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첨벙거리면서 세석대피소 올라 거림으로
* 날 짜 : 2014년 8월 24일(일요일)
* 날 씨 : 흐림
* 산 행 지 : 백무동 - 첫나들이폭포 - 오층폭포 - 가내소폭포 - 한신폭포 - 세석대피소 - 거림
* 산행시간 : 7시간 00분
* 산행속도 : 보통 또는 느린 걸음
* 산행인원 : 1명 또는 3명(나 홀로 + 2명)
* 태극을닮은사람들 10주년 기념 하계수련회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자 모두들 작별인사를 하느라 어수선하지만,
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다.
통영이나 거제로 가는 차에 얹혀 지금 갈까?
온 김에 세석평전으로 올라 거림으로 내려갈까?
거림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로 가면 되니까.
이대로 떠나기엔 어쩐지 억울하단 생각이 얼핏 든다.
그냥 갈 순 없잖아!
지리산 자락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긴 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순 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없는데?
가진 거라곤 몸뚱이 뿐인데도?
맨몸이면 뭐가 어때서?
차라리 홀가분해서 좋지 않을까?
안 그래도 어질어질한 머리를 가까스로 정리하고선,
결국은 지리산으로 들기로 하는데,
어제 집을 나서면서 일부러 아무것도 챙기질 않았다.
사진기와 배낭은 말할 것도 없고,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었으니까.
지리산 어딘가로 갈까 봐,
또 그 몹쓸병(?)이 도질까 싶어.
그래도 간다,
이왕 마음먹은 거.
2시가 되도록 마신 술에다,
해장술까지 더하지 않았던가?
그 정도면 세석대피소까진 괜찮을 거고,
복숭아 통조림으로 요기를 하면 거림도 문제없을 것이다.
물이야 길바닥에도 철철 흐르는데,
그 무슨 걱정이랴?
비록 등산화는 아니지만 검정고무신이 아닌 운동화인데,
당일치기 지리산 산행쯤이야 까딱없지 않을까?
그 무슨 지리종주나 지리태극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첨벙거리며 세석평전으로 올라 거림으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지리산 산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누가 시켜서 술바람에서가 아닌,
스스로 좋아서 거의 맨정신인 채로.
첫나들이폭포,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나들이삼아 오르면,
처음 만나는 폭포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하던가?
이름 없는 세 줄기 폭포,
이것만으로도 눈요기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부턴 등산로가 아닌 계곡치기에 들어가는데,
계곡치기에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며 애쓰는 거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는지?
계곡치기의 참맛은 첨벙거림이란 생각에서,
망설이거나 스스럼없이 물과 하나가 되고
한신지곡과 만나는 합수지점 바로 위의 한신계곡에 자리 잡은,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가내소와 15m쯤 되는 가내소폭포,
예전에 누군가가 도대체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가 싶어,
명주실에다 돌을 매달고선 한 타래를 다 풀었지만,
기어이 그 끝에까진 닿질 않았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ㅎㅎ
가내소에는 얽힌 전설이 있다는데,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 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태까지 함께한 요새비 큰형님과는 가내소에서 헤어지는데,
사랑했지만 갈 길이 달랐다?
이별의 시간표대로 떠나야 했다?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눈물이 앞을 가리네?
송대관의 차표 한 장이란 노래와 비스무리한가? ㅎㅎ
어쨌거나 나는 세석평전을 넘어 거림으로,
큰형님은 백무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데,
지난 5월 일흔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리태극이란 그 짜릿한 첫맛을 보신 참으로 대단한 어르신,
하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고,
덕산에 이어 남강까지 넘본다니 도저히 믿기질 않지만,(?)
다른 이에게서가 아닌 내 귀로 직접 들었음에야!!!
내년 봄이면 기쁜 소식을 기대해도 되겠지요?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갑장(甲長)인 사노라면 고문과의 100살 천왕봉 만남 때,
누가 빨리 오르나 천왕봉에서 심판까지 보겠다니,
이를 믿어야 할까?
그만 말려나 할까? ㅎㅎ
가내소에서 얼마 안 가 또다시 계곡으로 내려서는데,
여름산행의 진수는 누가 뭐래도 계곡치기가 아닐는지?
한신계곡을 몇 번 가긴 했지만,
등산로로만 다녔지 계곡치기는 처음인 셈인데,
나 홀로이니 시간에 구애받을 것 없도 없기에,
느긋하게 한신계곡의 속살과 참맛을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까?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한신계곡의 하이라이트는 첫나들이폭포에서 오층폭포까지가 아닐까?
지리산의 그 어딘들 좋지 않으랴마는,
또 한신계곡의 그 어딘들 눈요깃거리가 아니랴마는,
끊일 줄을 모른 채 줄줄이 이어지는 폭포와 물웅덩이,
눈이 호강이요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고,
2시가 되도록 마신 술과 해장술이 싹 깨는데,
백무동에서 그냥 갔더라면 억울해서 어쩔 뻔 했던가?
오층폭포 맨 윗부분,
오층폭포를 두고 좀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아쉽긴 하지만 갈 길은 가야만 하고
내친 김에 한신폭포도 들러보자,
한신폭포란 이름을 차지한 것에 걸맞게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그 동안 위에서 몇 차례 내려다보긴 했지만,
오늘처럼 낭떠러지에서 비스듬히 보는 건 처음이라 또 다른 감동이며,
폭포로는 오를 수가 없어 오른쪽 산죽지대로 돌아가고
오른쪽의 크지 않은 지계곡에도 그럴싸한 폭포를 이루는데,
요즘 들어 꽤나 많은 비가 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물이 흔하디흔한 지리산이기에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등산로가 지나는 너럭바위
백무동과 세석평전을 잇는 등산로가 지나는,
왼쪽의 지계곡이 한신계곡 본류에 합류하는 합수지점,
그다지 수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눈요기가 되기엔 별스레 모자람이 없지 않을까?
이런이런, 이를 어쩌나?
아직도 볼거리가 많고 담을 것 또한 하고많은데,
벌써부터 이제는 그만이라니?
다른 데로 샐까 싶어 사진기를 일부러 안 갖고 갔는데,
아침밥을 먹고선 갑작스레 그 몹쓸병(?)이 도지는 바람에,
전화기가 사진기 노릇을 대신하면서 겨우 버텼지만,
어느새 배터리가 그 수명을 다해버린 게 아닌가?
그래서 기록은 여기까지일 수밖에 없으니,
엄청 아쉽고 안타깝지만,
세석대피소로 올라 거림으로 내려가려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묻던 아가씨 둘이 앞장을 선다.
어디로 갈 거냐고 묻자,
거림으로 내려갈 거란다.
나도 거림으로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면서,
자연스레 일행이 되어 뒤를 따르는데,
아니나다를까 거림 갈림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가?
거림이 아닌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으로 가는,
지리산 남부능선으로 빠지려고 하는 것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광주에서 온 여대생들이란다.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서는,
지리산 종주를 하러 왔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며,
장터목대피소에서 자고 천왕봉 일출을 보고자 했지만,
비가 온다는 소식에다 몸 상태까지 별로라서,
아쉽지만 세석대피소에서 거림으로 탈출한다는데,
엉뚱하게도 남부능선으로 빠지려고 하질 않는가?
황급히 되돌려 세워 거림으로 내려가지만,
둘 다 처음 가는 데다 버스정류소도 모른다는데,
그들을 두고서 먼저 가는 게 도리가 아니다 싶어,
인정 많고 사람 좋은 내가 같이 가기로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꽤나 아장거리는 바람에,
시간이야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오래간만에 착한 일이란 걸 한 게 아닐까?
하산주삼아 같이 맥주를 홀짝이면서 버스를 기다리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주로 함께 떠난다.
난 진주까지이고,
그들은 진주에서 다시 광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