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 지리산 7암자 순례
* 날 짜 : 2018년 5월 22일(화요일)
* 날 씨 : 구름 많음
* 산 행 지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 산행시간 : 7시간 30분(운행시간 5시간 07분 + 휴식시간 2시간 23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36명(진주비경마운틴클럽 회원들과)
* 산행일정
09:15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 백두대간 벽소령 표지석
10:02 벽소령탐방로 도솔암 들머리
10:40 - 10:50 도솔암(1165m)
11:05 - 11:15 휴식
11:25 도솔암주차장
11:30 - 11:40 영원사(920m)
12:01 빗기재
12:27 삼정산 갈림길
12:28 - 13:22 상무주암(1162m)
13:46 - 14:00 문수암(1060m)
14:24 - 14:48 삼불사(990m)
15:11 무덤 전망대(진주강씨 은렬공파)
15:51 - 15:55 약수암(560m)
16:22 - 16:39 실상사(330m)
16:45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백일마을(해탈교)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 백두대간 벽소령 표지석,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지리산 7암자 순례를 하기로,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무슨 순례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처님께 귀의하겠다는데야,
절대로 복을 받겠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가듯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간다고나 할까?(09:15)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보듬는 넉넉함이 살아 숨쉬고 있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치닫는 동안
마치 나무가 뿌리와 가지, 줄기를 펼쳐 놓은 것과 같이
한 개의 정간과 13개의 정맥을 펼쳐 놓았다.
북쪽에 고도 2,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품에 안고 있으며,
남쪽으로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함백산, 가리왕산, 태백산, 오대산,
속리산 등 1,5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넉넉히 안고 흐른다.
백두대간의 모습은 곧잘 호랑이의 등뼈로 비유되었다.
한반도의 모습이 중국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으로 비유될 때면
백두대간은 호랑이의 등줄기로서 그 위용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백두대간은 영원히 보존돼야 하리라.
백두대간 골짜기마다 숲이 무성해지고,
다양한 삶결과 역사가 피어나고,
야생동물의 아담한 보금자리가 자리 잡아야 하리라.
이에 백두가 내달리는 천령의 산마루에 표지석을 세운다.
2009.9.
함양군수
백두대간 시발지인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산으로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살던 삼신산이라 불린다.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왔다고 하여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불리며,
방장산으로도 불렀다.
벽소령은 지리산 십경(十景) 중에 하나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아서 더욱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푸를 벽(碧), 밤 소(宵)를 써서 벽소령이라 불리웠으며,
실학자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서 벽소운동(벽소령)은 최고의 경승지라고 기록한 바 있다.
벽소령은 예부터 함양 등의 내륙에서 생산되는 곡식, 곶감, 목기 등과
하동, 남해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 생선 등을 지고 이동하는 요충로였다.
2009.9.
함양군수
벽소령대피소와 형제봉 부근의 지리 주릉이 들어오고
음정마을 유래,
음정마을은 양정, 하정마을과 합하여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속하며,
또한 음지에 위치한 집단촌으로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음지정제이라고도 한다.
마을 전설에 의하면 음지말 남쪽 골짜기를 비린내골,
옛날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나무꾼과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남편과 아들이 하도 원통하여 눈물을 흘려서 비린내골이 만들어 졌으며,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벽소령 정상에는 부자(父子)바위가 서 있다.
비린내골에는 현재 산림청에서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자연휴양림을 지어,
자연림과 맑은 옥류천은 춘하추동 유명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마을 뒤쪽 골짜기에 위치한 영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지었다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 한다.
불두화라던가?
음정마을회관 위 이정표,
벽소령 8.4km · 벽소령대피소 6.7km를 가리키는데,
벽소령 작전도로와 지름길로 가는 차이가 아닐까 하는,
또 지리산자연휴양림 1.0km라는데,
그리로 가면 안 되고(09:22)
삼정산이 보이고
벽소령 작전도로는 직진이요,
산줄기로 붙는 왼쪽이 지름길이고(09:26)
지름길로 해서 작전도로로 올라서자,
벽소령대피소 5.2km · 음정마을 1.4km를 가리키고(09:39)
삼정산 일대이고
벽소령 탐방로 차량 차단지점(09:41)
지리 13 - 03지점,
벽소령대피소 5.5km·음정 1.2km를 가리키고(09:43, 714m)
지리 13 - 04지점,
벽소령대피소 5.1km·음정 1.6km를 가리키고(09:50, 764m)
벽소령대피소 4.9km·음정 1.8km를 가리키고(09:53)
지리 13 - 05지점,
벽소령대피소 4.7km·음정 2.0km를 가리키고(09:58, 813m)
도솔암 갈림길,
도솔암 일원은 공원자원 보호 및 탐방객 안전을 위하여 연중 출입통제라지만,
오늘이야 부처님 오신 날인데 하루쯤은 개방하지 않았을까?(10:02)
나도수정초라던가?
쭉 가파른 길이 이어지면서 골탕을 먹이는가 싶더니,
꽤 넓은 공터가 있는 지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숨을 고르게 하고(10:25)
관중이라던가?
첫 번째 절인 도솔암,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처입니다.
출입을 삼가하오며 불편하시더라도 등산로을 이용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다고 안 들어갈 수야?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던가?( 10:40 - 10:50. 1165m)
부처님 오신 날에도 아랑곳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분들 때문에,
10분(11:05 - 11:15)이나 실랑이를 벌이다 겨우 영원사 진입도로로 빠져나오자,
도솔암주차장(?)엔 승용차가 3대 보이는 걸로 봐선,
이들도 도솔암으로 올라가지 않았을까?(11:25)
두 번째 절인 영원사,
7암자 가운데선 실상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절이 아니던가?(11:30 - 11:40, 920m)
지리산 영원사,
지리산은 예로부터 사대 명산(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에서 그 첫 번째로,
영원사는 이 명산 한복판에 천이백 년 전
신라 제사십팔대 경문왕 때 영원조사께서 창건한 고찰이다.
이곳은 부용, 서산, 사명, 청매조사와 화엄보살인 설파노사 등 고승들이 정진하시고
강종을 울려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던 법보사찰이기도 하다.
남쪽으로는 청매조사께서 수십년 수도하신 도솔내원궁 같은 도솔암이 있고,
북쪽에는 절승선경인 상무주암이 있는데,
이 상무주암은 보조국사께서 갑천에서 제일이라고 예찬하셨고,
구곡 각운선사는 염송설화를 짓다가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명찰이다.
그 가운데에 자리한 명성고찰 영원사는 여순반란과 육이오동란 때
공비토벌작전 수행 중 아군에 의해 방화 소실되어 쑥대밭에 빈터만 남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상무주암에서 십여 년 용맹정진하시던 대일스님께서
어느 날 조사님의 선몽의 말씀을 듣고 큰 원을 세워 초막을 짓기 시작
사십여 년을 단신으로 불사를 하시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영원사는 특히 일백구 분의 조사님들의 안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절로서,
매년 구월 십팔일 지장재일에는 일백구 분의 영재를 봉행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백초월스님과 영원사,
영원사 출신인 백초월(白初月)스님은
불교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백초월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서 1878년에 출생하였는데,
14세의 나이로 이곳 영원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의 강원 · 선원에서 수학을 하였으며,
지리산 일대의 의병활동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강백)이었고,
범어사와 해인사의 강사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립의 불교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강백이었다.
1911년 이곳 영원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원사 주지로 재건불사(1914 - 1917)를 주관하였다.
그 이후에는 법주사 청주포교당(용화사)에서 포교에 전념하였다.
이때 3 ·1운동(1919)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
진관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불교계 민족대표였던 백용성과 한용운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자,
백초월은 중앙학림에 불교 독립운동의 본부(민단본부)를 두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하였다.
천은사, 화엄사,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해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 제공하였고,
불교청년들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에 보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백초월은 출옥한 이후,
불교사상에 근거한 일심교(一心敎)라는 항일 결사단체를 만들었고,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에서 강사를 하면서 스님들에게 민족의식을 가르쳤다.
1939년 10월,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낙서를 쓴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2년 6개월 동안 수감되었는데,
출옥한 후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다 청주감옥에 수감되었고,
안타깝게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였다.
백초월은 입적하는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참다운 보살, 큰스님이었다.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 칠성각 보수를 하다
백초월이 사용한 태극기와 독립자료가 발견되면서,
백초월의 독립운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이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진관사에서 3개 자치단체인 고성군(옥천사, 출생),
함양군(영원사, 출가), 은평구(진관사, 독립운동)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백초월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복주머니란(개불알란)
영원사(靈源寺),
이 사찰은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영원사(靈源寺)라 하며,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하고 있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이다.
한때 내리지(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로서 절의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이 9채에 100칸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생생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건물 전체가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새로 부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사찰 경내지에는 영암담탑, 설파담탑, 중봉담탑, 청계담탑, 벽허담탑, 청매탑 등
이름 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군이 현존하고 있다.
염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 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팔단사리 3층석탑이 방광(放光)했다는 이야기는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 주고 있다.
영원사 이정표,
약수암 5.7km · 상무주암 1.8km를 가리키고
전나무,
어찌나 큰지
지리 30 - 01지점,
영원사 0.5km · 약수암 5.2km를 가리키고(11:53, 1019m)
빗기재,
삼정산능선이라고도 부르는 중북부능선과 만나는 곳으로,
영원봉과 별바위등을 지나는 지리 주릉 쪽으론 가지 말라는데,
영원사 0.8km · 약수암 4.9km · 상무주암 1.0km를 가리키고(12:01)
지리 30 - 02지점,
영원사 1.0km · 약수암 4.7km를 가리키고(12:09, 1105m)
삼정산 정상은 들르지 않고 곧장 상무주암으로,
굳이 가 봤자 별스레 볼거리도 없는데,
그마저 가지 말라는 걸 어쩌랴?(12:27)
세 번째 절인 상무주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 - 1210)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곳으로,
상무주암 편액에는 경봉(鏡峰) 스님의 시호(詩號)인 원광(圓光)이란 낙관이 있는데,
처음으로 변소(便所)를 해우소(解憂所)로 표현한 이가 경봉 스님(1892 - 1982)이라고,
지난해 12월 31일에 이어 현기(79) 스님을 또다시 뵙는가 하면,
해마다 봉사를 하고 있는 앵경 보살과 신난다 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실상사에서 봉사를 할 거라는 큰골까지 상무주암에서 만날 줄이야?
곧 현지인과 바람소리도 올라올 거라지만,
곡차를 곁들인 비빔밥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선 떠날 수밖에는,
나 홀로 온 것도 아니고 일행이 많은데,
영원사 1.8km · 약수암 3.9km · 문수암 0.8km를 가리키고(12:28 - 13:22, 1162m)
반야봉
중북부능선과 형제봉 일대
중봉과 천왕봉
상무주암을 뒤로하고 문수암으로
중봉과 천왕봉을 중심으로
지리 30 - 04지점,
영원사 2.0km · 약수암 3.7km를 가리키고(13:26, 1176m)
지리 30 - 05지점,
영원사 2.5km · 약수암 3.2km를 가리키고(13:45, 1064m)
네 번째 절인 문수암,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지낸 혜암(惠菴, 1920 - 2001) 스님이 1965년 창건한 암자로,
1984년부터 도봉(道峰, 78) 스님이 오랫동안 수행하고 있는데,
곧 노스님들이 기거하는 해인사 부속 암자로 내려갈 거라며,
영원사 2.6km · 상무주암 0.8km · 약수암 3.1km · 삼불사 0.8km를 가리키고((13:46 - 14:00, 1060m)
백운산과 금대산,
그 뒤엔 삼봉산과 법화산이고
함양 독바위 뒤엔 왕산이 들어오고
천인굴(千人屈),
임진왜란 때 천 명이나 피란(避亂)을 했다는데?
지리 30 - 06지점,
영원사 3.0km · 약수암 2.7km를 가리키고(14:16, 1069m)
영원사 3.3km · 문수암 0.7km · 약수암 2.4km · 삼불사 0.1km를 가리키고(14:23)
칠암자 가운데 다섯 번째 절인 삼불사,
三佛은 과거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현세불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을 일컫는 것으로,
삼불사는 조선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도량으로 동욱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지만,
고령에다 건강이 좋지 않아 충주인가 청주로 가시고,
지금은 젊고 훤칠한 비구 스님으로 바뀌었으며,
광양에 사는 마음속에목련을 만나 회포를 풀기도,
나랑은 우연히 산에서 더러 만나는 사이라고나 할까?(14:24 - 14:48, 990m)
마천 도마 갈림길,
영원사 3.5km · 문수암 0.1km · 약수암 2.2km를 가리키고(14:50)
지리 30 - 07지점,
영원사 3.5km · 약수암 2.2km를 가리키지만,
4분 전에 지난 삼불사 아래 이정표와 똑같은 거리라는데,
과연 어느 게 맞는 걸까?(14:54, 988m)
중북부능선(삼정산능선) 마루금으로 합류하는데,
지리산 남북종주 시 삼정산과 약수암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영원사 3.9km · 삼불사 0.5km · 약수암 1.8km를 가리키고(15:02)
지리 30 - 08지점,
영원사 4.0km · 약수암 1.7km를 가리키고(15:06, 890m)
시원하게 조망이 열리는 무덤 전망대(진주강씨 은렬공파),
수많은 산꾼들로 북새통을 이루기에 그냥 지나치기로(15:11)
지리 30 - 09지점,
영원사 4.5km · 약수암 1.2km를 가리키고(15:16, 798m)
영원사 4.8km · 삼불사 1.5km · 약수암 0.9km를 가리키고(15:24)
지리 30 - 10지점,
영원사 5.0km · 약수암 0.7km를 가리키고(15:26, 753m)
지리 30 - 11지점,
영원사 5.5km · 약수암 0.2km를 가리키는데,
약수암 0.2km는 잘못된 게 아닐는지?
가도가도 나오지 않는 약수암인데(15:36, 740m)
곧장 실상사로 가지 않고 약수암을 들렀다 가기로,
명색이 7암자 순례라는 건데
7암자 가운데 여섯 번째 절인 약수암,
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實相寺藥水庵木彫幀畵)는 보물 제421호로 지정(1965.7.16)되었으며,
이제 7암자 순례는 실상사만 남은 셈인가?(15:51 - 15:55, 560m)
약수암 입구,
약수암으로 들어가지 않고 살짝 돌아가는 길이며,
약수암 진입도로가 아닌 지름길인 샛길을 따라 실상사로 내려가고
조계암터 · 부도전 갈림길,
약수암 1.5km를 가리키고(16:17)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절인 실상사(實相寺),
실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들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828년(신라 흥덕왕 3년)에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하였다는데,
조계암터 부도전 500m · 약수암 2km를 가리키고(16:22 - 16:39, 330m)
해탈교
해탈교를 지나자마자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 백일마을에서 끝을 맺는데,
지난해 4월 30일에 이어 또다시 지리산 7암자 순례를 한 것으로,
불교신자도 아니니 순례가 아닌 산행을 한 셈이지만,
어차피 그게 그거요
오십보백보가 아니던가?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