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과 풍경

성철 스님 생가 지리산 겁외사(2020. 1. 19. 일요일)

큰집사람 2020. 1. 20. 13:17




겁외사(劫外寺)

    

겁외사는 성철 스님이 대원사(大源寺)로 출가하기 전 25년 동안 살았던 생가터로,

  전국에 있는 15곳의 성철 스님 문도사찰(門徒寺刹) 중 한 곳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이자 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원택스님이 창건하였으며,

2001330일 <성철 스님 생가 복원식 및 겁외사 창건 회향법회>를 가졌다.

 

겁외사(劫外寺)는 시간 밖의 절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로,

그 이름은 성철 스님에 의해 지어졌다.

스님은 만년의 몇 해 동안 겨울철이면 백련암을 떠나 부산의 거처에 주석하였고,

  그곳을 겁외사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로부터 절 이름을 딴 것이다.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기둥 18개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누각이 있다.

누각 정면에는 지리산 겁외사(智異山 劫外寺)라는 현판이,

뒷면에는 벽해루(碧海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벽해루라는 이름은 스님이 평소 즐겨 얘기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뜻)>라는

문구로부터 지은 것이라 한다.

 

누각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 중앙에 성철스님의 입상을 비롯하여 커다란 염주와  

목탁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정면 3· 측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동상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부 불단에 비로자나부처를 모셨으며,

한국 수묵화의 대가인 김호석 화백이

배채법으로 그려 낸 성철 스님의 진영(眞影)이 걸려 있다.

 

외벽 벽화에는 스님의 출가 · 수행 · 설법 · 다비식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대웅전 외의 건물로는 종무소 · 선방 · 요사 등이 있다.

 

성철 스님 동상 뒤편으로 200010월 복원한 스님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스님이 대원사로 출가하기 전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던 곳으로,

모든 건물은 새로 건립된 것이다.

 

혜근문(惠根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선친의 호를 따서 율은고거(栗隱古居)라고 이름을 붙인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 왼쪽에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 있다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기념관에는 누더기가사 · 장삼 · 고무신 · 지팡이 ·

친필자료 · 안경 · 필기구 등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겁외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이다.


 



 

성철(性徹) 스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은

알듯 말듯 하지만 일반인들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성철 스님은 1912년 4월 10일 산청군 단성면 묵상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합천이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다.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이고 호(號)는 퇴옹(退翁)이다.

단성초등학교와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지리산 대원사에 들어가서 수행하다가,

25세인 1936년 3월 해인사에서 승려 하동산(河東山)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하동산은 한국 불교의 계단(戒壇)을 통일시킨 승려로서,

그의 제자들이 소위 범어문중(梵魚門中)을 형성했는데 성철도 여기에 속했다.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속세와 관계를 끊고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하는 승려로 알려졌으며,

파계사에서 행한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은 유명하다.

종단의 분규가 아물지 않은 가운데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여전히 합천 해인사 백련암에서 구도를 계속하였다.

 

194029세 되던 해에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중 견성하고,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 파계사 성전암, 봉암사,

묘관음사, 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 회 안거를 지냈다.

    

1947년 경상북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답게 살자>고

청담 · 자운 · 월산 · 혜암 · 성수 · 법전 등과 결사를 하는 등

현대의 선풍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55년 비구(比丘)와 대처(帶妻)의 분규가 일어났을 때

해인사 초대 주지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96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옮겨가 주석하였고,

1967년에 해인총림(海印叢林) 초대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어

그해 동안거(冬安居)에서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問)을 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 조계종 제7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으나,

수락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발표하였다.

그 후 전두환 정권 때 조계종을 이끌었으며,

지눌(知訥)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 

〈선문정로 禪門正路〉를 펴내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성철은 평소 제자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잠을 적게 잘 것,

말하지 말 것, 책을 보지 말 것, 돌아다니지 말 것 등을 권하였다.

스님 자신도 청빈하게 생활하며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고 작은 암자에서 지냈다.

 

199311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  

스님의 탄생지인 묵상마을에 위치한 겁외사는 스님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는 사찰이다.

 





































임술년(1982년) 부처님오신날 성철 스님 법어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여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은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현대는 물질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은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오.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 <성철스님기념관> 불사를 회향하면서  

 

20여 년 전 성철스님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중국 불교성지를 탐방하였습니다.

대동석굴, 용문석굴, 맥적산석굴, 공이석굴, 대족석굴,

라싸의 포탈라궁과 티벳사원들을 둘러보면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후 10여 년 전에는 인도의 아잔타석굴, 엘로라석굴,

산치대탑과 불교 8대 성지를 탐방하였습니다.

최근에 탐방한 도황석굴에는 크고 작은 굴마다

천장이나 벽면에 천불의 모습이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김천 직지사의 천불전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천불전을 모신 사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옛 석굴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성철스님기념관을 석굴형으로

건립하기로 하였습니다.

 

성철 대종사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2012년 말쯤에 설계도를 완성하고,

열반 20주년이 되는 20135월에 석굴형 기념관을

착공하게 되었습니다.

 

성철스님기념관 입구 벽면에 1000불의 미륵불,

기념관의 핵심공간인 제1굴에 석가모니불,

1굴의 1000불의 바깥 좌우 반원공간들을 차지하는

오른쪽에 1000불의 약사여래불, 그 왼쪽에 1000불의

아미타불을 장엄하여 불국토를 완성하였습니다.

 

인도에서 서역으로, 서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어져 온 불교문화의 원류를

오늘에 실려 보고자 하였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성철스님기념관> 불사를 회향하게 되니

남다른 감회가 새롭습니다.

부처님이 깨치신 영원한 행복의 길을 걸어가신

성철 큰스님의 공덕을 우러르고,

우리 모두가 깨달음의 정상에 우뚝 서길 서원합니다.

 

불기2559년(2015년) 424/ 백련문도 전국방생일

겁외사 창건주  원택 합장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