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정동우회

제15차 지리산 둘레길(송정마을 - 오미마을)

큰집사람 2018. 12. 13. 10:27


* 날      짜 : 2018년 12월 12일(수요일)

* 날      씨 : 맑음

* 산 행  지 : 송정마을 - 오미마을   

* 산행거리 : 10.4km  

* 산행시간 : 4시간 37분(운행시간 3시간 36분 + 휴식시간 1시간 01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8명(박만길, 황의봉, 송문영, 한윤갑, 이영근, 유달수, 이완희, 조광래)






* 산행일정

10:05          송정마을

10:31          의승재

11:00 - 11:10  휴식

11:14          송정계곡

11:16          석주관 갈림길

11:40          원두막 쉼터 

11:44          원송계곡

11:56          육각정 쉼터 

12:18          계곡

12:20 - 13:11  점심

13:25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13:39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위쪽 정자

13:50          생활체육시설 

14:00          솔까끔마을 

14:14          문수저수지

14:29          내죽마을 

14:37          하죽마을

14:42          오미마을





* 송정마을  – 1.1km - 의승재 – 0.7km -  송정계곡

1.4km - 원송계곡 – 2.7km -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 2.8km -

문수저수지 - 1.0km - 내죽마을 - 0.4km - 하죽마을 - 0.3km - 오미마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주차장,

국도 19호선 한수교와 송정마을을 잇는 2차선 포장도로 토지송정길이 지나며,

제15차이자 제16구간 지리산 둘레길은 오미마을까지 이어가기로,

초저녁까지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던 어제와는 달리,

 구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날씨라 마음이 가벼운데,

어느새 지리산 둘레길도 막바지로 치닫는 듯,

가탄 10.6km · 오미 10.4km를 가리키고(10:05)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과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을 잇는 10.4km의 지리산 둘레길.
구례군 토지면 전경과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농로, 임도, 숲길의 다채로운 길들로 이어져 있다.

숲의 모습 또한 다채롭다.

조림현상과 산불로 깊게 데이고 다친 지리산의 상처를 만난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상처는 더욱 아프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운조루를 향해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겹다.

섬진강 너머 오미리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봉산이 만드는 풍광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새로이 손질한 듯하고












곳곳에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상처가 남아 있는데,

2011년 1월 30일 발생한 산불로 임야 25ha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며,

송정 0.7km · 오미 9.7km를 가리키고(10:31)

















의승재,

정유재란 때 구례 사람들이 의병을 모아서 

왜군을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의승재라 부른다고 하며,

송정마을에서 의승재까진 쭉 오르막길이었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고,

이제부턴 한동안 쭉 내리막길이 아니던가?

송정 1.1km · 오미 9.3km를 가리키고(10:31)








울창한 편백나무숲이 이어지면서 기분까지 상쾌하게 하는 걸 















휴식,

산청한방촌동동주와 부침개로 목을 축이고(11:00 - 11:10)





내 나이가 어때서?

이제 겨우 81살인데








송정계곡,

석주곡수는 토지면 송정리 석주곡에서 발원하여 칠의사를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가며,
정유재란 때 구례 의병이 왜군과 싸워 피아(彼我)의 군대가 많이 전사하여

시산시해(屍山屍海)를 이루어 내가 피로 붉게 물들어서

칠의사 앞을 피내(血川, 혈천)라고 부르며,

송정 1.8km · 오미 8.6km이고(11:14)


석주관(石柱關) 갈림길,

송정계곡을 따라 0.9km 내려가면 석주관칠의사묘가 있으며,

칠의사 및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옥쇄전투(玉碎戰鬪)를 펼친 피의 전장(戰場)으로,

이제부턴 남도이순신길 백의종군로와 함께하게 되는데,

 송정 1.9km · 오미 8.5km 및 석주관 0.9km · 지리산둘레길안내센터13.7km를 가리키고(11:16)























섬진강 너머로 보이는 계족산(鷄足山)






송정 2.9km · 오미 7.5km를 가리키고(11:38) 






원두막 쉼터,

기둥 하나로 세워진 원두막과 통나무 의자가 놓여 있으며,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 내려가고(11:40)

















원송계곡,

송정 3.2km · 오미 7.2km를 가리키고(11:44)
























돌아보기도 하면서















송정 3.6km · 오미 6.8km를 가리키고(11:53)









육각정 쉼터,

송정 3.7km · 오미 6.7km를 가리키고(11:56)











함께하던 임도에서 벗어나 산길로,

송정 4.0km · 오미 6.4km를 가리키고(12:01)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는 듯,

송정 4.3km · 오미 6.1km를 가리키고(12:09)





남도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관직에서 파직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을 모아 명량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을

<조선수군 재건로>로 명명하여 역사스토리 테마길로 조성함








구례읍이 보이고



사성암을 품은 오산과 섬진강이 한눈에 쏙 들어오고



고사리 재배단지





















구례동중학교






임도에서 산길로,

송정 4.7km · 오미 5.8km(?)를 가리키고(12:17)








계곡,

아치형 나무다리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12:18)

















감나무와 배를 재배하는 과수원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양지바른 곳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때도 되었기에(12:20 - 13:11)



































뒤돌아보고



























2차선 포장도로 반곡길을 만나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쪽으로 올라가는데,

송정 5.6km · 오미 4.8km를 가리키고(13:22)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에 위치한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19억 4천여만원을 들여 연면적 1,420㎡ 규모로 6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건립되었으며,

2008년 12월 30일 개원식을 가졌다 하고(13:25)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을 지나자마자 2차선 포장도로는 끝나면서,

그 대신에 콘크리트 포장임도가 이어받는데,

송정 5.9km · 오미 4.5km를 가리키고




















파도저수지의 물이 내려오는 듯


















송정 6.4km · 오미 4.0km를 가리키고(13:37)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위쪽 정자,

손인필 비각 10.4km · 석주관 4.9km를 가리키고(13:39) 





토지면 파도리 일대와 오산이 한눈에 쏙


















돌아보고









생활체육시설,

본 시설들은 우리 구례군이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 구례군 예산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체육진흥기금으로 설치한 생활체육시설입니다.(13:50)








전원주택단지



산신당 모노레일









솔까끔마을이 보이고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솔까끔마을,

송정 7.9km · 오미 2.5km를 가리키고(14:00)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 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朱成允) 약력

                                             1939. 11. 13  일본 오사카 출생(1992년 별세)

                                            호는 초동(草洞)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에 <내부 : 1962> <눈길 위에서 : 1963)

                                            <황혼녘 : 1964>이 천료되어 등단

                                            신년대, 한국시, 상황지 동인으로 활약

                                            시집  <생의 악단, 1958, 3인 시집>

                                                    <독설, 1979, 대표 시집>

                                                    <먼산에 진달래, 1981>  

                                                    <조선의 빛, 1965>


문수저수지가 보이고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일대와 오산이 한눈에 쏙이고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월령봉능선이 펼쳐지고









문수저수지,

송정 8.7km · 오미 1.7km를 가리키고(14:14) 





문수저수지 표지석,

1995년 12월 31일 준공되었으며,

둑높이기공사는 2013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하고



































내죽마을로 들어서자,

송정 9.4km · 오미 1.0km를 가리키고(14:24) 








내죽교,

송정 9.6km · 오미 0.8km를 가리키고(14:27)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내죽마을회관,

 송정 9.7km · 오미 0.7km를 가리키고(14:29) 














내죽마을 유래,

약 500년 전인 1500년경 진주하씨(晋州河氏), 청도김씨(淸道金氏),

경주이씨(慶州李氏)에 의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문화유씨(文化柳氏), 진주정씨(晋州鄭氏) 등이 입촌하면서 큰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중심의 당산나무를 보아도 마을의 형성 시기가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가 큰 마을에 울창하여 대를 상징한 대(竹, 죽)자와

문수천의 시냇물을 따서 (내)인 대내라고 불렀다는 설과

안쪽에 있다하여 내죽(內竹)이라 불렀다 한다.








내죽마을 표지석,

송정 9.9km · 오미 0.5km를 가리키고(14:33) 











하죽마을버스정류소,

송정 10.0km · 오미 0.4km를 가리키고(14:35) 


하죽마을

(선비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하죽(下竹) 마을),

조선 영조 중엽(1754년) 경주 이씨 이기명(李基鳴)이 길지(吉地)를 찾아

조선 팔도를 헤매다 아들 삼형제를 거느리고 정착하였다.

그 후 택리지(擇里志)의 가거지(可居地) 6처(處) 중

가장 살만한 곳으로 숨겨져 있던 땅 구례가 소개되면서

각지에서 양택명당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해 와 촌락이 형성되었다

대나무가 온 마을에  울창하여 <대내>라 하였고,

하죽은 <아랫마을>, <아랫대내>, <바깥대내>로 오랫동안 불리워 왔다.





하죽마을,

송정 10.1km · 오미 0.3km를 가리키고(14:37) 











보호수로 지정된 서어나무









오미마을 옛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

송정마을 9.7km · 둘레길안내센터 5.4km를 가리키는데,

지금의 거리와는 맞지 않은 걸 알 수가?


남도이순신길 백의종군로 이정표,

석주관 7.8km · 지리산둘레길안내센터 6.8km를 가리키고

















운조루


















구례 운조루 고택(求禮 雲鳥樓 古宅),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새운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구조의 집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집터는 남한 3대 길지(지덕이 있는 좋은 집터)의 하나로

금환락지(金環落地)의 형세와 국면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집은 一자형  하인들의 방(행랑채)과 T자형 사랑채,

ㄷ자형의 안채가 있고 대문안의 행랑채가 서로 연이어져 있고,

안채의 뒷면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구조 양식은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는 나무인<도리>와,

그 도리를 받치고 있는 모진 나무인 <장여>로만 된 구조 (민도리집)로서

지붕은 사랑채, 안채가 연이어져 있으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全羅求禮五美洞家圖(전라구례오미동가도)












왕시루봉이 보이고









오미정(五美亭)












구례군 운조루 유물전시관






운조루 유물전시관은 조선후기부터 300여년 간 구례 오미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문화류씨가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전시된 유물은 운조루에서 대대로 소장해온 것이다.

운조루는 조선후기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 1726 - 1797)가

1776년(영조 52)에 세운 99칸(현존 73칸)의 가옥으로,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운조루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 당호(堂號)로써,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어 쌀을 퍼 갈 수 있다는 운조루의 쌀뒤주)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가옥 운조루(雲鳥樓)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운조루 사람들은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 얼굴을 대하지 않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랑채와 안채 중간지점에 통나무 속을 비워 만든 뒤주를 놓고

쌀을 채운 후 마개에다가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도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뒤주에는 쌀이 약 2가마니 반이 들어갔는데

운조루 1년 소출의 약 20%인 36가마니를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베풀기 위한 용도로 썼습니다.





오미마을,

영조 52년(1776년)  문화류씨  류이주(柳爾胄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운조루(雲鳥樓)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전에는  오동이라 불렸다

오동은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 하여

오미리(五美里)라 불리고 있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

금환락지(金環落地) 명당(明堂)이라는 운조루(雲鳥樓)를 품고 있으며,

제15차이자 제16구간 지리산 둘레길은 여기서 이제 그만,

좋은 날씨와 함께한 복 받은 하루해가 아니었을까?

제16차이자 제17구간 지리산 둘레길은 내년 1월 9일(수요일)에 있을 예정이요,

송정 10.4km · 방광 12.3km · 난동 18.9km를 가리키고(14:42)


진주시 신안동 한솔보리밥에서 송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