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21.7.2.(토요일)
* 날 씨 : 흐리고 비
* 산 행지 : 금계마을 - 의중마을 - 용유담 - 세진대
* 산행거리 : 5.2km
* 산행시간 : 2시간(산행시간 1시간 35분 + 휴식시간 25분)
* 산행인원 : 10명(앵경, 쓰리고, 연하천, 바람소리, 신난다, 유비, 큰골, 구름, 광풍, 선함)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지리산 둘레길 함양안내센터,
남원시 인월과 금계를 잇는 지리산 둘레길 3코스(20.5km)가 끝나고,
함양군 금계와 동강을 잇는 4코스(11.0km)가 시작되는 곳으로,
지리산 둘레길 4코스로 용유담을 거쳐 세진대로 올라 풍류를 즐기기로 하는데,
오후부터 장맛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청 날씨누리 날씨예보가 있지만,
금세라도 쏟아질 듯이 잔뜩 찌푸린 시누이 얼굴상을 하고 있는 하늘,
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
바람이 불어도 좋아,
전천후 지사모가 아니던가?
노디목(金鷄, 금계)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이다.
냇물을 건너다니는 징검다리 노듸의 목이라는 뜻에서 노듸목이라 했다.
고려시대 의탄소가 있었던 지역으로 추성리 칠선계곡 입구에 있다.
가락국의 구형왕(양왕)이 추성리 국골에 은거하면서 이곳에서 참나무 숯을 구웠다고 하며,
인근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에 양왕의 능 돌무덤이 있다.
정감록에 나오는 금대산 밑에 금계동이고,
이곳이 지리산 피난민이 하나 둘 모여서 이룬 마을이다.
서쪽에는 감투바위, 동쪽에는 둥둥바위 ,
북쪽에는 맹맹이바위, 물방울골, 새벌들, 흥골 등이 있으며,
1520년에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대사(송지엄)가 법계정심대사 곁을 떠나다가
되돌아와서 도를 받은 살바탕(벽송정)도 있다.
6.25 직후 공비소탕 시 추성, 의탄리 주민 200여 호가 이 마을로 소개(疏開)되기도 했다.
엄천강이라고도 부르는 임천강을 가로지르는 의탄교,
1985년부터 칠선계곡의 관문 추성리를 오가던 이들이 이용하던 다리였는데,
2015년 4월 27일 준공한 지리산제1교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여 한가롭기만 하고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불상
평정말(義坪, 의평)
경남 함양군 의탄리이다.
고려시대 의탄소가 있었던 지역으로 추성리 칠선곅곡 입구에 있다.
가락국의 구형왕(양왕)이 추성리 국골에 은거하면서 이곳에서 참나무 숯을 구웠다고 하며,
인근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에 양왕의 능 돌무덤이 있다.
옛날 하동에서 소금장수가 벽소령과 오도재를 넘어 함양에 왔다가
일용품을 사다가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서 장을 보게 하였다 하여 새장터란 곳도 있고,
마을 앞에는 사장터(활터)도 있었다.
음력 정월 초삼일 풍년과 마을의 풍안을 비는 당산제(평화제)를 지내왔다.
조선 선조 때 함양 박씨와 수원 백씨 · 경주 정씨가 입촌했고,
정조 때 경주 이씨가, 현종 때 의령 여씨가 입촌 정착했다.
평정말(의평마을)에서 중말(의중마을)로 올라가고
중말(의중마을)
중말(義仲, 의중)
경남 함양군 의탄리이다.
고려시대 의탄소가 있었던 지역으로 추성리 칠선곅곡 입구에 있다.
마을 안에는 800여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어 매년 음력 7월 7일에는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선조 때부터 함양 박씨, 경주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었고,
정조 때는 경주 이씨가 입촌 정착해 오고 있으며,
본 마을 출신인 은계 이진우 선생은 1897년에 태어나 천석지기를 한 향토교육가로서,
사유재산 일백 두락을 저당하여 마천초등학교 설립에 공헌하였고,
현재 도계공원에 그를 기리는 송덕비가 마천면민의 이름으로 세워져 있으며,
그의 후손이 생가를 보존하고 있다.
죽포대
죽포대(竹圃臺)
구한말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7)과 항일 의병활동을 한 죽포 이규현(1848~?)의 유적지라는데,
이스타항공 회장이며 2선 국회의원(전주시을, 제19대와 제21대) 이상직(李相稷)의 증조부라는 걸.
죽포장구소(竹圃杖屨所)
경주이공규현(慶州李公圭玹)
갑진 삼월 일(甲辰 三月 日, 1964년 3월에 세운 듯)
의중마을 느티나무 당산
의중마을 당산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경유하여 용유담으로 가는 순환코스와,
임천강을 왼쪽으로 두고 용유담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곳으로,
금계 0.7km·동강 10.3km·동강(순환) 12.0km를 가리키고
의호대(義湖臺)
경주정공기현장구소(慶州鄭公冀鉉杖屨所)
을해 3월 일(乙亥 3月 日, 1995년 3월에 새긴 듯)
우송대(友松臺)
초은정재조공유게소(樵隱鄭栽朝公遊憩所)
자 병춘(子 柄春)
중원 임인 6월 일(中元 壬寅 六月 日, 1962년 6월에 새긴 듯)
법화산 쪽인데,
정작 법화산 정상은 가리지 않았을까?
말아주타임,
금계에서 2.0km 왔다는데,
이만하면 마이 왔다 아이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거늘,
이쯤에서 지사모 공식주 말아주타임을 갖지 않을 수가,
이거야 말로 실로 얼마 만에 맛보는 지사모 말아주인가?
지난해 1월 12일 청학동에서 삼신봉 셋을 이은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1년하고도 6개월이나 된 셈인데,
누가 뭐래도 이제 지사모에 반쯤은 다시 돌아왔다고 해도 되지 않을는지?
법화산 쪽이고
금대산과 백운산
아니나다를까 언제부터인가 가랑비가 내리며 심술을 부리지만,
마냥 즐거워 하는 저 여인네들을 보면 모르겠는가?
그 무엇도 우리의 발걸음을 잡을 수 없다는 걸,
아니 더욱더 행복해 질 수밖에는,
공자(孔子)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침내 용유담으로 빠져나가자 앞이 탁 트이고,
지리산 둘레길 함양안내센터에서 3.9km를 왔다는데,
이제 가야 할 세진대는 1.25km가 아닌가?
별스레 바쁠 것도 없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되기에,
용유담에서 한동안 좀은 고팠던 눈요기나 하고 가기로,
진주교정동우회 영감님들을 모시고(?) 마적도사 전설탐방로를 걸은 게 4월 21일,
그러고 보니 두 달 스무날 만에 다시 찾은 용유담이 아닌가?
용유교,
엄천강이라고도 부르는 임천강이 품은 명소 용유담을 가로지르고,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와 모전리를 잇는 모전길이 지나고
용유담(龍遊潭)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용유담은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이곳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용유담에 이르러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대낮에 우레소리 같은 폭포의 소리를 비롯하여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게 된다.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인 험준한 봉우리는
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하겠다.
이 용유담은 신선이 노니는 별유천지로
옛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았았던 곳으로
여름이 되면 각처의 피서객들이 휴식처를 찾아 모여 들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서편의 벼랑으로는 절경을 이루는 풍치와 청아한 물빛,
거울 같은 물에 비친 산그림자,
푸른 못의 반석에 펼쳐진 모래는 가히 도원경의 경지에 이르는 듯
황홀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도취되게 하곤 한다.
길 언덕 위에 구룡정이란 정자가 있고,
이 용유담가에는 당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용유담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마적도사와 당나귀 관련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모전교
금계-동강 용유담(모전마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 의평마을, 의중마을, 모전마을,
세동마을과 휴천면 동강마을을 잇는 11km의 지리산 둘레길,
이 구간은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온 산촌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 용유담 : 지리산을 유람하던 선인들이 여흥을 즐기던 곳으로, 마적도사와 아홉 용의 전설이 있다.
* 옻 : 마천은 천연도료이자 약으로 쓰이는 옻이 유명했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나
의중마을, 금계마을, 원정마을에는 겨울이 되면 아직도 옻을 생산하는 농가가 남아 있다.
* 엄천강 : 지리산 북부지역의 물줄기가 모여 엄천강이 되며, 남강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지명선원
벽송사와 용유담을 잇는 지리산 둘레길 4코스 순환코스,
비포장도로 아닌 포장도로가 지리산 둘레길이고
모전마을 삼거리,
지리산 둘레길은 금계 4.3km · 동강 6.7km요,
마적도사 전설탐방로는 고양터 1.2km · 세진대 0.94km · 용유담 0.36km를 가리키고
용유교,
그 뒤엔 금대산과 백운산이고
세진대 갈림길,
지리산 둘레길에서 벗어나 세진대로 올라가는데,
세진대 0.6km · 송전(세동)마을 1.6km · 용유담 0.65km를 가리키고
당나들골 전설
마적동의 세진대에서 모전마을로 내려오는 당나들골 길이 있다.
옛날 마적도사의 나귀가 마적동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던 길이다.
당나들골 중간에 화암대라는 넓고 큰 바위가 있었다.
장독바위
자료사진
세진대에서 바라본 장독바위(자료사진)
세진대 삼거리,
송전(세동)마을과 송대동으로 이어지는 마적도사 전설탐방로가 지나며,
용유담 1.25km·마적동 0.25km·송전(세동)마을 1.35km를 가리키고
세진대(洗塵臺)
약 1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 위의 세진대(洗塵臺)에서
엄천강, 법화산과 용유담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약 400년 된 큰 소나무가 웅장하게 서 있어
지리산 둘레길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세진대 옆에는 바위 하나가 서 있는데
바위 위에 덮개 같은 바위가 있어 장독바위라고 불리워지며,
병든 환자가 돌을 던져서 그 위에 얹으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세진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금의 국조단군성전인
『지리산마적천진전』은 본래 사지(寺址)로서,
옛날 휴천면 문정리의 법화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한 마적사가 있었는데,
그 당시 불교신자들이 마적사(馬迹寺)를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날 때
여기에 이르러 마음과 몸을 씻고 올라갔다고 하여,
그 후손들이 이 뜻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세진대(洗塵臺)라는 세 글자를 각자(刻字)하여 잘 보존하고 있다.
세진대(洗塵臺)와 마적송(馬迹松)
세진대(洗塵臺)는 ‘세상의 찌든 때를 씻어 내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바위로,
벼랑을 이루고 세진대 위에는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평평하며,
마적송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데,
마적도사 전설탐방로에 나오는 마적도사가 너럭바위에다 심은 소나무가 바로 마적송이라는 것,
또 다른 전설로는 마적도사가 이 근처에서 살면서 너럭바위에서 장기도 두고 하면서 쉬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득도했다고 하여 마적송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은 전설일 뿐 너무 믿지는 말자!!!
금대산과 백운산
법화산 일대
벽송사능선
강지주(姜趾周, 1856 - 1909)
본관(本貫)은 진주, 자(字)는 우여(遇汝), 호(號)는 적은(迹隱)으로,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속세를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였으며,
甲辰年(1904년) 8월에 세진대(洗塵臺)란 각자(刻子)를 새겼다 하고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산 73-1 세진대에 자리 잡은 마적송
세진대 옆에 자리 잡은 팔각정,
세진대에 이른 지 얼마 안 돼 본격적인 장맛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가까운 팔각정으로 이동하여 먹자판을 벌이기로 하는데,
각지에서 온 먹거리들이 화수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
앵경표 가오리회와 한치회에다 구름표 삽겹살, 광풍표 쌀밥과 바람소리표 수제비에다,
굳이 누구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앞다퉈 꺼내 놓는 말아주 재료들,
실컷 먹고 마시고 또 웃고 떠들면서 즐기는 것도 모자라는지,
급기야 흥에 겨운 이들은 가무(歌舞)까지 곁들이며 신난다를 연발하기도,
달갑잖은 장맛비가 생각지도 못한 멋진 선물을 한 셈인데,
지리산 이곳저곳을 빡세게 헤집고 다니는 것도 좋긴 하지만,
때론 알맞게 또는 좀 모자란 듯이 타고 실컷(?) 즐기는,
노약자(老弱者)들을 배려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좋지 않을까?
영원한 강자도 또 약자도 없는 세상이요,
어차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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