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산행기

의령 벽화산과 상리산

큰집사람 2022. 2. 15. 19:32

 

 

 

* 날     짜 : 2022년 2월 15일(화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운곡마을회관 - 벽화산성 - 벽화산 - 상리산 - 운곡마을회관

* 산행시간 : 4시간 50분(운행시간 3시간 12분 + 휴식시간 1시간 38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명(나 홀로)

 

 

 

 

 

* 산행일정

09:40           운곡마을회관

09:44           척곡마을 벽화산 등산로 입구  

10:10 - 10:13  임도준공기념비

10:14 - 10:21  벽화산성고분군           

10:22 - 10:30  벽화산성동문지  

10:38 - 10:41  벽화산성 갈림길

10:42 - 10:54  벽화산성   

10:55            벽화산성 갈림길              

11:06            351.1m봉(옛 349m봉) 

11:12 - 11:15  수암사 갈림길 안부

11:47 - 11:50  통훈대부 동지중추부사 합천이공휘병선지묘

11:56 - 12:09  벽화산(522.1m)

12:12           묵은 헬기장

12:20 - 12:28  임도(송전탑)

12:42 - 12:51  헬기장            

12:55 - 13:12  상리산(512.7m, △ 삼가 26)

13:39 - 13:42  임도횡단

14:10 - 14:19  척곡소류지(2차선 도로 중리로 합류)

14:26           척곡마을 벽화산 등산로 입구  

14:30           운곡마을회관

 

 

 

 

 

* [산&산] <342> 의령 벽화산(부산일보, 2012.2.16.)

 

자연과 농촌을 노래한 시인 신경림은 '산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짓 따뜻한 숨을 자리가 돼 주기도 한다.

(중략)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시인은 높고 가파르고 이름난 산만 산이라고 치켜세울 게 아니라, 

높이나 덩치를 떠나 산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에서 산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라고 했다.

'&'은 경남 의령군 벽화산(碧華山, 522.1m)에서

신경림이 말한 '사람 사는 재미를 아는 낮은 산'의 묘미를 어렴풋이 깨치고 왔다.

 

사실 백두대간에서 불거진 진양기맥이 북쪽에서 담을 친 의령 땅에는 내로라하는 명산이 제법 있다. 

조선의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랐다는 의령의 진산 자굴산이 좌장이요, 

봄이면 진달래, 철쭉으로 온 산에 불이 나는(?) 한우산이 그 뒤를 따른다. 

국사봉과 천황산 등 굵은 산들과 나란히 선 미타산도 명산에 속한다. 

하여 산꾼이나 산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의령 하면 '자굴·한우·미타'를 떠올린다. 

이러다 보니 벽화산을 물어보면 위치는커녕 이름조차 생소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벽화산의 자리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자굴산을 지난 진양기맥이 벽화산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남강 쪽으로 줄행랑치는 바람에 얕은 산줄기 하나조차 대지 못했다. 

이 산의 남쪽으로 낙남정맥이 산 물결을 이루지만, 남강 물줄기가 가로막았다. 

정맥, 지맥, 기맥과 한 오라기의 인연도 없다 보니 태생부터 평지에 홀로 선 외로운 산이다. 

인적 드문 지맥을 골라 찾는 종주꾼들의 발길도 비껴간 산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벽화산을 '베일에 싸인 산'이라고 의문표를 단다.

 

하지만 의령 사람들에게 벽화산은 넉넉한 품새를 간직한 '어머니 산'이며,

언제라도 오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 산'이자 길과 숲이 부드러운 '인자한 산'으로 대한다. 

의령군이 벽화산성을 재정비해 벽화산 알리기에 나서면서

이 산을 가 본 몇몇 사람들한테서 '괜찮은' 산이라는 소문이 슬그머니 났다. 

진상(?)을 알아보려는 진주, 함안 지역 산꾼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지지만,

여전히 인적이 드물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 코스는 단출하다. 

운곡마을에서 출발해 임도를 따라 5푼 능선까지 오른다. 

벽화산성을 둘러보고 349m봉(지금은 351.1m봉)~425m봉을 지나 산정에 오른다. 

소나무 빽빽한 능선을 걷다 512.7m봉에서 조망을 즐기고 척곡마을로 내려와 운곡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정도(산행 거리 9.4)면 충분한 원점회귀 코스다. 

몇몇 잘록이에서 다음 봉으로 가는 지점에 된비알이 있지만 그다지 사납지 않다. 

가족 산행도 좋지만, 친구나 연인끼리 가도 좋은 산이다.

 

 

'동네 뒷산'에 머물고 있는 벽화산이

 '의령의 명산' 대열에 합류할 날을 바라면서 운곡마을회관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마을에는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주희)의 후손들이 20여 집쯤 산다. 

몇 걸음 못 가서 척곡마을(자실)이다. 

이곳에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전략가였던 제갈량의 후손들이 10여 가구 산다.

 

4분 정도 걷다가 '중리로 2'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마을길로 접어든다.

2분쯤이면 벽화산으로 연결된 임도가 나온다. 

길은 산허리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아 오른다. 굽이를 돌 때마다 벽화산의 꼭대기가 눈에 밟힌다.

15분 가량 지나 임도 준공기념비를 만난다. 

비에는 "마을 출신 재일교포가 '거액의 정재(淨財)'를 희사해 길을 열었다"고 적혀 있다. 

비석에서 능선을 따라 10m쯤 떨어진 곳에 벽화산성 고분군 비석이 있다. 

한때 능선 주변에 가야시대 고분들이 있었지만, 도굴과 훼손이 심해 지금은 흔적만 겨우 남았다. 

준공비에서 5분 정도 가다 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벽화산성 동문 터와 우물터가 있다. 

이곳을 지나 5분쯤 더 오르면 대숲을 지나는데, 숲이 나오면 오른쪽에 이정표가 서 있다.

 

벽화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64)은 오른쪽, 산행 방향은 직진이다. 

잠시 산성으로 간다. 벽화산 8~9푼 능선을 두른 약 800m '테뫼식'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축성했다가 무너졌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다시 쌓았다고 한다. 

지난 2000년부터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산성에 서면 의령읍내가 뚜렷하고 의령천 옆에 있는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충익사도 보인다. 

안내판에 '홍의장군이 이 성에서 왜적 수천 명을 섬멸했다'고 적혀 있다.

 

산성에서 나와 마을 공동묘지 샛길을 만난다. 

무덤 수십 개가 질서 없이 널브러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공동묘지다. 

의령군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이 일어난

의령 땅의 의기와 정기를 끊으려고 일본인들이 일부러 묘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10분 정도면 묘 사잇길을 지나 349봉에 오른다. 봉우리 모양이 두루뭉술하다. 

이정표의 '삼거리' 방향을 따라 5분쯤 내려서면 안부(이정표)에 닿는다. 

여기서 6분 거리에 등로 바닥에 깔린 반석지대가 나오고, 이후 425봉까지 10분을 더 간다. 

등로 주변에 소나무가 빽빽하고, 바닥은 솔가리 카펫이 푸근하게 깔렸다. 

한 발씩 발을 떼면 쿠션이 신발을 받치는 것처럼 보행이 편하다. 

다만 솔숲에 가려 조망이 인색한 게 영 아쉽다.

425m봉에서 495m봉을 스쳐 정상까지 오름길이지만 숨이 찰 지경은 아니다.  15분 소요.

 

정상은 사위가 답답하다. 

북쪽을 대하면 나무 사이로 자굴산이 보이지만, 여전히 갑갑하다.

'푸른빛이 난다'는 산이지만 정상의 조망은 어둑선하다.

 

정상에서 임도 방향으로 길은 연다. 

헬기장을 지나 10분 남짓 내려가면 임도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송전탑 방향 둔덕으로 올라선다. 

헷갈리기 쉬우니 산행 안내 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다시 능선 길을 따라가다 10분 정도면 두 번째 헬기장에 닿는다. 

여세를 몰아 5분을 더 가면 비로소 눈이 확 트이는 512.7m봉에 닿는다. 

지금까지 조망이 인색한 터라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본다. 

북쪽으로 자굴산이 가까이에 있고, 그 능선 너머로 멀리 가야산 산줄기가 아련히 보인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화왕산이 어엿하다. 

남쪽으론 낙남정맥의 여항산, 무학산이 우뚝하고 그 앞을 흐르는 남강과 낙동강이 실루엣을 그리며 흐른다. 

하지만 서쪽의 지리산 일대 조망은 막혔다.

 

마을로 가는 하산 길은 산불감시초소 동쪽 끝 편에 있다. 

내리막길을 따라 솔숲을 지나 15분 정도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곧바로 횡단해 솔숲으로 들어간다.

2분 뒤에 숲에서 나오면 감나무, 밤나무가 자라는 비탈 지형으로 내려선다. 

비탈길과 만나는 갈림길에서 마을 방향으로 걷다 보면 과수원과 밭두렁 사이를 지난다.

 

10분을 더 가면 운곡강당 옆 솔숲에 닿는다. 

강당에 잠시 들렀다.

100여 년 전 의령의 유림이 십시일반으로 만든 강당은 마을 서당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벽화산 주변 마을 사람들이 여기에서 글을 배웠지만, 

지금은 3월 초에 제사만 지낸다. 

강당 뒤에 주자를 모신 도동사가 있다. 

강당에서 마을 길로 돌아 나와 기점까지는 4분 가량 걸린다.

 

 

부산일보

 

 

 

 

 

근교산&그너머 <937>의령 벽화산(국제산문, 2015.8.28.)

 

광복 70주년을 맞은 8월을 이대로 보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해서, 찾은 곳이 경남 의령(宜寧)이다. 의령은 충절과 화식(貨殖)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1552~1617)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고,

일제강점기 백산 안희제(1885~1943)가 민족자본을 일궈 국부의 기초를 닦고 항일운동의 재정적 숨통을 틔웠다.

이런 역사적 인물이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의령'이란 지명을 붙였을까.

'마땅하다'는 뜻의 '()' 자에는 '의로움', '편안하다'는 뜻의 '()' 자엔 '부유함'이 깃들어 있다.

'의로운 부'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민족자본가 백산이 의령에서 탄생한 연유가 짐작된다.

 

망우당은 경상우도의 사림을 대표하는 남명 조식(1501~1572)의 실천철학을 체화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자,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15925월 하순, 왜적이 함안을 점령하고 의령 남강 정암진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하자,

결사항전한 끝에 대승을 거둬 경상우도를 보존하고 왜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했다.

왜적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가장 두려워한 인물이 망우당이었다.

 

백산은 1914년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해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들을 적극 도왔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군민들과 봉기를 도모하는 한편,

백산상회를 백산무역()로 확대 개편해 상해임시정부의 운영자금을 조달했다.

'기미육영회'를 조직해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만주로 건너가 발해의 옛 수도인 동경성에 발해농장을 세워

한국인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육성하는 등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남명과 망우당의 실천철학은 백산으로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번 산행은 남명과 망우당, 백산의 지행합일 정신을 좇아가는 역사기행이다.

산행지는 벽화산(522.1m), 이곳에는 벽화산성이 있다.

벽화산성은 망우당이 왜적을 무찌른 곳이다.

산행은 의령읍 중리 운곡마을회관을 출발해 벽화산성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기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9, 소요시간은 5시간 가량.

산행길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보행에 지장을 주는 게 문제지만,

이를 제외하곤 다른 어려움이 없는 비교적 무난한 코스다.

 

운곡마을회관에서 5분쯤 도로를 따라 걷다

'벽화산성 등산로 입구'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진입한다.

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칡 세상'이다.

주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듯 길섶은 칡넝쿨로 뒤덮여 있다.

칡 잎사귀마다 점점이 머금은 아침이슬들은 바람이 불면 옥구슬 구르는 소리를 낼 것 같다.

탐스럽게 열매를 맺은 밤나무와 감나무는 풍성한 가을을 예고한다.

40분 가량 걸으면 임도준공기념비와 벽화산성고분군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 딱딱한 임도를 버리고 흙길로 들어선다.

5분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벽화산성 동문터와 우물터가 있다.

이를 본 뒤 되돌아 나와 15분쯤 산을 오르면 고아한 정취를 풍기는 자그마한 산죽터널을 만난다.

산죽터널을 지나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벽화산성터를 볼 수 있다.

 

둘레가 약 800m에 달하는 벽화산성터에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두 번에 걸쳐 성을 쌓은 흔적이 있다.

조선시대 성은 임진왜란 전후 급박한 상황에서 축조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벽화산성에서 망우당이 왜적 수천 명을 섬멸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산성은 일부가 복원되었지만, 산성터에 이르는 길은 어른 키만큼 자란 잡초에 가려 사라져버렸다.

적도의 밀림을 헤쳐나갈 때처럼 칼을 휘둘러 잡초를 베어내야 할 판이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라는 고려 유신 운곡 원천석의 시구절이 떠오를 정도다.

산성터에서 되돌아 나와 1시간 가량 오솔길을 오르내리면 왼편에 제법 영험한 기운이 서린 바위가 나온다.

산행 기점에서 만난 운곡마을 주민 주이돈(60) 씨는

"가뭄 등 마을에 위기가 닥치면 바위에서 기우제 등 제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여기서 30분 가량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은 우거진 숲에 가려 '시계 제로' 상태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가면 임도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철탑 쪽으로 오른다.

20분 후 헬기장에 닿고, 5분 더 오르면 산불감시초소에 도달한다.

여기서 비로소 정상에서 보지 못했던 의령군 일대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오른쪽으로 30분 가량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5분쯤 걸으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한다.

임도변에는 감나무밭이 많고, 곳곳에 감나무밭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샛길에 현혹되지 말고 큰길을 따라 30분쯤 가면 기점인 운곡마을회관이 나온다.

 

 

국제신문

 

 
 

 

 

* 명산플러스(211) 벽화산(경남일보, 2018.12.27.)

 

도내 지자체 중 이름 난 산이 많은 곳이라면 거창군·산청군·함양군 정도일 것이다.

반대로 이렇다 할 산이 별로 없는 곳은 의령지역이다.

의령에서 유명한 산은 자굴산과 한우산·미타산 정도가 생각난다.

하지만 의령에 등산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벽화산이 있다.

 

벽화산은 군청소재지에서 서남 방향 하리에 위치하며,

해발 522.1m의 주봉과 제2봉으로 불리는 512.7m봉으로 구성돼 있다.

 

한우산·미타산·자굴산이 군청 소재지에서 북동쪽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에 비하면,

이 산은 남해고속도로와 국도 등이 연접해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다.

또한 이 산에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흔적인 벽화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64)이 있어

정비만 잘 한다면 아이들의 현장교육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과 의병들은 북서쪽으로 진출하려는 왜구를 맞아

벽화산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뜨거운 피로 이 땅을 지켜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문화재 관리는 그리 마뜩잖다.

빛바랜 간판에다가 등산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군청 소재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역사적인 성지인 만큼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과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힐링처라는 것을 고려하면

등산로 정비와 유적지 관리는 필요한 부분이다.

 

의령군 의령읍 중리 운곡마을 입구 운곡마을회관이 출발지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척곡마을 방향으로 100m정도 더 진행한 뒤 주차장을 찾으면 된다.

척곡마을까지는 아스팔트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척곡마을회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등산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개울을 건넌 뒤 임도를 따라 산에 오를 수 있다.

 

고불고불 몇 굽이를 돌아 30여 분 정도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면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척곡마을과 운곡마을 뚝묘산의 정경이 다가온다.

뚝묘산 이름이 재미 있는데,

말 그대로 뚝떨어진 묘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독립된 작은 동산이다.

 

길가에 준공기념이라는 바위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산중 임도 1.7km 개설을 위해 사재를 출연한 재일교포 사업가 유광웅 씨의 고귀한 뜻을 기려

19882월 14일 손태병 의령군수가 세운 돌비석이다.

 

내용을 보면 "정상 부근에 있는 가야시대 고성(古城)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들과 함께 수축한 뒤 몰려오는 왜적을 무찌른 호국의 얼이 깃든 전승지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돌보지 않고 방치되다시피 한 것이 안타까워 이를 보존하고 정화하기 위해 임도를 개설했다."고 썼다.

국가가 아닌 개인 사재를 출연해 임도를 개설한 것이 이채로웠다.

 

임도를 기점으로 평평한 길이 이어지다가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100m지점에 벽화산성동문지가 있다.

돌기둥을 세워 성의 동문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고 있다.

그 아래 사람이 기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은 거처가 보였다.

풍찬노숙(風餐露宿),

추운 겨울 이곳까지 올라와 사는 이유가 궁금해 다가가 보려 했지만 포기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돌아 나와 다시 오르면 동그마니 산죽밭이다.

모든 것이 회색빛인 한겨울에 한 무더기 싱그러운 초록숲이 취재팀을 반긴다.

그 속에 벽화산성 일부로 보이는 돌담이 숨어 있었다.

 

곧이어 갈림길, 오른쪽에 벽화산성이다.

최근에 비교적 반듯하게 자른 돌을 가져다가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고풍스럽지는 않았다.

성지였음을 알리는 입간판은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벽화산성은 가야 때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조 22(1589) 임진왜란 직전 의령읍성을 쌓으면서 전란에 대비해 부분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망우당 곽재우가 고쳐 쌓은 산성으로,

의병을 거느리고 수천 명의 왜적을 무찔렀던 전승지로 유명하다.

그 뒤 고종 13(1876)에 크게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변마을 일부지역에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삼국시대 무덤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성돌을 밟고 따라 올라갈 수도 있지만, 돌아 나와 그냥 희미한 길을 따라 오를 수도 있다.

등산로 옆에 수백여 기의 이름 없는 묘지가 산재해 있다.

이 묘지들은 얼핏 망우당과 의병들이 왜군을 맞아 전쟁을 벌일 때 산화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일제 때 공동묘지가 만들어지면서 민간인들의 묘지가 대거 유입됐다.

 

묘지 사이를 피해서 갈지자 걸음으로 349m(지금은 351.1m) 봉우리에 올라선다.

키가 큰 숲속의 봉우리는 전망이 없다.

고도를 낮추면 묘지는 사라지고 소나무 숲이 등장한다.

솔숲임에도 등산로에는 갈잎이 떨어져 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변을 휘둘러 봐도 온통 송림뿐이다.

 

수암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수암사가 있다.

이 절은 1995년 용국사로 창건했으나, 2012년 수암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절 입구에는 옥석으로 조각한 높이 2.8m짜리 333개의 관음보살상이 길게 늘어 서 있다.

총길이 650m에 달하는 이색적인 코스다.

 

갈림길을 지나면 이름 없는 봉우리에 사각형으로 생긴 특이한 묘지가 나온다.

석물도 차린 이 묘지 앞에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합천이공휘병선지묘로 기록돼 있었다.

조선 말기 때 중추부의 2품 벼슬을 한 합천인으로 보였다.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 끝에 의령교육청산악회가 세운 정상석이 반긴다.

벽화산 정상이다.

두 시간에 가까운 오름길의 수고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정상에서는 역시 전망이 별로 없다.

생각 외로 키가 크고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가 많다.

나무에 가려 조망이 별로 없어도 숲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

 

곧바로 고도를 낮추면 주변 전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를 만나면 임도를 따르지 않고 곧장 산으로 올라 송전탑 밑으로 오름길을 재촉한다.

 

헬기장을 지나고 벽화산 제2봉으로 불리는 512m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의령군 일대의 전망이 트인다.

정면에 방어산에서부터 여항산, 적석산,

뒤로는 한우산, 자굴산이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잡풀을 베고 있던 산불감시요원이 말을 걸어왔다.

의령에 좋은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산에만 오가서 세상 소식을 잘 못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맞은편 산불감시카메라를 작동하는데 쓰이는 태양전지판을 가리키며

추위가 만만찮아 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했다.

 

2봉에서 하산한 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산중으로 접어들면 출발지인 운곡마을회관으로 연결된다.

 

벽화산은 등산로 정비가 잘 돼 있지 않지만,

사전에 산행지도를 챙겨서 출발하면 길을 잃지 않고 힐링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고,

하산 후에는 수암사 관음보살상 산책길을 걸으면 부처 같은 마음까지 생겨난다.

 

 

경남일보

 

 

 

 

 

최신 지형도

 

 

 

 

 

의령군 의령읍 중리 266-6(의령읍 중리로 55) 운곡마을회관,

벽화산성을 거쳐 벽화산(522.1m)으로 올라 상리산을 경유하여 돌아오기로 하는데,

언젠가 가긴 했지만 무척 오래되어 이젠 기억조차도 가물가물한 벽화산과 상리산(512.7m),

벽화산 정상은 별스런 볼거리나 보이는 것도 없는 숲으로 둘러싸인 봉우리요, 

벽화산 2봉이라 부르는 산불감시초소가 자리 잡은 상리산에서나 눈요기가 가능하다고나,

요즘 들어 부쩍 일행이라곤 없는 나 홀로 산행이 이어지지만,

거기에 산이 있어 산에 가고,

누가 대신 걸어 주는 것도 아닌 어차피 제 발로 걸어야 하는데, 

여럿이면 어떻고 또 혼자면 어떠리?

 

 

 

아무리 그래 봤자 어제(2022.2.16.)도 신규 확진자가 93,135명이라던가? 

 

 

 

 

 

 

척곡마을회관

 

 

척곡마을 버스승강장

 

 

벽화산 등산로 입구,

운곡마을회관에서 200m 남짓 되려나?

벽화산 정상 3.6km를 가리키고

 

육각정 왼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고

 

 

척곡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또 <벽화산 등산로 입구 정상 3.6km>를 가리키는데,

여긴 벽화산 정상 3.5km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벽화산 정상부 일대가 보이고

 

 

운곡마을회관

 

 

 

 

진주 산꾼 조상제님 표지기

 

 

 

 

방어산(532.1m)

 

 

 

 

 

 

 

 

임도준공기념비(林道竣工記念碑)

 

 

 

 

준공 기념(竣工 紀念)

이 길을 따라 산정(山頂)으로 오르면 가야시대(伽倻時代)의 고성(古城)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수축(修築)하여 지키면서 곽재우(郭再祐) 홍의장군(紅衣將軍) 휘하(麾下)의 의병(義兵)들이 

왜적(倭敵)을 무찌른 전승지(戰勝地)로서 호국(護國)의 얼이 깃든 벽화산성지(碧華山城址)

가야고분군(伽倻古墳群)이 있는 유서(由緖) 깊은 유적지(遺蹟地)입니다.

 

오랜 세월(歲月)과 함께 돌보지 않은 이 성채(城砦)를 보존(保存)하고 정화(淨化)하고자

이곳 출신(出身)으로 일본(日本)에서 주식회사(株式會社) 광건설(光建設)을 경영(經營)하시는

류광웅(柳光雄) 사장(社長)께서 거액(巨額)의 정재(淨財, 깨끗한 돈)를 희사(喜捨)하시어

임도(林道) 1.7km를 개설(開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국(祖國)과 향토(鄕土)를 위(爲)하는  지극(至極)한 정성(精誠)

남다른 덕(德)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여기 작은 돌비 하나를 세웁니다.

   1988214일 의령군수(宜寧郡守) 손태병(孫泰兵)

 

향토문화유적 벽화산성고분군(碧華山城古墳群), 

임도준공기념비 바로 뒤에 서 있고

 

벽화산성 아래 가야시대 고분군

이 고분군은 의령읍 중리와 하리 사이 벽화산 정상을 에워싸고 있는

해발 340m의 벽화산성 아래 평지상의 능선 정상부(해발 246m)에 위치하는 가야시대 고분군이다.

능선의 정상부 가까이에 입지한 조건은 인근의 의령 중동리고분군과 매우 유사하며,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특이한 입지환경을 가지고 있다.

벽화산성고분군은 지표조사를 통해 지난 1994년부터 알려져 왔으며,

주민의 전언에서 과거의 경우 7기의 대형 봉토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3~4기만 확인되고 있다.

의령 벽화산성고분군 1호분이 가야 무덤 형식 중 하나인 횡혈식석실묘로 확인됐다.

횡혈식석실묘란 고분 측면에 입구를 설치한 석실을 가리킨다.

석실 입구를 여닫을 수 있어 추가장을 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12월 22일 의령군에 따르면 벽화산성고분군 1호분은 문화재청이 시행한

‘2021년도 매장문화재 긴급발굴조사 사업’에 선정돼 올해 11월부터 경남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부는 세장방형 현실 중앙에 연도를 설치한

전형적인 가야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횡혈식석실묘로 확인됐다.

도굴로 인해 동장벽은 석실 내부로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나 서장벽은 원상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석실의 규모는 바닥을 기준으로 길이 640㎝·너비 220㎝이며,

최대 높이는 190㎝이고 천장의 너비는 100㎝이다.

1호분의 평면적은 14.08㎡로,

가야지역 세장방형 석실 중에서는 함안 남문외고분군 6호분인

길이 740㎝·너비 280㎝·잔존높이 160㎝·평면적 20.72㎡ 규모 다음으로 크다.
이는 함안 남문외고분군 11호분인 길이 700㎝·너비 200㎝·높이 210㎝·평면적 14.0㎡과 유사하다.

석실묘의 규모와 입지로 미뤄보면 벽화산성고분군 1호분의 피장자는

6세기 의령지역 최고 지배층일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됐는데 조사 과정에서 일부 수습됐다.

대부분 토기류로 아라가야, 대가야, 소가야계통의 토기가 확인되고 있어 이들 지역과 교류했음을 알려준다.

또 지정학적으로 수로와 육로를 통한 가야 여러 지역과 교류하기에 좋은 입지에 위치해

문물 교류의 통로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군은 이번 발굴조사를 계기로 주변에 위치한 의령읍 중리, 하리, 상리, 중동리 일대 고분군들의 분포를 파악,

추가적인 훼손 방지를 위한 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앞으로도 비지정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들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힘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벽화산성고분군은 의령읍 벽화산 벽화산성 아래 능선 정상부에 위치한 가야시대 고분군이다.

2021.12.22.

 

 

 

 

 

 

 

 

 

 

 

 

 

 

 

 

 

벽화산성동문지 삼거리,

벽화산성고분군에서 1분 정도 갔을까,

빤히 보이는 벽화산성동문지를 모른 척하고 그냥 지칠 수야?

 

벽화산성동문지(碧華山城東門址)

 

 

 

 

벽화산성동문지(碧華山城東門址)

 

 

1988년 2월 14일

 

 

지방기념물 제64호,

1983년 8월 6일 지정됐다 하고

 

현위치:우물터(250m),

벽화산성 0.20km·척곡마을 1.40km를 가리키고 

 

 

 

 

 

 

 

 

 

 

 

벽화산 등산로 종합안내도

그다지 세세하게 안내하는 것 같지도 않건만,

바로 위 신우대지대가 끝나는 곳에 벽화산성 갈림길이 보이는데,

1995년 학운 스님이 보천사지(寶泉寺址)에 창건한 용국사(龍國寺)는 수암사(水巖寺)로 바뀌었다던가?

 

 

 

벽화산성 갈림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50m쯤 들어가면 일부만 복원한 벽화산성에 이르게 되는데,

벽화산성을 따라가면 끄트머리에 제대로 된 등산로가 나 있는 건 아닐지라도,

요즘 같은 땐 그다지 어렵지 않게 벽화산 등산로에 합류할 수도 있지만,

  벽화산성을 둘러보고선 다시 여기로 돌아오기로 하고 

 

남산(323.1m)

 

 

 

 

남산

 

 

방어산,

멀리 여항산(770m)이 살짝 들어오고 

 

벽화산성

 

 

 

 

의령벽화산성지(경상남도 기념물 제64호)

의령 벽화산성은 벽화산 정상을 따라 쌓은 둘레 약 800m 정도의 테뫼식 산성이다.

성 안쪽은 일제강점기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어 대부분 일반인의 무덤이 있으며,

성 바깥의 남쪽에는 삼국시대 고분인 벽화산성 고분군이 있다.

벽화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어느 시점에 쓰이지 않게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에 성을 수리하여 다시 사용하였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은 높이 0.5~2.0m 정도의 벽만 남아 있는데,

성벽의 면을 비교적 잘 맞추어 쌓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성은 이전에 쌓은 삼국시대 성벽 위에 덧대어 쌓아 올렸다.

성벽의 면이 고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모양인 것으로 보아

긴박한 시기에 급히 쌓아 올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곽재우가 임진왜란 때에 이곳에서 성을 고쳐 쌓아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고종 13년(1876)에 의령현감 송기노가 성을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테뫼식 산성: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이 쌓은 성

 

옛 벽화산성지 안내문(경상남도 기념물 제64호)

이 벽화산성은 의령읍 중리 척곡마을의 북쪽 벽화산 8-9부 능선을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산성둘레는 약 800m 정도이다. 

산성 내부는 일제시대 이후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대부분 민묘로 채워져 있으며, 

산성 남으로 7부 능선 정도에 벽화산성 고분군이 위치한다.

 

벽화산성 복원정비를 위한 2000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의 시굴조사에 의하면

벽화산성은 축조시기를 달리하는 2개의 성, 

즉 삼국시대성(하한은 통일신라시대)과 조선시대성이 축조되어 있으며, 

후대에 설치된 조선시대성은 삼국시대성이 폐기된 이후 폐성을 기단으로 하여 축조되었다. 

삼국시대성은 대부분 높이 0.5m~2m 정도 남아 있으며, 

구간을 따라 축성기법을 달리함이 확인되었다.

 

후대에 설치된 조선시대성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급박한 상황에서 수축된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벽화산성에서 왜적 수천 명을 섬멸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 후 조선시대 말기인 고종 13(1876)

의령현감 송기노가 대대적으로 성을 정비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의령읍

 

 

다시 돌아온 벽화산성 갈림길,

이제 벽화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벽화산성을 지나 공동묘지에서 올라선 351.1m봉,

그전엔 349m봉이라 했는데 어느새새 2.2m나 자란(?) 듯한데,

이 봉우리 정상부에도 무덤 여럿이 다닥다닥 붙어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젠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현위치:벽화산성 300m>란 낡아 빠진 이정표,

척곡마을 1.60km·삼거리 0.49km를 가리키고  

 

 

 

나무는 고통이겠지만,

산꾼들의 길잡이라고나?

 

수암마을 갈림길 안부,

척곡소류지 바로 위로 이어지는 갈림길도 보이니,

이젠 삼거리 아닌 사거리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이곳 또한 <현위치:삼거리, 해발고:279m>란 낡아 빠진 이정표,

수암마을 1.5km·벽화산성 0.49km·척곡마을 2.09km·벽화산정상 1.24km·임도 1.69km를 가리키고 

 

 

 

낮게 깔린 마당바위,

솔가리가 덮어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지나갈 듯?

 

 

 

 

 

 

 

 

 

왜 하필이면 거기다 뿌리를 박았을까?

 

 

칠원제공휘억근부부묘(漆原諸公諱億根夫婦墓),

봉분이라기보단 차라리 나지막한 공터라고나?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합천이공휘병선지묘(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陜川李公諱秉善之墓)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조선시대 종2품의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중추부의 종2품 관직이다.

지중추부사,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보다는 낮지만 첨지중추부사보다는 높다.

주로 육조의 참판 및 대사헌, 홍문관·예문관의 양관 제학, 오위도총부의 부총관,

5군영의 대장, 좌우 포도대장, 동지의금부사, 각 도의 병마절도사,

각 도의 관찰사, 부윤, 강화·수원·개성·광주의 유수 등을 역임한 관리가 주로 임명되었다.

 

 

 

벽화산(碧華山, 522.1m) 정상부,

봉우리 같지도 않은 밋밋하고 펑퍼짐한 평지랑 다름없다고나,

그 무슨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요,

빼곡히 들어찬 숲에 가려 보이는 것도 없는데,

<푸른 빛이 나는 산>이란 그럴싸한 이름을 꿰차게 되었을까?

근래에 의령군에서 이정표를 새로이 세운 것 같은데,

그전과는 달리 거리 표시 없이 방향만 가리키는 바람에 아쉽기도,

임도 0.45km·삼거리 1.24km라는 게 있었건만 

 

벽화산 정상석,

의령교육청산악회에서 2007년 11월 10일 세웠다 하고 

 

바람처럼 살다 가자 

 

 

<Forever, 포에버)> 표지기,

경상국립대학교 지리산 홍성국님이 주인공으로,

적어도 경남 일대에선 웬만한 곳이면 거의 만날 수가 있다고나?

 

 

 

자료사진

 

 

 

 

묵은 헬기장,

본래의 모습인 자연으로 돌아갔다고나 할까?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고갯마루,

<현위치 임도 360m> 벽화산정상 0.45km·척곡마을 3.46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었건만,

도대체 언제 왜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걸까?

 

자료사진

 

 

자료사진

 

 

가야 할 상리산

 

 

 

 

 

 

송전탑(국가지점번호 라마 6612 0025)

 

 

 

 

 

 

 

 

헬기장,

이건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듯한데,

아까부터 깔짝거리며 애를 먹이던 오랑캐란 놈이 기어이 쳐내려오며 선전포고를 할 줄이야?

귀찮고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하는 수 없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수밖에는,

속시원히 오랑캐를 물리치고선 비교적 수월한 길을 따라 상리산으로,

그동안 무겁던 발걸음도 어느새 가벼운데 5분 남짓이면 올라서지 않을까?

 

 

 

 

 

상리산(上里山, 512.7m),

벽화산 2봉이라고도 부르는 상리산은 공식 지명은 아닌 듯한데,

의령읍 상리에 우뚝 솟구쳐 자리 잡은 산이라 해서 부르는 이름이 아닐는지?

삼각점(삼가 26)과 산불감시초소 및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하여 2년 동안이나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를 해 두는 바람에,

웃자란 수목으로 인하여 조망은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못하단 느낌이라고나,

산불지기에 따르면 의령군청에다 시야에 방해가 되는 수목 정리를 요청해 둔 상태로,

조만간(早晩間) 이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그전엔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있는 동쪽으로 등산로가 있었건만,

요즘 산행기를 보면 그쪽으론 길이 없어 남쪽으로 난 반질반질한 길로 내려간다는데,

산불지기에 의하면 한 열흘 전쯤이라던가,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이 입구의 잡목을 제거하고 친구랑 내려갔으니,

동쪽으로도 길이 뚫려 있을 것 같아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거라는 걸,

하기에 남쪽의 반질반질한 길을 마다하고 그전처럼 동쪽으로 내려가기로 하는데,

실제로 내려가 보니 30m 정도만 빼곡하게 잡목이 들어찼을 뿐이요,

 어르신이 제거한 잡목 또한 그다지 많지도 않더라나?

 

처음엔 이 길로 내려가려 했지만,

산불지기의 말을 듣고선 맘을 바꿨다고나?

 

상리산 삼각점(삼가 26)

 

 

 

 

 

 

 

 

 

 

 

 

동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의령읍이 보이고 

 

 

 

자굴산,

산불지기의 시야를 가리는 잡목 정리가 시급한 듯?

 

벽화산과 자굴산,

이게 뭡니까?

 

함안군 군북면과 가야읍 일대

 

 

 

 

방어산,

그 뒤엔 여항산이 보이고 

 

 

 

확 당기고

 

 

 

 

 

 

 

 

동쪽으로 난 등산로 입구를 막아선 잡목을 제거한 흔적,

그전엔 여기서 왼쪽으로 틀어 산줄기를 따라 등산로가 이어졌지만,

빼곡하게 들어찬 잡목 때문에 살짝 돌아 산줄기로 붙어 내려가는데,

잡목지대라고 해 봤자 어림잡아 30m쯤 되려나? 

 

이게 제대로 된 등산로인데

 

 

나지막한 무덤을 지나고

 

 

 

 

 

 

 

 

 

 

아니나 다를까 잡목지대가 나타나면서 성가시게 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생각보다는 훨씬 양호하여 못 갈 정도는 아니라고나,

하기야 몇 년 동안이나 인적이 끊긴 길이 아닌가?

 

임도,

빙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 척곡마을로 내려가도 되지만,

임도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뚜렷한 길로 내려가기로 하고 

 

 

 

 

 

 

 

잡목의 방해도 없는 뚜렷한 길로 3분 정도 내려갔을까,

삼거리가 되면서 빼곡히 들어찬 잡목지대가 앞을 막으면서 갑자기 길이 희미해지기에,

정면으로 내려가는 게 맞긴 하지만 엄두도 못 내고 비스듬히 왼쪽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좇아가는데,

결과적으론 산줄기를 갈아 타는 셈으로 어떻게 보면 잘한 선택이었다고나,

척곡소류지 부근에서 벽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제대로 볼 수 있었으니까.

 

 

 

위엔 밀양박공휘종신지묘(陽朴公諱鐘新之墓)요,

아랜 유인김해김씨지묘(孺人金海金氏之墓)인데,

산줄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관리가 잘되어 있는 쌍분(雙墳),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은 상석(床石)조차 갖추지 않았는데,

왼쪽으로 난 너른 길을 따라 밤나무단지로 내려가고 

 

의령읍 중리 97-3(의령읍 벽화로 408)에 자리 잡은 홍의청소년수련원 

 

 

 

 

벽화산성터 위 349m봉

 

 

 

 

 

 

아까 헤어진 임도로 빠져나가는데,

조금 내려가자 벽화산 일대가 잘도 들어오고 

 

 

 

벽화산에서 내려선 임도 송전탑과 벽화산

 

 

수암마을 갈림길 삼거리

 

 

 

 

개농장,

수많은 개들이 어찌나 개지랄을 하며 짖는지?

 

 

 

임도를 빠져나가 2차선 도로 중리로에 합류하자,

30m쯤 위에 척곡소류지가 보이고 

 

 

 

 

 

 

 

 

 

 

 

 

 

 

 

 

 

 

 

 

 

척곡마을회관

 

 

 

 

 

 

운곡마을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