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날짜 : 2026년 5월 17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영원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
* 산행시간 : 6시간 03분(운행시간 3시간 54분 + 휴식시간 2시간 09분)
* 산행거리 : 약 9km
* 산행속도 : 보통걸음
* 산행인원 : 13명(앵경, 거북이, 고남, 신난다, 갑짱, 해랑, 마왕, 처네, 송무,
담비, 선함, 옵서버 2명)
* 산행일정
08:32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도솔암) 진입도로
함양 영원사 승탑군 들머리
08:35 함양 영원사 승탑군
08:45 태허당대일대선사탑
08:49 - 08:56 영원사(약수암 5.7km · 상무주암 1.8km, 920m)
09:11 현위치번호 지리 30-01(국가지점번호 라마 1093 0819, 1019m)
09:21 - 09:26 빗기재(영원사 0.8km · 약수암 4.9km · 상무주암 1.0km)
09:34 현위치번호 지리 30-02(국가지점번호 라마 1108 0852, 1105m)
09:39 기암(奇巖)
09:47 현위치번호 지리 30-03(국가지점번호 라마 1133 0888, 1154m)
09:50 - 10:10 삼정산-상무주암 갈림길 직전 쉼터(전망대)
10:15 - 10:18 삼정산-상무주암 갈림길 조금 위 첫 번째 전망대
10:23 헬기장
10:26 층층바위 전망대
10:28 - 10:35 삼정산(1261m) * 엉터리 정상석(1182m)
10:41 삼정산-상무주암 갈림길
10:46 - 11:01 상무주암(영원사 1.8km · 약수암 3.9km · 문수암 0.8km, 1162m)
11:04 현위치번호 지리 30-04(국가지점번호 라마 1166 0899, 1176m)
11:16 현위치번호 지리 30-05(국가지점번호 라마 1168 0935, 1064m)
11:18 - 11:27 문수암(영원사 2.6km · 상무주암 0.8km · 약수암 3.1km ·
삼불사 0.8km , 1060m)
11:39 현위치번호 지리 30-06(국가지점번호 라마 1170 0983, 1069m)
11:47 - 12:39 삼불사(영원사 3.4km · 문수암 0.8km · 약수암 2.3km ·
도마마을 3.3km , 990m)
12:47 현위치번호 지리 30-07(국가지점번호 라마 1171 1016, 988m)
12:54 중북부능선(삼정산능선) 마루금 합류(영원사 3.9km ·
삼불사 0.5km · 약수암 1.8km
13:01 현위치번호 지리 30-08(국가지점번호 라마 1186 1057, 890m)
13:04 - 13:07 옛 무덤 전망대(쉼터)
13:13 현위치번호 지리 30-09(국가지점번호 라마 1205 1097, 796m)
13:21 이정표(영원사 4.8km · 삼불사 1.5km · 약수암 0.9km)
13:23 현위치번호 지리 30-10(국가지점번호 라마 1231 1151, 753m)
13:35 현위치번호 지리 30-11(국가지점번호 라마 1257 1188, 740m)
13:50 - 13:58 약수암(560m)
14:24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
14:31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330m)
14:35 실상사 해탈교
* 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1333> 함양 삼정산 칠암자 순례길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오는 5월 27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지리산(1915.4m)에 속한 삼정산 (1261m) ‘칠암자 ’ 순례길을 소개한다.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이라고도 한다.
절에서는 윤달이 오면 ‘삼사순례(三寺巡禮)’를 떠난다.
이는 세 번 절에 가면 액이 소멸하고 복이 온다는 불교 풍습에서 시작했다.
최근에 와서는 꼭 불교인이 아니라도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연에 묻힌 사찰 세 곳을 찾아가는 순례 산행에 많이 나선다.
이에 맞추어 근교산 취재팀도 등산동호인이 이맘때 찾아가는
최고의 산길인 경남 함양 삼정산 칠암자 순례길을 찾아 나섰다.
▮불탄일 ‘최애’ 코스
고즈넉한 산사를 찾아가는 순례길은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 되지만,
세 곳의 절(영원사, 삼불사, 실상사)과 네 곳의 암자(도솔암, 상무주암, 문수암, 약수암)를
거쳐가는 칠암자 순례길은 긴 거리에다
오르내리는 산길이 만만찮아 자칫 고행의 길이 되기도 한다.
이때는 영원사에서 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을 한 바퀴 도는
약 8㎞ 원점회귀 삼사순례도 괜찮다.
도솔암 오르는 산길은 지리산국립공원에 포함한다.
일부 등산객이 벽소령 임도에서 도솔암을 오르려고 시도하는데,
비법정탐방로라 이 경로로는 오를 수 없다.
반드시 취재팀이 올랐던, 영원사로 해서 도솔암을 갔다 되돌아 내려가야 한다.
상무주암에서 삼정산을 오르는 산길도 폐쇄되었으니,
이 길로도 오르지 않도록 한다.
칠암자 순례길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일찍 산행을 나서야 한다.
산행경로는 다음과 같다.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양정마을정류장~영원사·벽소령갈림길~
‘마천삼정로 544-39’ 전원주택 앞 갈림길~영원사 도로 합류~도솔암 갈림길~
도솔암~도솔암 갈림길~영원사~빗기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
약수암·도마마을 갈림길~약수암~실상사를 지나 해탈교를 건너면
절 입구 공영주차장에 도착한다.
산행거리는 약 14.5㎞이며, 7시간 안팎 걸린다.
실상사 입구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택시로 이동한다면,
영원사나 도솔암 갈림길로 바로 가는 게 긴 산행시간과 거리를 조금 줄일 수 있다.
함양 군내버스를 탔다면 종점인 양정마을정류장에서 출발한다.
버스가 들어왔던 방향으로 2분 되돌아 나가면 삼거리다.
영원사 안내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어 도로를 걷는다.
다시 3분이면 영원사 표석을 지나 갈림길에서 영원사(3㎞)는 오른쪽으로 꺾는다.
왼쪽은 벽소령 방향이다.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3~4분이면 ‘마천삼정로 544-39’ 전원주택 앞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간다. 직진은 영원사 가는 찻길로 1㎞ 가량 더 멀다.
‘아름다운 뜨락’을 지나 잇단 전원주택 끝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영원사로 오르는 옛길이다.
짙은 녹음에 요란한 계곡 물소리가 그리 반가울 수 없다.
약 40분이면 영원사 찻길과 다시 만나 왼쪽으로 간다.
150m쯤 가면 계곡 쪽에 타이어 6개를 세워 놓았고,
도로는 오른쪽으로 틀어 영원사로 올라간다.
여기가 도솔암 갈림길이다. 도솔암까지 약 1시간 20분이면 갔다 온다.
▮천왕봉·지리산 주능선 전망대
왼쪽으로 꺾어 계곡에 내려선 뒤 물을 건넌다.
이내 반달가슴곰 활동지역을 알리는 작은 안내문과 무인센서를 만난다.
센서는 취재팀이 접근하니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재빠르게 통과한다.
완만하던 길은 도솔암이 가까워지며 가팔라진다.
잣나무 사이를 지나 돌계단을 올라
칠암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도솔암(약 1165m)에 닿는다.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청매조사 인오가 도를 깨친 곳이다.
지금은 적능 스님이 수행 중이다. 정면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빼어난 조망처다.
도솔암은 지금껏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취재팀이 답사하던 날 공사가 끝나 이제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시원한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켜 폐부 깊숙이 쌓였던 속세의 찌꺼기를 씻어낸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도솔암 갈림길로 온다. 10분이면 영원사에 올라선다.
신라 경문왕 때 영원조사가 창건하고,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 109명의 고승대덕이 수행 정진한 큰 절이었다.
1948년 여순 사건과 6·25 한국동란 때 불탔다. 현재 건물은 그 뒤 중창했다.
약수암(5.7㎞)·상무주(1.8㎞) 가는 길은 큰 느티나무 뒤로 열린다.
지리산국립공원으로 들어서는 출입문을 통과 한다.
완만하던 산길은 현위치번호 ‘지리(경남) 30-01’ 표지목을 지나며 가팔라진다.
30분이면 지리 주능선 삼각고지에서 북쪽 삼정산으로 뻗은 능선 안부인 빗기재에 올라선다.
오른쪽 상무주암으로 능선을 탄다. 바위를 넘어 호젓한 삼정산 산허리 길을 돌아간다.
바위 전망대에서 천왕봉과 반야봉을 잇는 능선을 보며
양팔을 크게 벌려 대 지리산을 가슴에 안아 본다.
35분이면 철망 울타리를 통과해 상무주암에 도착한다.
9세기 중반에 영원조사가 영원사와 함께 창건한 암자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이 2년 여 머물면서
큰 깨우침을 얻었다는 곳으로,
워낙 지대가 높아 지리산을 앞마당으로 삼았는데,
속세의 필부가 보아도 그 모습이 장관이다.
암자는 입구에 출입을 막는 ‘정낭’이 걸쳐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순례자를 위한 돌담 아래 약수터를 지나면 갈림길이다.
문수암은 직진해 간이 평상이 놓인 아름드리 소나무 쉼터에서 왼쪽이다.
오른쪽은 영원사 찻길에서 올라오는 길.
쉼터 안쪽 암반 전망대에서 지리산 능선을 다시 조망하고 돌아 나와
문수암(0.8㎞)으로 향한다.
천왕봉 조망이 열리는 4 표지목을 지나 4m 높이 직벽 아래 샘터에서 목을 축인다.
약 25분이면 갑자기 조망이 터지면서 서룡산, 삼봉산, 법화산, 백운산과
지리산 최고 전망대인 금대산을 품에 안은 문수암에 도착한다.
659년(무열왕 6)에 마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현재 건물은 해인총림 방장과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에 오른 혜암 스님이 1965년께 지었다.
법당 뒤로 큰 굴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인근 피란민이 올라왔고,
그 숫자가 1,000명에 이르렀다고 해 천인굴로 불린다.
문수암 축대 아래를 지나 왼쪽 삼불사(0.8㎞)로 꺾는다.
가지 능선을 오르내리며 이끼 낀 돌길도 지나 20여 분이면 삼불사이다.
칠암자에서 한 곳뿐인 비구니 수행처로 법당에는 ‘삼불주(三佛住)’ 편액이 걸려 있다.
오른쪽 멀리에서 천왕봉이 굽어본다.
법당 직전 돌계단을 내려간다.
3~4분 뒤 갈림길에서 왼쪽 약수암(2.2㎞)으로 꺾는다.
직진은 ‘견성골’로 해서 도마마을로 내려간다.
산허리를 감아 돌아 10분이면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약수암(1.8㎞)으로 능선을 탄다.
소나무 숲길은 ‘지리(경남) 30-11’ 표지목을 지나 50분이면 약수암에 닿는다.
서산으로 해는 기울었다. 마음은 급해진다.
구불구불 도는 비포장임도를 빠르게 걷는다.
30분이면 연등이 불 밝히는 실상사 경내에 들어선다.
다시 나와 해탈교를 건너 5분이면 실상사 입구 공영주차장에 도착한다.(2023.5.25.)

* 쉬엄쉬엄, 길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칠암자 순례길’의 들머리는 도솔암이다.
한데 문제가 있다.
도솔암 가는 길이 비법정탐방로란 것이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탐방로의 문이 열린다.
평일에 올랐다가 걸리면 꽤 많은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찾아가는 이들이 있는지,
국립공원공단과 산객들 간에 막고 피하는 싸움이 꽤 치열하다고 한다.
오지 말라고 하는 곳을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꼭 이름만큼의 구간을 돌아야 한다는, 명분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선택하는 코스는 경남 함양 영원사에서 올라
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을 거쳐 전북 남원 실상사로 내려오는 것이다.
평일에는 사실상 도솔암을 뺀 ‘육암자 순례길’인 셈이다.
칠암자든 육암자든 무슨 상관이랴.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숫자의 정복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칠암자 순례길’은 지리산 안에서 또 다른 지리산을 보며 걷는 길이다.
등산로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삼각고지(1484m)에서 북쪽 방향으로 작은 능선 하나가 갈라져 나왔다.
이게 삼정산능선이다. 칠암자는 이 삼정산능선의 골짜기를 따라 매달려 있다.
그러니 암자와 암자를 잇는 순례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천왕봉 등 지리산 주능선의 수려한 봉우리들을 한눈에 담게 된다.
들머리는 함양 마천면의 영원사(920m)다.
1971년 중건된 절집이지만 거쳐 간 스님들의 법명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항일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백초월 스님 등이 이 절집에서 일정 기간 수행했다.
109명에 이르는 고승들의 면면은 이 절집에서 여태 보관하고 있는
안록(역대 큰스님들의 행장이 수록된 책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영원사 공양간을 돌아서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영원사에서 영원령을 넘어 상무주암에 이르는 1.8㎞ 구간 중에
1㎞가 넘는 구간이 오르막길이다.
이후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이 구간이 가장 힘들다.
코를 땅에 박고 오르다 보면 땅에 바짝 붙은 봄꽃들이 슬그머니 꽃술을 내민다.
하나를 찾고 나면 다른 녀석들이 눈에 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에 봄꽃들이 무성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태껏 꽃길을 걷고 있었다는 걸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상무주암은 순례길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1162m에 있다.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에 있는,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2년 여를 머물며
“옷 세 벌과 바리때 하나만으로 지리산 상무주암에 은거했는데,
경치가 그윽하니 천하제일인지라 선객이 거주할 만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할 만큼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암자와 달리 상무주암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암자 입구에 사진촬영금지 팻말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걸 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낯선 객이 제집인 양 안마당을 헤집고 다니자 주지 스님께서 조용히 한마디 하신다.
사진 찍지 말라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재차 읍소를 하니 단박에 나가라며 축객령이다.
따지고 보면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순례길의 암자들은
세상과 멀어지려 일부러 외진 곳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숨은 암자를 찾으려 하고,
결국 숨자고 들어선 곳이 외려 명소가 되는 희한한 역설이 생겨난다.
상무주암 주변에 홀로 명상에 잠길 만한 자리가 몇 곳 있다.
축객령으로 내쫓긴 이들에겐 그야말로 제격인 자리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리산의 눈부신 봄 풍경 덕에 불편했던 마음 한 자락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문수암은 커다란 바위 아래 터를 잡은 암자다.
순례길의 풍경을 말할 때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은 절집이다.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여명이 숨었다고 전해지는
천인굴과 늘 마르지 않는 석간수로 알려졌다.
문수암은 오랫동안 암자를 지키던 도봉 스님의 보시로 유명한 절집이다.
암자를 찾는 이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곤 했다.
한데 도봉 스님이 암자를 내려간 이후로 절집은 적막한 공간이 됐다.
산객들에게 풍경으로 보시하는 최고의 절집은 삼불사가 아닐까 싶다.
독특하고 소박한 건물과 비구니 스님의 손길이 묻어나는
각종 소품들이 산객의 마음을 산뜻하게 보듬어 준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암자 앞 작은 뜨락에서 맞는 너른 풍경이다.
지리산으로 향한 미닫이문이 활짝 열린 듯하다.
삼불사에서 남원 땅에 속한 약수암까지는 2.3㎞로 다소 길다.
내리막길이긴 해도 너덜지대의 연속이어서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약수암은 시원한 샘물이 유명하다.
목각탱화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제421호)도 고색창연하다.
종착지인 실상사는 다른 암자들에 비하면 대찰이다.
평지에 있어 은둔의 느낌도 덜하다. 볼거리는 많다.
경내 극락전 앞의 석등(보물 제35호)과 2기의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을 비롯해
딸린 암자인 백장암의 삼층석탑(국보 제10호) 등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서울신문, 2020.5.14.)
[근교산&그너머] <1428> 경남 함양 ‘오르GO 함양’ 산악 완등 인증 ⑧ 삼정산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오르GO 함양’ 산행 기획 시리즈 여덟 번째로
함양 삼정산(三政山, 약 1265m)을 소개한다.
삼정산은 지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지리산 주능선과 떨어져 있다.
그래서 산행은 도마마을에서 여러 암자를 거치거나,
짧은 코스로 영원사에서 삼정산 정상을 오른 뒤
약수암 능선을 거쳐 실상사로 하산하는 산행이 주로 이루어졌다.
■ 정상석 높이 표기 잘못돼
2002년에 국제신문 다시 찾는 근교산 <302>회에
삼정산을 도마마을~삼정산~실상사 코스로 알렸다.
그 뒤 취재팀은 삼정산을 다시 찾지 않았다.
재답사 계획을 구태여 잡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립공원이 비법정탐방로를 실행하면서 지리산의 수많은 산길이 출입통제됐기 때문이다.
삼정산도 그중 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영원사에서 실상사까지
삼정산 기슭 일곱 암자를 연결하는 칠암자 순례길이 뚫리면서 탐방로가 열렸는데,
삼정산 정상은 여전히 비법정탐방로에 속해 오를 수 없었다.
올해 경남 함양군에서 ‘오르GO 함양’ 15 명산
산악 완등 인증 산행에 삼정산이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산행을 못했던 삼정산 정상이 개방됐다.
근교산 취재팀도 2023년 지리산(삼정산) 칠암자 순례길을 답사하면서
당시 비법정탐방로라 정상을 못 밟아 이번에 23년 만에 다시 삼정산 정상을 찾았다.
삼정산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나오는 정상과
현재 정상에 세워져 있는 정상석에 표시된 높이가 제각각이라 혼동을 준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삼불사 뒤 1154.9m봉을 삼정산 정상으로 표시해 놓았다.
그러나 삼정산 실제 정상은 상무주암 뒤 높은 봉우리이다.
정상에 국립공원에서 세운 정상석에는
1182m로 잘못 표기돼 있어 하루빨리 정확한 높이로 고쳐야 하겠다.
2024년 인쇄된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높이가 안 나와 있으나,
정상 주위에 1224.7m로 표시된 봉우리가 있는 데다,
정상의 등고선을 세어 보면 1260m로 표시되어
정상은 무조건 1260m가 넘는 것으로 보인다.
취재팀의 고도계 손목시계에는 정상 고도가 1265m로 나와 있었다.
도마(都馬)마을은 원래 복숭아꽃이 만발한 데서 ‘도만(桃滿)이’ 마을이라 불렀다가,
행정개편을 하면서 마천에서 으뜸가는 수도마을이란 뜻인 도마천이라 했다.
현재 도마마을로 줄여 부른다. 마을 앞 다랭이논이 유명하다.
함양 삼정산 산행경로는 다음과 같다.
도마마을주차장~도마마을버스정류장~도마마을회관~도마1교~두 번의 갈림길~
견성암 입구 ~능엄산방~문수암·삼불사 갈림길~문수암~상무주암~삼정산 갈림길~
삼정산 정상~삼정산 갈림길~빗기재(쉼터)~영원사~도솔암 갈림길~영원사 임도 이탈~
영원사골을 따라 하산한 뒤 양정마을버스종점에서 산행이 끝난다.
산행 거리는 약 10.5㎞이며, 6시간 안팎 걸린다.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도마마을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주차장을 나와 왼쪽으로 틀면 도마마을 버스 정류장에 닿고 도마마을 표지석이 있다.
‘삼정산 가는 길’ 안내판을 보고 군자천 옆 마을길을 올라간다.
도마마을회관을 지나 6, 7분이면 왼쪽으로 도마1교를 건너간다.
콘크리트길로 마을을 벗어난다.
약 7분이면 삼거리에 넝쿨식물에 가려진 ‘삼정산 가는 길’ 안내판이 오른쪽을 가리킨다.
다시 나오는 갈림길에서도 오른쪽이다.
이때까지 뙤약볕을 걸어왔다면 이제부터 숲 그늘 길을 간다.
■ 삼정산 정상, 비법정탐방로에서 개방
견성골의 작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견성암 입구를 지나 임도 갈림길에서 ‘탐방로’ 팻말을 보고 직진한다.
국립공원 구역을 알리는 사각 기둥이 섰고, 통나무집인 능엄산방을 지난다.
포장길은 여기서 끝난다. 계곡을 건너 산길이 이어진다.
지난번에 내린 집중호우로 파헤쳐진 길이 엉망진창이다.
삼불사(1.9 ㎞) 이정표가 나오고,
다시 개울을 건너 능엄산방에서 약 25분이면
해발 약 720m에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취재팀은 정면 탐방로 팻말만 서 있고 아무런 표시가 없는 왼쪽 길로 올라간다.
이 길이 문수암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은 ‘오르GO 함양’ 삼정산 지도에서 안내하는 삼불사 방향인데,
칠암자 순례길를 따라 문수암과 연결하는 우회길이다.
숲이 울창해 햇볕 한 점 들지 않던 오솔길은
너덜과 산죽 밭이 번갈아 나오며 차츰 가팔라진다.
우렁차던 물소리도 이제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적막강산 산길을 타고 올라
집채만 한 바위 벼랑을 돌아 삼불사 갈림길에서
약 65분이면 해발 약 1060m에 자리한 문수암에 닿는다.
왼쪽 영원사(2.6㎞) 상무주암(0.8㎞)으로 간다. 오른쪽은 삼불사에서 오는 길이다.
답사 때 문수암은 하안거 중이라,
임진왜란 때 산 아래 1,000명의 주민이 올라와 난을 피했다는
천인굴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대신 문수암 축대 아래에서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고 간다.
오른쪽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새봉, 와불산, 필봉, 왕산, 황매산,
오도산 감악산, 법화산, 금대산, 백운산, 삼봉산, 황석산, 님덕유산 덕유서봉,
영취산이 펼쳐지는 조망 맛집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문수암 해우소(화장실)이다.
‘근심을 푸는 곳’답게 해우소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광경이
절경이 따로 없을 만큼 시원해 절로 쾌변을 본다고 한다.
이제부터 지리산(삼정산) 칠암자 순례길을 걷는다.
상무주암은 ‘현위치번호 지리(경남)30-05’ 표지목을 지난다.
영원사 방향인데,
너덜을 통과해 가파르게 치받아 올라 상무주암과 사이 고개를 넘는다.
산길은 완만하게 산허리를 돌아간다.
지리산 천왕봉이 나무 가지들 사이로 보인다.
30분 남짓이면 상무주암 직전 갈림길에 닿는다.
왼쪽 암반에 지리 주능선의 반야봉 조망이 열리는 전망대가 있다.
영원사 찻길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 나오고,
농작물 훼손이 심해 짐승을 막는 용도인 울타리에 철망문이 걸려 있다.
삼정산 정상을 가려면 상무주암을 거쳐야 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뒤 꼭 문을 닫아둔다.
지나가는 등산객을 위해 만든 돌담 아래 샘터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다.
필자는 2년 전 부처님오신날에 맞추어
근교산&그 너머 지면에 ‘지리산(삼정산) 칠암자 순례길’을 답사하고 소개했다.
당시 적막감만 감돌던 상무주암을 지나다가
암자에서 주석하시던 현기(玄機) 스님을 뵈었다.
스님은 40여 년간 두문불출하고 자급자족하며 수행에만 전념하시다
올해 3월 20일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인편을 통해 들었다.
이번에 ‘오르GO 함양’ 15 명산 중 한 곳인 삼정산을 알리려고 다시 상무주암을 찾았다.
그런데 스님이 떠나간 암자는 더욱 쓸쓸해 보였다.
화장실을 거쳐 다시 철망문을 빠져나가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에 삼정산 정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무에 걸려 있다.
깔딱고개 같은 산길에 반야봉이 펼쳐지는 전망대가 잇따라 나온다.
폐쇄된 헬기장을 거쳐 암자에서 약 25분이면 삼정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석이 서 있고 조망은 없어 왔던 길을 되짚어 하산한다.
앞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완만한 능선을 탄다.
삼정산 갈림길에서 30분이면 빗기재 쉼터에서 숨을 돌리고,
영원사(0.8㎞)는 왼쪽으로 능선을 벗어나 25분쯤이면 도착한다.
무량수전을 내려서면 절 주차장이 있다.
승용차로 왔다면 여기서 산행을 끝내면 된다.
대중교통을 타려면 도솔암 갈림길을 거쳐
약 10분이면 영원사 찻길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간다.
양정마을에서 영원사로 오르던 옛길로,
계곡(영원사골)을 오른쪽에 두고 길이 나 있다.
펜션형 집들을 빠져나가 35분이면 영원사 찻길과 다시 만나 오른쪽으로 꺾는다.
양정교를 건너 벽소령 임도 갈림길에서 왼쪽이며,
양정마을입구에서 왼쪽으로 틀어 10분이면 양정마을버스종점에 도착한다.
승용차로 갈 때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480
‘도마마을주차장’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고 주차장에 차를 둔다. 주차 무료.
하산 뒤 빠른 귀가를 하려면 날머리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59 ‘영원사’를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고
절 입구 주차장에 차를 둔 뒤 마천개인택시
(055-962-5110, 010-4422-5300)를 불러 도마마을로 이동한다.
택시비 2만 5,000원 선(2025.8.20.)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도솔암) 진입도로의 함양 영원사 승탑군 들머리,
진입도로에서 벗어나 승탑군 경유 영원사로 이어지는 산길로 올라가는데,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 앞두고 나서는 지리산 6암자 순례,
두류산방 회원 11명과 옵서버(observer) 2명으로 구성된 오늘의 일행은 총 열셋,
벌써 여름이나 된 양 때아닌 무더위가 심술을 부리며 훼방을 놓으려 들지만,
구름이라곤 눈에 띄지 않는 새파란 하늘은 부처님의 자비(慈悲)가 깃든 축복이요,
작열하듯 내리쬐는 햇볕은 오히려 우리네 몸에 좋은 자양분(滋養分)이라고나?
영원사,
삼정산,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
딱 기다리고 있거라.
우리가 간다.


함양 영원사 승탑군(咸陽 靈源寺 僧塔群)
영원사에 남아 있는 부도(浮屠,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탑)는 모두 5기로
부도의 주인임을 밝혀 주는 승려의 호가 탑신에 새겨져 있다.
부도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좌측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 청계당탑(淸溪堂塔) , 벽허당탑(碧虛堂塔) 순으로
가로로 세워져 있다.
부도의 위치는 약간의 선후 관계를 두었는데,
가장 뒤쪽에 있는 것은 좌측에서 두 번째 부도이고,
그 다음으로는 좌측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세 번째, 첫 번째 순으로 조성하였다.
부도 가운데서는 설파당이 규모가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건립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은 조선 후기 화엄학의 대가로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있는 영각사(靈覺寺)를 창건하고
화엄경판을 새겨 영각사에 봉헌한 설파상언(雪坡尙彦, 1707~1791)대사이다.
나머지 4기의 부도는 주인들의 생존 연대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 안내문의 영암당탑(靈巖堂塔)은 영암당탑(影巖堂塔)의 오기로 보임

자료사진




영암당탑(影巖堂塔),
부도탑에선 영암당탑(靈巖堂塔) 아닌 영암당탑(影巖堂塔)이라는 걸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
함양 영원사 승탑군에서 영원사로 올라가고

태허당대일대선사탑(太虛堂大日大禪師塔),
오늘날의 영원사를 있게 한 대일 큰스님의 부도탑이라 하고

중봉에서 천왕봉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



그 모습을 드러내는 영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本寺)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라 하고

복주머니란





지리산 영원사
지리산은 예로부터 사대 명산(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에서 그 첫 번째로,
영원사는 이 명산 한복판에 천이백 년 전
신라 제사십팔대 경문왕 때 영원조사(靈源祖師)께서 창건한 고찰이다.
이곳은 부용(芙蓉), 서산(西山), 사명(四溟) , 청매조사(靑梅祖師)와
화엄보살(華嚴菩薩)인 설파노사(雪坡老師)등 고승(高僧)들이 정진하시고
강종을 울려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던 법보사찰이기도 하다.
남쪽으로는 청매조사께서 수십 년 수도하신 도솔내원궁 같은 도솔암이 있고,
북쪽에는 절승선경인 상무주암이 있는데,
이 상무주암은 보조국사께서 갑천에서 제일이라고 예찬하셨고,
구곡 각운선사는 염송설화를 짓다가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명찰이다.
그 가운데에 자리한 명성고찰 영원사는 여순반란과 육이오동란 때
공비토벌작전 수행 중 아군에 의해 방화 소실되어 쑥대밭에 빈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상무주암에서 십여 년 용맹정진하시던 대일스님께서
어느 날 조사님의 선몽의 말씀을 듣고 큰 원을 세워 초막을 짓기 시작
사십여 년을 단신으로 불사를 하시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영원사는 특히 일백구 분의 조사님들의 안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절로서,
매년 구월 십팔일 지장재일에는 일백구 분의 영재를 봉행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백초월스님과 영원사
영원사 출신인 백초월(白初月)스님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불교 독립운동가이시다.
초월스님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서 1878(년)에 출생하셨는데,
14세의 나이로 이곳 영원사로 출가하셨다.
해인사의 강원(講院)·선원(禪院)에서 수학을 하셨으며,
지리산 일대의 의병활동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셨다.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祖室)·강백(講伯)이셨고, 범어사와 해인사의 강사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림의 불교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강백이셨다.
1911년 이곳 영원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원사 주지로 재건불사(1914~1917)를 주관하셨다.
그 이후에는 용화사(법주사 청주 포교당)에서 포교에 전념하셨다.
이때 3·1운동(1919)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 진관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
불교계 민족대표이셨던 백용성스님과 한용운스님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시자,
초월스님은 중앙학림에 불교의 독립운동본부(민단본부)를 두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하셨다.
천은사, 화엄사,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해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 제공하셨고,
불교청년들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에 보내셨다.
독립운동을 하시다 일제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다.
초월스님은 출옥하신 이후, 불교사상에 근거한 일심교(一心敎)라는
항일 결사단체를 만드셨고,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에서 강사를 하시면서 스님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셨다.
1939년 10월,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낙서를 쓴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2년 6개월 동안 수감되셨는데,
출옥한 후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시다 청주감옥에 수감되셨고,
안타깝게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셨다.
초월스님은 입적하신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던 참다운 보살, 큰스님이셨다.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 칠성각 보수를 하다
초월스님이 사용하신 태극기와 독립운동 자료가 발견되면서,
초월스님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초월스님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이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진관사에서 3개 자치단체인 고성군(옥천사, 출생),
함양군(영원사, 출가), 은평구(진관사, 독립운동)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백초월스님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산령각(山靈閣)=산신각(山神閣)


복주머니란




영원사 무량수전(靈源寺 無量壽殿),
무량수전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또는 극락전(極樂殿)이라고도 하며,
영원사 무량수전 앞에는 109 아미타여래불(阿彌陀如來佛)을 모셔 놓았다 하고









영원사를 뒤로하고 빗기재로 올라가는데,
약수암 5.7km · 상무주암 1.8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01(국가지점번호 라마 1093 0819, 1019m)

삼정산능선이라고도 부르는 중북부능선에 접속한 빗기재,
잠깐이나마 앉거나 선 채로 숨을 고르면서 쉬어 가기로 하는데,
영원봉(영원재) 쪽으론 가지 말란 <출입금지> 표지판이 막고 있으며,
영원사 0.8km · 약수암 4.9km · 상무주암 1.0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02(국가지점번호 라마 1108 0852, 1105m)

기암(奇巖)



기우(杞憂),
쓸데없고 부질없는 짓거리(?)라고나?

현위치번호 지리 30-03(국가지점번호 라마 1133 0888, 1154m)

삼정산-상무주암 갈림길 직전의 쉼터이자 전망대,
여길 오가는 이들은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러하듯이,
우리 또한 한동안 눈요기와 더불어 입요기를 하면서 쉬어 갈 수밖에는,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능선을 눈에 담고선 두류산방 공식주로 자리매김한 말아주타임,
올해 3월 정기산행으로 진행한 황석산과 거망산 종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그마치 2리터 짜리 페트병 맥주를 배낭에서 꺼내자 깜짝 놀라더란,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나?
그때도 그랬듯이 누가 뭐래도 술 중에 최고는 단연코 낮술이요,
등산의 꽃은 바로 그 낮술이라던가?

소나무가 훌쩍 자라는 바람에 그전만 못하단 느낌이고

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화장봉-삼신봉-촛대봉-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삼정산과 상무주암으로 나뉘는 삼거리,
대세는 별스런 볼거리도 없는 삼정산은 모른 척하고 그냥 가자지만,
법정탐방로(정규등산로)로 정식 개방된 삼정산을 아무도 안 간다는 건,
오랜 세월 동안 받은 홀대(忽待)에서 겨우 벗어난 삼정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나,
그다지 멀지도 않은 0.4km 남짓 된다는데,
13명의 일행 중 9명은 상무주암으로 가고,
나머지 4명은 삼정산으로 올라가고

첫 번째 전망대,
얼마 올라가지 않아 멋들어진 첫 번째 전망대가 반기는데,
벽소령에서 반야봉에 이르는 주능선의 서쪽 부분이 잘도 보이고






첫 번째 전망대에서 한차례 가풀막을 치오르고

헬기장,
가이드포스트(guidepost, 표지목) 현위치번호 지리(국가지점번호 라마 1149 0895)으로,
예전엔 상무주암에서 여길 경유하여 삼정산을 오르내린 기억이 나기에 살펴보니까,
아니나다를까 상무주암 쪽으론 벌겋게 녹이 슨 철조망을 쳐 둔 게 보이는데,
상무주암 등산로는 폐쇄된 지 꽤 오래된 듯하고


층층바위,
돌아 올라가면 두 번째 전망대이고




삼정산(三政山, 1261m),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산 26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삼정산(三丁山)은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하정, 음정, 양정마을을
합쳐 삼정(三丁)이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엔 삼정산(三政山)으로 표기되면서 바뀌었다고,
지금의 정상석은 지난해 5월 말경에 기존의 것을 교체하여 세운 것이요,
카카오맵(kakaomap)에선 여길 삼정산(1182m)이라 표기하기도 했지만,
아까 지난 현위치번호 지리 30-03(국가지점번호 라마 1133 0888, 1154m)을 보면,
삼정산의 위치는 맞지만 높이는 그게 아니지 않을까?
겨우 28m 차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상무주암이 1162m라니까,
딱 20m 높은 셈인가?
에라이!!!
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1428 함양 삼정산(2025.8.20.)
삼정산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나오는 정상과
현재 정상에 세워져 있는 정상석에 표시된 높이가 제각각이라 혼동을 준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삼불사 뒤 1154.9m봉을 삼정산 정상으로 표시해 놓았다.
그러나 삼정산 실제 정상은 상무주암 뒤 높은 봉우리이다.
정상에 국립공원에서 세운 정상석에는 1182m로 잘못 표기돼 있어
하루빨리 정확한 높이로 고쳐야 하겠다.
2024년 인쇄된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높이가 안 나와 있으나,
정상 주위에 1224.7m로 표시된 봉우리가 있는 데다,
정상의 등고선을 세어 보면 1260m로 표시되어,
정상은 무조건 1260m가 넘는 것으로 보인다.
취재팀의 고도계 손목시계에는 정상 고도가 1265m로 나와 있었다.

삼정산 옛 정상석(자료사진)












새봉을 비롯한 동부능선 및 중봉과 천왕봉


삼정산 정상부 전망대

헬기장

다시 돌아온 삼정산과 상무주암으로 나뉘는 삼거리,
이제야 비로소 상무주암으로 가고




예전의 상무주암 요사채

상무주암 해우소


상무주암(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라는데,
영원사의 말사(末寺)로 삼정산 정상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
9세기 중반에 영원조사가 영원사와 함께 창건한 암자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이 2년 여 머물면서
큰 깨우침을 얻었다는 곳으로,
오랫동안 현기(玄機, 법랍 64년·세수 86세)스님이 수행(修行)하던 중
지난해 3월 20일 입적(入寂),
지금은 원신스님이 머무르고 있고


상무주(上無住),
편액엔 경봉(鏡峰, 1892~1982)스님의 시호(詩號)인 원광(圓光)이란 낙관이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변소(便所)를 해우소(解憂所)로 표현한 분이라 하고

그전엔 삼정산 등산로가 이리로 이어지던가?

각운선사 필단사리탑(覺雲禪師 筆端舍利塔)
고려 말의 고승(高僧) 각운선사가『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30권의 저술을 완료하였을 때 붓끝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 탑이라는 걸,
보조국사의 제자인 혜심선사(慧諶禪師 , 1178~1234)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지었으며,
혜심의 제자인 각운선사 역시 상무주암에서 스승의 저술을 자세히 풀이한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를 저술했다는데,
각운선사가 염송설화를 엮을 때 붓끝이 닳아 자주 못 쓰게 되자,
어느 날 어디선가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서 꼬리를 내밀었다는데,
그 꼬리털로 붓을 만들어 <선문염송설화> 30권을 마무리하자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고 하며,
그 사리를 봉안한 게 3층으로 된 필단사리탑이라 하고





30°c 가까이 되는 듯하고

벽소령과 부자바위 일대

중북부능선 뒤엔 주능선 부자바위-삼각고지-명선봉이고












상무주암 이정표,
영원사 1.8km · 약수암 3.9km · 문수암 0.8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04(국가지점번호 라마 1166 0899, 1176m)




현위치번호 지리 30-05(국가지점번호 라마 1168 0935, 1064m)

문수암 해우소,
앉으나 서나 저절로 근심이 해소될 듯한데,
대한민국에선 가장 훌륭한 풍광을 자랑하는 해우소가 아닐는지?



금낭화




문수암(文殊庵)
659년(무열왕 6)에 마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는데,
현재 건물은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지낸 혜암(惠菴, 1920~2001)스님이 1965년 지은 걸로,
천인굴(千人窟)은 암벽의 절리를 따라 자연히 생긴 바위틈이요,
수십 명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인데 왜 천 명이나 들어간다고 했는지,
그전엔 도봉(道峰)스님이 오랜 세월 수행하던 곳인데,
지금은 젊은 처사 한 분이 머무르고 있고



천인굴









도마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건 아니고

문수암 이정표,
영원사 2.6km · 상무주암 0.8km · 약수암 3.1km · 삼불사 0.8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06(국가지점번호 라마 1170 0983, 1069m)


삼불사 직전 이정표,
영원사 3.3km · 문수암 0.7km · 약수암 2.4km · 삼불사 0.1km 를 가리키고


삼불사,
그전엔 동욱스님이 수행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삼불사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확 당긴 함양독바위

처네









삼불사 직후 이정표,
영원사 3.5km · 삼불사 0.1km · 약수암 2.2km · 도마마을 3.2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07(국가지점번호 라마 1171 1016, 988m)

중북부능선(삼정산능선) 마루금 합류 이정표,
조금 위에 위치한 정성재 사거리 경유 삼정산 및 약수암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기도 한데,
영원사 3.9km · 삼불사 0.5km · 약수암 1.8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08(국가지점번호 라마 1186 1057, 890m)

잔디가 쉼터를 제공하고 시원하게 조망이 열려 무덤 전망대라 부르던 곳인데,
다른 데로 이장해 갔는지 무덤이라곤 아예 보이지도 않으며,
무덤이 없으니 관리를 할 필요가 없기에 나무가 훌쩍 자라는 바람에,
쉼터와 전망대 구실을 잃은 지도 꽤 된 듯하고(자료사진)










현위치번호 지리 30-09(국가지점번호 라마 1205 1097, 796m)

이정표,
영원사 4.8km · 삼불사 1.5km · 약수암 0.9km를 가리키고

현위치번호 지리 30-10(국가지점번호 라마 1231 1151, 753m)

현위치번호 지리 30-11(국가지점번호 라마 1257 1188, 740m)







약수암(藥水庵)
1724년(경종 4년) 천은스님이 창건하였다는데,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던가?

약수암 보광전(藥水庵 普光殿),
보물로 지정된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實相寺 藥水庵 木彫幀畵)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실상사 본사인 금산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서 관리하고 있다 하고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불화의 회화적인 요소와 조각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18세기를 대표하는 목각탱화로,
아래쪽 좌우 붉은색 부분이 화기(畵記)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아미타여래의 광배(光背)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두 보살 사이 ‘연화화생(蓮花化生)’ 장면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南原 實相寺 藥水庵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이 탱화는 가운데 자리한 아미타불과 그를 둘러싼 열 분의 보살 및 제자를
나무판에 조각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목조탱화가 유행하였다.
이 탱화는 조선 정조 6년(1782년)에 만든 것으로,
원래는 법당에 모신 불상의 뒤쪽 벽면에 붙어 있었다.
높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는 아미타불은 세 겹의 연꽃무늬 테두리를 두르고 있고,
그 양옆으로 다시 네 보살을 배치하였다.
탱화 가장자리와 불상 사이사이에 섬세한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각진 얼굴과 네모진 신체, 두텁게 표현된 옷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양식을 엿볼 수 있다.

약수암 진입도로가 아닌 등산로를 따라 실상사로 내려가고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南原 實相寺 片雲和尙塔)
편운화상탑은 실상사 경내에서 다소 떨어진 지점에 세워져 있어
스님을 위한 묘탑(墓塔) 성격의 승탑(僧塔)임을 알 수 있다.
탑신 위쪽에 새겨진 24개의 글자를 보면 신라 최초의 선문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열었던 증각대사의 제자,
편운화상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임을 알 수 있다.
편운화상은 수철화상과 함께 실상사를 중흥시킨 대표적인 승려이다.
이 승탑은 후백제의 연호인 정개(正開)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탑의 조성 시기를 알 수 있고,
조성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원형 평면의 석조물로서 역사적,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국가유산이다.









실상사(實相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하고




실상사 천왕문(實相寺 天王門),
천왕문 편액은 여산 권갑석(如山 權甲石, 1924~2008) 선생이 썼다 하고









남원 실상사 석장승(南原 實相寺 石長栍)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는 이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것이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2.5~2.9m, 너비 40~50cm 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임천 경유 남강(경호강)으로 흘러가는 람천,
앞엔 창암산이요,
그 뒤엔 중봉과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위치한 실상사 해탈교(解脫橋),
람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를 건너면서 삼정산과 연계한 6암자 순례를 마치는데,
잠깐이나마 속세(俗世)를 떠나 선계(仙界)에서 머물다 다시 돌아온 속세,
그 기념으로 뒤풀이를 빙자한 하산주타임을 갖지 아니할 수가,
우리네들이야 눈이 즐거운 선경(仙境)보단 입이 즐거운 인간세상이 더 좋은지도,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 앞두고 다녀온 6암자 순례,
나로선 꽤 오래간만에 따라나선 셈이요,
100세 인생,
지는 해가 아름다운 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라는데,
살다 보면 기회는 또 있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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