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더위야 물렀거라 산청 백운계곡

큰집사람 2020. 8. 16. 11:22

 

 

 

 

 

 

* 날 짜 : 2020년 8월 15일(토요일)

* 날 씨 : 구름 조금

* 산 행 지 : 백운계곡주차장 - 청의소 - 다지소 - 용문폭포 - 백운폭포 - 직탕폭포 - 쌍폭 - 직탕폭포 - 백운계곡주차장

* 산행인원 : 6명(황의봉, 송문영, 이영근, 유달수, 이완희, 조광래)

 

 

 

 

 

 

* 산청군 단성면의 백운계곡은

지리산의 맑은 물이 흐르는 때묻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바위 골짜기를 오르면

이름 모를 담(潭)과 소(沼)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리산의 품속에 있지만 칠선계곡과 백무동계곡, 대원사계곡, 뱀사골 등에 가려

그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곳 중 하나가 백운계곡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뻗어나와 동쪽으로 자세를 낮추며 달리던 산줄기는

경호강 인근 웅석봉에서 우뚝 솟아난 뒤

달뜨기능선을 따라 수양산과 시무산으로 흘러간다.

백운계곡은 장쾌하게 뻗은 이 산줄기 중 달뜨기능선에서 발원하여,

오른쪽에 수양산과 시무산 그리고 왼쪽에 백운산을 두고

폭포와 담의 향연을 펼친 뒤 덕천강으로 이어진다.

중부고속도로 단성 IC를 빠져나온 뒤 지리산 중산리지구로 방향을 잡아

국도 20호선을 타고 10여 분을 달리다 보면 왼쪽에 덕천강을 만난다.

강변을 따라 2 ~ 3분을 더 달리면 오른쪽에 백운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계곡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놓치지 않는다.

초입에서 실개천을 따라 2㎞ 남짓 더 들어가면 영산펜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끝나고 골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백운계곡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 - 1572) 선생이 자주 찾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명 선생이 인근의 덕산 즉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머리를 식힐 겸 산놀이를 했을 법하다.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를 볼 수 있다.

백운계곡도 예외는 아니다.

영산펜션 간판(주차장 입구) 아래 바위에는 龍門洞天(용문동천)이 새겨져 있고,

영산펜션주차장 안쪽의 오른쪽에 있는 바위에는 白雲洞(백운동)이 새겨져 있다.

또 계곡 왼쪽의 임도를 버리고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嶺南第一泉石 (영남제일천석), 登天臺(등천대) 등의 각자를 잇따라 만난다.

 

동천(洞天)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 사전에서 적고 있다.

지리산에는 이곳 말고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아래에 화개동천(花開洞天)이 있다.

여러 각자(刻字) 중 남명 선생과 관련 있는 것으로는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屨之所)가 사실상 유일하다.

각자는 남명 선생 사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말 유림(儒林)들이 새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신발을 끌며 왔던 곳이라는 의미다.

<푸른 산에 올라보니 온 세상이 쪽빛과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세상사를 탐한다>는

시를 이곳에서 지었다는 말도 전해지지만,

산청군의 조종명 문화관광해설사는 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백운동과 백운계곡의 백운(白雲)은 글자 그대로 흰구름일까?

여러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봤다.

한결같은 대답은 구름이 아니라 계곡의 암반 색깔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물길을 타고 오르는 수고를 하다 보면,

백운계곡의 암반을 왜 흰구름에 비유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계곡은 폭포와 담(潭)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한 길 정도로 추정되는 짙푸른 담에는 두세 사람 키높이에서 폭포수가 쏟아지고,

폭포를 간신히 오르고 나면 맑은 물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너르고 하얀 빛깔을 띤 암반을 만난다.

또 암반 위에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담과 그 길이만큼 폭포가 우뚝 서 있다.

백운계곡에는 백운폭포와 오담폭포, 칠성폭포, 다지소(多知沼), 청의소(聽義沼) 등

수많은 폭포와 소의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지만,

백운폭포와 다지소 등 몇몇을 제외하면 어느 이름이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이에 대한 표지판도 없다.

그러나 이름을 알고 모르고 하는 것이 대수인가?(2011.7.21. 경남신문)

 

 

 

 

 

*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 중에서 물 맑기로 알려진 백운계곡은

산청군 단성면과 시천면의 경계에 자리한다.

이 계곡은 점촌마을에서 시작하여 약2를 이어가면서 맑고 푸른 자연의 장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 산청지역은

조선조 학자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을 상징하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덕천서원을 중심으로 덕산지역이 남명의 학문과 삶을 대표하는 장소라면,

백운동계곡은 남명이 자연을 즐기며 호연지기(浩然之氣)하던 곳이다.

 

영산산장 앞으로 하여 백운천을 조금 올라가면

삼라만상의 온갖 자연의 소리를 모아 떨어져 기암절벽 아래 크게 자리 잡은 웅덩이로,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저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다지소, 多知沼>라는 못이다.

남명의 뜻을 따르는 후학들이 스승의 높고 넓은 학문을 그리며 남긴 이름인 듯싶다.

수량 많은 백운계곡은 지리산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여준다.

 

다지소 위쪽으로는 용문폭포가 큰 바위를 타고 우렁차게 낙하한다.

물은 눈송이처럼 모였다가 너른 바위 위로 흘러 실타래처럼 감겨온다.

폭포 왼쪽 바위에는 <龍門川, 용문천>과 <龍門瀑布, 용문폭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낙하하는 폭포수는 아래 미끈하게 고인 물에 다시 눈송이처럼 튕겨 올라 사방으로 파편처럼 흩어진다.

백운계곡은 물과 바위가 하나 되어 뒹구는 자연 그 자체였다.

 

백운동은 남명이 지리산권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인정했던 동천(洞天)으로,

남명이 세 번 유람했다 해서 삼유동(三遊洞)이라고도 불린다.

19세기 말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이 지역 남명학파 유생들이 남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1893년 용문폭포 위쪽 바위에 <南冥先生杖屨之, 남명선생장구지소> 여덟 글자를 새기고 화합을 가졌다.

따라서 이곳은 남명의 후학들이 남명과 그 정신을 추모하던 공간이다.

<南冥先生杖屨之所, 남명선생장구지소>

남명 선생이 지팡이()와 신발()을 벗어 놓고 자연에 심취했던 곳이다.

 

남명은 왕이 제수하는 관직을 단호히 물리치고 은거하여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곽재우(郭再祐) · 정인홍(鄭仁弘) 등 수많은 제자들이

의 명성을 듣고 제자가 되길 자청하여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절제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특히 경의(敬義)를 중시하여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행동을 해나간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했다.

학문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실천을 중시했던 스승의 정신은

임진왜란 때 그 제자들이 적극적인 의병활동을 하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남명은 평소에도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이는 배우지 않음만 못하고, 오히려 죄악이 된다.> 하였다.

 

남명은 백운계곡에서

천하 영웅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은(天下英雄所可羞, 천하영웅소가수)/

일생의 공이 유 땅에만 봉해진 것 때문(一生筋力在封留, 일생근력재봉유)/

가없는 푸른 산에 봄바람이 부는데(靑山無限春風面, 청산무한춘풍면)/

서쪽을 치고 동쪽을 쳐도 평정하지 못하네(西伐東征定未收, 서벌동정정미수)

<백운동에 놀며(遊白雲洞, 유백운동)>라고 읊으며,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세상사를 탐한다고 탄식했다.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에 위치한 백운계곡주차장

 

 

백운교

 

 

잠수교에서 콘크리트다리로 바뀐 바로 위에 위치한 청의소(聽義沼),

옳은 소리만을 듣는다는 뜻이라나?

 

 

 

 

 

용소(龍沼)와 등천대(登天臺),

용이 노닐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곳이라던가?

영남제일천석(嶺南第一泉石)과 등천대(登天臺)란 각자(刻字)가 새겨져 있고

 

영남제일천석(嶺南第一泉石)

 

 

 

 

 

 

 

 

등천대(登天臺)

 

 

아함소(阿含沼),

아함(阿含)이란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불교경전이라는데 ,

스승의 가르침을 제자가 이어받는다는 뜻이라나?

 

 

 

 

 

다지소(多知沼),

백운폭포와 더불어 백운계곡을 대표하는 명소로,

26m · 길이 30m로 백운계곡에선 제일가는 물웅덩이요,

목욕을 하면 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뜻이라나?

언젠가 국제신문에서 용문폭포라 소개한 곳이기도 한데,

그러면 좀 더 위에 있는 용문폭포(龍門瀑布)라는 건 뭐란 말인가?

 

 

 

 

 

 

 

 

 

국제신문에서 다지소를 용문폭포로 소개할 때 다지소라 한 곳인 듯,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다지소라 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이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물웅덩이도 이름이 없는 게 많고 많은데,

나로선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 걸?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용문폭포,

왼쪽 위에 용문천(龍門川)이란 각자와 용문폭포(龍門瀑布)란 글자,

또 그 뒤엔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屨之所)란 각자가 있는데,

구한말(舊韓末)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이 지역 남명학파 유학자들이 남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1893년 용문폭포에서 회합을 갖고 바위에다 글씨를 새겼다 하고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屨之所) 각자 및

용문천(龍門川) 각자와 용문폭포(龍門瀑布) 글자가 있는 바위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屨之所) 각자

 

 

용문천(龍門川) 각자와 용문폭포(龍門瀑布) 글자

 

 

 

 

 

 

 

 

 

 

 

 

 

 

 

 

 

 

 

 

 

 

 

 

 

 

 

 

 

 

 

 

 

 

 

 

백운폭포(白雲瀑布),

4m 남짓 되는 높이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데,

다지소와 용문폭포 및 쌍폭 일대와 더불어 백운계곡을 대표하는 볼거리가 아닐까?

 

 

 

 

 

 

 

 

 

 

 

 

 

 

 

 

 

 

 

 

 

 

 

 

 

 

 

 

 

 

 

 

 

 

 

 

 

 

 

 

 

직탕폭포(直湯瀑布),

3m 정도 되는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볼거리를 선사하는데,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는 한탄강 직탕폭포엔 어림도 없지만,

이만하면 물맞이를 하기에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지리산 둘레길 아래 폭포,

산청군 단성면 운리와 시천면 사리를 잇는 지리산 둘레길이 바로 위로 지나고

 

 

 

 

 

 

 

 

 

 

 

 

 

 

 

 

 

 

 

 

 

 

 

 

 

 

 

 

 

 

 

 

 

 

백운계곡,

이곳 백운계곡은 지리산 중에서도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계곡입니다.

 

백운동에 놀며(遊白雲洞, 유백운동)

천하 영웅들이 부끄러워하는 바는(天下英雄所可羞, 천하영웅소가수)

일생의 공이 유땅에만 봉해진 것 때문(一生筋力在封留, 일생근력재봉유)

가없는 푸른 산에 봄바람이 부는데(靑山無限春風面, 청산무한춘풍면)

서쪽을 치고 동쪽을 쳐도 평정하지 못하네(西伐東征定未收, 서벌동정정미수)

라는 시를 읊은 현장이기도 합니다.

 

 

 

 

 

 

 

 

 

 

 

 

 

유실된 콘크리트다리 아래 홈너럭바위폭포

 

 

 

 

유실된 지 꽤 오래된 콘크리트다리,

그전에 고령토를 실어나르던 수레나 차가 지나다니지 않았을까?

 

 

 

 

 

 

 

 

 

 

 

 

 

 

 

 

 

 

 

 

 

 

 

쌍폭 일대,

다지소와 용문폭포 및 백운폭포와 더불어 백운계곡을 대표하는 볼거리요,

줄줄이 바위가 이어지는 백운계곡에서도 제일가는 암반지대를 자랑하는 곳으로,

백운계곡을 넘나드는 등산로가 건너는 곳이기도 한데,

요 위 첫 번째 콘크리트다리까지는 그런대로 볼거리가 있긴 하지만,

백운계곡이 자랑하는 비경(秘境)은 사실상 여기까지라고나?

물놀이를 하면서 좀 놀다 내려가기로 하고

 

쌍폭

 

 

 

 

 

 

 

 

 

 

 

 

 

 

 

 

 

 

 

 

 

 

 

 

 

 

 

 

 

 

 

 

 

 

 

 

 

 

백운계곡과 용무림재를 잇는 지리산 둘레길,

운리 5.7km · 덕산 8.2km를 가리키고

 

 

 

 

 

 

 

 

 

 

 

 

 

 

 

 

 

 

 

 

 

 

 

 

 

다시 돌아온 직탕폭포,

물맞이를 하면서 실컷 놀다 내려가기로 하고

 

 

 

 

 

 

 

 

 

 

 

 

 

 

 

 

 

 

 

 

 

 

 

 

 

 

 

 

 

 

 

 

 

 

 

 

 

 

 

 

 

 

 

 

 

 

 

 

 

 

 

 

 

 

 

 

 

 

 

 

 

 

 

 

 

 

 

 

 

 

 

 

 

 

 

 

 

 

 

 

 

 

 

 

 

 

 

 

남명 조식의 발자취 백운동

백운계곡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 - 1572)이

지리산권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인정했던 동천(洞天)이다.

남명이 세 번 유람했다고 하여 <삼유동(三遊洞)>이라고도 불렀다.

19세기 말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이 지역의 남명학파 유학자들이

남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1893년 용문폭포 위쪽 바위에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屨之所)> 여덟 글자를 새기고 회합을 가졌다.

이곳은 남명의 후학들이 남명과 그 정신을 추모하던 문화공간이다.

 

 

 

용문폭포

 

 

다지소

 

 

 

 

 

 

 

 

백운교

 

 

백운계곡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