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날짜 : 2025.10.19.(일요일)
* 날 씨 : 구름 많음
* 산 행 지 : 산성교삼거리 - 옥천계곡 - 남문 - 배바위 - 화왕산 - 동문 -
옥천삼거리 - 관룡산 - 용선대 - 관룡사 - 산성교삼거리
* 산행거리 : 10.3km
* 산행시간 : 6시간 40분(운행시간 4시간 00분 + 휴식시간 2시간 40분)
* 산행속도 : 보통걸음
* 산행인원 : 8명(황의봉, 이영근, 유달수, 이완희, 김상준, 김태현, 손영천, 조광래)
* 산행일정
09:42 산성교삼거리
10:06 큰바위 얼굴
10:22 - 10:40 옥천1등산로 1-3 지점
11:02 - 11:05 비스듬한 바위지대
11:17 - 11:25 화왕산성 남문
11:39 - 11:48 배바위(742m)
11:55 - 12:40 화왕산성 서문 부근 성곽(점심)
12:43 화왕산성 서문(환장고개)
12:57 화왕산 정상(757.7m)
13:03 - 13:07 거북바위 봉우리
13:30 - 13:36 화왕산성 동문
13:47 허준세트장(화왕산 진달래 군락지)
14:03 - 14:06 옥천삼거리(청간재, 622m)
14:16 690.7m봉
14:28 - 14:43 관룡산(753.6m)
15:19 - 15:24 용선대 전망대
15:26 - 15:42 용선대
15:53 - 16:01 관룡사
16:11 관룡사 일주문
16:22 산성교삼거리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1394번지에 위치한 산성교삼거리,
옥천계곡을 경유하는 옥천1등산로(계곡길: 옥천주차장-화왕산, 5.6km 또는 5.9km)와
관룡사를 경유하는 옥천2등산로(청룡암: 옥천주차장-화왕산 정상, 5.6km) 및
옥천3등산로(용선대: 옥천주차장-화왕산 정상, 6km)가 나뉘는 곳으로,
산성교 앞에는 화장실과 바로 아랜 옥천1등산로 입구 주차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관룡사 1.2km와 1등산로 정상 5.3km를 가리키는데,
등산안내도를 보니 옥천등산로 기점인 옥천매표소주차장과는 0.57km라 하는 걸,
산성교 삼거리에서 옥천계곡으로 들어가 화왕산성 남문으로 올라,
배바위-화왕산 정상-동문-옥천삼거리(청간재)-관룡산-용선대를 거쳐,
관룡사로 내려서서 산성교 삼거리로 돌아오는 진주교정산악회 제104차 산행,
8명의 회원들이 일행이 되어 발을 맞추면서 출발!!!









옥천계곡







옥천1등산로 1-2지점,
옥천매표소 1.3km · 1등산로 정상 4.6km를 가리키는데,
옥천삼거리 쪽으로 경유하는 거리인 듯하고

큰바위 얼굴

큰바위 얼굴
2013년 화왕산 옥천계곡에서 '여인의 얼굴을 닮은 바윗돌'이
한 등산객의 선몽(창녕으로 가라는 꿈)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바위는 계곡에 반듯하게 누워 머리를 풀고
하늘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2003년 태풍(매미)이 옥천계곡을 강타하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바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화왕산 기지국


옥천1등산로 1-3 지점,
옥천1등산로는 콘크리트 포장임도를 따라 올라가야 하지만,
이정표 바로 위 화왕산 일야봉산장 입간판 뒤로 남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열리며,
옥천매표소 2.4km · 1등산로 정상 3.2km를 가리키는데,
1등산로 정상은 옥천삼거리 쪽으로 가면 3.5km요,
남문을 경유하면 1등산로 정상은 3.2km가 아닐까?
막걸리와 간식으로 목을 좀 축이고 남문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화왕산성 남문으로 출발



옥천1등산로 1-4 지점,
옥천매표소 2.8km · 남문 0.7km를 가리키고






보아하니 송이버섯 채취 지역인 듯하고


비스듬한 바위지대







화왕산성 남문 아래 남문-허준세트장 갈림길의 낡은 이정표,
화왕산 정상 0.7km · 허준세트장 0.7km를 가리키고

남문 바로 등산로는 수풀이 우거져 길이 거의 사라졌는데,
잡목과 넝쿨을 헤집으며 꽤나 어렵사리 남문으로 올라가고

화왕산성 남문,
배바위 0.4km · 동문 0.15km를 가리키고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
창녕 화왕산성은 화왕산(해발 756m)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화왕산선은 둘레가 2.7km에 이른다.
현재 성벽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가 남아 있다.
화왕산성은 비화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근거지로 삼아 큰 전공을 세운 곳이기 하다.
화왕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창녕의 진산으로 소개되어 있다.
아울러 집수지에서 제사와 관련된 철제 무기와 용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제 인형,
동물 뼈 등이 발견되 것으로 보아 창녕 지역의 제의를 담당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화왕산성은 예로부터 창녕을 수호하는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실체가 남아 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 태뫼식 산성: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
* 집수지(集水地): 성내(城內) 군사들의 식수와 방화수로 사용하기 위해 물을 모아 두는
시설물
* 진산(鎭山): 한 마을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





















관룡산과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배바위,
화왕산 정상 0.75km · 동문 0.6km · 1등산로 입구 2.0km 를 가리키고

배바위 설화
배바위 설화는 온 세상이 물난리로 물에 잠겼을 때,
이 바위에 배를 묶었다고 하여 배바위라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또한 배바위 위에 움푹 들어간 홈이 있는데,
이는 전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 물로 세수를 하여 곽재우 세숫대야라 합니다.


2009년 2월 9일(음력 정월 대보름) 오후 6시 15분경
화왕산 정상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하던 중,
해발 742m 높이에 있는 배바위 근처에서 갑자기 역풍이 일어,
불길이 방화선을 넘고 관람객 쪽으로 번져 관람객들이 불길에 휩싸이거나 도망가다,
절벽에서 밀려 떨어지는 등 7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당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는




자료사진

자료사진

자료사진

자료사진

창녕읍

곰바위


곰바위
그 옛날 화왕산 아랫마을에 사나운 곰 한 마리가 나타나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이름난 포수를 찾아가 곰을 잡아 줄 것을 요구했고,
곰은 포수에게 쫓기게 되었다.
화왕산 정상으로 달아난 곰은 숨을 곳을 찾았지만, 주변은 온통 억새뿐 숨을 곳이 없었다.
뒤따라온 포수를 발견한 곰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바위로 변해 버렸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곰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창녕 화왕산 소방통신중계소(산불감시카메라)와 그 뒤로 이어지는 비들재능선

화왕산의 날개 비들재 암릉길
산의 긴 능선이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비둘기재라 한것이 줄어 비들재로 되었다고 한다.
전언에는 산의 봉우리가 닭의 볏처럼 쭈뼛쭈뼛하게 생겼다 하여
'벼슬(볏)→비슬→비들'로 변하여 비들재가 되었다고도 하는데,
'볏' 을 지역 방언으로 벼슬 혹은 비슬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비들재 주변으로 배바위, 장군봉, 벽바위 등 기암괴봉과 깎아지른 낭떠러지 암반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형상을 달리하여 자연이 준 천연의 바위조각공원이라 할 것이다.
이름 없는 천연의 자연작품들에 이름을 붙여 보면 또 다른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문과 화왕산 정상 쪽으로 내려가고




서문(환장고개)과 가까운 성벽,
점심을 먹고 서문을 경유하여 화왕산 정상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화왕산성 서문(환장고개),
창녕 조씨 득성설화지(용지) 경유 남문 갈림길이기도 하며,
배바위 0.45km · 동문 0.4km · 화왕산 정상 0.3km · 2등산로입구 1.0km를 가리키고




창녕조씨득성지지(昌寧曺氏 得姓之地)
이 비는 1897년(고종 34년, 광무원년) 정유(丁酉) 6월,
당시 경상남도 관찰사(慶尙南道 官察使)이던 조시영(曺始永,1843~1912)이
창녕 조씨 시조 태사공 조계룡(曺繼龍)을 낳게 한 화왕산정 용지(龍池) 동쪽인
산성 동문(東門) 근처 자연석(2.5m×1.46m)에 170cm×56cm의 구획을 정해 다듬어 내,
그 안에 창녕조씨 득성지지(昌寧曺氏得姓之地)라 음각하여 세웠다.
주제 시영, 창역 성환(主題 始永, 刱役 成煥)
창녕조씨득성지지(昌寧曺氏得姓之地)
정유 육월 일 김산파각(丁酉 六月 日 金山波刻)

창녕조씨득성설화지(昌寧曺氏 得姓 說話址)
창녕 조씨 득성 설화지는 창녕 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곳이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연못인 용지 3곳과 득성비 1기가 있다.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사 이광옥에게는 딸 예향이 있었는데,
16세에 '청룡병'이라는 병에 걸려 배가 부어올라 고생을 하여 온갖 정성을 쏟아도
낫지 않았다.
하루는 비범한 사람이 와서 화왕산의 용담에 가서 기도를 하고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했다.
이광옥이 딸을 데리고가 기도를 하는데,
하늘이 흐려지며 용담에서 큰 용이 나와 예향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하늘이 맑아지고 예향이 물속에서 나왔는데,
이 후 태기가 있어 아기를 낳았다.
꿈에 그 아이는 장차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
아들은 커서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있었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불러다가 "조(曺)'를 성으로 하사하고,
용의 후손이라는 뜻의 '계룡(繼龍)'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니,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되었다.
득성비는 고종 34년(1897)에 조선말기의 문신인 조시영(曺始永)이
경상남도 관찰사로 왔을 때 세운 것으로, '창녕 조씨의 성이 비롯된 곳
(昌寧曺氏 得姓之地)'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득성비: 성을 얻게된 사연을 기록한 비석

용지(龍池)
화왕산 정상에는 9개의 못과 3개의 샘이 있었는데,
가운데 못이 가장 크며 이것이 바로 용지(龍池)이며,
세월이 흘러 차츰 매몰되고 황폐하여 형체조차 없어지는 것 같더니,
1958년 초에 호남 사는 종인(宗人) 병의(秉儀) 씨가 막대한 사재(私財)를 들여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3개의 못을 개수하여 완축(完築)하였다.
1990년 초에는 창녕 조씨 대종회에서 다시 못을 개수하고 못 주위에 철책을 둘렀다.




소원바위

소원바위
소원바위는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있는 것이 연인과 같아
연인이 소원을 빌면 그 사랑이 영원히 이루어진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그 옆 친구 바위도 인연을 기다리나 봅니다. 소원을 빌어보세요.

미소바위

미소바위
이 바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올라간 사람의 얼굴 형상을 닮았습니다.
바위를 보며 모든 시름 내려놓고 웃어 보세요.



위에서 본 미소바위


미소바위
지금 미소바위 위에 있습니다.
들어가지 마시고 웃고 가세요.
뷰포인트로 가시면 절로 웃음이 나와요.



화왕산 정상 부근 이정표,
3등산로입구 1.55km · 동문 0.8km · 서문 0.3km를 가리키고





화왕산 정상,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산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
아예 인증 사진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자료사진으로 대신할 수밖에는,
정상석과 함께 삼각점(청도 28)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정상석엔 756.6m라 되어 있지만,
요즘 지도엔 그보다 1.1m가 높은 757.7m로 나오는 걸.

창녕의 기상 화왕산
화왕산(火旺山)은 경남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산 80-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757.7m의 산으로,
1984년 1월 11일 창녕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또한 화왕산 옆의 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 (昌寧 觀龍山 觀龍寺 一圓)은
2023년 12월 28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옛적 화왕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 또는 큰불뫼'라 하였으며,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낙동강 하류지역에 솟아 있어 실제보다 우뚝하게 보인다.
억새와 진달래 군락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정상 부근에 약 5만여 평의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루며,
매년 10월 초에는 화왕산 갈대제(억새제)가 열린다.
600m 지대에는 화왕산성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있던 성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의 분전지로 알려져 있다.
화왕산성의 동문에서 남문터로 내려가는 길 잡초더미 사이에
분화구이자 창녕 조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삼지(三池)인 용지(龍池)가 있다.
관룡산 아래 관룡사의 용선대에는 보물 제295호인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이 있다.
산 정상의 서쪽 아래에는 조선 선조 이후에 축성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목마산성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 말흘리에서는 진흥왕의 척경비가 발견되었다.
남쪽 사면에는 옥천사가 있다.

화왕산 정상과 쌍벽을 이루는 거북바위 봉우리,
장수바위라 일컫는 거북바위가 자리 잡고 있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화왕산 정상

거북바위

거북바위(장수바위)
이 바위는 생김새가 거북 형상으로, 예로부터 거북이는 장수와 다산을 상징합니다.
거북바위가 창녕을 향해 내려가는 것이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화왕산을 찾는 모든 분들, 거북바위를 보며 무병장수를 기원해 보세요,

화왕산 정상과 쌍벽을 이루는 거북바위 봉우리(자료사진)

거북바위 봉우리에서 바라본 화왕산 정상








거북바위 봉우리 남쪽 사면에 위치한 걱정바위

걱정바위
이 바위는 근심하는 사람의 형상을 닮아 걱정바위라 불리어집니다.
모든 근심, 걱정 이곳에 털어버리고 가세요.








용지와 배바위 일대


국가지점번호 라마 9394 2842 지점(둘레길정상 6),
화왕산 정상 0.5km · 천문관측소 0.9km · 배바위(동문) 0.8km를 가리키고








화왕산성 동문,
관룡산과 용선대를 경유하여 관룡사로 내려가고자 옥천삼거리로 가는데,
화왕산 정상 0.9km · 서문 0.4km · 배바위(남문) 0.6km · 옥천1등산로입구(허준세트장) 5.2km를 가리키고



















허준세트장,
허준 외에도 대장금, 왕초, 상도, 조폭마누라, 영웅시대,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각종 드라마 및 영화의 촬영지이고


화왕산 진달래 군락지






산길을 따라 옥천삼거리(청간재)로 이어지는 화왕지맥 갈림길인 듯하고

연리목(?),
소나무와 참나무가 딱 붙어 사이좋게 뒤엉켜 있는 걸.

옥천삼거리(청간재),
왼쪽의 포장임도 따라 내려가면 화왕산자연휴양림이요,
오른쪽의 포장임도 따라 내려가면 옥천주차장이고,
관룡산은 육각정을 지나 화왕지맥 산줄기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1등산로(옥천매표소) 3.7km · 관룡사 2.4km · 화왕산 정상 2.2km ·
박월산 6.4km를 가리키고


자료사진






690.7m봉,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꾼 준 · 희님의 표찰이 걸려 있고

관룡산 정상까지 은근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관룡산 삼거리,
구룡산(740.0m)과 용선대 경유 관룡사 갈림길로,
화왕지맥 구룡산은 청룡암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걸,
용선대 1.2km 쪽으로 20m 남짓 올라가면 헬기장과 관룡산 정상석이 있으며,
용선대 1.2km · 화왕산 정상 3.2km · 청룡암 0.6km를 가리키고





관룡산 정상,
화왕산(757.7m)과 높이가 엇비슷한 753.6m(정상석 754m)이지만,
사방이 수풀에 가려 조망이라곤 열리질 않아 답답한 느낌이라고나?
눈요기야 화왕산 일대에서 실컷 했다만

관룡산 헬기장,
관리를 하지 않아 그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이는데,
산을 다니다 보면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군데라던가?
다 필요에 의해서 조성했을 텐데







용선대로 내려가는 길,
꽤나 가파른 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일행 가운데 노약자(?)들이 제법 많기에,
일부러 등산 아닌 하산 코스로 골라잡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나?




첫 번째 전망대

관룡사 일대가 살짝 보이기도 하고



두 번째 전망대


병풍바위




국가지점번호 라마 9519 2707 지점,
관룡사 0.8km · 화왕산 정상 3.6km를 가리키는데,
관룡산 삼거리 이정표(용선대 1.2km · 화왕산 정상 3.2km)로 미루어 봤을 땐
관룡사 0.8km 아닌 용선대 0.8km가 맞을 듯?






용선대 전망대,
용선대가 바로 코앞에 들어오는 걸.




용선대 삼거리,
용선대 0.02km · 화왕산 정상 4.52km · 관룡사 0.5km를 가리키고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용선대는 관룡사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용선대에 자리한 불상이다.
연꽃을 형상화한 대좌(臺座) 위에 모셔져 있으며,
원래는 불상 뒤에 광배(光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머리카락은 작은 소라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네모반듯한 얼굴과 넓은 어깨, 묵직한 체구와 연꽃 모양의 대좌를
3단으로 올린 모습 등을 보면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으나,
통일신라 석불좌상에서 흔히 볼수 있는 양다리 사이의 부채꼴 주름이 없어 독특하다.
1973년 대좌를 수리하면서 불상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경주 석굴암 석굴의 본존불이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처럼
불상이 동짓날에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도록 했다.
* 대좌(臺座): 부처나 보살 등을 올려놓는 받침
* 광배(光背):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장식
* 육계(肉髻): 원래 인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했으며.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함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불상이 1.87m요 대좌는 1.57m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최근 대좌에서 발견된 명문에는 722~731년 사이 조성되었다는 걸.



용선대 전망대

모습을 드러내는 화왕산


병풍바위























다시 돌아온 용선대 삼거리,
이제 관룡사로 내려가고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292(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에 위치한 관룡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 8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고 하며,
<관룡사 사기, 觀龍寺 寺記>에 의하면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추가 기록이 없어 보통 583년을 창건으로 삼는다.
583년(진평왕 5년) 증법(證法)이 중창하였으며,
748년(경덕왕 7년) 추담(秋潭)이 중건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元曉)가 제자 송파(松坡)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릴 때,
오색채운(五色彩雲)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 화왕산으로부터 9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은 관룡사, 산 이름은 구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자료사진



창녕 관룡사 명부전(昌寧 觀龍寺 冥府殿)

창녕 관룡사 명부전 목조지상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창녕 관룡사 명부전 목조지상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昌寧 觀龍寺 冥府殿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창녕 관룡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관룡사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조선시대 불상들이다.
명부전은 절에서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시왕전 또는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관룡사 명부전에는 가운데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 무독귀왕과 오른쪽에 도명존자 등 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그 양측으로 시왕상과 판관상, 귀왕상, 인왕상 등 총 17구의 조각상이 있다.
관룡사 명부전의 지장시왕상과 권속(眷屬)은 몸이 길고 얼굴이 둥글며,
옷주름 표현이 간력한 것이 특징이다.
관룡사 명부전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제8평등대왕의 복장물로 후령통과 <묘법연화경>1권, 발원문 등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조선 효종 3년(1652) 9명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되었음이 밝혀져
17세기 명부전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권속(眷屬): 부처나 보살을 따르며 도를 배우는 수행자들
* 복장물(腹藏物): 불상을 모실 때 값진 물건이나 책 등을 함께 넣어 두는 물건
* 후령통(候鈴筒): 복장물을 넣는 통

창녕 관룡사 대웅전(昌寧 觀龍寺 大雄殿)

창녕 관룡사 대웅전(昌寧 觀龍寺 大雄殿)
대웅전은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는 건물이지만,
창녕 관룡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양옆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함께 모시고 있다.
1965년 대웅전 보수 공사를 하면서 건물을 지을 당시의 연혁이 기록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태종 1년(1401)에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세우고,
영조 25년(1749)에 세 번째로 다시 지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붕은 옆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 구조인 포(包)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운데 부분을 한 층 놓게 한 점이 특징이다.
나무를 다듬은 기법과 공포(栱包)를 구성하는 방식 등에서는
조선 초기와 중기에 해당하는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불단을 한 단 높인 점 등은 조선 중기 이후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조선 전기와 중기 이후의 건축 기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으로 평가된다.
* 공포(栱包):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지의 전통 목조 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부재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昌寧 觀龍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臺座)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좌대(昌寧 觀龍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臺座)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중앙의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왼쪽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오른쪽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로 구성된 불상이다.
중앙의 본존상에 비해 양쪽의 협시상(脇侍像)을 작게 만드는
조선 후기 삼존상의 일반적 특징을 따르고 있다.
본존인 석가여래불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에는
'숭정(崇楨) 2년(1629) 기사(己巳) 10월에 불상 조성을 시작해서
그 다음해 5월에 완성하였고,
현진, 승일, 천민. 수영 등 8명의 승려가 참여했다.'는 글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불상을 만든 사람과 시기를 알 수 있으며,
17세기 조각승들의 사승(師承) 관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 약사여래(藥師如來): 중생의 질병을 고쳐 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보살
*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로 아미타불이라고도 함
* 협시상(脇侍像): 본존인 석가여래불을 옆에서 모시는 불상
* 대좌(臺座): 부처나 보살 등을 올려놓는 받침
* 사승(師承): 제자가 스승에게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배워서 이어받는 것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昌寧 觀龍寺 大雄殿 觀音菩薩 壁畵)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昌寧 觀龍寺 大雄殿 觀音菩薩 壁畵)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는 선지식을 구하러 온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음보살을 그린 벽화(수월관음보살도)이다.
대웅전 불상 뒤로 세운 벽면에 세로와 가로의 크기가 각 4m, 3m가 넘는 화면을 만들어
벽면 전체에 관음보살을 큼직하게 그려 부각시켰고,
벽면의 왼쪽 아래에 작게 묘사된 선재동자는 합장을 하고 서 있다.
벽화는 좌우로 넓게 퍼진 보관과 화려한 영락, 수묵으로 그린 바위와 대나무,
버들가지가 꽂힌 목이 긴 물병, 정면을 바라보는 유희좌 등
조선 후기 18세기 수월관음보살도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보타락가산을 표현하면서 바위 주변 해수면을 표현하지 않은 점은
다른 관음보살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다.
창녕 관음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와 같이 법당 불단 뒤쪽 벽에 그려진
조선 후기 관음보살도는 국내에 10여 점밖에 남아 있지 않아
매우 드물고 귀한 국가유산이다.
* 선지식(善知識): 지혜와 덕망이 있고 사람들을 교화할 만한 능력이 있는 승려
* 보관(寶冠): 보석으로 장식된 관, 특히 불상의 머리 위에 얹는 관
*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서 만든 장신구
* 유희좌(遊戲坐): 한쪽 다리는 세우고 다른 한쪽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려뜨린 자세
*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 인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떠 있다는 상상의 산으로.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산


창녕 관룡사 약사전(昌寧 觀龍寺 藥師殿)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건물이다.
창녕 관룡사 약사전은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과 처마를 받치고 있는 기둥 위에 아주 간결한 장식만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순천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이
기둥 장식을 이와 비슷하게 했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어
건물에 안정감을 준다.
이 약사전은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물로,
규모가 작은데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石造如來坐像)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은 관룡사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생의 병을 고쳐 주는 약사여래불로 짐작되므로,
원래는 왼손 위에 약그릇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불상에는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이 드러난다.
몸은 크지 않지만 얼굴은 둔탁하고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붙어 있다.
목은 짧으며 무릎은 높고, 폭이 좁아 웅크린 듯 자세가 부자연스럽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인 중대석에 '대력(大曆) 7년 임자(壬子, 772) 4월에
미륵불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좌는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측한다.
그런데 현재 대좌 위에는 미륵불이 아니라 약사불이 모셔져 있어
대좌와 불상이 각가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처음 만들었던 미륵불이 파괴되자,
이후 고려시대에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본 따
불상만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인다.
* 대좌(臺座): 부처나 보살 등을 올려놓는 받침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昌寧 觀龍寺 藥師殿 三層 石塔)
석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로 유골이 없어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곳으로 여겨진다.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 석탑은 이단으로 된 바닥돌,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층 바닥돌은 2매, 위층 바닥돌은 면석(面石)과 덮개돌을 각 1매씩 사용하는 등
간략화되어 있다.
지붕돌과 몸돌을 한 돌로 처리하거나
지붕돌 받침 수를 5단에서 3단으로 줄이는 등 고려 전기 석탑의 양식을 보인다.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 석탑은 정면에 위치한
소형 약사전의 규모에 맞는 소형 석탑의 단아한 양식을 지닌 탑으로 평가된다.
탑의 아래층 바닥돌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코끼리의 두 눈을 형상화한 안상(眼象)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3단의 자연석을 쌓아 올려 약사전 기단과 높이를 맞추었으나,
원래 자연 암반 위에 세운 탑으로 자연 암반을 그대로 석탑의 바닥에 이용한 것은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면석(面石): 바닥돌부의 네 면을 이루는 벽체부분
* 안상(眼象): 불꽃과 연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무늬




창녕 관룡사 원음각(昌寧 觀龍寺 圓音閣)
관룡사 원음각은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지은 누각 건물이다.
불교 용품을 보관하거나 설법을 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현재는 누각의 남쪽과 동쪽에 문을 달고,
서쪽은 벽을 대어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관룡사 원음각을 지을 당시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상량문에 의하면
인조 12년(1634)에 처음 지었으며, 숙종 30년(1704) 가을에 큰비가 내려 산사태가 나
훼손된 것을 영조 39년(1763)에 고쳐 지었고, 순조 30년(1830)에 한 차례 더 고쳐 지었다.
원음각은 2층 건물로 1층은 양 옆으로 방을 두고 중앙을 통해
대웅전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1층에서 오르는 계단에 축대를 쌓아 원음각 동쪽 계단을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은 바닥을 우물 정(井)자 형태로 짠 우물마루이며,
바닥 높이가 대웅전 앞마당과 같아 마당에서 출입하기가 쉽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누각은 주불전과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지어지는데,
이 건물은 약간 서쪽으로 기운 것이 특징적이다.

창녕 관룡사 사적기(昌寧 觀龍寺 事跡記)
창녕 관룡사 사적기는 관룡사를 짓고 고친 과정 등을 모두 기록한 책이다.
관룡사 사적기는 1권의 책과 11장의 목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라 8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관룡사를 세운 유래와 연혁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관룡사 사적기는 영조 9년(1733) 평해군수 신유한(申維翰)이 승려 명학(明學)의
부탁을 받아 작성한 본문과 영조 10년(1734) 승려 명학이 작성한 발문,
사찰 내 전각과 부속 암자에 보관된 경전과 기물의 목록이 나열된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판 11장 가운데 1장은 사적기가 아니라 <불설상법멸의경, 佛說像法滅義經>으로,
이 경전은 영조 11년(1735)에 <관룡사사적기>를 판간할 때 같이 판각한 것으로 보인다.
창녕 관룡사 사적기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고치고 다시 짓는 과정에서부터
일을 맡은 승려와 소요된 비용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관룡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발문(跋文):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줄거리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기물(器物): 살림살이에 쓰는 그릇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관룡사
창녕현 동쪽에 높고 크며 숲이 빼어난 화왕산(火王山)이 있다.
이름을 화왕(火王)이라 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산 동쪽의 아름다운 곳에 관룡사라는 사찰이 있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화왕산 꼭대기에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이 있는데,
절을 창건할 때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 절의 이름을 관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지고
오직 약사전만이 그 화를 면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영운'이라는 고승은
약사전에 영험한 기운이 있어 화를 피했다고 여겨 약사전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들보 끝의 나무가 겹쳐진 곳에서 '永和五年己酉'(영화5년기유, 서기 349년)라는
글자를 발견하였다.
이때부터 관룡사에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설이 널리 퍼졌고,
관룡사는 많은 이들이 수행하고 기도하는 영험한 수행도량이 되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관룡사의 역사는 1,700여 년이 되니,
이 땅의 불교 역사와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관룡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신라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용선대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약사전(보물 제146호)과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 519호), 조선시대 건축과 불상의 전형인 대웅전(보물 제212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보물 제1730호),
관세음보살벽화(보물 제1816호) 등 많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다.
아름다운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계절을 장식하는 진달래와 억새 군락지의
길목에 있는 관룡사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보고이다.

관룡사 맨 위 주차장,
용선대 0.6km · 구룡삼거리 0.9km · 청룡암 0.7km를 가리키고


창녕 관룡사 석문(昌寧 觀龍寺 石門)
17세기 명부전과 칠성각과 함께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이 문은 자연석 축대를 쌓아 올려 상부를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화강암으로 지붕을 올린
폭 118㎝, 높이 210㎝에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조그마한 문이며,
좌우로 관룡사 가람을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석문이라고 한다.
석문 왼쪽 중간쯤에 '佛(불)'자가 새겨져 있는데,
'불국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일주문이 세워지기 전에는 일주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관룡사 석장승과 일주문

관룡사 석장승

창녕 관룡사 석장승(昌寧 觀龍寺 石長丞)
창녕 관룡사 석장승은 관룡사로 가는 길 양쪽에 서 있는 한 쌍의 돌 장승이다.
절 입구에 세워 절의 경계를 표시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아 불법을 지키며,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약의 조화를 나타낸다.
왼쪽이 남자 장승이고 오른쪽이 여자 장승이다.
장승의 몸에 아무런 기록이 없어 제작 시가나 구체적인 명칭은 알 수 없다.
두 장승 모두 커다란 눈과 주먹코, 송곳니가 나온 입 등 얼굴 모습이 과장되어 있다.
과장된 얼굴 묘사로 미루어 볼 때 전라도 지역의
조선시대 석장승과 유사하여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두 장승은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한 신앙물로서,
소박한 미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남장승의 높이는 224cm, 너비는 64cm이고,
여장승의 높이는 235cm, 너비는 52cm이다.

화왕산관룡사 일주문(火王山觀龍寺 一柱門)
관룡사 일주문은 최근(2023년)에 지어 '火王山觀龍寺'라는 편액을 달았는데,
관룡사가 있는 산은 관룡산이라고 알고 있거늘,
왜 화왕산이라는 편액을 걸었을까?
병풍바위가 있는 곳이 구룡산이고,
용선대가 있는 곳이 관룡산이며,
구룡산과 관룡산을 통틀어서 화왕산이라고 한다는 걸.
* 그전엔 화왕산(火王山)이라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 화왕산(火旺山)으로 변형되었다고 하는데,
관룡사에선 다시 화왕산(火王山)이라 표기하는 듯,
화왕산성 안내문에는 화왕산성(火旺山城)이라 되어 있더라만

관룡사 일주문 연기(緣起) 발원문
임진년 왜병의 침략으로 관룡사의 모든 전각들이
불에 타 사라진 지 어언 430년
삼보님께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죄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부처님 은혜에 한없는 참회 올립니다
늦었지만 뜻있는 사부대중의 원력을 다시 모아
복원할 수 인연이 주어져 조금의 위안을 삼아 봅니다
오늘 다시 건립되는 일주문의 힘있는 자태가
옛 신라 8대 사찰의 위용을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하여 이 공덕으로 인연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고 나아가 해탈과 성불로 이어지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불기 2567년(서기 2023년) 계묘년 부처님오신날
관룡사 주지 의산 정안 삼가 씀
증명(證明) 조계종 종정 영축총림 방장 중봉 성파(中峰 性坡)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청은 현덕(淸隱 玄德)
관룡사 주지 의산 정안(義山 正眼)



산성교 삼거리

산성교

산성교삼거리 아래 옥천1등산로 입구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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