두기로 하였다.

 

1996년부터 진주삼일만세의거 재현행사 때 봉수제를 봉행해 왔으며,

지난 2018년 진주시에서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작이자 마지막일 통일의 봉홧불을!

 

기미년 삼월 일일

우리나라 산봉우리마다

때맞추어 봉홧불 활활 타올랐네

흰 옷 입은 사람들

가슴에 불을 놓아

삼천리 골골샅샅 독립만세 번져갔네

진주사람 카랑한 정신으로 감연히 일어섰네

걸인들도 기생들도 앞다투어 나섰네

 

진주를 굽어보며 진주를 지켜 주는

망진산 봉우리에 찰진 햇살 넘치네

진주의 풀, , 뭇벌레 한데 어우러지고 있네

고시랑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의 속말에는

에나 에나

정신 잘 챙겨서 올곧게 살라 하네

나를 버리고 모두를 세우라 하네

 

백두산 진달래 한라산 유채꽃

지리산 큰 달맞이

떠돌이 잡동사니 여기 다 모여라

두억시니 몽달이도 나오너라

우리 함께 봉홧불을 지피자

한때는 짝사랑, 그리움도 되었다가

지금은 전부요 숫제 통곡인

통일의 봉홧불을 지펴 올리자

사람은 사람끼리 살부비고 살아가게

살아서 끝끝내 꽃 치우는 우리의 역사

시작이자 마지막일 한 나라에 이르는

망진산 통일맞이 봉홧불을.

 

 

 

 

 

 

 

 

 

 

 

 

 

 

 

 

 

 

 

 

 

 

망진산 봉수대의 약사(略史)

 

가야인의 숨결이 서린 땅, 수많은 성이 흙담처럼 무너져 내리던 임란에

진주의 횃불은 꺼질 줄 몰라 온 조선을 공그어 받치던 곳이었어라.

그러나 뉘 알았으랴.

나약한 왕권 아래 외침을 알리던 진주의 망진산 봉수대 불 꺼지고,

일제의 병탄 아래 봉수대 깡그리 무너지고,

못난 정치의 시대 전도된 역사의식은 망진산 봉수대를 역사의 뒤뜰에다 매몰시킨 채

망각의 세월이 어언 100년을 헤아리게 될 줄이야.

그래도 진주는 역시 진주 아니던가.

한줄기 맑은 샘물처럼, 한줄기 맑은 바람처럼, 한줄기 밝은 햇살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어

건너뛴 세월의 뒤안에 파묻힌 망진산 봉수대의 역사적 사실을 파내어

흙을 털고 때를 벗기어 이곳에 다시 세우게 되었으니,

망진산 봉수대의 그 역사와 복원의 과정을 여기 적는다.

 

일반적으로 봉수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시대부터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세종 4(1422)에는 봉수제도가 정비되어 5등급,

5개의 직봉노선을 거쳐 한양의 목멱산(남산)으로 연결시켜 운용하였다.

진주의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시대에 돌과 흙을 섞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며,

위에 말한 5개 직봉노선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목멱산에 이르는

2노선의 보조노선(간봉)으로서 남해 금산, 사천 안점의 봉수를 받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 봉수로 이어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1895년 전국의 봉수제를 폐지하면서 망진산 봉수대도 기능을 잃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항쟁과 19193·1만세운동을 벌일 때

망진산 봉수대를 사용한 것으로 전하며,

그 뒤 일제는 전국의 봉수대를 파괴하거나 훼손하여 역사적 사실을 파묻었고,

우리 민족 또한 망각의 세월을 살았다.

 

그러다가 광복 50년인 1995년 통일기원 전국봉화제의 일환으로

진주문화사랑모임을 비롯한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망진산 봉화제를 올렸고,

다시 망진산 봉수대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운동을 펼쳐 봉수대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2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65백여 만 원(1구좌 5천 원)의 성금을 모았으며,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감수와 고증을 거쳐 봉수대 모형을 확정지어 다시 세우게 되었다.

망진산 봉수대 복원이 갖는 의미는

우리 진주 사람들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달구어 벼르는 일이며,

새로운 진주의 역사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또 애초에 망진산 봉수대 복원은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고 이루어진 것이므로,

백두산 돌과 한라산 돌, 지리산 돌, 독도의 돌, 진주 월아산 돌을 모아 기단에 심었고,

금강산 돌은 통일이 되는 그날 가져다 심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망진산 봉수대는 우리 진주 사람들의 통일염원을 담은 소도이며,

역사인식의 가늠대이며, 문화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1996814

진주문화사랑모임망진산봉수대복원추진위원회

자료사진(2012.2.6.)

 

자료사진(2012.11.2.)

 

자료사진(2017.5.25.)

 

 

 

진주 망진산 봉수대, 집중호우로 복원 26년 만에 다시 붕괴

 

조선 초 군사통신시설로 사용된 경남 진주 망진산 봉수대가

전날 내린 집중호우로 2022년 7월 19일 새벽에 무너져 내렸다.

진주시에 따르면 지난 17일과 18일 사이

진주지역에 평균 191㎜의 비가 내리면서 망진산 봉수대가 붕괴됐다.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 초에 만들어져 1895년(고종 32년) 전국의 봉수제를 폐지할 때까지,

수백년 동안 우리나라 전통적인 통신수단 기능을 가져 민중의 소리를 나타내기도 했다.

당시 남해 금산에서 시작한 봉수를 받아 북쪽으로 신호를 보냈으며,

지난 1894년 동학농민항쟁때도, 1919년 3.1운동때도 사용해 역사적인 의미도 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전국에 있던 봉수대를 없애버리면서 흙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망진산 봉수대가 원모습을 되찾은 것은 지난 1996년 광복절이다.

지난 1995년 진주정신을 내세운 봉사단체인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

‘통일기원 망진산 봉수제’ 명목으로 시민운동을 펼치면서 봉수대가 복원됐다.

시민운동을 벌인 지 석달 만에 2,000여 명이 참여해 6,800여 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감수와 고증을 거쳐 1996년 2월 26일 공사를 시작해

그해 광복절에 완성한 게 지금 있는 봉수대 모습이다.

 

망진산 봉수대는 백두산 돌과 지리산 돌, 한라산 돌,

진주를 상징하는 월아산 돌과 독도에서 주춧돌을 채석해 건립됐다.

1996년 8월 16일 망진산 봉수대 복원 준공식과 함께

광복 51주년 통일기원 망진산 봉화제가 열렸다.

일제에 의해 허물어진 지 77년 만에 복원됐다.

현재 이곳 망진산 정상에는 첨단통신시설 중계탑인

진주MBC의 망진산 송신소와 진주KBS의 망진산 중계소가 설치돼 있다.

 

시 관계자는 "이번에 무너진 봉수대는

그동안 붕괴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복원계획을 세우는 등 관심 대상이었다."며,

"이번에 내린 집중호우로 봉수대가 무너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봉수대 복원을 위해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감수와 고증 등을 거쳐 새롭게 건립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2022.7.19. 뉴시스 정경수 기자)

자료사진(2024.8.22.)

 

 

 

 

 

 

 

 

 

진주 망진산 봉수대 100여 년 만에 원형 복원

지난 2022년 집중호우로 파손되면서 복원 공사에 들어간

진주시 망진산 봉수대가 조선시대 당시 위치에서 원형으로 복원됐다.

9월 2일 진주시에 따르면 경남도 기념물 ‘진주 망진산 봉수대’가

복원 공사를 마치고 9월 1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

조규일 진주시장과 진주시의회 의원, 진주문화사랑모임 회원 등은 9월 1일

봉수대를 찾아 복원 현장을 점검하고 역사적 가치 계승과 문화유산 보존 의미를 되새겼다.

 

진주 망진산 봉수대 복원은 극적인 과정을 거쳤다.

진주 8경 중 제5경인 망진산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적의 침략을 알리는 통신수단이다.

조선시대 제2직봉의 간봉 9선 중 내지봉수의 시작점으로서

남해군 금산·사천시 안점의 봉수를 받아 진주시 광제산 봉수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1894년 동학농민항쟁과 1919년 3·1운동 때도 사용해 역사적인 의미도 적지 않다.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 초기에 조성돼 후기인 1895년(고종 32)까지 운영됐는데,

일제강점기 때 완전히 훼손됐다.

봉수대가 다시 모습을 되찾은 건 약 80년 뒤다.

지난 1995년 사단법인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 100년 만에 망진산 봉화제를 올렸으며,

모금 운동을 통해 이듬해 1996년 8월 15일 망진산 봉수대를 복원했다.

당시 진주 시민 2,000여 명이 동참해 6,500여 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특히 통일 염원을 담아 백두산 돌과 한라산 돌, 지리산 돌, 독도의 돌,

진주의 월아산 돌을 모아 기단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망진산 봉수대는 원래 위치에 대한 발굴 조사나

고증 등을 거치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지는 못했다.

특히 원래 5기의 봉수가 있었지만 복원된 건 단 1기에 불과했다.

여기에 기껏 복원한 1기도 2022년 7월 집중호우 때

하단부가 무너져 내리는 등 또다시 부침을 겪었다.

이에 진주시는 봉수대의 복원을 위해 고지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 파악에 나섰고,

이에 기초해 유적 시굴 조사를 벌였다.

이어 현장에서 봉수대 연대(煙臺)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를 포함한 유구(遺構)를 확인했고,

11억 원을 투입해 원형 정비·복원 계획 수립하고 지난해 11월 착공하여

올해 8월 말 완공했다.

특히 발굴 조사 결과, 봉수 시설물들이 양호하고 조선시대 봉수 구조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학술적 자료로 확인됨에 따라 지난해 5월 9일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되는 경사도 맞았다.

 

진주시는 정밀한 복원을 위해 봉수대 시범시축에 나섰으며,

지난 7월 문화재 자문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시축을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도 거쳤다.

한 자문위원은 “조선시대 5개 연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봉수가

전국 600여 개 가운데 하나도 없다.

그렇다 보니 문헌 기록을 통해서 복원할 수밖에 없었다.

시범시축을 하다 보니 고증된 설계보다 봉수대 규모가 컸다.

또한 인위적인 느낌도 굉장히 강하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시범시축을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을 통해 최대한 당시 모습을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복원 사업을 통해 봉수대는 역사적 원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망경비거 테마공원과 전통문화체험관을 연계한 새로운 관광자원 확충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규일 시장은 “망진산 봉수대는 단순한 복원이 아닌,

진주 시민이 함께 세워진 봉수대가 마침내 제자리를 되찾은 뜻깊은 성과”라면서,

“앞으로도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을 통해 미래 세대에 진주의 가치를 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5.9.2. 부산일보 김현우 기자)

진주 망진산 봉수대

진주 망진산봉수대는 망진산의 정상 부분에 있다.

이곳은 해발 고도가 높지 않지만 조망권이 탁월하여

봉수대의 입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까지 잇는

제2거 직봉 노선에 부속된 간봉 9선의 다섯 번째 봉수이다.

 

이 봉수 노선은 처음에는 사천 성황당 봉수 -진주 망진산 봉수 -

진주 광제산 봉수로 이어지는 노선이었으나,

얼마 후 사천 안현산(안점산) 봉수 - 진주 망진산 봉수 -

진주 광제산 봉수로 이어지는 노선으로 변경되었다.

봉수가 있는 망진산은 당시 진주의 정치 · 행정 · 군사적 중심지였던

진주성과 인접하여 진주성의 권설봉수 기능을 병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주 망진산 봉수대의 발굴 조사 결과,

봉수대로 추정되는 연조(煙竈)와 기단(基壇)이 확인되어

202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권설봉수(權設烽燧): 조선 후기에 군사적으로 중요하였던 영진(營鎭)에 자체적으로

                                                           설치하여 본읍(本邑)으로 연락하도록 운영한 봉수

봉수대 이야기

원래 망진산 봉수는 망진산 정상에 있었으나,

방송 송신탑 때문에 그 아래쪽에 복원하였다.

1995년에 광복 50주년을 맞아 통일기원 전국 봉화제의 일환으로

사단법인 진주문화사랑모임이 중심이 되어  망진산 봉화제를 올린 뒤,

복원을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2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6,500여 만 원의 성금을 모아

1996년 8월 15일에 복원했다.

이때 복원된 망진산 봉수대는 진주 8경의 하나로 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였다. 

2025년에 발굴 조사를 통해 본래 위치에 봉수대를 복원하면서 해체되었으나,

망진산 봉수대에 대한 시민들의 염원을 기억하고자 그 내력을 여기에 적는다.

 

 

 

 

 

 

 

 

 

 

 

 

 

 

 

 

 

 

 

 

 

 

 

 

 

 

 

 

 

 

옛 망진산 봉수대 앞에 위치한 신공현수송공비(申公鉉壽頌功碑)

 

신현수 선생 송공비 이전건립기

이 비(碑)는 1932년 당시 천전리(川前里, 현 망경동 일대) 사람들에게

교육을 장려하고 국민계몽운동에 앞장선 신현수 선생(1893~1961)의 공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섭천못(현 망경초등학교 자리) 주변에 세워졌다.

지역개발로 인하여 섭천못이 매립되는 바람에 비석은 몇 차례 옮겨졌다가

방치되었던 것을 2003년 5월 28일 진주시의 의뢰를 받아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 신현수 선생이 교육의 불을 지폈던 망경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옮겨와 새롭게 단장하여 세운다.

 

2005년 6월 10일

진주문화사랑모임 회장 리영달

신현수선생송공비이전추진위원장 조원섭

功孰爲大(공숙위대무슨 공이 크다고 하겠는가

牖沌見識(유돈견식) 어리석음 깨우쳐 지식 갖추게 했네

朝作暮學(조작모학아침에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는데

勞心竭力(로심갈력)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힘을 다하니

川中女男(천중여남천전마을 사람들 

日進明域(일진명역) 날로 문명 속으로 나아가네

衆口成碑(중구성비) 여러 사람 뜻 모아 비 만들어 

銘詩鐫刻(명시전각시를 기록하고 새기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