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태극(관련) 산행기

홀로 가는 덕산 지리태극(3,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29.3km)

큰집사람 2016. 5. 2. 21:08

* 날    짜 : 2016년 4월 30일(토) - 5월 1일(일)

* 날    씨 : 대체로 맑음

* 산 행 지 : 덕산교 - 웅석봉 - 밤머리재 - 천왕봉 - 성삼재 - 만복대 - 구인월마을회관

* 산행거리 : 90.5km

* 산행시간 : 42시간 10분(운행시간 38시간 08분 + 휴식시간 4시간 02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명(나 홀로)

 

 

 

  

 

 

 

 

지리산 천왕봉,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정상석만이 날 맞는데,

정녕 이게 낮에 봤던 그 천왕봉이란 말인가?

어찌나 바람이 드센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서둘러 흔적만 남기고선 장터목으로 내려갈 수밖에는,

 꼭두새벽부터 참 많이도 걸었단 생각이지만,

그래 봤자 38.2km를 왔을 뿐이요,

 이제 겨우 42% 정도 진행한 셈인가?

천왕일출(天王日出)은 지리산 10경(景) 중 제1경으로,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천왕봉의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다던가?(23:45)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4월 30일(토요일)에서 5월 1일(일요일)로 넘어가는데,

달과 날짜와 요일이 한꺼번에 바뀌는 셈이요,

두 달 보름 동안 닫혔던 장터목과 노고단을 잇는 지리 주릉이 열리고(5.1.00:00)

 

 

 

 

작은통신골 갈림길인 호구당터 이정표,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던 곳이라던가?

이제 장터목대피소는 1.0km가리키고(00:10)

 

고사목으로 이름을 날리던 제석봉 이정표,

전망대가 있지만 그 무슨 소용이랴?

보이는 건 어둠 뿐이거늘(00:19)

 

 

 

 

군데군데 불을 밝힌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서자,

불빛만 졸고 있을 뿐 인기척이라곤 들리지도 않지만,

누가 가지 말라며 붙잡기라도 할까 봐,

발자국 소리는 커녕 숨소리마저 죽이며 살금살금,

헤드랜턴도 손바닥으로 가리고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던가?(00:33)

 

 

 

 

일출봉 이정표,

일출봉과는 제법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00:48)

 

연하봉,

지리산 10경 중 제8경인 연하선경(煙霞仙境),

 연하선경이란 세석대피소에서 연하봉에 이르는 2.6km의 산줄기를 말하는데,

노고단과 천왕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25.5km)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미(白眉)라고나?

이제 세석대피소는 2.6km를 가리키고(00:54)

 

 

 

 

누가 또 이렇게 친절하게도?

 

 

꽁초바위라 부르기도 하는 화장봉,

연하선경을 비롯하여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지금처럼 한밤중에야 그 무슨 소용이랴?(01:05)

 

 

 

어둠에 싸인 촛대봉,

눈길만 주곤 지나칠 수밖에는,

올라가 봤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을 테고,

촛대봉에 얽힌 전설이라는데,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 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여인의 애처러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의 바위는 바로 연진여인이 굳어진 모습이라 한다.

세석대피소 0.7km를 가리키고(01:57)

 

 

 

 

세석갈림길,

볼일이라곤 없는 세석대피소는 그냥 지나치고(02:12)

 

 

 

 

삼월 스무닷새 달이 촛대봉 위에 두둥실,

반달도 아닌 것이 그믐달도 아닌 것이

 

영신봉 이정표,

벽소령대피소 5.7km를 가리키고(02:27)

 

짱구바위 또는 가분수바위라 부른다나?(02:38)

 

 

칠선봉 기암,

칠선봉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지리 01 - 38지점(1552m)이기도 한데,

칠선봉은 부근에 흩어져 있는 7개의 암봉을 지칭하는 것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칠선 남릉이 흘러내리는 1565m봉이라는 걸,

덕산교(사리마을회관)에서 45.2km를 왔으니,

90.5km에 이르는 덕산 지리태극의 중간쯤 되는 곳인가?(03:13)

 

 

 

 

칠선봉 망바위,

지리 01 - 37지점(1564m)이기도 하며,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을 찾아보라지만,

눈을 비비고 또 비벼도 어둠만 들어올 뿐인 걸?(03:26) 

 


지리산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면적은 483,022㎡로서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경상남도 하동, 산청, 함양,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등

3개도, 1개시, 4개군, 16개 읍 · 면에 걸쳐 있습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종주능선(25.5km)에서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천왕봉 일출(天王峰 日出)을 비롯하여

노고운해(老姑雲海), 반야낙조(般若落照), 벽소명월(碧宵明月),

세석철쭉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사무소는 다양한 야생동물과 수려한 자연경관, 유구한 문화유적 등을

온전히 보전함으로써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탐방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


 

 

 

선비샘,

청이당을 떠난 뒤 처음으로 물이란 걸 구경하는 셈이요,

선비샘의 물과 함께 단팥빵 2개로 겨우 시장기를 면하는데,

아직도 물통 셋 가운데 1통이 남았긴 하지만,

연하천대피소까지 가자면 어쩌면 모자랄 것도 같기에,

실컷 마시고 1통을 더 채워서 벽소령으로 떠나기로,

연하천까지 3통이면 충분하지 않을는지?(04:01 - 04:16)  

 

 선비샘의 유래,

선비샘의 유래를 아시나요?

옛날 덕평골에 화전민 이씨라는 노인이 살았다.

노인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서,

죽어서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 자식들에게

자신의 묘를 상덕평의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효성스러운 자식들은 그의 주검을 샘터 위에 묻었고,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샘터의 물을 마시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구부려서 무덤으로 절을 하는 형상이 되어,

죽어서 남들로부터 존경 아닌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덕평봉을 휘돌아 가자 마주오는 산꾼들이 더러 보이는데,

오늘이 바로 지리 주릉이 열리는 첫날이던가?

밤머리재를 떠나면서 권사장 마나님을 보고선,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만나는 셈인가?

 

신벽소령,

그전에 벽소령대피소가 있었던 곳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구벽소령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은 편이며, 

하동군 화개면 삼정과 함양군 마천면 음정을 잇던 벽소령작전도로와 만나기도,

세석대피소 5.2km·벽소령대피소 1.1km를 가리키고(04:49)


 

어슴푸레 날이 새는 벽소령대피소,

지리 01 - 29지점(1326m)이기도 하며,

민생고는 연하천대피소에서 해결하기로 했으니,

별 볼일도 없는 벽소령대피소는 그냥 지나치는데,

벽소명월(碧宵明月)은 지리산 10경 가운데 제5경으로,
벽소령은 빼어난 경관과 지리산 등줄기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입지조건에서

밀림과 고사목 위에 떠오르는 달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고 하며,

고은 시인은 

<어둑어둑한 숲 뒤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고 찬탄하였다 하고(05:10)

 

 


 

 

 

 

석문이라고나 할까?,

어느새 태극종주에 나선 지 거의 24시간이 되어가고(05:25)

 

부자바위,

부자바위에 얽힌 <선녀와 나무꾼>에 관한 전설,

함양군 마천면 하정마을에 인걸이란 나무꾼이 홀어머니랑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장면을 엿보게 되자,

인걸은 선녀가 돌아가지 못하도록 한 선녀의 옷을 몰래 숨겨 놓았다는 걸,

결국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 아미(阿美)는 인걸(仁乞)과 결혼하게 되었고,

인걸과 아미는 삼남매(1남 2녀)를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지만,

이에 안심한 인걸이 그 일을 털어놓으며 아미에게 선녀의 옷을 입혔더니,

아미가 지아비와 아이들을 버리고 훌쩍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나?

그렇게 떠난 아미를 인걸과 삼남매가 날마다 지리산으로 올라가서,

하늘을 보며 돌아오지 않는 아내와 어미를 기다리다 지쳐 그만 죽고 말았으니,

후세 사람들은 인걸과 삼남매가 바위로 굳어졌다 하여 부자바위라 부른다는데,

하정마을 쪽에서 보면 인걸과 삼남매가 걸어가는 형상이라나?(05:51)

 

 

 

 

 

 

 

5월의 첫 해가 떠오른 셈인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삼각고지로 올라가다,

지리종주를 한다는 대달사의 오뚜기와 보노보노1을 엇갈리는데,

서로에게 성공하란 덕담을 주고받으며 흔적도 남기고

 

 

 

 

 

 

 

삼각고지와 그 뒤로 보이는 명선봉,

그 기세 좋던 미사일도 몇 년 전부터 널브러졌으니,

  세월 앞에 장사가 어디 있다던가?(06:30)

 

 

 

 

 

 

 

음정 갈림길로 내려가다 만난 효령대군 태달사 회장,

얼굴이 벌건 걸 보니 몇 잔 하신 듯?

전혀 술이라곤 못한다더니,

또 그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음정 갈림길,

지리 01 - 23지점(1469m)이요,

지리종주나 태극종주 시 비상 탈출로이기도 한데,

음정 7.5km · 벽소령대피소 2.9km · 연하천대피소 0.7km를 가리키고(06:36)

 

연하천대피소,

높은 지대에도 불구하고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연하천(烟霞泉)이라 했다고 하며,

라면에다 떡국점을 넣어 끓여 민생고를 해결하는데,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만 좋더란(06:50 - 07:43)

 

 천왕봉 15.0km · 벽소령대피소 3.6km · 노고단고개 10.5km · 화개재 4.2km를 가리키고

 

 

 

 

 

 

 

 

 

 

 

연하천대피소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선 명선봉 이정표,

명선봉 정상이 아닌 조금 아래지만(07:53)

 

 

 

 

토끼봉,

지리 01 - 16지점(1510m)이기도 하며,

반야봉에서 방위가 묘향(卯向)이라 하여 묘봉(卯峰)으로 부르다,

우리말 이름인 토끼봉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데,

진달래가 제철을 맞아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천왕봉 18.0km · 연하천대피소 3.0km · 노고단고개 7.5km · 화개재 1.2km를 가리키고(08:57)

 

반야봉의 엉덩이 두 짝이 날 꼬드기지만,

거긴 들를 처지가 아닌 걸 어떡하랴?

그저 눈길만 주는 수밖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뿌리 얕은 나무는 바람에 나자빠진다고나?

 





 



 화개재,

또다시 반야봉이 꼬드기지만,

오늘 아닌 이다음에 간다는 어정쩡한 약속으로 얼버무릴 수밖에는,

반야봉을 들렀다 가는 게 도리이긴 하지만,

 자칫 한눈을 팔다간 대세를 그르칠 수도 없지 않거늘,

화개재는 옛날 화개장터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며,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 했다는데,

연하천대피소 4.2km · 노고단고개 6.3km · 반선 9.2km를 가리키고(09:23) 

 

화개재 뒤로 보이는 불무장등능선,

삼도봉에서 화개장터와 섬진강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이고

 

공포의 551계단이라지만,

한 번도 서거나 쉬지 않고 올랐는 걸,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내 스타일 그대로

 

 

 

 

삼도봉,

그전엔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이라 불렀다는데, 

전남 · 전북 · 경남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하여 삼도봉으로 바뀌었으며,

노고단고개 5.5km · 천왕봉 20.0km를 가리키고(09:48 - 09:53)

 

  

 


삼도봉에서 흘러내린 불무장등능선

 

 

다시 한 번 반야봉이 들렀다 가라지만,

도저히 그럴 형편은 아니 되고

 

코앞으로 다가선 듯한 노고단,

가다 보면 그것도 아니지만

 

 

 

 

 

 

 

노루목 삼거리,

지름길로 해서 곧장 삼도동으로 가면 1.0km요,

반야봉을 경유하여 반야봉 삼거리에서 삼도봉으로 가면 2.3km로,

그 차이는 1.3km가 되는 셈인가?

반야봉에서 내리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이곳의 암두(巖頭)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반야봉 1.0km · 노고단고개 4.5km · 천왕봉 21.0km · 삼도봉 1.0km를 가리키고(10:09)

 

임걸령,

양 많고 맛 좋기로 소문난 샘이 있는데,

그 물맛을 보지 않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홀로 가는 몸이라 별스레 서둘 것도 없지 아니한가?

조선 명종 때의 산적 두목 임걸년(林傑年)의 본거지여서 임걸령이라 한다는데,

임걸령샘은 지리산 일대에선 가장 양이 많고 물맛도 좋은 편이며,


바래봉샘과 더불어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이라고나?(10:33 - 10:38)

 

 

 

 

임걸령샘,

어찌나 시원한지,

목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속이 다 얼얼해지더란

 

임걸령을 뒤로하고 노고단고개로

 

 

피아골 삼거리,

잠깐이나마 발을 맞추던 청년과 헤어지는데,

태극종주에 관심을 보이던 그 청년은 피아골로 내려가고,

천왕봉 22.7km · 노고단고개 2.8km · 직전마을 6.0km · 피아골대피소 2.0km를 가리키고(10:48)

 

 

 

 

 

 

 

 

 

 

반야봉이 아쉬운 듯 손을 흔들고

 

 

돼지령,

예로부터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라나?

노고단고개 2.1km · 반야봉 3.4km · 피아골삼거리 0.7km를 가리키고(10:59)

 

헬기장 뒤로 불무장등이 보이고

 

 

피아골과 왕시루봉능선이 나란하고

 

 

노고단이 빼꼼히 고갤 내밀고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노고단고개,

지리산 종주시점이라던가?

물론 종점이기도 하겠지만(11:41)

 

 

 

 

 

 

 

노고단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연분홍 털진달래가 물결을 이루는 노고단,

일요일을 맞아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노고단대피소 뒤로 종석대가 보이는데,

점심을 성삼재휴게소에서 해결하기로 했으니,

아무런 볼일도 없어 눈길만 주고선 그냥 지나치고(11:49)

 

 

 

 

 

 

 

어제 또 오늘따라 어찌나 더운지,

종주고 뭐고 때려치우고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차마 그럴 순 없는 노릇이지만

 

 

 

 




 성삼재,

아직은 그다지 힘들단 느낌은 없는 가운데 성삼재로 내려서는데,

67.5km(75%)를 왔으니 서북능선 23.0km(25%)만 남은 셈인가?

지리산 기를 받은 쌍방울이 힘을 쓰는지 샅이 쓸려 따갑고,

양쪽 발바닥에 불이 나는 듯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화장실에서 땀에 찌든 손과 얼굴을 씻고선 성삼재휴게소로,

비빔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뚝딱 비우는데,

술술 밥이 잘도 넘어가는 걸 보면,

어쩌면 서북능선도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을 듯,

먹은 것 만큼 간다고 하지 않던가?

천왕봉 28.1km · 노고단고개 2.6km · 만복대 5.5km를 가리키고(12:20 - 12:49) 

 

 



성삼재의 유래,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여,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을 달궁이라 불렀다 합니다. 

그 당시 마한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하여 팔랑재(八郞峙),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여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다 하여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다 하여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