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지역권 산행기

2025년 을사년 두류산방 시산제 산행 광양 구봉산 전망대

큰집사람 2025. 2. 17. 20:18

 

 

 

 

* 날        짜 : 2025년 2월 16일(일요일)

* 날        씨 : 구름 많음(미세먼지)

* 산  행  지 : 광양 구봉산(471.7m)

* 산행인원 : 16명(앵경, 산유화, 현지인, 솜다리, 거북이, 쓰리고, 바람소리,

                            고남, 신난다, 갑짱, 고암, 마왕, 해밀, 유비, 담비, 선함)

                           

 

 

 

 

언제였더라?

두류산방 회원들이랑 함께 산행한 날이,

기록을 찾아보니 2024년 7월 21일이요,

지리산 둘레길 1코스와 연계한 구룡계곡이라 되어 있는 걸로,

어느새 6개월을 훌쩍 지나 7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등산화 3켤레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도 전혀 고프지 않은,

언젠가부터 가는 게 아닌 쳐다보는 대상으로 변해 버린 산이건만,

 

2025년 2월 16일,

2025년 을사년 두류산방 광양 구봉산 전망대 시산제,

하루하루 날짜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산꾼의 정과 의리로 봐선 당연히 가는 게 마땅하건만,

잡힌 발목을 뿌리치고 가기엔 주어진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은 걸,

재활치료하던 병원이 갑작스레 문을 닫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는,

가까운 동네 병원에다 신청을 해놨지만 아직은 답이 없어 애를 태우는,

성치 않은 몸에다 생각지도 않은 마음의 짐까지 짊어지고 전전긍긍하는 마나님,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사흘을 앞두고 어렵사리 입을 떼는데,

웬걸 망설임이라곤 없이 걱정일랑 말고 갔다 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쉽게 풀려버린 족쇄,

그래 봤자 하루밖에 안 되는 시한부이지만,

행여 마나님의 마음이라도 변할까 싶어

부리나케 <두류산방>의 <산방 이야기>에 댓글을 단다.

"이제서야 신청해도 되나요?

모처럼 항꾸네하고 싶습니다."

 

 

 

 

 

광양 구봉산 전망대 대주차장 

 

 

 

구봉산(471.7m) 정상부,

정상석과 안내도엔 473m로 되어 있더라만,

대한민국 산의 높이란 게 대체로 이렇다고나?   

 

 

 

 

 

구봉산 요정숲 

 

구봉산 정상부 아래 위치한 구봉산 전망대 소주차장 

 

 

구봉산(舊烽山) 유래

구봉산(해발473m)은 골약동 황금리 뒷산 이름이다.

황길동 하포를 중심으로 컨테이너 부두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용이 꿈틀거리거나 배가 대양을 향해 출발하는 형상이다.

본디 이름은 건대산(件臺山) 또는 천태산(舛台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194년 산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면서 봉화산으로 불리기 시작한 뒤

봉수대가 초남마을 뒷산으로 옮겨 가면서 구봉화산이 되었다.

이후 구봉화산이라는 명칭이 주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이름인 '구봉산'과 다르고,

<광양시지>나 골약초등학교 교가 등에 '구봉산'으로 불리는 점을 들어

광양시에서 지명 변경을 요구해 2011년 구봉산으로 바뀌었다.

 

구봉산 옛 봉수대

구봉산 정상에 오르면 봉화산(신봉화산),

순천 검단산성과 순천왜성, 광양만 일대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30~70cm 크기의 맨돌을 이용해 쌓은 봉수대는

기단부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남아 있는 유적은 높이 1.2m, 남북 길이 8m, 동서 길이 7m로 원형에 가깝다.

봉수대의 주된 기능은 광양지역의 위급한 상황과 돌산도 및

진례산 봉수에서 전달된 적의 움직임을 순천도호부에 알려 주는 것이었다.

 

봉수대(燧臺)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햇불(· 봉),

낮에는 연기(· 수) 로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였다.

원래 봉화는 밤에 피우는 햇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도 포함해서 '봉화' 라 통칭하였다

전국에서 올라온 봉수는 마지막으로 서울 목멱산(남산)에 모였다.

봉수대는 악 12km마다 설치됐으며,

북쪽 끝인 함경도와 남쪽 끝인 부산에서 출발한 봉수가

서울까지 도착하는 데는 12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구봉산 봉수대(메탈 아트)

세계에서 유일하게 쇠로 만든 메탈 아트 봉수대이다.

높이는 광양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한 940년(고려 태조 23년)을 상징하는 940cm이다

광양을 상징하는 빛(光 · 광), 철(鐵), 꽃(梅花 · 매화), 항만 등을 소재로 활용하여

개화하는 매화꽃의 생명력을 봉화(烽火)의 이미지로 담았다.

꽃잎으로 12지간과 12개 읍 ·  · 동을 표현하면서

빛의 도시, 철의 도시라는 광양의 이미지에 맞도록

특수강과 LED 조명을 이용해 지역의 특성을 살렸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이순신대교 

 

백운산 상봉과 억불봉,

억불봉 오른쪽 뒤엔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가 어슴푸레 들어오고

 

당긴 억불봉과 지리산 천왕봉

 

확 당긴 지리산 천왕봉 

 

구봉산 봉수대 

 

 

 

구봉산 전망대 

 

 

 

보이는 둥 마는 둥 유령처럼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하동 금오산,

그 오른쪽으론 하동과 남해를 잇는 노량대교도 보인다지만,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 오늘은 어림도 없는 걸. 

 

포스코 광양제철소,

그 뒤엔 이순신대교와 묘도가 위치하고 

 

바다 건너엔 여수시 월하동 여수국가산업단지이고  

 

 

구봉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봉산 전망대 대주차장 

 

 

 

2025년 을사년 두류산방 시산제,

가운데 자리 잡은 황금 복돼지가 단연 압권이라고나?  

 

 

 

 

 

 

 

 

 

 

 

 

 

 

 

 

 

 

 

 

 

 

 

 

 

 

 

 

 

 

 

 

 

 

 

 

 

 

 

메탈 아트 봉수대

매화와 봉화를 동시에 이미지화한 메탈 아트 봉수대로

광양의 대표 산물이자 인류 문명과 궤를 같이하는 철로 광양의 빛과 생명력을 표현했다.

 

봉오리를 이루는 12장 꽃잎은 광양시 12개 읍 · · 동과 12지간(十二支干)을,

높이(940cm)는 광양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한 940년(고려 태조 23년)의 역사성을 담았다.

 

구조물 틈으로 타오르는 불꽃과 상부에서 하늘로 쏘아 올린 빛은

봉수대의 상징성을 극대화시키며 경이로움을 연출한다.

 

꽃받침을 이루는 내후성 강판은

표면에 생긴 붉은 녹이 오히려 보호막이 되어 비바람에도 쉽게 부식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색채를 자아내는 안정감과 신뢰감으로 미래 가치를 더한다.

 

봉수대는 전망대와 함께 2007년 3월부터 사업에 착수해 2013년 12월 24일

준공을 자축하고 광양시의 무궁한 발전과 시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점등식을 가졌다.

 

473m 구봉산 정상에 우뚝 솟은 봉수대는

밤이 되면 은은하고 신비한 빛으로 꿈과 낭만을 선사하면서

광양의 미래를 찬란하게 밝히는 눈부신 랜드마크다.

메탈 아트 봉수대가 설치된 이곳엔 12세기 말 봉수대가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광양의 전시상황과 여수 돌산도 및 진례산(영취산) 봉수대에서

전달된 정보를 순천도호부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광양 시내

 

상봉과 억불봉을 비롯한 백운산 일대 

 

 

 

 

 

 

 

 

 

 

 

 

 

구봉산 닭과 수제비,

토실토실한 토종 옻닭과 맨닭으로 실컷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게다가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로 곁들이는 소주는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행복은 집밖에 있고,

어떻게 해서 나온 집이지만,

그래도 가야만 하는 집,

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