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발치서 바라보던 왕시루봉에 발자국을 남기고
* 날 짜 : 2014년 3월 2일(일)
* 날 씨 : 흐리다 구름 조금
* 산 행 지 : 남산마을 - 큰홍골 - 왕시루봉 - 선교사 수양관 - 봉애산능선 - 작은홍골 - 남산마을
* 산행시간 : 9시간 00분(운행시간 5시간 36분 + 휴식시간 3시간 24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0명(앵경, 로쟈, 캔디, 바람소리, 노란비옷, 산사나이, 큰골, 담비, 정천, 선함)
* 산행일정
08:30 남산마을 홍골 콘크리트다리(새긴 홍류동바위)
09:10 - 09:48 작은홍골 - 큰홍골 합수지점
09:58 큰홍골 비스듬한 폭포
10:07 용소(?)
10:11 두줄기폭포
10:14 쓴 홍류동바위
10:18 큰홍골 건넘
10:25 - 10:32 아주 작은 지계곡 건넘
10:38 후박나무 군락지
11:15 능선에서 길 만남
11:24 - 11:45 작은 공터(고사목 흔적)
12:00 - 12:08 바위 봉우리(우회)
12:35 서울대학교 부속 남부연습림(47 - 6)
12:52 - 13:02 왕시루봉(1240.2m)
13:08 1213.1m봉
13:15 - 13:25 왕의 강 전망대 사거리
13:29 가짜 왕시루봉 표지석 - 선교사 수양관 갈림길
13:32 - 15:05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1100m)
15:10 왕의 강 전망대 사거리
15:18 1213.1m봉
15:23 - 15:32 사자바위
15:47 - 15:50 통천문
15:58 봉애산능선에서 작은홍골로
16:35 - 16:40 작은홍골 맨 위 좌우골 합수지점
16:55 두 번째 합수지점(작은홍골 - 큰홍골 합수지점에선 첫 번째)
17:06 후박나무 군락지
17:16 작은홍골 - 큰홍골 합수지점
17:30 남산마을 홍골 콘크리트다리
* 왕시리봉이라고도 부르는 왕시루봉(1240.2m),
어쩐지 여태껏 나완 인연이 닿질 않았다.
지리산을 적게 다닌 것도 아니건만,
왕시루봉은 아예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저 멀찌감치 바라보며 그리워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지리산을 꽤 많이 가긴 했지만,
정규 등산로만 고집하는 고지식함 때문이 아닐까?
가지 말란 곳은 안 가다 보니,
왕시루봉 또한 당연하지 않았을까?
너무 그러는 것도 아닌데,
살다 보면 때론 생활의 지혜란 것도 필요한데 말이다.
그 좋은 산에서나마 인간 세상의 잣대나 법규가 아닌,
상식과 양심으로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간 듯 살며시 그렇게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
드디어 기회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거길 간단다.
이번이 아니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열일을 제치고라도 반드시 가는 거다.
들뜬 마음에 가벼운 흥분감마저 돈다.
이 나이에 웬 흥분?
내 나이가 어때서?
그 나이가 적어서?
아직은 환갑 전이요, 작년과 똑같은 나이가 아닌가?
누가 뭐래도 영원한 50대로 남기로 했으니까.
그럼 100살 천왕봉은?
철없는 중늙은이의 부질없는 욕심일까?
지리산은 알리라.
그 품에 들면 나 또한 알게 되리라.
지리의 변방에서 장수 노릇을 하는 왕시루봉 산행은
또 그렇게 시작된다.
지리산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피아골 들머리인 구례군 토지면 외곡삼거리,
남원에서 오는 좀 늦은 큰골 일당을 기다리면서
섬진강가엔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니,
때는 바야흐로 봄이란 계절로 들어서는가 보다.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로 들어가다,
내동리 평도마을에서 피아골을 가로지르는 신촌교를 건너고,
내서리 남산마을을 거슬러 오른 콘크리트 다리에서 홍류동으로 드는데,
지리산 하고도 왕시루봉 자락에 포근히 안긴 홍류동계곡,
흔히들 홍골이라 부르는 아직은 때묻지 않은 2km 남짓의 청정계곡으로,
우리 또한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아니 간 듯 다녀오리라.(08:30)
홍류동바위
콘크리트다리 위엔 너럭바위를 타는 물줄기가 멋진 물웅덩이를 이루는데,
저 정도면 물놀이철엔 꽤나 사랑을 받지 않겠는가?
하기야 화장실까지 있음에야 무슨 말을 더 하랴?
紅流洞(홍류동),
암각 글씨가 새겨진 건 100년 정도 됐다는데,
비록 가야산 홍류동계곡에 비하면 족보조차 없긴 하지만,
손때가 묻지 않은 청정함이야 어찌 감히 따라올 수 있으랴?
아홉의 지사모 회원들이 홍류동바위 앞에서 흔적을 남기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일행은 열이요,
그것도 남자가 다섯에다 여자 또한 다섯이니,
쉰이 되면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고 다 같은 사람이요,
예순이 넘으면 아래위가 없어지고 모두가 친구라던가?
바쁜 듯이 먼저 가는 넘(?)과 뇬(?)이 형님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난 느긋하게 아니 아니 갈 것이고
커다란 바위완 맞지 않는 자그마한 폭포가 눈요기를 시키니,
굳이 요기를 하지 않아도 배가 부른 듯하고
바위 위에 저 소나무,
과연 지겟자리를 잘 잡은 걸까?
보는 눈이야 즐겁지만,
좀은 안쓰럽단 생각이 드는 걸?(08:52)
아무래도 홍골에선 제일가는 물웅덩이가 아닐까?
이쯤 되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듯,
풍덩 뛰어들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느라 애를 먹기도,
믿거나 말거나(09:00)
똥도 찍으면 노랗게 잘만 나온다고 하던가?
냄새까진 담을 수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닌 이끼조차도 그럴싸해 보이고
초봄 한때는 지역민들의 주된 소득원 노릇을 하는 고로쇠통,
보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손을 대거나 좀 더 나아가 입을 대면 알지?
홍류동계곡을 800m 남짓 오르자 작은홍골과 큰홍골로 나뉘는데,
홍골좌골이라고도 부르는 작은홍골은 왼쪽이요,
흥골우골이라고도 부르는 큰홍골은 오른쪽이며,
큰홍골로 왕시루봉을 올라 작은홍골로 내려올 거라지만,
어떻게 될진 두고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큰골 대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하도 변수가 많은 지리산이 아니던가?
큰홍골에선 그럴싸한 삼단폭포가 이어지고(09:10 - 09:48)
비록 큰홍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작은홍골 들머리도 이만하면?
합수지점 큰홍골 너럭바위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지사모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소맥타임을 갖기도 하는데,
내가 가져간 명석막걸리는 언제나 마실는지?
두 통이나 짊어졌으니,
그것만 해도 4kg이 아닌가?
좀 더 기다려 볼까?
지금은 아무도 내놔라고 하는 이가 없지만,
언젠간 불티가 펄펄 날 때가 있을 테니까.
큰골 대장,
산행대장은 아무나 하나?
난 요즘 체질에 딱맞는 후미대장 노릇에 재미를 붙였고
불무장등능선의 황장산이 아는 체를 하고
나랑은 남강 지리태극 동지인 정천,
초반전에 풍덩 빠진 신발 때문에 애를 먹었을 것 같지만,
싫은 소리 하나 내뱉지 않은 충청도 양반이고
역시 남강 지리태극 동지인 산사나이 회장,
눈을 내리깔고선 뭘 보고 있는 걸까?
퍼뜩 찍고 다 없어지기 전에 소맥 한 잔 더?
누가 마신들 뭐가 어때서?
이건 누구?
도대체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웃어도 웃는 게 아닌가?
먹다 남긴 아니 뼈다귀만 겨우 남은 족발을 들고 환하게 웃는 캔디,
개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좋다나 뭐라나?
늙수그레한 양 한 마리 왔다고,
판도가 이렇게 싹 달라져 버릴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겠지요.
그래봤자 순한 양은 양이요,
사나운 개는 개일 뿐이니,
자나깨나 개조심 자는 개도 다시 보자!
내친 김에 한 번 더
그걸 또 따라하는 로쟈,
어제 돌산종주 뒤풀이의 후유증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새벽같이 일어나 득달같이 달려온 의지의 한국인,
저러는데 어찌 쑥쑥 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마침 봄이란 계절이거늘
질 수야 없지,
내친 김에 나도 한 번 더
어, 이번엔 산사랑이기도 한 노란비옷이네.
오늘 같은 날은 바람소리와 더불어 노란비옷도 별스레?
아까 그 뼈다귀만 남은 족발은,
이 여인네가 애완견을 핑계로 갖고 갔는데,
그 뒤 어떻게 됐는진 알 수 없다는
어째 체급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아참, 산행은 체급이 없지.
단 한 발짝도 대신 걸어줄 순 없으니,
제 스스로 알아서 가야만 하는데,
체급이 무슨 소용이랴?
저런다고 무슨 작품이 나오긴 할까?
고로쇠통이 이어지고
바위와 물줄기도 이어지고
미처 떨어지지 못한 단풍잎,
봄을 맞아 다시 회춘한 듯 아름답기만 하고
비스듬한 폭포와 어우러진 멋진 물웅덩이가 눈을 번쩍 뜨게 하는데,
큰홍골은 오를수록 점점 더 볼거리가 많아지는 것 같고(09:58)
흔적을 남기고선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는데,
왼쪽으로 돌아도 되고 간 큰 사람은 바로 치올라도 되고
바로 치오른 간 큰 남자 담비,
뭘 보고 있을까?
피라미라도 튀면 낚아채려는 걸까?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자 크지 않은 폭포가 또 반기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큰홍골을 건너고(10:03)
비스듬한 폭포를 내려다보고
옆에서 보기도 하고
큰홍골에 용소가 있다더니 여기가 거길까?
낯선 델 가면서도 공부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나섰으니,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는 게 아닌데,
이건 아닌데?
여기선 큰홍골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건너고(10:07)
그럴싸한 두줄기폭포에서 큰홍골을 벗어나,
제법 뚜렷한 산길을 따라가고(10:11)
紅流洞(홍류동)이라 쓴 바위(10:14)
여기에 이르기 2분쯤 앞선 갈림길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게 아닌,
바로 가는 길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큰홍골을 건너는데,
뒤에 알고 보니 능선으로 올라도 되고,
여기서도 큰홍골로 좀 더 치올라도 되는 것 같고(10:18)
큰홍골을 건너자마자 산죽길이 이어받는데,
누가 지리산 자락이 아니랄까 봐 그러는 걸까?
졸졸 물이 떨어지는 아주 작은 지계곡을 만나고(10:22)
위로 오를수록 빈 봉지만 보일 뿐이니,
고로쇠가 나오기엔 아직은 이르단 말인가?
아니면 누가 거둬 갔을까?
우린 아닌데
세월한테 이기는 장사는 그 어디에도 없다던가?
세월이 가면 나무도 저럴 수밖에
물이 졸졸 흐르는 아주 작은 지계곡을 건너면서,
볼일을 보느랴 좀 늦은 로쟈를 기다리기도 하고(10:25 - 10:32)
별스런 볼거리도 없는 가운데 쭉쭉 곧은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는데,
후박나무 윗도리는 이런 모습이고(10:38)
후박나무 아랫도리는 이런 모습인데,
참으로 미끈하게 잘도 빠졌으니,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백운산 어치계곡에서 보고선 처음이고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은 듯하고(10:50)
고로쇠를 채취하느라 희미하게나마 이어지던 길,
고로쇠 봉지가 사라지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지만,
100m 가까이 산죽을 헤치며 치오른 능선에서 다른 길을 만나는데,
산줄기를 따라 큰홍골로 이어지는 길인 것 같고(11:15)
줄기가 여럿인 큰 나무를 지나고(11:17)
거의 흙으로 돌아간 고사목이 있는 자그마한 공터,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이면서 연료를 보충하는데,
여태껏 짊어지고 다니며 호강시킨 명석막걸리가 효자 노릇을 하고,
거기다 통영에서 지리산 자락까지 올라온 멍게와 도토리묵이 더하니,
왕시루봉이 어디에 붙었으며 얼마나 남았는진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런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배부른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11:24 - 11:45)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는데,
앞장선 몇몇은 바위 봉우리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거의 다 무리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는데,
올라 봤자 별스런 뭐가 보이긴 했을까?
힘들여 오르내리느라 애만 먹진 않았을까?
어쨌거나 그건 내 알 바 아니고(11:53)
바위 봉우리 남서쪽은 무시무시한 낭떠러지라,
왕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북서쪽으로 어렵사리 내려설 수 있으며,
난 올라간 이들이 내려올 수 있는지를 확인하러 올라가고,
나머진 그냥 밑에서 기다리기로 하고(12:00 - 12:08)
바위 봉우리에서 있는 둥 마는 둥한 희미한 길로,
산죽과 잡목을 헤집으며 10분 남짓 오르자,
멀리 노고단과 왕시루봉능선의 문바우등이 보이기도(12:18)
명색이 지리산 자락이라고 응달엔 눈이 보이고
서울대학교 부속 남부연습림(47 - 6),
왕시루봉 일대는 서울대학교가 땅주인일까?(12:35)
커다란 바위를 오른쪽으로 돌고(12:40)
이건 고라니 엉가가 아닌 응가라고 하는데,
냄새가 안 나는 데다 색깔까지 좋으니,
어째 제법 먹음직스럽지 않나요?
마침내 진짜배기 왕시루봉 정상으로 올라서는데,
어쩌다 보니 산줄기를 따라 정확하게 직등을 한 셈이요,
2013년 5월 5일 대구마루금산악회에서 세운 스테인리스 정상석은 보이질 않고,
그 자리엔 뽑힌 흔적만 남았을 뿐이니,
누가 언제 왜 그랬을까?
난 절대로 아니다.
왕시루봉과는 첫 만남이니까.(12:52 - 13:02)
요것이
이렇게
캔디랑 산사나이,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나?
산사나이랑 선함,
랭킹 2위와 1위의 기념촬영인 셈인가?
나완 60년 만에 처음 만나는지라,
인상을 팍팍 쓰면서
무게가 좀 실린 것 같지 않나요?
분위기를 바꿔서
큰골, 바람소리, 정천, 로쟈, 앵경, 산사나이, 캔디,
산사랑, 담비
큰골과 임무를 교대하고선
왕시루봉으로 직등한 쪽이고
빙 둘러 나무에 둘러싸인 왕시루봉 정상,
볼 것도 보이는 것도 없어 아쉽기만 하고
왕시루봉 정상을 뒤로하고 2분 정도 내려가자,
양쪽으로 똘마니를 거느린 좀 노는 듯한 왕초바위가 눈길을 끄는데,
왕시루봉의 훌륭한 이정표 노릇을 하면서 볼거리가 되고(13:04)
1213.1m봉,
헬기장 바로 위 왕시루봉 표지석에 1212.0m로 되어 있는 봉우리로,
왕시루봉능선에서 봉애산능선이 나뉘는 곳이기도 한데,
정상부는 돌보는 이 없는 묵은 무덤이 차지하고 있으며,
왕시루봉 정상과는 400m 남짓 떨어져 있고(13:08)
누가 친절하게 또 이렇게
가랑잎이 서걱거리는 완만한 기울기의 순하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
가랑잎을 밟으며 기분좋게 내려가자 사거리가 나오는데,
알고 보니 바로와 오른쪽은 선교사 수양관으로 가는 길이요,
왼쪽은 바로 아래 왕의 강 전망대로 이어지고(13:15 - 13:25)
전망대
산사나이와 큰골은 어디에?
여인네 다섯만 흔적을 남기는 가운데,
나로선 맨 가운데 아줌씨가 가장 예쁘게 보이는데,
예쁜 걸 예쁘다고 했을 뿐 다른 까닭이 있는 건 아니니,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액면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시길.
절대로 편파판정은 아니니까.
소치올림픽이 끝난 지가 얼만데
이젠 기가 펄펄 살아난 로쟈,
방바닥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서길 참 잘했다는,
집에서 뒹굴었다면 아직도 해롱해롱하지 않을까?
개구쟁이 스머프를 닮았다나?
모자만
돌아본 왕시루봉 일대,
오른쪽은 1212m봉이 아닐까?
봉애산능선 석문바위(오른쪽) 뒤엔 불무장등능선이요 그 뒤엔 남부능선이고
왕의 강이란 섬진강을 잡아보지만,
희뿌연 바람에 그다지 잘 나오진 않아 아쉽고
2013년 1월 12일 제3회 산 사진 공모전에서
금상을 차지한 왕의 강(광양제철 최정철)
앞엔 봉애산능선이요 그 뒤엔 섬진강이고
묵은 헬기장(13:28)
왕시루봉능선과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 갈림길의 이정표 노릇을 하는 소나무,
200m 남짓(3 - 4분) 내려가면 헬기장에 가짜 왕시루봉 표지석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3분 정도 들어가면 선교사 수양관에 닿는데,
왕시루봉 표지석을 보고싶은 사람들은 갔다오라지만,
아무도 안 가는데 나 홀로 그럴 순 없지 않은가?
진짜배기라면 또 모르지만,
엉뚱한 곳에 선 가짜배기라기에 나도 모른 척하기로(13:29)
구례군에서 헬기장에다 잘못 세운 왕시루봉 정상 표지석,
높이도 저건 아닐 뿐더러 위치 또한 엉뚱한 곳인데,
어쩌다 저기다 세우게 됐을까?
앞이 탁 트이는 데라서?
저 위에 살짝 보이는 게 1213.1m봉이 아닐까?
멋진 소나무,
보고 또 봐도 눈길이 또 가는 걸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부드러운 길을 따라 3분쯤 갔을까,
외국인 선교사 수양관의 예배당 건물이 보이고,
그 옆 따뜻한 양달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하는데,
일행들이 이것저것 먹거리를 장만하는 틈을 이용하여,
할 일도 없는 난 예배당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13:32 - 15:05)
chapel 1962,
1962년에 지은 예배당이라고 하네요.
이쯤 되면 영어가 좀 되는 편인가요?
궁금한 건 못 참아,
뭔가 싶어 올라가니 예전 테니스장이었던 듯
여긴 수영장이고
예배당 건물 앞의 멋들어진 소나무,
푸짐한 오찬에 앞서 눈요기를 시키고
창고 옆에 붙은 화장실은 토종 재래식 그대로인데,
설마 저기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볼일을?
왕시루봉 정상에 서 있어야 할 스텐레스 정상 표지석,
저게 창고 안에 왜 있을까?
아무래도 저긴 제자리가 아닐텐데
대한제국 시절이던 구한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이 풍토병에 시달리자,
그들의 건강과 휴양을 위하여 노고단에다 수양관을 지었는데,
한국전쟁 때 불타고 남은 것도 일반인들의 잦은 출입으로 훼손되자,
1962년에 왕시루봉 자락으로 옮겨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하며,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세계 각국의 고유 건축양식을 본떠 지은
목조주택과 토담집 등 12채가 남아 있다.
어디론가 날아갈 듯한 폼이지만,
마음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건만,
어렵게 왜 저러실까?
엉성한 중늙은이도 처음이기에 앉아서 흔적을 남기지만,
남자란 서야 대접을 받는다고 했거늘,
쉰이 넘었으니 그냥 사람이라 그러는 걸까?
푸짐하고 맛깔난 오찬을 오래도록 즐기고선,
불룩해진 배와 함께 배부른 소리도 하면서
조신하게 앉은 로쟈,
설마 못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경로석(?)에 앉아서
실컷 배를 채우고선,
여기저기 다니며 선교사 수양관 유적지를 둘러보고
이건 뭐꼬?
난 또 미사일인 줄 알았네.
누군 연평도에서 보온물통을 들고 포탄이라 했다지만
선교사 수양관을 뒤로하고선,
봉애산능선으로 내려가고자 다시 올라가고
왕의 강 전망대 사거리(15:10)
묵은 헬기장(15:16)
다시 돌아온 1213.1m봉,
묵은 무덤 20m쯤 아래 갈림길에서,
왕시루봉능선에서 벗어나 봉애산능선으로 들어서고(15:18)
사자바위,
봉애산능선에선 최고로 멋진 전망대인데,
이곳저곳 돌아가며 눈호강을 시키면서 한동안 머무르고(15:23 - 15:32)
불무장등능선의 당재 뒤론 지리 주릉과 천왕봉이 보이지만,
희뿌연 날씨 탓으로 뚜렷하진 못해 좀은 아쉽고
아쉬운 마음에 좀 당겨보지만,
형편은 그다지 나아보이진 않고
좀 더 당기고
확 당기고
반야봉 - 불무장등 - 토끼봉을 잇는 삼각편대,
가까워서 그런지 그런대로 들어오는 편이고
좀 가까이로
불무장등능선 황장산 뒤론 삼신봉 일대가 들어오고
불무장등능선 촛대봉 오른쪽 뒤엔,
지리산 남북종주 때면 지나는 형제봉이 보이고
석문바위를 품은 봉애산능선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백운산 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긴 한데,
왜 그 이름이 생각이 안 날까?
치매 초기증상인가?
큰골 대장만 빼고
큰골 대장도 끼워서
나랑 교대한 큰골이 찍사가 되어
하나 더
사자바위를 뒤로하고
돌아본 사자바위,
어째 좀 닮긴 했나요?
(15:40)
봉애산능선에선 최고의 볼거리라는 통천문,
통천문보단 함양 독바위 부근의 안락문과 비스무리해 보이며,
안락문은 통로 역할을 하는데 비해 들어가면 돌아서야 하는데,
끄트머리는 한 길 정도 되는 낭떠러지이고(15:47 - 15:50)
통천문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황장산과 삼신봉 일대
촛대봉과 형제봉 일대
끄트머리에서 돌아본 석문
석문을 뒤로하고
통천문바위
곧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위태로운 바위(15:53)
봉애산능선을 따라 졸졸 잘도 가더니만,
구멍바위가 있는 안부에서 왼쪽으로 틀어 내려가면서
또 다시 빨치산 산행이 시작되는데,
작은홍골로 가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나?(15:58)
돌아본 봉애산능선 안부,
빨간 비닐끈이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얼마 안 가 만난 너덜지대는 끝날 줄을 모르고(16:04)
구름버섯이라고도 하는 운지버섯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봉애산능선 안부에서 쭉 아래로 내려서다,
큰 바위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팍 꺾어 비스듬히 나아가고(16:12)
5분 정도 비스듬히 나아가다,
잡목과 바위로 된 봉우리 앞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고(16:17)
작은홍골 맨 위에서 좌골과 우골로 나뉘는 합수지점,
합수지점이라기보단 마른 계곡이 나뉘는 곳이라는 게 맞을 것 같으며,
봉애산능선 안부에서 우리가 내려온 건 작은홍골 좌골이고(16:35 - 16:40)
작은홍골에도 어김없이 고로쇠통이 나타나는데,
그에 따라 자연스레 길도 보이니 한결 수월하고
아직은 텅텅 비었는데,
설마 먼저 내려간 일행이?
그건 아닌 것 같고
직벽바위(16:50)
두 번째 합수지점에서 조금 작은 듯한 지계곡을 건너고(16:55)
큰 바위에 얹힌 바위(17:01)
후박나무 군락지로 내려서자,
왼쪽 위의 너덜지대로도 길이 있는 것 같고(17:06)
작은홍골에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후박나무 군락지가 나오는데,
미끈하게 쭉쭉 곧은 모습이 그게 그거인 것 같기에,
아까 지난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 아닌 착각도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곧바로 알아차리고
누가 이런 짓을?
원시인이 바위에 새겼더라면 보물이나 국보가 됐으련만,
현대인이 나무에다 새겼으니 흉물일 뿐이고
홍골이 작은홍골과 큰홍골로 나뉘는 합수지점으로 정확하게 내려서는데,
100% 임무를 완수했으니 산행대장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까,
그렇게 되면 나도 후미대장 노릇을 제대로 한 게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고선 뒤만 졸졸 따랐을 뿐이지만(17:16)
간식과 소맥타임을 가졌던 너럭바위와 황장산이 우릴 반기고
홍골로 내려가지 않고,
홍골을 건너 콘크리트 포장임도로 내려가고(17:18)
이제 황장산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뭐가 아쉬운지 돌아보기도 하면서
아침에 떠난 콘크리트다리,
지사모 회원들과는 세 번째이자 첫 왕시루봉 산행을 마무리하는데,
언제 들어도 좋은 산이거늘 하물며 지리산 자락임에야?
묵은 숙제 하날 속시원히 해결했단 가벼운 마음과 함께,
봄기운을 가득 안고서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