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신선둘레길 1코스로 오르내린 팔랑치
* 날 짜 : 2019년 10월 11일(금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원천마을 - 팔랑마을 - 팔랑치 - 팔랑마을 - 내령마을 - 외령마을 - 원천마을
* 산행시간 : 7시간 42분(운행시간 4시간 36분 + 휴식시간 3시간 06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10명(박만길, 황의봉 부부, 송문영, 한윤갑 부부, 이영근, 유달수, 이완희, 조광래)
* 산행일정
09:13 원천마을주차장
09:34 - 09:37 사각쉼터
09:45 곰재
09:50 - 09:53 참샘(곰골)
10:06 - 10:25 울고 넘는 눈물고개
10:37 은적골
11:02 - 11:12 가재골
11:22 - 11:32 팔랑마을(지리산 억새집)
11:35 팔랑골 우골
11:40 - 11:43 팔랑마을 탐방로
12:03 팔랑골
12:32 - 14:05 팔랑치(989m)
14:32 팔랑골
14:53 팔랑마을 탐방로
14:58 팔랑골 우골
15:01 - 15:43 팔랑마을(지리산 억새집)
16:17 - 16:20 내령마을
16:55 원천마을주차장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원천마을주차장,
2012년 5월 19일 개통한 지리산 신선둘레길 제1코스는
지리산 둘레길 제3구간이 지나는 장항마을에서 시작되지만,
장항마을에서 원천마을까지는 포장도로를 걸어야 하는지라 생략하고,
원천마을에서 출발하여 팔랑마을을 지나 지리산 서북능선 팔랑치로 올라,
다시 팔랑마을로 내려서서 내령마을을 거쳐 원천마을로 돌아오기로 하는데,
애당초 계획으론 장항마을에서 출발하여 원천마을을 지나 팔랑마을로 올라,
내령마을로 내려서서 지방도 861호선을 따라 장항마을로 돌아오는 걸 생각했지만,
그럴 경우 흙길 아닌 포장도로를 너무 많이 걷는다는 불평불만이 나올 게 뻔한 일,
민원 해소 차원에서 장항마을에서 원천마을까지 포장도로 왕복 2.6km를 빼는 대신,
팔랑마을에서 팔랑치까지 흙길 왕복 4.0km를 추가하기로 결정한 건데,
결과적으론 전체거리가 1.4km 늘어난 셈이라고나,
지리태극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서북능선 팔랑치,
지난 5월 15일에 이어 거의 다섯 달 만에 다시 찾게 되는 셈인가?(09:13)
원천마을주차장 이정표,
바래봉 8.2km · 장항 1.3km를 가리키고
2012년 5월 19일 개통했다는 지리산 신선둘레길,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 그런 걸까,
각종 안내판들이 낡아서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갖고 신경을 좀 써야 하지 않을까?
산촌문화관
산촌문화관은 마을 주민들에 의한 노력의 결실로
이제는 모두가 찾아와 쉴 수 있는 편안한 보금자리로
마을 주민의 열정과 사랑이 담겨 있다.
45평 규모의 친환경적인 자재를 사용하여 모임, 공연, 영화 등을
할 수 있는 장소로서 태양광시설 8.775킬로와트를 설치하였으며,
친환경적 개발을 통해 이미지 구축과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높이고자 하였다.
자료사진
원천마을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꺾고
토비스콘도가 보이고
때는 바야흐로 사과가 익어 가는 계절
사각쉼터,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팔랑마을까지 흙길이 이어지는데,
쭉 이어진 오르막길이라 잠깐이나마 숨을 고르고 가기로,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09:34 - 09:37)
곰재,
소나무 부근의 묘지 주인이 조성했다는 원두막은 사라지고 없는데,
여름엔 그늘에서 쉬고 가을엔 송이를 지키기 위한 다목적용이었다나?(09:45)
자료사진
곰재와 곰솔 이야기,
이곳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곰이 하늘을 쳐다보고
누워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어 곰재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곰은 예부터 둔하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영물로 숭배되어
특히나 곰의 젖에 해당하는 명당으로 알려져 경주 최씨 후손들의
발복을 위하여 이곳에 묘를 써 자손들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묘 옆 소나무가 유난히 크고 품위가 있어
곰의 형상을 비유하여 곰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언제부터인가 이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이 소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소원성취의 곰솔이 되었다.
곰골,
건너자마자 참샘이고
참샘,
산내면 내령리 외령마을 갈림길이기도 하며,
바래봉 6.5km · 장항 3km · 외령 0.7km를 가리키고(09:50 - 09:53)
참샘,
지리산 산신령이 인간세상을 살피다가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욕망으로 가득차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던 중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물을 발견하여 한모금 마시니,
인간세상의 모든 탄시기 사라지며 어린애 마음처럼 순수해져
이 물이 진짜 참된 물이구나 하여 그때부터 이곳을 <참샘>이라고 하였으며,
샘물이 너무 좋아 마음수련의 도를 얻으려면
이곳 참샘물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울고 넘는 눈물고개,
막걸리와 간식으로 목을 축이고 가기로 하는데,
일정으로 봐선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지만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될 듯,
늘 하던 그대로 하면 되는 게 아니던가?(10:06 - 10:25)
울고 넘는 눈물고개,
이곳은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에서 발원하여 능선들이
일기일복(一起一伏) 좌절우곡(左折右曲) 굽이치는 고개로,
6 ·25사변이 끝나고 풀뿌리로 연명하던 시절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화전(火田)을 일구어
감자, 고구마, 담배, 약초 등을 재배하여 지게로 운반하면서
이 고개를 넘으려면 저절로 탄식과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하여
<울고 넘는 눈물고개>라 하였으며,
화전민들의 어렵고 힘든 삶의 애환이 깃들어진
한(恨) 많은 고개이기도 하다.
은적골 이정표,
은적골은 5분 정도 더 가야 하며,
내령마을 갈림길이기도 한데,
내령 1.2km라는 건 사라지고 없는 걸,
바래봉 5.6km · 장항마을 3.9km를 가리키고(10:32)
산신바위,
1800년경에 화전민들이 팔랑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고,
내령리 입구 약 300m 지점에 <산신바위>라는 기암(奇巖)이 있는데,
그 바위는 신선이 노는 곳이라 하여 영대(靈臺)라 칭하였으며,
그 이름을 따서 내령리(內靈里)라 부르게 되었다는 걸,
지리산 신선둘레길의 이름을 유래케 한 게 산신바위라나?(자료사진)
은적골,
바래봉 동릉에서 흘러내리는 골짝이라나?(10:37)
가재골,
은적골과 마찬가지로 바래봉 동릉에서 흘러내리는 골짝으로,
1급수에만 서식한다는 가재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는데,
나 홀로 앞서가다 제피나무(초피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은 걸 보고선,
그걸 따느라 한참 뒤처진 일행들에게 추월을 당하고 말았다나?(11:02 - 11:12)
제피나무(초피나무)
궁여지책(窮餘之策)이라고나?
지리산 신선둘레길 <추억을 담아>
지리산 신선둘레길을 돌아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라도 신선이 되어 삶의 무게 내려놓으시고
삶의 밑거름이 될 추억 한 장 남기지 않으시렵니까?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 팔랑마을,
팔랑마을의 유래는 진한시대로까지 올라간다는데,
진한의 왕은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영(정령치)에 정장군,
동쪽 20리 밖의 영마루(황령치)에 황장군,
남쪽 20리 밖의 산령(성삼재)에는 성이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였고,
또한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령(팔랑치)에는 8명의 젊은 장군을 배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아 냈다고 해서 각각 정령치, 황령치,
성삼재, 팔랑치 등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데,
해발 620m에 형성된 팔랑마을은 팔랑치(八郞峙)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팔랑마을 삼거리의 지리산 억새집에서 쉬었다 가기로,
팔랑치 2.0km · 바래봉 3.7km · 장항 5.8km · 내령 2.2km를 가리키고(11:22 - 11:32)
지리산 억새집,
채옥산방(採玉山房)의 주인공 김채옥(金採玉, 77) 할머니가 주인으로,
바로 옆에 콘크리트집이 있지만 지은 지 200년이 넘었다는 억새집이 편하다는데,
채옥표 동동주로 목을 축이고 팔랑치로 올라가고자 들렀건만,
어디로 외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걸,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고선 막 집을 나서려는데,
승용차를 운전하고 올라오는 게 아닌가?
다슬기를 잡으러 갔다 오는 길이라나?
팔랑치까지 갈 건데 너무 많이 지체하면 안 되겠기에,
내려갈 때 또 들르겠단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 떠나는데,
KBS 1TV 인간극장(연출 천지영, 글 홍은영)에서
5부작으로 방영한(2017.1.30 - 2.3) <채옥씨의 지리산 연가>로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김채옥 여사,
원천마을에서 18살에 팔랑마을로 시집와 22살 때 남편과 사별했으며,
외아들이 산내초등학교 4학년 때 남원 시내로 이사했다가
2007년도엔가 다시 팔랑마을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세월 따라 허리가 90도 가까이 굽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오가는 길손들을 위해 지금도 일손을 놓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는 듯,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차에서 내리는 김채옥 할머니,
74살 때 26전 27기로 운전면허증을 땄다고 하며,
요즘도 피아노를 두드리고 컴퓨터까지 만진다던가?
참말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채옥산방(採玉山房)
천수정,
고욤나무 아래에서 게으른 낮잠을 즐기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라나?
다슬기
산초나무 열매
자, 이제 팔랑치로
서북능선 부운봉(1122.8m)
팔랑골 우골,
바래봉 동릉에서 흘러내리는 골짝으로,
비교적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자그마한 폭포가 몇 개 있다는 걸.(11:35)
팔랑골,
팔랑골은 느랭이골이라고도 부르는 듯?
팔랑마을 탐방로,
팔랑치 1.8km · 팔랑마을 0.2km를 가리키고(11:40 - 11:43)
지리 36 - 01지점(11:49, 683m)
지리 36 - 02지점,
팔랑치 1.0km · 팔랑마을 1.0km를 가리키고(12:01, 776m)
팔랑골,
바래봉과 바래봉샘에서 흘러내리는 골짝으로,
팔랑골 우골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별스런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12:03)
대체로 수월한 길이 이어지고
지리 36 - 03지점(12:13, 863m)
지리 36 - 04지점,
팔랑치가 989m라는데 이건 아니지 않을까?(12:26, 1011m)
팔랑치 바로 아래까지 물줄기가 비치고
지리산 서북능선으로 올라서는 팔랑치,
13번째 지리산 태극종주를 하면서 지난 5월 6일 아침에 지나갔으니,
5달 5일 만에 다시 만나는 셈인가?
어느 순간부터 나 혼자 먼저 내빼 버렸으니,
일행들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기척조차도 없는 걸,
이곳저곳 돌아가며 눈요기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다지도 가시거리가 좋은지,
전형적인 가을 날씨 덕분에 그야말로 눈이 호강한다고나?(12:32 - 14:05, 989m)
저 멀리 천왕봉과 중봉이 들어오고
바로 앞엔 부운봉이요,
그 뒤는 토끼봉이고
끄트머리만 살짝 보이는 황매산, 왕산, 정수산
2번 타자
벽소령 - 명선봉 - 토끼봉을 잇는 지리 주릉
백두대간이 지나는 고남산
3번 타자
4번 타자 큰형님
5번 타자
6번 타자
7번 타자
8번 타자
9번 타자와 10번 타자
팔랑치와 지북 19 - 15지점 봉우리(1018m) 사이의 나무데크,
조망이 탁 트이는 곳에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내려가기로 하는데,
이런저런 반찬이 모여 산해진미(山海珍味)요 진수성찬(珍羞盛饌)을 이루고,
곁들이는 반주와 더불어 느긋하고 푸짐하게 즐기는 오찬,
지리산 산신령인들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북 19 - 15지점 봉우리(1018m)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바래봉,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와 용산리 · 인월면 중군리 · 산내면 내령리에 걸쳐 있으며,
본디는 스님들의 밥그릇인 발우(鉢盂, 바리때, 발우대, 발다라, 바리)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 하여 발산(鉢山, 바리봉)이라 불렀다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음이 변하면서 바래봉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운봉 사람들은 삿갓처럼 보인다 하여 삿갓봉이라 부르기도,
평일에다 제철이 아니라 그런지 정상부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걸?
운봉읍과 고남산
자, 이제 팔랑마을로
지리 36 - 04지점(14:10, 1011m)
지북 36 - 03지점(14:20, 863m)
팔랑골(14:32)
지리 36 - 02지점,
팔랑치 1.0km · 팔랑마을 1.0km를 가리키고(14:35, 776m)
지리 36 - 01지점(14:48, 683m)
팔랑마을 탐방로(14:53)
팔랑골 우골(14:58)
고욤나무
그 약속 그대로 다시 돌아온 지리산 억새집,
채옥표 동동주와 도토리묵무침으로 하산주를 들이키는데,
진주까지 운전을 해야 하는 난 맛만 보고 그만둘 수밖에는,
어차피 누군가는 그러해야 겠지만,
때론 남을 위한 배려 내지는 희생이 필요한 게 아니던가?(15:01 - 15:43)
지리산 억새집을 뒤로하고 내령길을 따라 내령마을로 내려가고
팔랑골 다리 팔랑마을 이정표,
내령 2km · 장항 5.8km를 가리키고(15:46)
마지막으로 돌아본 팔랑마을
지리산노블펜션,
지방도 861호선이 지나는 내령교가 들머리이고
빗기재골과 빗기재
내령마을,
지방도 861호선 지리산로를 따라 원천마을로 내려가는데,
뱀사골 3.5km · 바래봉 5.7km를 가리키고(16:17 - 16:20)
내령(內靈)마을,
우리 마을은 1595년 김령 김씨(金零 金氏)가 국란을 피하여
산간오지 지리산을 찾아들다가 횡치(橫峙, 비키재)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 1700년 경에 내령(內靈)에는 최(崔)씨가
외령(外靈)에는 하(河)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고,
1800년 경에는 팔랑(八郞)에 화전민들이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 입구 약 300m 지점에「산신바위」라는 기암이 있어
그 바위에서 산신령이 노는 곳이라 하여 영대(靈臺)라 칭하였고,
그 안쪽 마을을 안영대(내령대, 內靈臺),
바깥마을을 바깥영대(외령대, 外靈臺)라 하였다.
영대(靈臺)라 불리우는 산신암(山神岩)은 높이 200m,
둘레 15m의 기암절벽으로 산신령이 놀던 곳으로 전해오고
웅장하고 거대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신기롭게 여겨진다.
외령에서 올라가는 길 냇가 쪽 논에는
시부모의 불치병을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자,
허벅다리의 살을 베어 다려 먹여 병을 구완하였다는
김병호(金炳護)의 처 민씨비(閔氏碑)가 있다.
지리산 신선들도 감탄한 걷고 싶은 길 지리산 신선둘레길,
백두대간 끝자락에서 거대한 산으로 훨훨 일어나
능선의 길이가 무려 40km가 넘고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 있으며,
무수히 많은 비경들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 같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인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삼정산에는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먹고 자고 놀면서 수려한 비경을 즐기며
바둑을 두면서 놀다 감탄하며 돌아갔다는 그 길을 복원하여,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신선 같이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거닐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지리산 신선둘레길>로 조성하였다.
만수천
남원경찰서 순국경찰관합동묘지(16:45)
지리산 원천마을 소개
우리 마을은 해발 300미터 이상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산 뱀사골로 들어가는 마을로
산촌의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쉬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봄이 오면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사과꽃, 배꽃, 진달래꽃과 수많은 꽃들이 들과 산야를 수놓고,
여름이 오면 지리산 뱀사골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이 있고,
가을이 되면 풍성한 오곡백과와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겨울에는 눈 덮인 산야의 설경이 지나간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지리산 꿀사과, 감, 곶감, 자연산송이 등 마을의 특산물들이 다양하고
주변에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고산의 명봉들이 많고
신라 고찰인 실상사와 국악의 성지 등 주변에 관광자원이 풍부한 마을이다.
지리산 원천마을 유래
신선바위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서 온 신선, 선녀들 및
마한의 별궁인 달궁리에서 온 왕, 중신, 궁녀들이
우리 마을에서 온천을 즐겨 하였다고 전해져 오며,
만병이 치료된다는 약수가 나와서 온수동이라 불리워졌으며,
피부병 환자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었다.
이에 불편을 느낀 주민들이 약수를 메우고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었고,
마을 이름을 원수동이라 고쳐 불렀다.
그 후 장항리 출신으로 1894년 동학혁명 때
남원의 동학접주 김계남의 동학군을 운봉 방아제와 관음치 전투에서 대피시킨
주서 박봉양의 제안으로 원천리라 부르게 되었다.
자료사진
당산
음력 정원 초사흩날 주민들이 당산에 모두 모여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일년 내내 안녕과 오곡백과의 풍년을 빌었으며,
큰샘, 송대, 작은샘 등 마을 주요 장소에 무탈하도록 굿을 친 후
마을회관에서 당산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나면 마을 당산제 행사는 끝이 난다.
우리 마을 당산제 풍습 중 특이한 것은
돼지머리 아래, 위턱을 분리하여 각각 창호지에 싸서
위턱은 당산 위쪽 바위 밑에, 아래턱은 당산 아래쪽 바위 밑에 넣는다.
당산제는 주민 전체가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라 하겠다.
외톨 솔백이
덕두봉을 분기점으로 발원하여 수송대 골짝, 저승바위, 큰평전,
작은평전, 해를 관망할 수 있는 해 관망 봉우리를 거쳐
많은 능선과 계곡을 일기일복(一起一伏), 좌절우곡(左折右曲)
굽이쳐 내려온 현재의 장소에 아름다운 모습과 웅장하고 기묘한 자태를 나타내면서
홀로 장대히 우뚝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외톨 솔백이라 부른다.
약 400여 년이 되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천년 묵은 이무기가 선녀들이 마을 온천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다 옥황상제에게 들켜서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하여 배배꼬인 형상을 하고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예전에는 바래봉까지 등산로가 있었다.
돌담
우리 마을은 해발 300미터 이상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산촌마을로서 땅을 파 보면 50% 이상이 돌이며,
그 돌을 가지고 담을 만들어 왔었다.
우리 마을의 돌담은 평평하게 눕혀서 쌓은 전통 방식과
산사태 방지를 위한 사방을 쌓을 때 이용하는 방식이 혼재되어 있다.
전통 방식으로 돌담을 쌓았다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 방식인 사방 돌담 형식이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마을 돌담은 높이가 낮아서 아래윗집 및 마주보는
집의 이웃끼리 담소를 나누던 추억이 있는 장소이다.
만 수 천
지리산 뱀사골과 노고단에서 발원한 깨끗한 물이
달궁, 와운 등을 거쳐 우리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
폭이 50m 이상 되는 큰 하천으로,
앞쪽 들의 온갖 농산물의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에는 남녀노소 멱을 감고 휴식을 취하며,
특히 마을 어린이들이 멱을 감다가 배가 고프면
감자를 서리하여 감자 삼굿을 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일급수에만 사는 쏘가리, 쉬리, 꺽지 등 물고기가 살고 있으며,
여름날 더위를 피해 휴식이 필요하신 분들에게는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7시간 42분 만에 다시 돌아온 원천마을주차장,
지리산 신선둘레길 1코스와 연계하여 팔랑마을과 팔랑치로 올라,
되돌아온 팔랑마을에서 내령마을로 내려서서 원천마을로 복귀한 셈인데,
82살이나 되는 큰형님이 맨발로 설치는가 하면,
사모님도 두 분이나 있어 걱정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애당초 마음먹은 그대로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으며,
화창한 날씨와 함께 무르익은 가을을 만끽한 하루해였다고나,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