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두류산방 창립산행 지리산 중북부능선 영원봉

큰집사람 2022. 3. 6. 22:01

 

 

 

* 날     짜 : 2022년 3월 6일(일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상무주암주차장 - 상무주암 - 빗기재 - 영원봉 - 영원령 - 영원사 - 상무주암주차장

* 산행거리 : 7km

* 산행시간 : 5시간 45분(운행시간 3시간 13분 + 휴식시간 2시간 32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1명(앵경, 무사무려, 바람소리, 고남, 신난다, 고암, 쉬블링, 소요유, 해밀, 큰골, 선함)

 

 

 

 

 

* 산행일정

08:10           상무주암주차장

08:40 - 08:52  지능선 쉼터

09:08 - 09:20  상무주암

09:22           삼정산 갈림길         

09:24 - 09:55  천혜의 쉼터(전망대)

09:59           지리 35-03지점(1154m)

10:06           얼굴바위(가분수바위)

10:10           지리 35-02지점(1105m)

10:18           빗기재   

10:41           개선골(석대) 갈림길

10:46 - 10:49  전망대         

10:54           영원 북서능 갈림길

10:55 - 11:03  영원봉(1290.5m, △ 운봉 306)

11:05           천년송능선(벌바위) 갈림길

11:08 - 12:30  벌바위(와운카페)         

12:32           중북부능선 접속

12:40           영원사 갈림길          

12:43           묵은 헬기장

12:46           영원령(영원재) 

13:12 - 13:16  들무골 횡단지점

13:21           지능선 안부 사거리

13:26           영원사(화장실)

13:35           도솔암주차장

13:37           영원사 옛길 갈림길

13:48           영원사 승탑 갈림길

13:55           상무주암주차장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 어귀에 서 있는 백두대간벽소령 표지석,

2022년 2월 20일 발족한 두류산방(頭流山房) 창립산행이 있는 날,

경남(산청, 진주, 통영, 함양)과 전북(남원)에서 모두 11명의 회원들이 모였으니,

이날 기준으론 22명의 회원 중 딱 절반이 온 셈인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오신 분들도 마음만은 함께하지 않았을까,

수인사를 나누고선 승용차를 타고 영원사진입도로를 따라 상무주암 들머리로 이동,

역사적인 두류산방 창립산행은 또 그렇게 시작된다.

 

 

 

백두대간 시발지인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산으로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살던 삼신산이라 불린다.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왔다고 하여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불리며,

방장산으로도 불렀다.

벽소령은 지리산 십경(十景) 중에 하나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아서 더욱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푸를 벽(碧), 밤 소(宵)를 써서 벽소령이라 불리웠으며,

실학자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서 벽소운동(벽소령)은 최고의 경승지라고 기록한 바 있다.

벽소령은 예부터 함양 등의 내륙에서 생산되는 곡식, 곶감, 목기 등과

하동, 남해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 생선 등을 지고 이동하는 요충로였다.

 

2009.9.

함양군수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보듬는 넉넉함이 살아 숨쉬고 있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치닫는 동안

마치 나무가 뿌리와 가지, 줄기를 펼쳐 놓은 것과 같이

한 개의 정간과 13개의 정맥을 펼쳐 놓았다.

북쪽에 고도 2,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품에 안고 있으며,

남쪽으로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함백산, 가리왕산, 태백산, 오대산,

속리산 등 1,5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넉넉히 안고 흐른다.

백두대간의 모습은 곧잘 호랑이의 등뼈로 비유되었다.

한반도의 모습이 중국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으로 비유될 때면

백두대간은 호랑이의 등줄기로서 그 위용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백두대간은 영원히 보존돼야 하리라.

백두대간 골짜기마다 숲이 무성해지고,

다양한 삶결과 역사가 피어나고,

야생동물의 아담한 보금자리가 자리 잡아야 하리라.

이에 백두가 내달리는 천령의 산마루에 표지석을 세운다.

 

2009.9.

함양군수

 

 

 

음정마을과 삼정산 일대

 

 

영원사진입도로 곡각지점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주차장,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주능선 일대가 살짝 들어오는 곳으로,

상무주암(1.3km)을 오르내리는 지름길이기에 상무주암주차장이라 불러도 될 듯,

영원사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5km 남짓 더 올라가야 한다는데,

이따가 내려올 때 슬그머니 은근슬쩍 들러야 할 몫이 영원사가 아니던가?

지능선으로 올라서기까지 쭉 오르막길이 도사리면서 골탕을 먹이는데,

 오래간만에 실제로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게 될 줄이야?

 

 

 

 

 

굴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지게(A-frame),

상무주암과 문수암에서 필요한 물품을 지고 나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차츰 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운반기구라고나?

 

 

 

나잇살이나 훔친 상무주암 이정표,

비록 거리 표시조차 없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이 어찌 정감이 가면서 정겹게 느껴지지 아니하랴?

 

 

 

 

 

제구실을 못하는 샘,

대롱에 물이 안 나오면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한여름 장마철엔 물이 나오려나?

 

앞장선 노익장(老益壯)들,

이 정도 가풀막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나,

뛰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 먹도록 남보다 걸음을 적게 걸었을까?

 

지능선으로 올라서서 한숨을 돌리면서 제1차 말아주타임,

신난다표 통영산 간자미회에다 바람소리표 김치전을 안주 삼아,

자격증(?) 있는 제조 기술자가 빚어서 그런지 술술 잘만 넘어가더라나? 

 

 

 

천국의 계단,

이제 상무주암이 바로 코앞이라고나?

 

 

 

동대(東臺),

상무주암 현기(玄機, 83) 스님의 좌선대(坐禪臺)요,

지리산 일대가 잘도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이기도 한데,

현기(玄機)란 <깊고 오묘한 이치>라는 뜻이라고 하는 걸,

향곡(香谷, 1912~1979) 스님을 은사(恩師)로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묘관음사(妙觀音寺)에서 출가한 뒤,

순천 송광사(松廣寺)와 하동 칠불사(七佛寺) 등에서 수행하다 1970년대 말 상무주암으로 들어가,

40년이 넘도록 상무주암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수행(修行)에만 전념하고 있는,

현기 스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라 해도 맞지 않을까?

 

너 나 할 것 없이 현기 스님 기 좀 받아 볼까나?

 

 

 

 

 

 

 

 

소요유(逍遙遊)님,

나를 떠나 자유로워지다란 뜻이라던가?

 

 

 

 

 

 

 

 

 

 

 

 

 

 

 

카페지기 무사무려(無思無慮)님,

아무 생각이나 근심이 없으면 신선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닐는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통영 쉬씨의 시조분이시라던가?

 

 

뾰족하게 치솟은 덕평봉,

그 왼쪽의 칠선봉은 두루뭉술하게 보이고 

 

중북부능선(삼정산능선),

그 뒤엔 명선봉이 살짝 들어오고 

 

반야봉

 

 

 

 

 

 

상무주암 이정표,

영원사 1.8km·약수암 3.9km·문수암 0.8km를 가리키고

 

상무주암(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으로,

상무주암 편액에는 경봉(鏡峰) 스님의 시호(詩號)인 원광(圓光)이란 낙관이 있으며,  

처음으로 변소(便所)를 해우소(解憂所)로 표현한 이가 경봉 스님(1892~1982)이라던가?

상무주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라는데,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342(마천면 삼정리 952)에 자리하고 있고 

 

 

 

 

 

 

 

 

 

 

 

 

 

삼정산(1261m) 갈림길,

삼정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다고 들었는데,

왜 <추락위험>이라며 1년 내내 <출입금지지역>으로 묶어 두고 있는 걸까?

오늘은 누가 가라고 또 오라고 해도 안 갈 거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있다던가?

 

 

천혜의 쉼터이자 전망대,

못 본 척하고 그냥 갈 수 없잖아,

제2차 거시기타임을 가지면서 쉬었다 가기로 하는데,

또 신난다표 통영산 간자미회를 안주 삼아 배가 부르도록 실컷 먹으며 세월아 네월아, 

쑥쑥 커 가는 나무에 가려 눈요깃거리는 그전만 못하단 느낌이지만,

이 또한 정해진 이치에 따른 자연현상인 걸 어떡하랴? 

 

자료사진

 

 

 

 

 

 

 

 

 

 

 

 

 

 

 

 

 

 

 

 

 

 

해밀님,

해밀이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일컫는 말이라던가?

 

 

 

지리 30-03지점(1154m)

 

 

얼굴바위 또는 가분수바위라 한다던가?

 

 

 

 

 

 

지리 30-02지점(1105m)

 

 

 

 

가야 할 산줄기

 

 

 

 

빗기재,

영원사와 영원봉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곳으로,

곧장 영원사로 내려가지 않고 영원봉을 경유하여 내려가기로 하는데,

영원사 0.8km·약수암 4.9km·상무주암 1.0km를 가리키고 

 

 

 

 

 

 

 

 

 

 

 

전망대,

그냥 갈 수 없잖아,

한동안 고팠던 눈요기를 하고 가고 

 

 

 

 

 

서룡산,

맨 뒤엔 서봉과 남덕유산을 비롯한 덕유산 일대가 들어오고

 

삼정산,

그 뒤엔 삼봉산이 뾰족하게 솟았고

 

삼정산

 

 

 

 

중북부능선과 지리산 주능선

 

 

영원 북서능 갈림길,

이제 영원봉이 바로 코앞이라고나?

 

 

 

영원봉(靈源峰, 1290.5m),

삼각점(운봉 306)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영원봉 아닌 영원령으로 표기한 지도가 더 많긴 하지만,

삼정산과 더불어 중북부능선을 대표하고 부근에선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영원령 아닌 영원봉이라 부르는 게 걸맞은 대우요 예의가 아닐까?

 

 

 

 

 

 

 

 

 

 

 

 

 

 

 

 

 

로 킥(low kick)은 더 되고 하이 킥(high kick)은 안 되니,

 미들 킥(middle kick)이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다고나?

 

 

 

 

 

 

 

 

 

 

 

 

창암산,

그 뒤엔 함양 독바위(독녀암),

또 그 뒤엔 왕산과 필봉산이요,

맨 뒤에선 황매산이 이어받고 

 

 

 

 

 

 

 

천년송능선 갈림길,

천년송능선으로 얼마 안 가 벌바위(와운카페)가 반기는데,

중북부능선(삼정산능선) 일대에선 제일가는 전망대요 볼거리가 아닐까?

 

벌바위에서의 오찬,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을 돌아가며 실컷 눈요기를 하고선,

맛깔스럽고도 푸짐한 바람소리표 찌개와 갖가지 반찬에다 말아주까지 곁들이니,

이보다 훌륭한 산상(山上)의 오찬(午餐)이 또 어디 있을 것이며,

그동안 독거노인과 생홀아비 신세로 쫄쫄 곯은 배가 호강이요,

참으로 오래간만에 배꼽이 방긋 웃었다고나?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마을

 

 

 

 

 

 

 

 

 

 

 

 

 

 

 

 

 

 

 

 

 

 

 

 

 

 

 

 

 

 

 

 

 

 

 

 

 

 

 

 

 

 

 

 

와운카페

 

 

 

 

 

 

 

 

 

 

 

 

 

 

 

 

 

 

벌바위(와운카페)에서 다시 중북부능선에 접속하여 영원령으로 내려가자,

누가 지리산 자락이 아니랄까 봐 쭉 빼곡한 산죽지대가 이어지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벌바위(와운카페)

 

 

 

 

영원령에 앞선 영원사 갈림길,

<백두대간 늑대> 표지기가 길잡이 노릇을 하는데,

이따가 지능선 안부 사거리에서 만나게 되고 

 

자연으로 돌아간 묵은 헬기장

 

 

영원령(영원재),

더러는 와운고개라고도 부르는 듯,

윗보실골로 내려가면 와운골(골바위골)로 이어지는데,

우린 들무골을 따라가다 영원사골을 건너 영원사로 내려갈 거고

 

 

 

 

 

 

 

 

 

 

 

 

 

 

 

 

 

 

 

 

 

 

 

들무골 왼쪽으로 휘어지는 길을 따라 영원사로 가는데,

쭉 들무골로 내려가면 영원사 아래 도솔암주차장으로 빠져나가게 되고 

 

 

 

와 이리 안 오노?

 

 

안 오긴요,

열심히 가고 있는데 

 

두류산방 초대 회장님으로 천거되자마자 철회한 건에 불만과 분한 마음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고성방가로 분풀이를 하며 난동을 부린 이가 있다던데,

설마하니 뒷모습만 보여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이분은 아니겠지요? 

 

지능선 안부 사거리,

아까 영원령 못미처 영원사 갈림길과 만나는 듯,

곧장 이어지는 너르고 뚜렷한 길을 따라 영원사로 내려가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영원사

 

 

영원사골을 건너 영원사로 들어가고

 

 

영원사-빗기재를 잇는 정규 탐방로,

봄철 산불방지기간 입산통제구역이라 그런지 굳게 닫혀 있으며,

약수암 5.7km·상무주암 1.8km를 가리키고  

 

 

 

 

 

 

 

장터목과 칠선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

 

 

영원사,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59(삼정리 953)에 자리하고 있고 

 

 

 

지리산 영원사(2018.5.22. 부처님오신날 촬영)

지리산은 예로부터 사대 명산(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에서 그 첫 번째로,

영원사는 이 명산 한복판에 천이백 년 전

신라 제사십팔대 경문왕 때 영원조사께서 창건한 고찰이다.

이곳은 부용, 서산, 사명, 청매조사와 화엄보살인 설파노사 등 고승들이 정진하시고

강종을 울려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던 법보사찰이기도 하다.

남쪽으로는 청매조사께서 수십년 수도하신 도솔내원궁 같은 도솔암이 있고,

북쪽에는 절승선경인 상무주암이 있는데,

이 상무주암은 보조국사께서 갑천에서 제일이라고 예찬하셨고,

구곡 각운선사는 염송설화를 짓다가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명찰이다.

 

그 가운데에 자리한 명성고찰 영원사는 여순반란과 육이오동란 때

공비토벌작전 수행 중 아군에 의해 방화 소실되어 쑥대밭에 빈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상무주암에서 십여 년 용맹정진하시던 대일스님께서

어느 날 조사님의 선몽의 말씀을 듣고 큰 원을 세워 초막을 짓기 시작

사십여 년을 단신으로 불사를 하시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영원사는 특히 일백구 분의 조사님들의 안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절로서,

매년 구월 십팔일 지장재일에는 일백구 분의 영재를 봉행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영원사(靈源寺)

이 사찰은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영원사(靈源寺)라 하며,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하고 있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이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로서 절의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 9채에 100칸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생생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건물 전체가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새로 부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사찰 경내지에는 영암담탑, 설파담탑, 중봉담탑, 청계담탑, 벽허담탑, 청매탑 등

이름 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군이 현존하고 있다.

염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 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팔단사리 3층석탑이 방광(放光)했다는 이야기는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 주고 있다.

 

백초월 스님과 영원사

영원사 출신인 백초월(白初月) 스님은

불교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백초월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서 1878년에 출생하였는데,

14세의 나이로 이곳 영원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의 강원·선원에서 수학을 하였으며,

지리산 일대의 의병활동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강백)이었고,

범어사와 해인사의 강사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립의 불교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강백이었다.

 

1911년 이곳 영원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원사 주지로 재건불사(1914~1917)를 주관하였다.

그 이후에는 법주사 청주포교당(용화사)에서 포교에 전념하였다.

이때 3 ·1운동(1919)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 

진관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불교계 민족대표였던 백용성과 한용운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자,

백초월은 중앙학림에 불교 독립운동의 본부(민단본부)를 두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하였다.

 

천은사, 화엄사,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해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 제공하였고,

불교청년들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에 보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백초월은 출옥한 이후,

불교사상에 근거한 일심교(一心敎)라는 항일 결사단체를 만들었고,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에서 강사를 하면서 스님들에게 민족의식을 가르쳤다.

1939년 10월,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낙서를 쓴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2년 6개월 동안 수감되었는데,

출옥한 후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다 청주감옥에 수감되었고,

안타깝게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였다.

백초월은 입적하는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참다운 보살, 큰스님이었다.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 칠성각 보수를 하다

백초월이 사용한 태극기와 독립자료가 발견되면서,

백초월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이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진관사에서 3개 자치단체인 고성군(옥천사, 출생),

함양군(영원사, 출가), 은평구(진관사, 독립운동)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백초월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도솔암주차장

 

 

도솔암 오가는 길

 

 

영원사 옛길 갈림길,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경신(庚申) 4월이라 적혀 있는 걸로 봐선,

1980년 4월에 영원사 진입도로가 개설되지 않았을까?

 

 

 

 

 

함양 영원사 승탑군 갈림길,

10m 가지곤 어림도 없고 200m 정도는 된다는데,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200m라 써 놓았는 걸.

 

 

 

 

 

 

 

다시 돌아온 영원사 진입도로 곡각지점 간이주차장,

갓 탄생한 두류산방의 길지 않은 창립산행이 마무리된 셈이요,

소수정예주의(少數精銳主義)를 표방(標榜)하는 두류산방(頭流山房),

참깨 백 바퀴 굴리는 것보다 호박 한 바퀴 굴리는 게 낫다는데,

어중이떠중이 수백 명보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우리 회원들이 더 나을 듯,

그 이름도 고상한 두류산방,

이제 막 출범한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지리산 마니아(mania)로 자리매김하면서 본궤도에 올라서지 않을까?

우리들의 놀이터 두류산방,

오래오래 언제까지나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