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서북능선의 어르신 만복대
* 날 짜: 2011년 2월 6일(일)
* 날 씨: 흐림
* 산 행 지: 달궁마을 - 개령암지 - 정령치 - 만복대 - 묘봉치 - 달궁마을
* 산행거리: 약 14km 안팎
* 산행시간: 8시간 00분(운행시간 5시간 12분 + 휴식시간 2시간 48분)
* 산행속도: 약간 빠른 걸음
* 산행인원: 12명(순옥엉가,남해영미,최진숙,막내,샐리,지안,적석,수막새, 산으로,강누리,
둥글이,조광래)
진주 솔산악회의 일요산행에 육남육녀가 일행이 되어,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진주공설운동장을 떠납니다.
동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아침이 빠르게 다가섬을 느끼며, 서진주 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지만 아침이라 그런지, 드문드문 오가는 차량이 보일 뿐 비교적 한산한
편입니다.
산청 휴게소에서 잠깐 머물다 생초 나들목으로 빠져 나가, 일반도로를 달리다 구제역(口蹄疫)을
방제하는 소독약을 몇 번 둘러씁니다.
몇 달 만에 모처럼 어제 세차한 게 허사가 되고 말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제발 좀 빨리 수그러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반선을 지나 달궁으로 올라갑니다.
한 며칠 포근하더니 일주일 새 눈에 띄게 눈이 줄었는데, 그러고 보니 입춘을 지난 지가 이틀이나
됐습니다.
겨우내 기승(氣勝)을 부리던 추위란 놈도 저승길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귀 밝은 이는
이미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달궁교에서 861번 도로를 벗어나며, 비스듬히 우회전하여 조금 들어가다 달궁마을회관 부근에다
차를 세웁니다.
처마 끝엔 수십 개나 되는 고드름이 대롱대롱이니, 눈이 즐겁고 마음은 어릴 적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갑니다.
마을회관 뒤로 난 길을 따라 펜션(하늘위의정원)을 지나며, 본격적인 언양골 산행으로 들어갑니다.
언양골은 고리봉과 정령치에서 흘러내린 물을 모아, 달궁교 아래 달궁계곡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골짝으로 폭포골이라고도 합니다.
눈이 좀 있긴 하나 제법 다져져 가는데 아무 문제는 없으며, 오히려 신발에 흙이 묻지 않으니
더욱 좋다는 생각이랍니다.
그렇게 12분쯤 올랐을까, 오른쪽 아래 계곡에서 첫 폭포가 우릴 반깁니다.
큰 바위에서 떨어지며 물웅덩이도 갖춘 그럴싸한 폭포 같은데, 그래봤자 아직은 겨울이라 그저
꽁꽁 언 커다란 얼음덩이일 뿐입니다.
여름이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5분쯤 더 오르니 쭉 이어지는 계단식 밭이 나오니, 아직은 묵혀지진 않았고 두릅나무 등이 작물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둥글이님이 눈을 휘날리며 눈밭에 앉아 놀다, 적석님에게 깔리며 눈을 흠뻑 뒤집어쓰는 수난을
당합니다.
9란 숫자가 끄트머리에 붙었는데도, 아직은 30대라며 느긋한 척 하는 둥글이님!
올핸 꼭 어여쁜 색시를 맞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할 수 있겠지?
암만!
밭 바로 위에서, 작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골짝이 나뉩니다.
오른쪽은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언양골 우골이요, 왼쪽은 정령치로 이어지는 언양골 좌골이니 우린
좌골을 따릅니다.
5분 남짓 더 오르니, 해발 약 690m 고도에서 또 하나의 폭포가 반깁니다.
양쪽 큰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높지만 넓지 않은 폭포로, 아까 본 제1폭포보다 더 나아 보입니다.
이 또한 얼어붙어 아쉽긴 해도......
제2폭포를 지나자마자 왼쪽 지계곡으로 갈림길이 나오지만, 가야 할 곳은 아니기에 그냥 지나칩니다.
표지기와 발자국이 제법 있는데, 달궁(도계) 삼거리와 정령치 사이의 737번 도로와 만복대로
이어진다 합니다.
계곡 옆 묵은 밭 부근에서, 간식으로 기력을 보충합니다.
같은 무게라도 짊어지고 가는 것보단, 뱃속에 넣어 가는 게 훨씬 수월한지도 모릅니다.
2분쯤 뒤 큰 바위를 지나자마자, 이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계곡을 건넙니다.
여태까진 계곡 왼쪽으로 붙었지만, 지금부턴 오른쪽으로 나아갑니다.
명색이 지리산 자락이라고 산죽이 더러 나오지만, 황금능선에 비하면 발의 피밖에 안 될
정도입니다.
10분 남짓 눈 녹은 희미한 길을 따르던 적석님이, 슬며시 계곡으로 가며 날 따르랍니다.
눈 밟으러 왔는데, 길엔 눈이 없으니 재미가 없답니다.
산행대장의 명령이니, 너나 할 것 없이 줄줄이 눈 덮인 계곡을 건넙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니 고픈 눈 배는 대번에 채우지만, 그런 만큼 힘은 더 드는 수고가 뒤따릅니다.
뒤쪽은 스패츠(spats)를 차느라 더욱 처지고, 앞선 우린 다시 계곡을 건너 길로 들어서선 그들을
기다립니다.
참나무 숲길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높다란 곳에 자리 잡은 겨우살이가 언뜻언뜻 들어옵니다.
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웬걸, 갈수록 많아지며 나무마다 거의 다 붙어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북덕유산 일대가 겨우살이로 꽤 이름난 편이지만, 언양골에 맞서기엔 턱도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겨우살이가 붙어있는 걸, 여태껏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 제일의 겨우살이 기생지는, 언양골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참나무가 사라지자 잣나무가 그 자릴 대신합니다.
잠깐 정령치도로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울창한 잣나무 숲으로 들어섭니다.
정령치 일대는 1960년 봄 사탕무 재배지로 개간되었으나 실패하고선 초원으로 남은 걸,
1973년 이후 잣나무 2,000여 그루를 심은 게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침내 서북능선 주능선으로 올라섭니다.
고리봉 쪽 20m 남짓 거리에 이정표(정령치 0.2km·팔랑치 7.7km· 바래봉 9.2km)가 있으며,
정령치(1172m)와 그 위 산불감시초소가 잘도 보입니다.
고리봉도 찍어 누를 듯이 위세를 부립니다.
정령치로 내려설까, 개령암지로 가오리까?
온 김에 개령암지를 가보고자 뜻을 모으니, 그냥 지나칠 뿐 일부러 들르긴 쉽지 않은 곳입니다.
그저 스쳐갈 뿐, 가보긴 쉽지 않은 곳이니까요.
2분 남짓 갔을까, 고리봉 오름길을 버리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갈림길로 들어섭니다.
울창한 잣나무 숲과 정령치습지를 지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앞에 닿습니다.
보물 제1123호로 지정된 불상이 여럿 있다지만, 제대로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지리산의 모진 비바람과 드센 눈보라가 불상인들 피해갈 리 없으며,
이에 맞서온 세월이 그 얼만지 미루어 짐작케 합니다.
더러는 불상 앞에 손을 모으니, 부디 소원성취란 영험(靈驗)을 내리십사 기원합니다.
모두 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버거우면 골드미스(Gold Miss) 둘과 노총각만이라도 제발
거둬 주소서!
널따란 정령치휴게소 마당엔 바람이 있어, 부근의 달궁 쪽 도로에다 주방을 차려 민생고를
해결합니다.
양지쪽이라 눈도 녹은 데다, 바람이 없으니 더욱 좋습니다.
이집 저집 게 모이니, 곧 진수성찬(珍羞盛饌)이요 산해진미(山海珍味)입니다.
곁들이는 복분자술은 마음만은 모두가 변강쇠요 옹녀이며, 모자람은 소주로 채우니 이 순간만은
부러울 것 없는 내 세상입니다.
도로를 따라 정령치로 걸어 오르는 이들이 더러 보입니다.
참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궁(도계) 삼거리에서 차량통행을 막으니, 6.5km를 더 걸어서라도 고리봉이나
만복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 산신령도 그걸 모를 리 없을 테니, 오늘 만큼은 안전산행을 보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배낭과는 달리, 잔뜩 무거워진 배를 앞세우고 정령치를 뒤로 합니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214m봉을 지납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초소 안에 움직이는 사람이 보입니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도 이러니, 산불조심만은 꼭 해야 하는 게 산꾼으로서의 도리가
아닐는지요?
눈으로 높아진 길이라, 때때로 나뭇가지가 거치적거립니다.
무심코 가단 낭패를 당할지도 몰라 조심스럽습니다.
정령치와 만복대의 중간쯤에 자리 잡은 암봉을 지납니다.
이정표(정령치 1.0km·만복대 1.0km)가 있으며, 일반적인 길 말고 바위를 탈 수도 있으나 앞서간
흔적은 남아 있질 않습니다.
나 또한 쉬운 길을 그대로 따릅니다.
2분 정도 갔을까, 나름대로 멋진 솔이 있는 전망대봉(1351m)으로 올라섭니다.
앞뒤론 만복대(1438.4m)와 고리봉(1304.8m)이 그런대로 들어오며, 반야봉(1732m)은 유령처럼
희뿌연 모습을 드러냅니다.
겨울치곤 푸근하지만 흐린 날씨로 가시거리가 멀지 않으니, 구름 속에 숨은 천왕봉(1915.4m)은
끝끝내 나타나질 않아 아쉽습니다.
다름재 갈림길이 있는 암봉으로 올라섭니다.
만복대는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며, 다름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돌아본 고리봉도 아름답긴 마찬가지며, 반야봉도 아까 본 그 모습 그대롭니다.
부드럽고 완만한 오름길로 만복대(萬福臺)에 다다릅니다.
정상석과 이정표는 물론 돌탑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만복대!
지리산 서북능선 최고의 전망대이자 최고봉으로,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복을 베푸는 품 넓은
산입니다.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나, 오늘은 그게 아니어서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가까운 반야봉과 노고단(1502.2m), 작은고리봉(1248.0m), 고리봉 등이 뿌옇게 들어올 뿐입니다.
조망을 즐기고 간식을 먹는 등 한참을 머물다, 성삼재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갑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인지라, 녹은 눈으로 질퍽거리는 데가 더러 나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봄, 유별나게 춥다는 이번 겨울도 더는 버티기가 버거울지도
모릅니다.
한동안 완만한 길을 따르다 돌아보니, 만복대가 무탈하게 잘 가라며 손짓입니다.
묘봉치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작은 헬기장에 이릅니다.
작은고리봉이 바로 코앞이며, 반야봉과 노고단도 더욱 가까운 느낌입니다.
덕두봉에서부터 쭉 들어오던 천왕봉이 작별인사를 하는 곳으로, 아무리 좋은 날씨라도 여기서부턴
더 이상 천왕봉을 볼 순 없습니다.
헬기장이 자리 잡은 묘봉치(1108m)로 내려섭니다.
한 무리의 산행객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으며, 묘봉치에서 내려간다던 일행이 그냥 지나칩니다.
성삼재로 갈 것도 아닌데, 왜 저러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 뒤를 나 또한 그냥 따릅니다.
2분 뒤 이정표(성삼재 3.0km·만복대 2.3km)를 지나고, 또 2분 뒤에야 안부에서 왼쪽 골짝으로
내려섭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골탕을 먹이니, 길이 있는지 모르지만 설사 있더라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 덮인 산야를 산으로님이 앞장서 길을 내며, 나머진 눈 속에 찍힌 발자국을
그대로 따릅니다.
자기 말마따나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난 산으로님!
거제에서 한의원을 하는데, 출중한 외모로 할매 할배들에겐 장동건으로 통하는 멋쟁이 한의사랍니다.
지난 해 여름 국골 산행을 하다 다 죽어가는 날, 샐리님과 같이 응급처치로 살린 나에겐 생명의
은인입니다.
마치 길을 따르는 양, 정확히 우릴 안내합니다.
그렇게 내려서길 25분쯤 되었을까, 계곡 건너 발자국이 몇 개 있으니 묘봉치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계곡엔 오아시스 노릇을 하는 도랑물도 더러 보이니, 동토의 땅 이 골짝에도 어느새 봄이
다가섬을 느낍니다.
큰 바위가 연속되는 바로 앞에서, 간식으로 입맛을 다시는 등 기력을 채워 넣습니다.
바위가 귀한 골짝인 것 같은데, 유달리 이곳에만 큰 바위가 모여 있는 듯합니다.
처음 우리와 산행을 하는 강누리님!
눈밭에 드러누워 해맑은 웃음을 날리며 즐거워합니다.
마라톤 서브-3클럽(Marathon sub-3club)에도 가입한 고수라는데, 운동량이 너무 많아서인지
겉늙어 보입니다.
모자람도 좋진 않지만, 지나침 또한 그렇게 좋은 건 아닌가봅니다.
산으로님을 뒤따라 줄줄이 861번 성삼재도로로 내려섭니다.
산으로님, 완벽한 길잡이로 인간 내비게이션(navigation)임을 인정합니다.
50m쯤 아래 철조망과 출입금지표지판이 있고, 그 30m쯤 아랜 해발 850m라고 합니다.
눈과 얼음이 있는가 하면, 바닥이 드러난 도로를 따라 달궁으로 내려갑니다.
오르다 되돌아가는 승용차를 더러 만납니다.
사륜구동 자동차는 그런대로 오르는데, 승용차는 아무래도 힘이 달리는가 봅니다.
도계쉼터를 지나자마자, 달궁(도계) 삼거리(730m, 성삼재 5.0km·정령치 6.5km·달궁 2.0km)도
지납니다.
성상재 쪽은 길이 열렸으나, 정령치 쪽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출입금지표지판이 있는 쟁기소(봉산골) 입구를 거쳐, 달궁으로 들어서며 무지개다리를 지나
달궁마을회관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어쨌거나 원점회귀산행을 완성한 셈입니다.
천왕봉식당에서 동동주를 하산주 삼아, 산채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서야 십년지기 싼타모에
오릅니다.
그리곤 떠납니다.
진양호 노을빛이 참 고운 내 사는 진주로!
* 산행일정
09:00 달궁마을회관
09:12 제1폭포
09:20 언양골 좌우골 합수지점
09:25 제2폭포(690m)
09:26 정령치도로 갈림길
09:31 - 09:36 묵은 밭터
09:39 계곡 횡단
09:59 - 10:07 휴식
10:40 잣나무 조림지 입구
10:58 - 11:08 서북능선 주능선(정령치 0.2km)
11:16 - 11:30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11:40 - 12:50 정령치
12:54 산불감시초소봉(1214m)
13:05 긴급신고 지북 20 - 01 봉우리
13:20 정령치 - 만복대 중간지점 암봉(정령치 1.0km·만복대 1.0km)
15:22 - 13:26 솔 전망대봉(1351m)
13:38 - 13:41 다름재 갈림길 암봉
13:50 - 14:17 만복대
14:39 - 14:44 긴급신고 지남 23 - 04 전망대
14:52 - 14:57 묘봉치 위 작은 헬기장
15:02 묘봉치
15:04 이정표(성삼재 3.0km·만복대 2.3km)
15:06 안부에서 왼쪽 골짝으로
15:30 묘봉치 갈림길
15:40 - 15:50 큰 바위지대
15:58 - 16:05 861번 성삼재도로(850m)
16:25 달궁(도계) 삼거리
16:40 쟁기소(봉산골) 입구
17:00 달궁마을회관
달궁마을회관
언덕위하늘정원
제1폭포
둥글이
제2폭포
정령치
나
막내
정령치습지
지안
샐리
막내
남해영미
나
정령치휴게소
1214m봉 산불감시초소
고리봉
최진숙
샐리
산으로, 수막새
산으로, 순옥엉가, 강누리
수막새, 강누리
반야봉
만복대
만복대와 다름재 갈림봉
다름재능선
다름재 갈림봉에서 만복대
돌아본 전망대봉
만복대에서 고리봉
만복대에서 다름재 갈림봉
반야봉
노고단
돌아본 만복대
반야봉
작은고리봉
작은고리봉
묘봉치 위 작은 헬기장
묘봉치
묘봉치에서 만복대
적석, 막내
강누리
쟁기소 입구
쟁기소 입구
달궁계곡 무지개다리
달궁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