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19년 9월 20일(금요일)
* 날 씨 : 구름 조금
* 산 행 지 : 의령 부잣길
* 산행거리 : 12.8km
* 산행시간 : 7시간 05분(운행시간 4시간 15분 + 휴식시간 2시간 50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9명(박만길, 황의봉 부부, 송문영, 한윤갑 부부, 이영근, 유달수, 조광래)
* 산행일정
09:30 호암이병철생가 공영주차장
09:40 정곡삼거리
10:00 죽전배수문
10:10 금강교
10:16 - 10:52 불양암주차장(탑바위)
10:55 - 11:00 호미산(98m)
11:23 호미당산제단
11:36 - 12:39 호미교
12:52 예둔배수문
13:15 - 13:23 지방도 1011호선(마실길)
13:35 심원재
13:43 예동마을
13:48 무동마을(산너머길)
14:14 - 14:41 의령 남씨 묘지
14:58 - 15:07 잠두봉(175.4m)
15:36 가막산 원각선원
15:43 - 15:55 성황리 소나무
16:10 성황회관
16:23 월현천교
16:29 중교사거리
16:35 호암이병철생가 공영주차장
* 의령 부잣길
역사와 문화가 있는 부잣길은 A코스와 B코스로 나뉜다.
A코스는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월현천 낚시터와 탑바위, 불양암, 호미산성, 호미마을을 거쳐
월현천 남쪽 둑길을 따라 출발지인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오는 6.3km의 길이다.
B코스는 역시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월현천 남쪽 둑길을 따라 예동마을과 무곡마을을 거쳐 산을 넘어서
성황리 소나무와 성황마을을 지나서 다시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오는 12.8km의 길이다.
A코스와 B코스를 동시에 걷고 싶다면,
A코스를 걷다가 호미마을 앞 호미교에서
오른쪽으로 난 둑길을 따라 B코스로 걸어가면 된다.
거리는 17.4km이다.
부잣길은 청정의 하천과 여유로운 남강변과 풍요로운 들판,
그리고 편안함을 주는 숲길을 따라
부자의 기운과 더불어 여유를 누리며 걷는 녹색길이다.
부잣길의 시작은 월척기원길을 따라 걷는다.
월척기원길 옆으로 난 월현천의 경치를 보며
월척기원과 함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할 수 있는 길이다.
월척기원길을 벗어나 탑바위길에 이르면
오늘날 삼성기업을 이룬 호암 이병철 선생님이 이곳 탑바위를 보며
자신의 꿈을 품었다는 의령 구경 중 제6경인 탑바위를 볼 수 있다.
탑바위에서 중요한 소원 하나를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 탑바위를 뒤로하고 절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호미산성 주위를 걷는 호국의병의길에 이르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천강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진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이 의병의 첫 승전지인 기강전투와
왜구에 맞서 싸워 큰 승리를 이끌어낸 전적지인
정암진 전투를 생각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그 공기가 상쾌한 들판과 산길을 경험할 수 있는 남가람길,
가야역사길, 마실길, 산너머길로 이어진다.
그러다 긴 시간 걸어온 보상으로 성황리 소나무를 만난다.
이 성황리소나무는 성황리를 지키며 8.15 광복을 예언하는
전설을 가진 300년 이상된 천연기념물(제359호)로
소중한 생명의 정기를 느끼게 해 준다.
성황리 소나무를 뒤로하여 산들산들 걸을 수 있는
산들사잇길을 지나면 저 유명한 호암 생가와 연결된
부자소망길을 만나게 되어 한번쯤 삼성가와 같은
훌륭한 가문을 이루고자 하는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길이다.
부잣길에서 부자가 되는 꿈을 품는 기회를
도전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의령군 정곡면 일대를 걷는 둘레길은 명칭부터 남다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을 기 · 종점으로 한 의령 부잣길이다.
의령 부잣길은 <기원 · 소원성취>라는 주제가 특색이다.
그래서 풍수를 공부하는 이부터 창업과 취업,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부잣길은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에서 출발,
인근 들과 산을 돌아보는 코스로 거리는 12.8㎞,
5시간 정도 소요된다.
평탄한 길이 많아 가족 단위 코스로는 제격이다.
의령읍에서 국도 20호선을 따라 15분 정도 달려
중교사거리에서 정곡면 방향으로 150m만 가면
곧장 정곡면사무소와 공영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공영주차장에서 호암 생가까지는 불과 250m 거리다.
■ 의령 3대 기도처 탑바위
둘레길 첫걸음은 정곡면을
가로지르는 월현천 남쪽 둑길을 걷는 2㎞ 구간.
평지가 끝나고 제법 가파른 산길을 따라
300m 정도 오르면 첫 쉼터격인 탑바위를 만나게 된다.
탑바위는 의령군이 선정한 의령 9경 가운데 제6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됐다.
얇고 편평한 돌판이 탑처럼 층층이 쌓인 탑바위의 높이는 8m,
전설에 따르면 애초 탑바위에는 암탑과 숫탑이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건너편 함안군에서 해마다 곱사등이와 언청이가 한 명씩 태어났는데,
그 연유를 물으니 강 건너 절벽에 있는 두 개의 돌탑 때문이라고 했다.
얘기를 들은 함안의 장정 수십 명이 돌탑 하나를 쓰러뜨렸는데
그 순간 장정들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이후 함안지역에서 곱사등이나 언청이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탑바위는 정암교 솥바위, 궁류면 평촌리 봉황대에 있는
코끼리 바위와 함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령지역 3대 기도처(바위)다.
안내판에 <진심으로 빌어보세요.
어느 것이든 하나는 들어 줍니다.>라는 글이 보인다.
■ 호랑이 꼬리 닮아 호미산성
탑바위에서 내려와 호미교를 건너,
예동마을을 거쳐 무곡마을에 이르는 4.6㎞ 구간은
강과 들녘을 바라보며 걷는 전형적인 힐링 코스다.
무곡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인 호미산 코스에 접어든다.
호미는 말 그대로 호랑이 꼬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그러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0m 정도여서 큰 부담은 없다.
정상 부근에 이르면 허물어진
호미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01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무너졌고, 200m 정도 토성 흔적만 남아 있다.
축조 연대는 가야시대로 추정될 뿐이다.
잊힐 뻔한 산성은 임진왜란 의병장인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전적지라는 역사의 현장으로 되살아난다.
호미산은 호암 이병철 생가의 풍수지리와 연관된 지형이어서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코스다.
■ 서낭당에서 유래된 마을 성황리
둘레길 종착지를 향한 걸음은 성황리 소나무에서 또 한번 멈춰 선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성황당(城隍堂·서낭당)을 따 마을 이름까지 성황리다.
마을 뒷산 경사면에 있는 소나무는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59호로 지정됐다.
높이 13.5m, 둘레 4.8m의 크기로 1∼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지고 옆으로 넓게 퍼져 경이롭기까지 하다.
성황리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성황리 소나무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지만,
북편으로 의령 남씨 묘소와 마을 앞 산기슭에 의령 남씨의
사당이 있는 점으로 미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부잣길이 <기원 · 소원성취의 길>로 뚜렷한 주제를 갖게 된 배경에는
탑바위와 성황리 소나무도 한몫하고 있다.
* 공영주차장 - 2.0km - 불양암주차장 - 0.3km - 탑바위입구 -
1.5km - 호미교 - 1.2km - 월현1배수장 - 0.8km - 예동마을 - 1.1km -
무곡마을 - 2.9km - 성황리소나무 - 1.3km - 성황천 - 0.9km -
공설운동장(월현천교) - 0.8km - 공영주차장(12.8km)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정곡면사무소 뒤에 위치한 호암이병철생가 공영주차장,
진주교정동우산악회원들이 역사와 문화가 있는 의령 부잣길을 탐방하기로,
내일부턴 우리나라가 제17호 태풍 타파의 영향권에 든다고 하지만,
아직까진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가을 날씨를 보이고 있는데,
비교적 수월한 길이 쭉 이어진다는 의령 부잣길,
부잣길을 걸으면서 부자의 기운을 받아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이 나이에 그럭저럭 밥이나 먹고 살면 되지,
이제 와서 욕심을 부린 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뭐니 뭐니 해도 그게 제일이요,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는가?(09:30)
부자의 기운을 받으며 걷는 건강길
예로부터 부자마을이 많고 인심까지 넉넉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소문난 의령,
의령에 알부자가 많은 이유를 남강 솥바위, 즉 정암(鼎巖)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 지방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물처럼 여긴다.
솥은 예로부터 곡식, 즉 재물을 뜻하고 솥바위 아래 세 개의 큰 기둥은 삼정승을 뜻하여,
사방 20리 안쪽에 버금가는 세명의 큰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이 지방에 전해져 왔다.
솥바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이곳 중교리에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태어나 성장했고,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은 7km,
효성그룹을 창업한 조홍제 회장은 5km정도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테마1. 장내마을 명소 탐방
* 호암 이병철 생가
장내마을에는 삼성그룹의 창시자였던
고(故) 이병철 회장의 생가와 별장이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재물이 쌓일 수밖에 없다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부(富)의 기운을 받고자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석조여래좌상
1925년 당시 마을 뒷산 미륵골 사지(寺址)에서
석조여래좌상 2기를 발견하여
현 정곡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제6호)로 지정되었고,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령 9경
정곡면건강찜질방 쪽으로 빠져나가고
정곡파출소
중교(中橋)
정곡초등학교
정곡천을 가로지르는 정곡1교
정곡삼거리에서 국도 20호선 의합대로를 건너 정곡천을 끼고 가고(09:40)
밤 줍는 사나이들
테마2. 월현천 월척낚시체험
* 월현천(月峴川)
정곡면 예둔리 끝에는 남강이 흐르고 있는데,
월현천은 마지막에 남강과 합류하게 된다.
월현천은 정곡면 오방리를 시작으로 석곡리, 중교리, 성황리, 예둔리까지 흘러간다.
또 성황리에서 성황천과 합류하면서 하천의 폭도 넓어지고 물의 양도 많아지게 된다.
월현천 제방 아래 잘 꾸며진 낚시터에서 월척과 함께 인생의 큰 행운을 낚아 보자.
월현천
붕어
* 분 류 :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
* 몸의빛깔 : 등쪽 황갈색, 배쪽 은백색에 황갈색
* 산 란 기 : 4 - 7월
* 서식장소 : 하천 중류 이하의 물의 속도가 느린 곳, 물풀이 많은 곳
몸길이 20 - 43cm이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꼬리자루의 나비는 넓은 편이다.
머리는 짧고 눈은 작다.
콧구멍은 서로 맞붙어 있고 앞콧구멍은 작다.
주둥이는 짧으며, 입은 작고 입술은 두껍다.
아래턱은 위턱보다 짧으며,
편평한 후피습(後皮褶)이 앞콧구멍의 주위에 솟아올라 있다.
뒷지느러미는 짧고, 등지느러미의 가시에는 톱니가 있다.
가슴지느러미는 대칭형이고, 좌우의 배지느러미는 서로 붙어 있다.
꼬리지느러미는 가운데가 오목하다.
비늘은 둥근비늘(원린)이나 머리에는 없다.
측선(옆줄)은 아래로 향하고, 꼬리지느러미 기저에까지 이른다.
사는 곳에 따라 몸빛깔이 달라지는데,
등쪽이 황갈색이고 배쪽은 은백색에 황갈색을 띤다.
피라미
* 분 류 :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
* 몸의빛깔 : 등쪽 청갈색, 옆구리와 배쪽은 은백색
* 산 란 기 : 6 - 8월
* 서식장소 : 하천 중류와 하류의 여울
몸길이 8 - 12cm이다.
몸은 길고 날씬하며 옆으로 납작하다.
옆줄은 배쪽으로 많이 쳐져 있다.
비늘은 큰 육각형으로 수정 광택이 있으며,
꼭대기 가장자리와 밑 언저리의 중앙은 솟아올라 있다.
뒷지느러미는 매우 크며,
생식 시기가 되면 유난히 붉은빛을 띠며 수컷이 더욱 뚜렷하다.
몸빛깔은 등쪽이 청갈색이고, 옆구리와 배쪽은 은백색을 띤다.
옆구리와 배쪽 사이에는 붉은빛이 서로 질러 있고
옆구리에는 불규칙한 암청색의 가로띠가 10 - 13줄 있다.
어릴 때에는 이 가로띠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있다.
산란기에 수컷은 화려한 혼인색을 나타내어
등은 청록빛을, 주둥이 · 머리 · 지느러미는 붉은빛을 띠며,
옆구리에는 분홍색의 무늬가 나타난다.
하천 중류와 하류의 여울에 주로 서식한다.
2급수에 주로 살지만, 내성이 강하여 3급수에서도 잘 견딘다.
주로 돌이나 모래에 붙어 사는 미생물을 먹지만,
물에서 사는 곤충도 먹는다.
버들치
* 분 류 :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
* 몸의빛깔 : 지저분한 황갈색 바탕, 등쪽 암갈색, 배쪽 연한색
* 산 란 기 : 물이 느리게 흐르는 여울에서 산란, 5 - 6월
* 서식장소 : 넓은 하천과 호수, 좁은 산간 계류
몸길이 8∼15cm이다.
몸은 길고 옆으로 납작하다.
버들개와 비슷하나 비늘은 버들개에 비해 크고,
꼬리지느러미는 얕게 갈라진다.
눈은 비교적 작다.
주둥이는 길고 위턱 끝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육질돌기가 있으며 입수염은 없다.
아래턱은 위턱보다 조금 짧다.
몸빛깔은 지저분한 황갈색 바탕에 등쪽은 암갈색,
배쪽은 연한색이다.
몸 한가운데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폭이 넓은 암갈색 세로띠가 있으며,
앞쪽은 연하나 뒤쪽은 진하다.
이 세로띠는 일반적으로 버들개보다 연하다.
옆구리에는 짙은 갈색의 비늘 모양이 흩어져 있어 버들치의 특유한 색채를 낸다.
꼬리지느러미 기저 중앙의 지느러미를 싸고 있는
피부 뒤끝 언저리에는 아래위를 이은 검은 반점들이 있다.
활발하게 행동하며
잡식성으로 갑각류, 곤충류, 작은 동물, 식물의 종자 등을 먹는다.
죽전배수문(10:00)
금강교,
탑바위길을 따라 죽전천을 건너 불양암주차장으로 올라가고(10:10)
국도 20호선 불양양·탑바위 진입로 안내판
테마3. 수려한 자연경관 감상
탑바위, 호미산성
가파른 꼬부랑길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아름다운 <부자기원소>가 반가이 맞아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래를 바라보면 남강의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강 건너편은 끝없이 넓은 들판이 활짝 전개되니 가히 절경이라 이를 만하다.
남강변의 깎아지른 암벽 위에 위치해 있는 탑바위는
멀리서 보면 용맹스런 장수가 강변 쪽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모습처럼 보이고,
꼭대기에는 파란 이끼가 소복히 얹혀 있어서 까까머리 동자승 같게도 보인다.
불양암주차장,
가까이 있는 탑바위와 불양암을 둘러보고,
막걸리와 간식으로 목도 축이면서 한동안 머무르는데,
남강을 사이에 두고 함안군 법수면 백산리와 마주보는 곳이고(10:16 - 10:52)
의령 죽전리 고분군(宜寧 竹田里 古墳群)
남강을 따라 형성된 해발 100m 정도의
능선 정상부에는 많은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들은 오래 전부터 도굴이 심할 뿐 아니라,
정식으로 발굴되지 않아 자세한 구조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큰 무덤은 30여기 정도이며,
주변에 작은 돌곽(石槨, 석곽)이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분(封墳)의 크기는 지름 8 - 10m, 높이 1.5 - 2m 정도이다.
고분의 구조는 구덩식(竪穴式, 견혈식) 또는
굴식(橫穴式, 횡혈식)의 돌곽무덤(石槨墓, 석곽묘)이 대부분이다.
하나의 봉분 안에 여러 기의 무덤이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 채집되는 토기 파편과 고분의 구조를 고려할 때
이곳의 고분들은 대략 기원후 6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군은 가까이에 있는 호미산성(虎尾山城)과 함께
삼국시대의 의령지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탑바위
탑바위(塔巖)
탑바위는 남강변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 1946년에 창건한
불양암과 남강을 지켜보고 있는 탑모양의 바위로 의령 9경 중 6경이다.
이 바윗돌이 생긴 시기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원래는 쌍탑으로 암탑, 쑥탑(수탑)이라 불렸고, 지금은 수탑만 남아 있다.
그 모양을 보면 약 20톤 가량의 커다란 바위가 아랫부분을 받치고,
그 위로 높이 8m 가량의 작은 바위가 마치 탑층을 이루듯
층을 이루고 있어 매우 진기한 자연의 조화라 하겠다.
아래로는 남강의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으며,
강 건너에 넓은 들판이 활짝 펼쳐진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곽망우당의 전승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우리 고장 의령은 임진왜란 때
의병의 전승지가 아닌 곳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라 하겠지만,
특히 이곳 탑바위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의병들의 거점으로 삼았던 유곡면 세간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고,
남강변에 촘촘히 복병을 매복해 두었다가 왜군의 내습에 대비했던 기록들로 미루어
이곳 탑바위의 싸움도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하게 해 준다.
지금은 기묘한 모양에서 풍겨지는 기이한 기운을 통해
가족의 무병장수와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암탑의 부서져 버린 애틋함이 수탑에게 향하고 있어
청춘남녀들이 기원을 하면 애틋한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된다는 사연이 있다.
그리고 솥바위의 부자 기운이 탑바위를 거쳐 이병철 생가로 이어져 있어
탑바위에서 기원을 하면 그 기운을 받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설이 있다.
옛 탑바위 안내판
이 바윗돌이 생긴 시기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원래는 쌍탑이었다고 한다.
암탑, 쑥탑(수탑)으로 불렀다는데 탑에서 내려다보면
맞은편에 함안 백산마을과 너른 들판이 환히 내려다보이고,
천 길 낭떠러지 저 아래 시퍼런 남강물이
길게 흐르고 있어서 내려다보면 어지러울 정도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강 건너 백산마을에서
해마다 병신이 자꾸 끊이지 않고 태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의논하기를
해마다 째보, 곱사, 절름발이 등이 계속 태어나니 이건 우연이 아니다.
<용한 도인을 찾아 물어보자.> 하였다.
그래서 소문난 도인에게 물어보니 도인의 말이
<저 건너 의령 땅에 있는 탑바위 때문에 그러니 저 탑바위 하나를
없애버리면 이 동네가 잠잠해지고 병신이 나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그런 뒤에 한차례 어려운 고비를 겪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손들을 생각해서 일을 시작하기로 결의하고는
동네사람들이 장정 일곱을 뽑아 야밤중에 강을 건너와서 탑 하나를 부셔버렸다.
그리고 도사의 말처럼 탑을 부수는 동안 두 사람은 강으로 떨어져 죽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달포를 못 넘기고 다 죽었다.
그러고 난 뒤부터는 백산마을에는 아무 재앙이 없고,
농사도 잘되어 풍년이 계속되고 안가태평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쑥탑(수탑)만 남아 있는데,
기묘한 모양에서 풍겨지는 기이한 기운을 통해
가족의 무병장수와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암탑의 부서져 버린 애틋한 마음이 수탑에게 향하고 있고 있어,
청춘남녀들이 기원을 하면 애틋한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된다는 사연이 있다.
그리고 솥바위의 부자 기운이 탑바위를 거쳐 이병철 생가로 이어져 있어,
탑바위에서 기원을 하면 그 기운을 받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설이 있다.
자료사진
불양암,
남강변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에 1946년 창건한 비구니 스님들의 기도도량이라 하고
호미산성(虎尾散聲)
이곳 호미산 정상의 9부 능선을 따라
위치한 이 산성은 주변의 잡석을 이용해 쌓은 것이다.
남강 강변의 깎아지른 절벽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테두리처럼 둥글게 쌓는 이른바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지금은 약 200m에 이르는 토성(土城)의 흔적만이 정상 언저리에 남아 있다.
현재 성 안팎이 개간되어 밭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이 성을 언제 쌓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남강 강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가야시대부터 성이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는 삼국시대의 고분군(古墳群)이 널리 분포되어 있어 이를 뒷밤침해 주고 있다.
또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장군이 유격전을 펼침으로써,
일본군의 서부 경남 진출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해진다,
호미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0년 12월 30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됨)
호미산,
삼각점(남지 437)과 팔각정 쉼터가 자리 잡고 있고(10:55 - 11:00)
이건 무슨 이유에선지 없어졌고
호미산성(虎尾山城)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에 있는 호미산의 정상부에
약 200m 가량의 흙으로 쌓아 올린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을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의령읍 하리 벽화산에 있는 벽화산성(碧華山城)과 비슷한 시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망우당 곽재우(1552 - 1617) 장군의 전적지 가운데 하나이며,
호미산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테마 4. 소망기원 호미마을 명소탐방
호미마을
호미마을은 고개 잿길이 높고 길다 해서 붙여진 진등재 바로 아래 위치하며,
마을까지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를 호두산(虎頭山이라 부르고,
호랑이 꼬리에 해당되는 곳이 호미(虎尾)마을이라고 한다.
호미마을에는 당산나무와 할배돌, 할매돌이 있다.
마을의 길흉이 있을 때 당산나무 아래에서 잔치를 열고,
나무 아래 할배돌에 돼지머리 윗뼈를 묻고,
마을 내에 위치한 할매돌 아래에 턱뼈를 묻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
호미당산제단(虎尾堂山祭壇),
여긴 할배돌이라 하고(11:23)
호미마을
할매돌
마을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할매돌
호미마을은 고개 잿길이 높고 길다 해서 붙여진 진등재 바로 아래 위치하며,
마을까지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를 호두산(虎頭山이라 부르고,
호랑이 꼬리에 해당되는 곳이 호미(虎尾)마을이라고 한다.
호미마을에는 당산나무와 할배돌, 할매돌이 있다.
마을의 길흉이 있을 때 당산나무 아래에서 잔치를 열고,
나무 아래 할배돌에 돼지머리 윗뼈를 묻고,
마을 내에 위치한 할매돌 아래에 턱뼈를 묻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
월현천을 가로지르는 호미교,
건너가자마자 의령 부잣길이 A코스와 B코스로 나뉘는데,
사각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B코스를 따라가기로,
그래야 하루해를 채울 수 있으니까.(11:36 - 12:39)
자굴산이 보이는가 하면
여항산도 보이고
호미교
쇠백로
* 분 류 : 황새목 왜가리과의 조류
* 생활방식 : 무리 생활, 1회에 3- 5개의 알을 낳음
* 크 기 : 약 61cm
* 몸의빛깔 : 흰색
* 서식장소 : 논, 못, 강, 하구
몸길이 약 61cm이다.
몸이 작아서 다른 백로와는 구별된다.
깃은 흰색이고 윗목에 두 가닥의 길고 흰 장식깃이 자란다.
부리와 다리는 검정색이고 발가락은 노란색이다.
여름깃은 1 - 4월 사이에 털갈이를 하며,
번식기가 되면 눈 앞쪽이 붉어진다.
몸집이 작고 발가락이 노란색이어서 다른 왜가리와는 쉽게 구별된다.
4월 하순 - 8월 상순에 3 - 5개의 알을 낳이 23일 동안 품는다.
갓 깨어난 새끼는 흰 솜털로 덮여 있다.
먹이로는 물고기 · 개구리 · 뱀 · 새우 · 가재 및 수생곤충 따위를 잡아먹는다.
왜가리
* 분 류 : 황새목 왜가리과의 조류
* 생활방식 : 단독 또는 소규모 무리 생활, 알을 낳음
* 크 기 : 91cm - 102cm
* 몸의빛깔 : 회색(등), 흰색(아랫면)
* 서식장소 : 못, 습지, 논, 개울, 하천, 하구 등 물가
머리에서 목까지는 백색이고,
이마의 양쪽에서 눈 위를 지나 윗머리까지는 검은 띠가 있으며,
뒷머리의 깃털은 우관(羽冠) 모양을 이룬다.
등에서 위꼬리 덮깃까지는 청회색이다.
어깨깃은 뻗어서 장식깃이 되었으며,
연한 회색이나 날개의 덮깃은 대부분 청회색이다.
한국에서는 흔한 여름새이며,
번식이 끝난 일부 무리는 중남부지방에서 겨울을 나기도 하는 텃새이다.
못 · 습지 · 논 · 개울 · 강 · 하구 등지의 물가에서 단독
또는 2 - 3마리씩 작은 무리를 지어 행동하며 주로 낮에 활동한다.
날 때는 목을 S자 모양으로 굽히고 다리는 꽁지 바깥쪽 뒤로 뻗는다.
이동할 때는 밤에도 난다.
예둔배수문(12:52)
테마 5. 가야역사의 발견
죽전리 고분군
호미산성의 반대쪽 능선부에 위치하며
유적의 남쪽으로는 남강이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에는 죽전리 석실고분이 위치해 있다.
고분군은 오래 전부터 도굴 당하여 그 원형이 훼손된 상태이고,
외관상 확인되는 봉토분은 30여 개 정도이다.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과 무덤의 구조를 살펴볼 때
이 무덤들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이 지역의 가야무덤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유적이다.
의령 죽전리 고분군
1990년 12월 30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된 죽전리 고분군은
호미산성의 반대쪽 능선의 마루를 따라서 자리 잡고 있는데,
남쪽으로는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이고,
맞은편에는 죽전리 석실고분이 위치해 있다.
이 유적은 오래 전부터 도굴 당하여 훼손이 심한 상태이며,
현재 수풀이 덮여 있어서 외형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현재 확인되는 유구는 지름 8 - 10m, 높이 1.5 - 2m 정도의 봉토분 30여 기이며,
도굴된 현상으로 보아 봉토분 주변에도
수많은 소형 석곽이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곽은 현재 확인된 것으로 수혈식과 횡혈식 등이 혼재하고 있으며,
봉토분 중에는 하나의 봉토 내에 2개 이상의 석곽을 포함하는 다곽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석곽의 구조는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할석(割石, 깬돌)을 이용하여 내벽을 정연하게 쌓아올린 것으로,
일반적으로 가야의 전형적인 무덤으로 알려진
수혈식 석곽의 구조를 잘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과 고분의 구조로 보아
유적의 조성연대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되며,
인접해 있는 호미산성과 함께 학술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의령지역 가야고분 연구 뿐만 아니라,
당시 여러 가야 소국들 사이의 문화교류와 정세변동 등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고고학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령군 정곡면과 함안군 법수면을 잇는 지방도 1011호선 법정로로 내려서서,
50m 남짓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도토리를 줍느라 자꾸만 늦어지는 일행들을 기다렸다 같이 갈 수밖에는,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또는 꿩 먹고 알 먹는 것도 좋긴 하지만,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13:15 - 13:23)
예동마을
테마 6. 농촌의 향수
마실길
이웃에 놀러간다는 뜻의 <마실길> 구간은
동네 마실 나온 기분으로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로,
느림의 미학과 삶의 체취가 묻어나는
민가를 바라보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논두렁, 밭두렁과 잘 닦여진 농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예동마을과 무동마을의 농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고즈넉한 고향의 향수를 만끽할 수 있다.
정겨운(?) 푸세식 화장실
이게 뭔가?
심원재(尋源齋),
김녕 김씨 재실이라 하고(13:35)
그쪽이 아닌데?
곧장 예동마을로 가야 하는데
예동마을을 지나 무곡마을에서 산너머길로 들어서고(13:48)
돌아본 예동마을
테마 7. 소나무 숲길 산책
산너머길
무곡마을에서 성황마을로 넘어가는 산너머길이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조성된 오솔길을 걸으면
진한 솔향기를 맡고 각종 야생화를 볼 수 있다.
간간히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남강과 너른 들판의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성황리 소나무까지 2.5km를 가리키고
멧돼지 목욕탕
의령 남씨 묘지,
또 도토리를 줍느라 늦어지는 일행들을 나 홀로 기다리는데,
도무지 올 기색이라곤 없어 보이기에 전화를 걸어 닦달을 하는 수밖에,
명색이 산행이란 걸 하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한참만에야 나타난 일행들과 막걸리 1통을 마저 비우고선,
오늘의 하이라이트(highlight) 성황리 소나무를 보고자 걸음을 재촉하고(14:14 - 14:41)
사각정 쉼터
사각정 쉼터 안부 삼거리,
정곡면 성황리 갈림길이고(14:42)
또 다른 정곡면 성황리 갈림길,
담양 전씨 문중 묘원 바로 아래이며,
군데군데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그다지 헷갈릴 염려는 없을 듯?(14:46)
담양 전씨 문중 묘원
잠두봉,
부잣길 안내판에는 보악산(176.8m)으로 되어 있지만,
국립지리정보원 지도상 보악산(128.0m)은 아까 쉬었던 의령 남씨 묘지 윗봉우리이며,
여긴 보악산 아닌 잠두봉(175.4m)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헷갈리게 소개해 놓았을까?
이제 성황리 소나무까지 1.7km를 가리키고(14:58 - 15:07, 175.4m)
1:5만 영진 지도상의 잠두봉 고스락(172m),
이제 성황리 소나무까지 1.2km를 가리키고(15:17)
명색이 부잣길인데 이게 뭡니까?
가막산 원각선원,
마침내 성황리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고(15:36)
성황저수지
성황리 소나무(15:43 - 15:55)
의령 성황리 소나무
의령 성황리 소나무는 마을 뒷산의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13.5m, 가슴둘레 4.8m의 크기로 1 - 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져 옆으로 넓게 퍼져 자랐으나,
그 가운데 하나는 고사(枯死)하고 현재는 3개의 가지가 남아 있다.
나무에 대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북쪽에는 묘소가 있고,
마을 앞 산기슭에는 의령 남씨(宜寧南氏)의 사당이 있어
이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한편 전하는 이야기로는
일제강점기 때 30m 정도 떨어져 자라고 있던 다른 소나무의
가지와 맞닿으면 광복이 된다는 말이 전해져 오다가
실제로 광복 무렵에 서로 맞닿았다고 한다.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나무로 민속학적,
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59호로 지정)
성황리 소나무(이하 자료사진)
테마 8. 성황마을 명소탐방
성황마을
성황은 <서낭>이 본디말로
서낭신을 모시고 제사를 드리거나 굿을 하는 서낭당이니,
서낭나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오른쪽 사면에 높이 11m, 둘레4.7m로서 지상 1.7m 높이에서
4개로 갈라져 뻗어 있는 천연기념물 제359호 성황리 소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와 옆에 있는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광복>이 된다는 말이 전해 오더니,
그런 현상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탑골 뒤편 절터에 위치한 성황리 삼층석탑
(경남상도 유형문화재 제114호)은 2중 기단의 방형 삼층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애국지사만초남병우선생추모비(愛國志士晩樵南炳祐先生追慕碑)
애국지사 만초남병우선생 추모비
이 추모비는 식민지 지배체제의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인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하여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에 항거하여
투쟁하다가 옥고를 치른 항일 독립운동가 남병우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02년 4월 28일 건립하였다.
경남 의령군의 경우 정곡면(正谷面) 중교동(中橋洞)의 동쪽 일대의 토지는
정곡면 죽전리(竹田里)·성황리(城隍里) · 예리(禮里) · 중교리(中橋里) 등
4개 동리의 주민들이 개간을 끝내고
지세(地稅)를 납부하며 경작해오던 민유지(民有地)였다.
그러나 일제는 종래의 농촌관행을 무시한 채 이 지역을 인근의
토지와 함께 국유지로 편입하여 멋대로 조선농업주식회사에 불하하였고,
1914년 8월에는 임시토지조사국원(臨時土地調査局員)을
파견하여 해당지역의 측량을 강행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전중진(田中鎭), 남병우(南炳祐),
남상순(南相舜), 이진우(李震雨) 등은 토지측량이 실시되면
모두 국유지로 편입되어 조선농업주식회사의 관아로 이관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할 것이 명백하므로 토지측량을 저지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700여 명의 주민을 집결하여
<해당 토지측량은 동민의 권리를 무시한 압제의 작업이니 단연코 방해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하여 동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8월 26, 27일의 이틀에 걸쳐 경찰관의 입석 하에 진행된
임시토지조사국원의 토지측량을 방해하였고,
이를 안내하던 박기양(朴璂陽)을 구타 응징하는 등 격렬하게 항쟁하였다.
남병우 선생은 이 일로 인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15년 1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성황회관,
2차선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성황회관 맞은편 성황쉼터와 상촌천 쪽으로(16:10)
산들사잇길,
둑길을 따라 0.9km가 이어지고
지방도 1011호선이 지나는 월현천교,
부자소망길 0.8km가 이어지는 마지막 코스가 시작되고(16:23)
이건 보이지 않고
중교사거리,
국도 20호선과 지방도 1011호선이 교차하고(16:29)
정곡파출소
7시간 05분 만에 다시 돌아온 호암이병철생가 공영주차장,
길지 않은 거리에 비해선 꽤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인데,
곳곳에서 도토리를 줍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무르익어 가는 가을을 만끽하면서 함께한 하루해,
쉽사리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10월 정기산행은 11일(금요일)에 진행할 예정이며,
현재로선 남원 지리산신선둘레길이 유력할 듯,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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