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망산과 공곶이
* 날 짜 : 2020년 3월 13일(금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누우래재 - 망산 - 서이말등대 - 공곶이 - 예구마을
* 산행거리 : 12.2km
* 산행시간 : 5시간 55분(운행시간 3시간 53분 + 휴식시간 2시간 02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8명(박만길, 황의봉, 송문영, 한윤갑, 이영근, 이완희, 강동섭, 조광래)
* 산행일정
10:15 누우래재교차로
10:25 - 10:28 데크전망대
10:34 초소전망대
11:00 와현봉수대삼거리
11:13 - 12:38 망산 연지봉(와현봉수대)
12:50 와현봉수대삼거리
13:07 서이말삼거리
13:20 - 13:31 서이말등대
13:45 서이말삼거리
14:25 - 14:38 돌고래전망대(가매너른바위)
15:23 - 15:43 공곶이
16:10 예구마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누우래재교차로,
일운면과 동부면을 잇는 국도 14호선 거제대로가 지나는 곳으로,
진주교정동우산악회 2020년 3월 정기산행에 참석한 8명의 일행들 ,
봉수대가 자리 잡은 망산(연지봉)과 서이말등대를 둘러보고,
수선화로 유명한 공곶이를 거쳐 돌아오기로 하는데,
예구마을에서 누우래재까지 2.5km는 포장도로를 걸어야 하기에,
어쩌면 마지막이 지겨울 수도 없잖아 있겠지만,
산을 다니다 보면 다반사(茶飯事)라고나,
피할 수 없다면 그 또한 즐길 수밖에는,
어차피 걸으려고 오지 않았던가?
서불약수터
서불약수터 기원
누우래재교차로 부근에 있는 서불약수터의 기원이라는데,
기원전 210년경 중국 진나라 때 서불(徐市)이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명 등
일행과 해금강 일대에서 불로초를 구하다 날이 저물어
누우래(와현) 백사장에서 유숙하면서 이 약수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서불약수터에서 바라본 국사봉
와현해수욕장,
그 뒤엔 해금강과 수정봉 또 가라산이 보이고
전망데크,
서불약수터에서 시작된 나무데크가 끝나는 곳으로,
이제부턴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며,
와현해수욕장 0.6km를 가리키고
초소삼거리,
U2기지초입부요 지세포봉수대와 한국석유공사 거제지사 갈림길로,
서이말등대 3.8km · 망산봉수대 2.1km · 공곶이 4.6km를 가리키고
맹그로브?
와현봉수대삼거리,
망산(연지봉)으로 올라가 눈요기와 더불어 때 이른 점심을 먹고 가기로,
봉수대를 지나 서이말등대 가는 길로 내려서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다시 이리로 돌아와 착한 걸음을 이어가기로 하는데,
서이말등대 2.2km · 초소 1.6km · 예구마을 700m를 가리키고
망산(연지봉)
와현봉수대
봉수(熢燧)란 높은 산 위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는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시대 중기(12 ~ 1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 같다,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것은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의 일이다.
봉수대(烽燧臺)는 시야가 넓개 트인 산꼭대기에
각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되었다.
평상시에는 한 개, 적이 나타나면 두 개,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개, (바다에서)전투가 벌어지면 네 개,
육지에 상륙하면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려 소식을 전하였다.
와현리 망산(해발 303m) 정상에 위치한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수군의 주둔지였던 지세포진(地世浦鎭)에 속해 있었다.
산의 정상부를 다듬은 뒤 방호벽을 쌓고 원형의 봉수대를 축조하였다.
봉수대는 원형(圓形)의 단봉(單烽)이다.
규모가 매우 크고 계단시설이 잘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곳에 주둔했던 봉수꾼들의 거쳐 흔적도 그대로 있다.
이 봉수대는 남쪽바다를 직접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그 중요성이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으로 지세포봉수대 ~ 옥녀봉봉수대 ~ 강망산봉수대와 연결된다.
지심도
국사봉
서이말
외도와 내도
다시 돌아온 와현봉수대삼거리,
이제 서이말등대로 나아가고
망산 와현봉수대에서 곧장 나아가면 이리로 내려서게 되는데,
야생동물 주의와 멧돼지 출현 경고문이 있는 곳이고
서이말삼거리,
서이말등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공곶이로 가야 하는데,
초소 2.6km · 서이말등대 1.2km · 공곶이 1.8km를 가리키고
외도와 그 뒤 해금강
내도와 그 뒤 가라산
서이말등대(鼠咡末燈臺)
국방과학연구소 서이말시험소
천주교순례지
신유박해(1801)로 맺어진 거제도와 천주교의 인연은
병인박해(1866 - 1873)를 지나면서 선교로 이어졌다.
복음의 씨앗이 처음으로 거제도에 떨어진 것은 병인박해 직전으로
리델(李福明, 1830 - 1884) 신부와 복사(服事)였던 순교자 구한선(具漢善, 1844 - 1866)
타대오가 거제도 전교(傳敎)를 위해 다녀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병인박해 중인 1868년경 윤사우(尹仕佑, 1827 - 1883)가 거제도로 들어왔다.
그는 할머니의 입교로 가족 모두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윤사우의 가족은 양산 대청에 숨어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생활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마도로 피신할 목적으로 거제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이말등대
1944년 1월 5일 최초로 점등한 서이말등대는
20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다.
서이말등대는 첫 불을 밝히고 대한민국이 일본에서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 폭격으로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1958부터 2년 동안 복구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서이말등대에 서면 저 멀리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망망대해가 펼쳐진 광경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다시 돌아온 서이말삼거리,
이제 공곶이로 내려가고
돌고래전망대 갈림길,
돌고래전망대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돌고래전망대 0.5km · 공곶이 0.5km를 가리키고
다랭이밭 흔적들
서이말
외도
돌고래전망대
돌고래전망대
돌고래의 이동과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돌고래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대형고래의 이동경로로 확인되었고,
4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는 이동하는 멸치떼를 따라온 고래의 출몰이 목격되고 있다.
그래서 고래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물론 일반 관광객들도 고래전망대에서
고래의 생생한 생태를 관측할 수 있는 고래 관광의 몇 안 되는 명소이다.
서이말
외도와 내도
외도
망망대해(茫茫大海),
가시거리가 좋을 땐 일본 대마도(對馬島)가 보인다던가?
공곶이
거제8경 중 마지막 비경인 공곶이!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거제도 일운면 예구마을 포구에서 산비탈을 따라
20여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공곶이는 한 노부부가
평생 피땀 흘려 오직 호미와 삽, 곡괭이로만 일궈낸 자연경관지다.
동백나무, 종려나무, 수선화, 조팝나무, 팔손이 등 나무와 꽃만 해도 50여종.
4만평이 넘는 농원 곳곳에 노부부의 손길
안 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공곶이는 생명의 숲 그 자체다.
또한 몽돌해안의 파도와 새들의 노래 소리는
찾는 이로 하여금 온갖 시름을 달래고 어루만져 준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봄이야말로 환상 그 자체가 아닐는지...
공곶이삼거리,
공곶이와 공곶이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 예구마을로 나뉘고,
성수기에 일방통행을 할 때면 예구마을에서 들어오는 곳으로,
공곶이까진 333개에 이르는 꽤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지게 되며,
공곶이 200m · 예구마을 400m · 돌고래전망대 1.1km를 가리키고
공곶이카페삼거리,
공곶이와 두 방향의 예구마을로 나뉘는 곳으로,
공곶이 150m · 예구마을 500m · 예구마을 1.17km를 가리키고
공곶이의 주인공 강명식(90) · 지상악(86) 노부부의 보금자리
자료사진(2016년)
다시 돌아온 공곶이카페삼거리,
이제 예구마을로 가고
예구마을 가는 길,
예구마을 1.02km를 가리키고
내도
예구마을
예구마을로 내려가자마자 <황가네>에서 해물파전을 안주로 막걸리 하산주,
얼마나 맛깔스럽게 들이키는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고나,
하기야 그러려고 머나먼 거제도씩이나 오지 않았던가?
<황가네> 아줌마가 누우래재까지 자가용으로 태워 준다는데,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시고,
취하고 또 취할 수밖에는,
그러다 기어이 해롱해롱하면서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