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안한수내에서 오르내린 왕시루봉능선과 봉애산

큰집사람 2019. 5. 26. 21:06

* 날    짜 : 2019년 5월 26일(일요일)

* 날    씨 : 구름 조금

* 산 행 지 : 안한수내 - 나무골 - 선교사 유적지 - 1213.1m봉 - 봉애산 - 안한수내

* 산행시간 : 8시간 45분(운행시간 5시간 22분 + 휴식시간 3시간 23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6명(오로라, 솜다리, 고암, 큰골, 구름, 선함)






* 산행일정

09:05          송정내한마을(안한수내)주차장

09:37 - 09:54  휴식

10:18          선녀탕(?)

10:45 - 10:56  휴식

11:00 - 11:05  하부 폭포지대

11:12 - 11:17  통천문(나무골)

11:20 - 11:23  상부 폭포지대

11:32 - 11:35  상부 폭포지대 위

11:44 - 13:05  절터

13:36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38 - 4),

14:10 - 14:20  왕시루봉능선 공터 전망대

14:22 - 14:27  왕의 강 전망대  

14:32 - 14:53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

15:07 - 15:12  1213.1m봉(하동 302)

15:15 - 15:22  사자바위

15:33 - 15:38  통천문(봉애산능선)

16:12          봉애산능선 - 산지밭골 지능선 갈림길

16:48 - 16:53  봉애산(611.7m)

17:01 - 17:21  안한수내 갈림길 안부

17:50          송정내한마을(안한수내)주차장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내한마을(안한수내)주차장,

안한수내 우골인 나무골(절터골)로 해서 왕시루봉능선으로 올라,

선교사 유적지와 왕시루봉을 둘러보고 봉애산능선을 따라 돌아오기로,

 안한수내는 산골마을치곤 꽤 큰 편으로,

지난 2월 24일 산지밭골을 따라 내려선 곳인데,

3달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왕시루봉,

농익은 봄을 만끽할 수 있을까?(09:05)



송정마을,

한수천(한수내)의 안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외한),

             새로 생긴 동네라 하여 새뜸(신촌),

소정리(원송) 등으로 칭하다 이를 통합하여 당초 때는 내한리라 불렀는데,

한수천 근처에 큰 나무 정자가 있어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송정리로 개칭하였다.


내한교



송계정(松溪亭)





















합수부로 흘러드는 산지밭골,

안한수내 주민들은 안한수내 좌골을 옥박골이라 하고,

우골인 나무골은 상류부에 절터가 있어 절골 또는 절터골이라 부른다는데,

안한수골 좌우골과 산지밭골이 만나 한수천을 이뤄 섬진강으로 간다던가?





별다른 볼거리도 없다는 계곡 아닌,

그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고











모노레일(monorail),

밤나무단지에서 밤을 실어 나르는 용도인 듯?


농경지 흔적이 나타나고









첫 번째로 계곡을 건너 밤나무단지로 접어들자,

집터 또는 농경지 흔적인지 축대가 더러 보이고(09:20) 














밤나무단지를 벗어나자마자,

두 번째로 계곡을 건너고(09:28)





멧돼지 소행인 듯?






계곡으로 들어서는 이쯤에서 말아주타임을 갖지 않을 수가,

아까부터 말아먹고 가자는 걸 겨우 버티지 않았던가?(09:37 - 09:54)




































별스레 볼거리도 없는 투박한 골짝이 이어지고









나무골에선 제일가는 물웅덩이,

선녀탕이라 해도 좋을 듯?(10:18)


















선녀탕(?)과 폭포 위 널따란 암반지대,

왼쪽에서 지계곡이 흘러들고(10:25)


지계곡






이건 무슨 뜻일까?












물 본 김에 좀 쉬었다 가기로,

서두른다고 꼭 빨리 가는 건 아니라나?(10:45 - 10:56)


선함,

벌써부터 이래서야?ㅎㅎ








하부 폭포지대,

통천문을 사이에 두고 하부와 상부에 폭포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하부는 오를 수 있는데 비해 상부는 직등이 불가능하여 우회할 수밖에는,

하부에서 상부폭포까지가 나무골(절골, 절터골)의 하이라이트라고나?(11:00 - 11:05)












































통천문(通天門),

거대한 바위가 계곡을 가로지르고,

물길은 그 아래로 흐르는 특이한 형태인데,

어쩌면 천국의 문이라고나 할까?(11:12 - 11:17)




















상부 폭포지대,

통천문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상부 폭포지대에 눈이 번쩍 뜨이지만,

곧장 오를 순 없어 밧줄을 잡고 왼쪽으로 올라가고(11:20 - 11: 23)






















상부 폭포지대 위,

잠깐 머물렀다 점심을 먹을 절터로 떠나는데,

서두르지 않아도 10분 남짓이면 닿지 않을까?(11:32 - 11:35)


















축대가 잘 남아 있는 절터,

계곡 바로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계곡 오른쪽으론 텃밭의 흔적이 보이기도

옛날엔 지금보다 사람도 많지 않았을 텐데,

굳이 왜 이 높은 곳에다가 절터를 잡았을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데,

다 그럴 만한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절터 때문에 주민들이 절골 또는 절터골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구름표 삼겹살에다 온갖 야채와 약초가 어우러진 푸짐한 오찬(午餐),

반주(飯酒)까지 곁들이는데 무엇이 부족하랴?

절터 뒤쪽의 희미한 길을 따르면,

전망대(비박터)를 지나 왕시루봉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

또는 안한수내 좌골(옥박골)로도 이어갈 수 있다지만,

우린 우골인 나무골(절골, 절터골)을 끝까지 치오르기로 하고(11:44 - 13:05)





빨치산(파르티잔, partisan)들의 참호 흔적이라던가?

다시는 이 땅에 그와 같은 아픔은 없었으면








군데군데 석축이 보이고



샘이었던 듯?






절터 이후론 마른 계곡이나 다를 바 없고





















어쩌다 물줄기가 보이기도 하고






관중이라던가?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38 - 4),

오른쪽으론 봉애산능선 통천문으로 이어지는 듯?(13:36)


부서진 안내판, 

이 지역은 자연보존지구로서 임산물(고로쇠 수액, 산나물 등) 채취 행위가 금지되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서서히 골짝을 벗어나면서 왼쪽 지능선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고(13:48)



자그마한 전망대,

왕의 강이란 섬진강이 들어오고(14:00)








섬진강 뒤엔 하동 금오산이 떡하니 버티고



지능선으로 올라서서 희미한 흔적을 좇아 오르다,

좌우로 이어지는 허리길을 만나 왼쪽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왕시루봉능선 주등산로로 빠져나가는데,

선교사 유적지 갈림길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명품 소나무 조금 위인 듯,

 왕의 강 전망대부터 들렀다 선교사 유적지로 내려가기로 하고(14:08)


자료사진(선교사 유적지 갈림길의 명품 소나무)






공터 전망대,

뿔뿔이 흩어졌던 일행들이 다시 한덩어리가 되는데,

숨을 고르고 눈요기도 하면서 쉬었다 가기로, 

이제부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나?(14:10 - 14:20)


장쾌하게 펼쳐지는 지리 주릉



사자바위,

이따가 만나게 될 거고


좀 당기고



시들어 버린 철쭉과 섬진강






보다 가까이로






























왕의 강 전망대 사거리,

왕의 강 전망대와 선교사 유적지로 나뉘는 곳으로,

가까운 왕의 강 전망대부터 들렀다 선교사 유적지로 내려가기로,

왕시루봉으로 가자면 선교사 유적지에서 다시 올라와야 하고


왕의 강 전망대,

섬진강 일대가 뿌옇게 보여 아쉽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만 보고 또 담으면 되는 게 아닌가?(14:22 - 14:27)














사자바위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

1920년 이질이나 말라리아 등으로 선교사 자녀 9명이 사망하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여름 기온이 서늘한 노고단을 적격지로 선정하여

미국 선교사들이 일제와 협의를 통해 노고단에 휴양시설을 마련한 것이 1925년,

하지만 노고단휴양소는 1940년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강제로 출국되면서

적산처리되어 1950년대 말까지 천막 휴양소를 유지하다가 

1962년 토지 소유주인 서울대의 허가를 얻어 왕시루봉으로 옮겼던 것, 

이후 10년 가까이 선교사 휴양기관으로 기능했으나,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외국인 선교사 수가 격감하면서 이용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지금은 인요한(印耀漢) 박사(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가 관리하고 있는 상태라는데,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각국의 고유 건축양식을 본떠 지은 목조주택과 토담집 12채가 있으며,

2013126일 시민들이 꼽은 <꼭 지켜야 할 자연· 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지난 2월 24일에 이어 3달 만에 다시 만나는 셈인가?(14:32 - 14:53)












































왕의 강 전망대 사거리,

이제 왕시루봉으로 올라가고(14:58)


묵은 헬기장,

이젠 뭐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는데,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던가?(15:03)


붉은병꽃



1213.1m봉,

헬기장 바로 위 왕시루봉 표지석에 1212.0m로 되어 있는 봉우리로,

정상부는 돌보는 이 없는 묵은 무덤이 차지하고 있으며,

 왕시루봉능선에서 봉애산능선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곳이기도,

볼품없는 왕시루봉 정상은 들르지 않고 봉애산능선으로 내려가기로,

정상석이라도 있었다면 오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갔을 텐데,

 애써 세운 걸 왜 치워 버렸을까?(15:07 - 15:12)


1213.1m봉 삼각점(하동 302)



왕시루봉 정상,

삼각점이 자리 잡은 1213.1m봉과는 400m 남짓 떨어져 있으며,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루뭉술하게 생겨 큰 시루를 엎어 놓은 것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2013년 5월 5일 대구마루금산악회에서 스테인리스(stainless steel)로 정상을 표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없애버렸는 걸,

2014년 3월 2일 왕시루봉을 산행하면서 선교사 유적지 창고에 처박혀 있는 걸 봤는데,

 비록 왕시루봉 일대가 비법정탐방로이긴 하지만,

애써 세운 걸 굳이 그럴 것까지야 있었을까?


이게 뭡니까?



사자바위,

봉애산능선에선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한데,

눈요기를 하면서 머무를 수밖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지만(15:15 - 15:22)


반야봉과 천왕봉을 잇는 지리 주릉



반야봉,

그 앞에는 불무장등능선이 펼쳐지고


























통천문,

봉애산능선에선 최고의 볼거리라고나?(15:33 - 15:38)

























봉애산능선에서 산지밭골로 흘러내린 지능선이 나뉘는데,

봉애산능선과 봉애산으로 가자면 산허리를 돌아가야 하건만,

지난 2월 24일 무심코 지능선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봉애산 아닌 안한수내로 갈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있는 곳으로,

그때 값비싼(?) 공부를 해서 그런지 헷갈리지 않더라나?(16:12)


안부 삼거리,

볼거리라곤 없이 꽤 지루하게 이어지는 봉애산능선,

봉애산 아래 안부에 이르자 삼거리가 되는데,

산줄기를 따라 곧장 치오르는 희미한 길은 봉애산을 경유하고,

오른쪽으로 난 보다 뚜렷한 길은 봉애산을 우회하며 돌아가는데,

 공부를 하지 않고 가면 봉애산은 그냥 지나치기 쉬울 거 같더란,

셋(솜다리, 고암, 선함)은 봉애산으로 올라가고,

셋(오로라, 큰골, 구름)은 볼 것도 없다면서 돌아가고(16:43)


봉애산(峰愛山) 정상부,

정상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덤과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나완 첫 번째 만남인 셈인가?(16:48 - 16:53)


왕시루봉



광양 백운산 일대









봉애산에서 4분쯤 내려갔을까,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목아재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이르고,(16:57)

또 4분과 5분 남짓 더 간 안부와 봉우리에서 각각 안한수내 갈림길이 열리지만,

그전엔 <안한수내(내한)>이란 플라스틱 안내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아무런 표시도 없는데다 낙엽이 덮은 길은 보이지도 않기에,

여긴가 저긴가 긴가민가하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다,

겨우 안부에서 희미한 흔적을 좇아 안한수내로 내려가는데,(17:01 - 17:21)

한동안 기울기가 장난 아닌 미끄럽고 희미한 길이다 점차 순해지는가 싶더니,

<이리로>란 플라스틱 길잡이가 우릴 밤나무단지로 안내하고(17:32)








안한수내



송정여성경로당 바로 위 골목으로 산줄기에서 빠져나가,

 한수천에 걸친 내한교를 건너 송정내한마을주차장에서 걸음을 멈추는데,

 놀멍쉬멍 나아가다 보니 산행거리에 비해 꽤 많은 시간이 걸린 듯,

하기야 어차피 그러려고 지리산 자락으로 들긴 했지만,

마치 벌에 쏘이기라도 한 것처럼 내달려 봤자,

그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입요기와 더불어 눈요기나 하면서 슬슬 가다 보면,

결국은 시간이 데려다 준다고 하지 않던가?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