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적도사 전설탐방로
* 날 짜 : 2021년 4월 21일(수요일)
* 날 씨 : 구름 조금
* 산 행 지 : 용유교 - 모전마을 - 송대마을 - 마적동 - 세진대 - 세동마을 - 모전마을 - 용유교
* 산행시간 : 4시간 50분(운행시간 3시간 28분 + 휴식시간 1시간 22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0명(박만길, 황의봉, 정봉근, 송문영, 한윤갑, 이영근, 유달수, 이완희, 강동섭, 조광래)
* 산행일정
11:00 용유교
11:20 - 11:40 휴식
12:05 견불사
12:10 - 12:23 송대마을
12:30 - 13:25 솔봉 갈림길 삼거리
13:48 지네바위
14:00 - 14:15 마적동
14:20 - 14:45 세진대(마적송)
15:10 - 15:14 송전(세동)마을
15:50 용유담
* 근교산&그너머 <1097> 함양 마적도사 전설길
만산홍엽의 시기다.
가을이 깊어가며 남쪽의 산들도 차츰 노랗고 붉은 색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 시기는 연중 가장 많은 산꾼이 산을 찾는 때이다.
화려한 단풍에 감탄하고 때로는 떨어진 나뭇잎에 세월 무상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어지간한 단풍 명산을 찾아서는 이런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단풍 구경이 아닌 사람 구경이 되는 탓이다.
여유 있게 단풍을 감상하기는커녕 등 떠미는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단풍 구경하러 온 건지, 시장통에 온 건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물론 단풍 명산이라고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는 예외가 없다.
그래도 때깔 좋은 단풍을 보려면 큰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큰 산에 드는 단풍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호젓한 산행을 하고 싶다면
지리산 자락의 둘레길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이번에 최근 화제를 불러왔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을 촬영한 용유담의 절경을
시작점이자 종점으로 하는 트레킹 코스인 함양 마적도사 전설길을 찾았다.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용유교에서 상류를 바라보면 용유담의 하얀 바위가
수면에 비치는 붉고 노란 단풍과 대조를 이뤄 눈을 부시게 한다.
주골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해발 500m가 넘는 고지의 송대마을을 정점으로 하는
이 코스는 단풍이 차츰 물들어가는 가을 지리산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마적도사길은 모전마을~송대마을~송전(세동)마을 구간을 일컫는다.
이 길은 7세기 신라 무열왕 때 마적사를 짓고 수도하던 마적도사에 얽힌 전설을 담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용유담을 비롯해 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거품소,
나귀바위, 장기판바위, 마적동과 마적사 터 등이 모두 마적도사 전설과 관련된 곳이다.
특히 송대마을에서 세동마을로 내려가는 도중에 지나는 세진대는
마적도사가 지리산 천왕 할매와 장기를 두었다는 곳으로,
수령 400년을 넘은 소나무가 엄천강을 내려다보며 절경을 빚고 있다.
송대마을 뒤 선녀굴은 빨치산이 숨던 곳으로 마을에서 두 갈래로 빨치산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송전(세동)마을에서 용유담으로 가는 길은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벗어나 용유담 전설 탐방로를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 구간의 도로와 엄천강 사이 사면의 숲을 따라가는 길인데,
나무 사이로 조금씩 강물이 내려다보일 뿐 시원하게 엄천강 조망이 열리는 곳은 없다.
취재팀은 답사 당시 용유담 전설 탐방로가 시작되는 지점을 놓쳐
엄천강 강변을 따라 모전마을 앞 거품소까지 간 뒤 탐방로에 합류했다.
이후 용유담 전설 탐방로를 되돌아가 다시 답사했다.
강변을 따라가는 길은 큰 바위가 많아
전설 탐방로로 가는 것보다 서너 배 많은 시간을 들이고 땀을 흘려야 했다.
엄천강의 비경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지만 권하지는 않는다.
특히 비가 내려 물이 조금이라도 불어나면 위험하니 절대 피해야 한다.
이번 코스는 경남 함양군 휴천면 엄천강 용유담 인근 용유교에서 출발해
모전마을~고양터·송대마을 갈림길~견불사~송대마을~와불 조망~지네바위~
마적대 갈림길~도사배나무 갈림길~마적동·마적사 터~세진대~송전(세동)마을을 거쳐
용유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다.
전체거리는 8.7㎞ 정도로 소요시간은 4시간 안팎이다.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 아래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용유교에서 출발한다.
모전마을회관을 지나 마을 정자 앞 삼거리에서 이정표의 고양터 방향으로 올라간다.
뒤로 엄천강 건너 법화산과 삼봉산이 보인다.
두 산 사이로 오도재가 지나는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실상선원을 지나 고양터와 송대마을 갈림길에서 송대마을로 올라간다.
말귀바위 앞에 있는 송대마을 정자 왼쪽으로 올라가면 곧 와불 전망대다.
마을 뒤로 보이는 부처의 얼굴을 닮은 봉우리가 와불산으로 불리는 상내봉이다.
이곳을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지네바위에서 10여 분을 내려가면 마적대 갈림길을 지난다.
곧바로 나오는 도사배나무는 주택 마당을 거쳐 가야 한다.
이어서 마적동과 마적사 터를 지난다.
수령 400년을 넘은 소나무가 바위 위에 서 있는 세진대에서는 멀리 용유교가 내려다보인다.
소나무의 웅대한 자태가 압도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바위 위에 세진대란 한자가 음각돼 있다.
여기서 오래지 않아 숲을 벗어나며 엄천강과 다랑논이 보인다.
갈라지는 길이 몇 군데 있지만 임도를 따라가면 모퉁이를 돌아 송전(세동)마을에 닿는다.
앞서 지나온 두 마을보다는 한결 규모가 크다.
세동마을회관을 지나 만나는 도로에서 왼쪽으로 간다.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가 틈틈이 보인다.
600m쯤 가서 소나무 한 그루를 지나면 용유담 방향 표시가 부서진
이정표 앞에서 엄천강 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진다.
강변으로 내려간 뒤 다시 비탈로 올라간다.
배수지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 전봇대 왼쪽으로 올라가면 숲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10여 분 가면 작은 논 앞에서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 오르막은 도로와 연결된다.
나무 난간을 따라 난 오른쪽 길로 가면 곧 데크 탐방로로 이어진다.
모전마을회관 앞 도로와 만나서 용유교로 내려가면 된다.(2018.10.24.)
용유교,
엄천강이라고도 부르는 임천강이 품은 명소 용유담을 가로지르는,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와 모전리를 잇는 모전길이 지나고
용유담(龍遊潭)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용유담은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이곳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용유담에 이르러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대낮에 우레소리 같은 폭포의 소리를 비롯하여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게 된다.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인 험준한 봉우리는
용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하겠다.
이 용유담은 신선이 노니는 별유천지로
옛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았았던 곳으로
여름이 되면 각처의 피서객들이 휴식처를 찾아 모여 들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서편의 벼랑으로는 절경을 이루는 풍치와 청아한 물빛,
거울 같은 물에 비친 산그림자,
푸른 못의 반석에 펼쳐진 모래는 가히 도원경의 경지에 이르는 듯
황홀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도취되게 하곤 한다.
길 언덕 위에 구룡정이란 정자가 있고,
이 용유담가에는 당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용유담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마적도사와 당나귀 관련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용유담
지리산 북쪽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엄천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기암괴석과 폭포소리,
서쪽 언덕의 나무숲과 푸른 담수에 높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신비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 절묘한 화강암 괴석들이 첩첩이 싸인 계곡은 용이 승천할 것 같은데,
호수에서의 고기 잡는 어부의 작은 배는 한 폭의 신선도 같고 절벽의 풍치나 청아한 물빛,
물속의 반석과 모래사장에 빠져들면 마적도사와 아홉 마리 용의 전설과 더불어 황홀경에 빠져들게 된다.
아홉 마리 용을 그린 병풍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서울 박람회에
출품했다가 분실되었고, 하나는 눈먼 용 한 마리만 남겨 두고 싸우다 당나귀를 죽게 한 여덟 마리 용이
마적도사에게 벌을 받아 쫓겨나는 그림으로 마적도사의 철장과 함께 해인사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용유담은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그리과 임천과 엄천의 경계이며 남쪽 지리산과 북쪽 법화산 사이를
따라 흘러가는 엄천에는 용유담을 비롯하여 12곳의 바위, 소(沼), 정자 등의 경승지가 있다.
* 마적도사와 아홉 마리 용 전설
신라 무열왕(659년) 마적도사가 용유담에 와서 마적사를 짓고 나귀를 기르고 있었다,
식량과 부식물이 떨어지면 쪽지를 써서 쇠도장을 찍어 나귀에게 부쳐 오도재를 넘어 관동장에 보냈다.
상인이 물품을 챙겨 주어 싣고 다시 돌아와 나귀바위에서 울면,마적도사는 쇠지팡이로 다리를 놓아 나귀가
건너오게 하였다.
하루는 마적도사가 지리산 천왕 매와 장기를 두는데 정신이 빠져 있었고, 눈먼 용을 제외한 여덟 마리 용이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여 하늘에 오르려고 물고 뜯고 싸우는 소리 때문에 나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귀는 울다 지쳐서 죽고 말았다. 뒤늦게 나귀의 죽음을 알게 된 마적도사는 장기 때문에 나귀가 죽는 줄을
몰랐다며 화가 나서 장기판을 던지니, 한 조각은 마적동에 떨어져 바위에 장기판이 새겨졌다.
마적도사는 눈먼 용 한 마리를 남겨 놓고 여덟 마리 모두 쫓아버렸다.
* 거북바위 전설
용유담의 소(沼) 안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거북이가 토끼 간을 찾아가기 위해 뭍으로 나왔다가 토끼를 놓쳐서
용왕으로부터 벌을 받아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거북바위는 물에 잠긴 정도에 따라 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 거품소와 눈먼 용 전설
나귀바위 근처에 수심이 깊고 거품이 빙빙 도는 거품소가 있다. 이 거품소에는 용유담의 아홉 마리 용 중에
마적도사가 쫓아내지 않은 눈먼 용이 거품소 깊숙한 곳의 굴에 잠들어 있어 거품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이 거품소는 포호소(泡湖沼)라고도 한다.
* 나귀바위 전설
마적도사가 장기판을 던져 반쯤 깨어진 빨간 핏빛의 나귀바위는 1960년대에 지방도로 공사를 위해 폭파해야 했다.
그 바위를 폭파하니 폭음과 함께 호두만한 말방울 16개가 쏟아져 나왔는데, 마적도사의 애마 나귀 방울이었다.
송전리 주민의 말에 의하면 이것을 7명이 나눠 가지고 집에 가 책상서랍, 농, 빼닫이 등에 보관하였는데
3일 후에 보니 모두 없어졌다. 모두 놀라서 마적도사의 도술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 나귀바위는 사라졌으며, 거품소 부근 도로변에 있었다.
* 장기알 전설
용유담에서 거품소 가기 전 수많은 바위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곳이 있다. 마적도사와 아홉 마리
용 전설에서 마적도사가 던진 장기판의 장기 알이 흩어져서 이곳의 바위들이 되었다고 한다.
* 당나들골 전설
마적동의 세진대에서 모전마을로 내려오는 당나들골 길이 있다.
옛날 마적도사의 나귀가 마적동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던 길이다.
당나들골 중간에 화암대라는 넓고 큰 바위가 있었다.
* 세진대와 마적송
마적동 아래에 있으며 옛날 마적사로 올라갈 때는 여기서 몸과 마음의 먼지를 털어냈다고 전해져서 세진대라 부른다.
마적도사가 장기를 두던 전설이 있으며 용유담과 나귀바위가 한눈에 보인다. 세진대 위의 마적송은 수령 400년의
소나무이다. 송전마을에 살았던 선비 강지주 등이 대를 쌓고 노닐던 곳이다.
* 장독바위 전설
세진대 옆에 있는 바위인데, 장독을 세워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독바위에 병든 환자가 돌을 던져서 그 위에 얹으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마적도사의 부인이 치맛자락에 장독 뚜껑을 안고 얹었다는 전설이 있다.
* 마적동과 마적사 유래
신라 무열왕(659년) 때 마적도사가 이곳으로 와 마적사 절을 짓고 수도한 곳에 마을이 생기면서 마적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또한 마을 앞 큰 바위 위에 말발굽 형상이 새겨져 있어 마적동이라 한다고 전해진다.
용유담의 비경으로 옛 선인들이 찾아와서 그때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적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나, 대종교 천진전
또는 독가촌 뒤편 대나무숲이 옛 마적사지로 추정된다.
* 도사배나무 전설
마적동 앞에 있었던 큰 배나무인데, 마적도사가 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적도사가 절을 떠나던 날 배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이것이 살아 있으면 내가 산 줄 알고
이것이 죽으면 나도 죽은 줄 알라고 말했다 한다.
배나무는 사라호 태풍에 쓰러져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 장기판바위 전설
마적도사와 아홉 마리 용 전설 중에 마적도사가 장기를 두는데 정신이 빠져
나귀의 죽음을 뒤늦게 알고 화가 나서 장기판을 던졌고,
반쪽은 나귀바위에 떨어졌고 나머지 반쪽은 이곳에 떨어져 장기판바위가 되었다.
바위에는 장기판 형상이 남아 있다.
* 도사우물 전설
마적도사가 마시던 우물로, 가뭄이 들거나 비가 많이 와도 수량이 일정하다고 한다.
옛 마적사의 우물로 추정되기도 하며, 이 물을 마시면 장수한다고 전해진다.
* 말발굽바위 전설
마적동의 지명 유래가 된 말발굽 형상이 새겨진 바위다.
1990년대 태풍과 산사태에 의해 떠밀려 내려가면서 유실되었다.
* 마적대
마적대는 지리산 8대(臺) 중 하나이다.
옛 선인들에 의하면 일 금대, 이 마적 또는 일 마적, 이 금대라고 할 정도로 경치와 기가 좋은 곳이다.
지리산 8대를 다 등정하면 장수한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 지네바위 전설
고양터 북쪽 길가에 있는 큰 바위이다.
바위 아래쪽에 굴이 있는데,
옛날 지네가 이곳으로 들어간 뒤로 송대가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송전리 주민들은 이제 송대가 작아졌으니, 지네가 아마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한다.
* 와불 조망
송대마을 인근에서 보면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의 산 능선이 보인다.
부처바위 또는 미타봉이라 불리는 와불산(상내봉)이 와불의 머리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부처의 전체 형상 부분은 항상 눈이 먼저 녹지 않고 아래에만 녹아 장관을 이룬다.
* 말귀바위 유래
송대마을 입구에 있으며 말귀를 닮은 큰 바위이다.
바로 앞에 죽통(구시)바위가 있었으나 도로공사로 인해 유실되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말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 빨치산 루트
지리산은 민족의 기상과 혼, 정서 그리고 애환이 깃들어 우리와 함께 숨쉬어 왔다.
이러한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한때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빨치산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빨치산사건의 배경은 8.15해방 이후 공산주의 세력이 일으킨 여순반란사건부터 시작되는데, 반란군들이
국군의 특별작전에 의해 진압된 이후 잔여병력 약 200여 명이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인근 좌익세력과
함께 지리산유격대(빨치산부대)를 결성하였다.
이들이 빨치산으로 활동하면서 6.25 한국전쟁 시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경찰관서와 군부대를 습격하고
민가에 피해를 주는 등 그 폐해가 심하였으며, 휴전협정 이후 1953년 8월 병단장인 이현상이 사살된
이후까지도 수년 간의 격전이 벌어졌다.
빨치산과 토벌대의 전투로 인하여 피로 젖었던 민족비극이 묻혀 있는 곳 지리산,
빨치산루트에는 당시의 인민군 총사령부, 야전병원(벽송사), 이은조 사살지(선녀굴)를 비롯하여
빨치산들이 은신하던 비트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벽송사, 영원사 등 유서 깊은 역사자원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 제4구간(금계-동강)
모전마을 삼거리에서 모전마을과 의중마을을 잇는 직통코스는 금계 4.1km · 동강 6.9km이며,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경유하는 순환코스는 금계 5.6km · 동강 7.1km를 가리키고
모전교
금계-동강 용유담(모전마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 의평마을, 의중마을,
모전마을, 세동마을과 휴천면 동강마을을 잇는 11km의 지리산 둘레길,
이 구간은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온
산촌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 용유담 : 지리산을 유람하던 선인들이 여흥을 즐기던 곳으로, 마적도사와 아홉 용의 전설이 있다.
* 옻 : 마천은 천연도료이자 약으로 쓰이는 옻이 유명했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으나
의중마을, 금계마을, 원정마을에는 겨울이 되면 아직도 옻을 생산하는 농가가 남아 있다.
* 엄천강 : 지리산 북부지역의 물줄기가 모여 엄천강이 되며, 남강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모전마을회관 삼거리
용유담 0.3km · 세동마을 2.1km를 가리키고
법화산
모전마을 삼거리 이정표
지리산 둘레길은 금계 4.3km · 동강 6.7km요,
마적도사 전설탐방로는 고양터 1.2km · 세진대 0.94km · 용유담 0.36km를 가리키는데,
고양터(송대마을) 쪽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사정이 있어 진주에서 늦게 나서는 바람에,
시작하자마자 간식을 먹고 갈 수밖에 없는 걸.
천연와불성지 견불사 실상선원
법화도량 견불사 삼성각
고양터
모전마을 1.2km · 송대마을 0.6km를 가리키고
천연와불성지 견불사
송대마을 0.35km · 고양터 0.25km를 가리키고
천연와불 성지 견불사
하늘의 천기(天氣)와 지리산의 지기(地氣)가 천왕봉에서 만나 합일을 이뤄
남(南)으로는 완만한 사지(四肢)를 이루고 북으로는 천왕봉, 중봉(中峯),
하봉(下峯)과 함께 음양의 천지정기기운(天地精氣氣運)을 땅속으로 숨긴 채
북(北)으로 흘러내리다가 엄천강, 용유담(龍遊潭)을 만나
용이 승천하듯 우뚝 솟아 만들어진 성지가 바로 견불사지(見佛寺地)입니다.
동쪽으로는 부처님 열반상과 서쪽으로는 보살상이 나란히 함께 출현하신 이곳은
연못 속에 금란(金卵)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의 지국(支局)으로써,
기(氣)가 쇠(衰)하여 병이 생긴 중병환자와 노약자 등이 건강을 되찾아
무병장수할 수 있는 최고의 길지이자 약사도량으로 정히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영험한 가피가 서려 있는 견불사는 구백여 년 전 음각된
송은대(松隱臺)라는 글귀가 큰 법당 뒤편 동산에 아직도 남아 있어
신라시대 때부터 많은 사암, 사적지와 함께 수도자들의 귀의처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찰의 모습이 소실되었던 이곳에 불국정토를 일구려는
청정한 사부대중의 서원으로 창건불사에 첫발을 내딛은 견불사는
우리나라 최대의 천연와불을 친견할 수 있는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신비로운 자연경관과 영험한 기도 가피로 많은 불자님들의 수행처가 되고 있습니다.
천연와불의 가피 속에 모든 유정 무정의 중생들이
탐내며 분노하고 어리석음의 삼독심에서 벗어나 성불하기를 발원합니다.
천연와불 성지 지리산 견불사 주지 합장
* 안내문이 낡아 글자가 지워져 자료사진으로 대체함
송대마을
솔봉능선(선녀굴)과 벽송사능선 갈림길이기도 하며,
마적동 2.1km · 고양터 0.6km를 가리키고
말귀바위 유래
송대마을 입구에 있으며 말귀를 닮은 큰 바위이다.
바로 앞에 죽통(구시)바위가 있었으나 도로공사로 인해 유실되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말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옛 지리산빨치산루트안내소
관리가 되지 않고 점점 흉물로 변해 가고 있어 볼썽사나울 뿐이고(자료사진)
자료사진
수피아펜션에서 바라본 상내봉(와불산)
솔봉 갈림길 3거리
마적동 1.9km · 송대마을 0.2km를 가리키는데,
이미 때가 되었기에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 진주지회 전임 사무국장에게 공로패 수여
84살 큰형님
확 당긴 견불사
상내봉(와불산)
와불산(臥佛山)
앞산 봉우리의 형상이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하며,
옛날부터 와불에 기도하면 소원성취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와불 조망
송대마을 인근에서 보면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의 산 능선이 보인다.
부처바위 또는 미타봉이라 불리는 와불산(상내봉)이 와불의 머리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부처의 전체 형상 부분은
항상 눈이 먼저 녹지 않고 아래에만 녹아 장관을 이룬다.
축사 이정표
아랫도리가 부러져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마적동 1.35km · 송대마을 0.75km를 가리키고
금대산, 백운산, 삼봉산
고양터 갈림길 삼거리
마적동 1.0km · 송대마을 1.1km를 가리키고
지네바위
지네바위 전설
고양터 북쪽 길가에 있는 큰 바위이다.
바위 아래쪽에 굴이 있는데, 옛날 지네가 이곳으로 들어간 뒤로
송대가 주변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송전리 주민들은 이제 송대가 작아졌으니,
지네가 아마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한다.
말발굽바위와 마적대
* 말발굽바위 : 마적동의 지명 유래가 된 말발굽 형상이 새겨진 바위다.
1990년대 태풍과 산사태에 의해 떠밀려 내려가면서 유실되었다.
* 마 적 대 : 마적대는 지리산의 8대(臺) 중 하나이다.
옛 선인들에 의하면 일 금대, 이 마적 또는 일 마적, 이 금대라고 할
정도로 경치와 기가 좋은 곳이다.
지리산 8대를 다 등정하면 장수한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마적동 외딴집
할아버지(91살)와 할머니(81살)가 살고 있으며,
외딴집 위쪽에 도사우물과 장기판바위 그리고 도사배나무 안내판이 있으며,
마적동 50m · 송대마을 2.05km를 가리키고
도사배나무 전설
마적동 앞에 있었던 큰 배나무인데,
마적도사가 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적도사가 절을 떠나던 날 배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이것이 살아 있으면 내가 산 줄 알고
이것이 죽으면 나도 죽은 줄 알라고 말했다 한다.
배나무는 사라호(1959. 9.16.-9.18.) 태풍에 쓰러져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도사우물
도사우물 전설
마적도사가 마시던 우물로,
가뭄이 들거나 비가 많이 와도 수량이 일정하다고 한다.
옛 마적사의 우물로 추정되기도 하며,
이 물을 마시면 장수한다고 전해진다.
장기판바위 전설
마적도사와 아홉 마리 용 전설 중에
마적도사가 장기를 두는데 정신이 빠져
나귀의 죽음을 뒤늦게 알고 화가 나서 장기판을 던졌고,
반쪽은 나귀바위에 떨어졌고 나머지 반쪽은
이곳에 떨어져 장기판바위가 되었다.
바위에는 장기판 형상이 남아 있다.
장기판바위
대종교 국조단군성전 지리산마적천진전(大倧敎 國祖檀君聖殿 智異山馬跡天眞殿)
무슨 이유에선지 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하여 폐허가 되어 안타깝기도 한데,
일행들이 먼저 세진대로 내려가는 바람에 아쉽지만 자료사진으로 대체하기로,
송전(세동)마을 1.6km · 송대마을 2.1km를 가리키고
마적동과 마적사 유래
신라 무열왕(659년) 때 마적도사가 이곳으로 와 마적사 절을 짓고
수도한 곳에 마을이 생기면서 마적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또한 마을 앞 큰 바위 위에
말발굽 형상이 새겨져 있어 마적동이라 한다고 전해진다.
용유담의 비경으로 옛 선인들이 찾아와서
그때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적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나, 대종교 천진전
또는 독가촌 뒤편 대나무숲이 옛 마적사지로 추정된다.
세진대 삼거리,
용유담과 마적동 갈림길이기도 하며,
용유담 1.25km · 마적동 0.25km · 송전(세동)마을 1.35km를 가리키고
장독바위
자료사진
세진대(洗塵臺)
약 1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 위의 세진대(洗塵臺)에서
엄천강, 법화산과 용유담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약 400년 된 큰 소나무가 웅장하게 서 있어
지리산 둘레길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세진대 옆에는 바위 하나가 서 있는데
바위 위에 덮개 같은 바위가 있어 장독바위라고 불리워지며,
병든 환자가 돌을 던져서 그 위에 얹으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세진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금의 국조단군성전인
『지리산마적천진전』은 본래 사지(寺址)로서,
옛날 휴천면 문정리의 법화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한 마적사가 있었는데,
그 당시 불교신자들이 마적사(馬跡寺)를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날 때
여기에 이르러 마음과 몸을 씻고 올라갔다고 하여,
그 후손들이 이 뜻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세진대(洗塵臺)라는 세 글자를 각자(刻字)하여 잘 보존하고 있다.
세진대(자료사진)
강지주(姜趾周, 1856 - 1909)
본관(本貫)은 진주, 자(字)는 우여(遇汝), 호(號)는 적은(迹隱)으로,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속세를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였으며,
甲辰年(1904년) 8월에 세진대(洗塵臺)란 각자(刻子)를 새겼다 하고
보호수로 지정된 마적송(馬跡松),
함양군 마천면 송전리 산 73-1 세진대에 자리 잡았고
세진대에서 바라본 장독바위(자료사진)
마적동 1.1km · 송전(세동)마을 0.5km를 가리키고
함양 독바위와 솔봉
대구댁 민박집
마적동 1.4km · 송전(세동)마을 0.2km를 가리키고
세동마을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회관
세동마을
지리산 둘레길은 금계 6.2km · 동강 4.8km요,
마적도사 전설탐방로는 용유담 2.25km · 용유담 5.8km를 가리키며,
세동마을은 전형적인 지리산 산촌마을이자
한때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닥종이 생산지로 이름을 떨쳤다는데,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평산신영언지려(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平山申永彦之閭)란
정려각(旌閭閣)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제부턴 지리산 둘레길(제4구간)을 따라 용유담으로 가기로 하고
마암비(磨巖碑, 군수이봉화애민어재비)
세동마을회관에서 60m쯤 떨어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233-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보면,
郡守 李鳳和 愛民御灾碑(군수 이봉화 애민어재비) : 함양군수 이봉화가 백성을 사랑하고 재앙을 막은 비
警察署長 道警部 上木屋喜 左衡門 恤灾碑(경찰서장 도경부 상목옥희 좌형문 휼재비)
: 함양경찰서장 상목옥희가 재앙을 막은 비
面長 許南 布德捄灾碑(면장 허남 포덕구재비) : 휴천면장 허남이 덕을 베풀고 재앙에서 구한 비
議官 姜渭秀 施惠賑灾碑(의관 강위수 시혜진재비) : 의관 강위수가 은혜를 베풀고 재앙에서 구한 비
大正 拾五年 咸陽郡 休川面 細洞 監役 申鶴均(대정 십오년 함양군 휴천면 세동 감역 신학균)
: 1925년 휴천면 세동에서 신학균이 새김
함양 독바위와 솔봉
지리산 둘레길 전설탐방로
옛날 용유담에 아홉 마리 용과 마적도사가 살고 있었다.
마적도사가 쇠도장을 찍어 나귀에게 보내면 나귀가 생필품을 싣고 와
용유담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사 다리를 놓아 나귀를 건너오게 했다.
어느 날 장기삼매경에 빠져있던 마적도사는 용들이 싸우는 소리에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고 결국 나귀는 울다 지쳐 죽고 말았다.
화가 난 마적도사는 자신을 질책하여 장기판을 던져버리고 용들을 쫓아버렸다.
그때 던진 장기판 조각들이 용유담에 있는 바위들이다.
용유담과 세동마을을 잇는 옛길로 용유담의 전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이다.
세진대 갈림길
세진대 0.6km · 송전(세동)마을 1.6km · 용유담 0.65km를 가리키고
당나들골 전설
마적동의 세진대에서 모전마을로 내려오는 당나들골 길이 있다.
옛날 마적도사의 나귀가 마적동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던 길이다.
당나들골 중간에 화암대라는 넓고 큰 바위가 있었다.
금대산과 백운산
용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