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권 산행기

국사암에서 불일폭포 올라 소은산막과 쌍계사 거쳐 제자리로

큰집사람 2017. 8. 21. 10:25


* 날    짜 : 2017년 8월 20일(일요일)

* 날    씨 : 흐리고 비

* 산 행 지 : 국사암 - 불일폭포 - 불일암 - 향로봉 - 소은산막 - 내원수행처 - 쌍계사 - 국사암

* 산행시간 : 6시간 10분(운행시간 3시간 10분 + 휴식시간 3시간 00분)

* 산행속도 : 보통 걸음

* 산행인원 : 6명(앵경, 산유화, 신난다, 산사나이, 담비, 선함)








* 산행일정

08:50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국사암

08:52          국사암능선 삼거리(돌탑)  

08:55 - 08:58  국사암 삼거리(국사암 0.2km·쌍계사 0.3km·불일폭포 2.1km)

09:03          첫 번째 나무다리(비로봉능선 갈림길) 

09:11          두 번째 나무다리

               지리 15 - 02지점(393m, 삼신봉 8.0km·쌍계사 1.0km)

09:16          환학대(세석대피소 15.4km·불일폭포 1.2km·쌍계사 1.2km)

09:24          세 번째 나무다리

               지리 15 - 03지점(430m, 삼신봉 7.5km·쌍계사 1.5km)

09:28 - 09:32  마족대

09:40 - 11:27  불일평전(불일탐방지원센터)

11:29          지리 15 - 04지점(528m, 삼신봉 7.0km·쌍계사 2.0km)

11:30          불일폭포 삼거리(삼신봉 6.9km·세석대피소 13.5km·불일폭포 0.3km·쌍계사 2.1km)

11:36          불일암 입구

11:40 - 11:55  불일폭포 전망데크

12:00 - 12:10  불일암

12:14 - 12:26  불일폭포골(불일폭포 상단부)

12:35 - 12:39  향로봉(청학봉) 

12:42          부안임공원영지묘

12:44          소은산막·내원수행촌 갈림길 삼거리

13:10          활인령

13:20 - 13:45  소은산막

13:53          활인령

14:07          내원골 건넘(내원수행촌) 

14:19          내원골 건넘(묵자바위)

14:41          쌍계사 대웅전

14:54          국사암 삼거리

15:00          쌍계사 국사암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자리 잡은 쌍계사 국사암,

하동 땅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

내 사는 진주에선 잠깐이나마 반짝이며 해가 드러나기도 했는데,

애당초엔 작은세개골을 따라 칠선봉으로 올라 칠선 남릉을 타고 내려서기로 했건만,

줄기차게 비가 오는데 아무래도 계곡치기는 무리일 것 같기에,

꿩 대신 닭이라고나 할까,

 국사암에서 불일폭포나 갔다 오기로 바꿀 수밖에는,

이왕 나선 거 어떡해서든 공치고 돌아갈 수는 없지 아니한가?

  어떻게 해서 나온 집이요,

 행복은 집안이 아닌 집밖에 있다는데(08:50)








1,200년 전 신라의 국사를 지내 진감국사로 불리는  <혜소 스님>이 지팡이를 꽂아둔 거라고

 


국사암능선 삼거리,

국사암능선은 지네능선과 만나 1299m봉과 상불재 사이로 이어지는 산줄기이고(08:52)





국사암 삼거리,

 국사암 0.2km·쌍계사 0.3km·불일폭포 2.0km를 가리키며,

불일폭포는 쌍계사보다 국사암이 더 가까운 걸 알 수가 있고(08:55 - 08:58)








첫 번째 나무다리,

불일폭포 삼거리와 쌍계사를 잇는 비로봉능선 갈림길이기도 하고(09:03)


비로봉능선으론 가지 말라 하고












녹차의 고향 화개동,

지리산 화개동 일원은

예로부터 선경의 별천지(무릉도원)라 하여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 불립니다.

7세기 전반인 선덕여왕 때부터 차가 있었고,

흥덕왕 때에는 차를 마시는 풍속이 성행했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흥덕왕 3년(서기 828년) 조에는

'당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이 차의 종자를 가져옴에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녹차가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지 알아볼까요?

녹차에는 카테킨, 아미노산, 카페인, 사포닌 등의 성분이 들어 있어

해독작용과 암 발생 억제, 고혈압 및 동맥경화 예방, 콜레스테롤 제거,

이뇨작용 등 몸과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리 15 - 02지점인 두 번째 나무다리,

삼신봉 8.0km·쌍계사 1.0km를 가리키고(09:11, 393m)


신라시대 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의 체취가 묻어 있는 환학대,

쌍계사 진공선사대공탑비의 비문을 지은 곳이라고 하며,

세석대피소 15.4km·불일폭포 1.2km·쌍계사 1.2km를 가리키는데,

불일폭포와 쌍계사의 중간지점인 셈이고(09:16)






환학대(喚鶴臺),

신라시대 말기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다녔답니다.

이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바위입니다.

쌍계사에는 통일신라시대 때 당나라의 범패(불교음악의 일종)를 신라로 도입하여 대중화시킨

승려 진감선사를 기리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가 있는데,

선생이 이곳 환학대에서 그 비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최치원(857 - ?),

신라시대의 학자,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경주 최씨의 시조,

868년(경문왕 8년) 당나라에 유학, 874년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討黃巢激文)'을 지어서 문장가로 이름을 얻었다.

885년에 귀국,

대산, 천령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를 상소하였고,

난세(亂世)를 한탄하여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에서 여생을 마쳤다.

1023년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세 번째 나무다리,

바로 위는 지리 15 - 03지점으로,

삼신봉 7.5km·쌍계사 1.5km를 가리키고(09:24, 430m)





명나라 이여송 장군과 얽힌 설화가 있다는 마족대(馬足臺),

다시는 그런 슬프고 아픈 역사가 없었으면 하는,

힘없는 민족의 설움이라고나 할까?(09:28 - 09:32)


마족대(馬足臺),

마족대는 임진왜란(1592 - 1598년)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당시

명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도와주기 위하여 원군(援軍)으로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입니다.














지리산의 이상향인 청학동으로도 지목받던 불일평전,

털보 변규화(卞圭和) 씨가 1978년 10월 1일 정착하여 운영하던 봉명산방이 있었건만,

2006년 11월 그가 30년 가까이 가꾼 봉명산방에서 뜻밖의 가스사고를 당하여,

의식불명으로 지내다 2007년 6월 12일 영원히 지리산의 품으로 가버렸다고,

돌보는 이 없는 봉명산방은 차츰차츰 폐허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세월 이기는 장사는 그 어디 그 무엇인들 있을 수가?(09:40 - 11:27)


불일평전은 예전에 청학동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청학(靑鶴)은 중국의 문헌에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고 운다.'는 전설의 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청학동이라 불렀다.

<정감록>에서는 '진주 서쪽 백 리 ...(중략)... 석문을 거쳐 물속 동굴을 십 리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라고 했다.

조선시대 김일손과 남명 조식은 이곳 불일폭포 주위를 청학동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계곡이 높고 가파르며 터가 너무 좁아 용납할 곳은 아니다.'라며

청학동의 난점을 살짝 제기하기도 했다.

지리산에는 이곳 말고도 악양 북쪽, 현재의 청학동, 세석고원,

선유동 등 청학동으로 불린 곳이 많다.

이들 모두 지리산에서 살기 좋고 비교적 너른 땅이 있는 곳이다.


불일평전의 땅속을 들여다 볼까요?

불일평전은 1970년대 말까지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불일폭포, 불일암 등을 본따 불일평전이라 불렀습니다.

1980년대 들어 야영객이 급증하자 국립공원에서

이곳을 야영장으로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폐허가 되어가는 봉명산방(鳳鳴山房),

1인자께서 지사모에서 인수하자는데?

모두가 지금은 봉명산방 인수가 문제가 아니라,

죽어가는 지사모를 살리는 게 급선무라면서 핀잔만 주더란,

사람 좋은 1인자는 이상야릇한 미소와 함께 금세 꼬리를 내릴 수밖에는,

칡넝쿨이 뒤덮고 있는 모습이 정겹고 고즈넉하기보단,

을씨년스럽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는지?

누가 사는 것도 아닌데


소설가 정비석(鄭飛石) 선생이 머물면서 봉명산방(鳳鳴山房이라 지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자료사진이라 아쉬울 따름이고





내 삶의 의미(변규화),

나는 

세상을 向해서는 

 도무지 아무런 재주도

재능도 없고 게으르다

 그러면서 또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다만 내일이

오늘이 된다는 것과

오늘 이 순간까지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고마움

그것이 큰 행복감으로 남아

깊은 산 한 자락에 초막을 엮어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봉명산방 앞에 자리 잡은 불일탐방지원센터,

불일폭포로 가기에 앞서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가기로,

그 귀하다는 산유화표 무늬오징어에다 명석 막걸리와 맥주를 곁들이면서,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쉬엄쉬엄 먹고 마시다 보니 점심으로 이어지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거나 보채지도 않고 느긋하기만,

 별스레 바쁠 것도 없거늘,

이러려고 지리산 자락으로 들지 않았던가?


먹고 마시고 씹고 뜯고, 또 먹고 마시고 씹고 뜯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한정 되풀이하면서 즐기고


산행대장 전속기사 노릇을 하겠다는 앵경,

스스로 좋아서 하겠다는데 매정하게 그만두라고 말리지도 못하겠고,

이거야 말로 행복한 고민이라고나 할까?

착각은 자유라던가?








변규화 씨가 쌓았다는 소망탑(素望塔),

어느새 그가 간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비록 그는 갔지만 탑은 남았다고나 할까?

나는 가면 뭐가 남을는지?

아마도 빈 술병?















담비 회장과 1인자 신난다,

힘깨나 쓰는 막강 파워?





주저앉아버린 1인자의 고독,

자나깨나 지사모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다나?

믿거나 말거나


굳이 설 것도 없는데도?



남자는 서야 대접을 받는다면서?

그래봤자지만,

예순셋의 중늙은이가 산행대장이 웬 말인고?

지사모가 경로산악회가 됐는지?





이번엔 엉거주춤?



설 힘도 없는지 또?



해당화라던가?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여!

엄마 빤스 줄여놨다.

빨리 돌아오길!


한반도 연못,

이 또한 변규화 씨의 작품이 아닐는지?














산유화,

그 비싸고 귀하단 무늬오징어 잘 먹었단,

종종 좀 갖고 오셈!!!

염치없는 부탁이요 명령이지만


























지리 15 - 04지점,

삼신봉 7.0km·쌍계사 2.0km를 가리키고(11:29, 528m)


불일폭포 삼거리,

쌍계사 - 불일폭포 - 상불재로 가는 길이 나뉘는 곳으로,

 10m 정도 아랜 쌍계사로 이어지는 비로봉능선 들머리이며,

삼신봉 6.9km·세석대피소 13.5km·불일폭포 0.3km·쌍계사 2.1km를 가리키고(11:30)


지리산국립공원의 터줏대감 반달가슴곰,

가슴에 V형태의 흰색 무늬가 있는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호)은

몸의 색깔은 검고 주둥이가 튀어나왔으며 귀가 둥글고 큰 편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시베리아와 중국의 북부지방, 일본 등에 분포하며

지리산에서는 해발 1,000m 내외의 깊은 산속에서 살아갑니다.

반달가슴곰은 벌꿀, 도토리, 다래, 곰취, 가재, 물고기 등을 즐겨 먹는 잡식성 동물로

먹이사슬 최상위 단계에 있는 지리산 터줏대감입니다.

그렇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밀렵과 서식지 감소로 인해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리산의 터줏대감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리산을 지켜 나갑시다.

















불일암 입구,

불일폭포부터 보고 이따 들르기로 하고(11:36)


불일폭포(佛日瀑布),

이 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靑鶴峰), 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熙宗 : 재위 1204년 - 1211년)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 1158년 - 1210년)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入寂)하신 후 희종은 시호를 <불일보조>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다.  

















마침내 불일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요즘 들어 비가 좀 왔는지 생각보단 웅장하다고나?(11:40 - 11:55)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불일폭포,

 그전에는 불일폭포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지만,

전망데크를 만드는 바람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어 아쉬운데,

전망데크 아래로 억지로 내려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만두기로,  

 우릴 반기기라도 하듯 그런대로 세찬 물줄기를 쏟아내는 불일폭포의 위용이란,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또 쳐다본들 이 어찌 멋지다 아니할 수 있으랴?

꿩 대신 닭이라지만 이만하면 탁월한 선택이라고나,

불일폭포 아래 물웅덩이를 학연(鶴淵이라 한다던가?


불일폭포,

불일폭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 - 1210)

폭포 입구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修道)를 하였는데,

고려 제21대 왕인 희종(熙宗, 1180 - 1237)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諡號, 충신이나 덕망이 높은 신하가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임금이 붙여준 이름)를 내렸답니다.

그 시호를 따라 이 폭포를 불일폭포라 하였고,

 그가 수도하였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하였습니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좌측의 청학봉과 우측의 백학봉 사이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60여 미터에 이르며,

주변의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져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건강에 좋은 음이온,

폭포 근처나 숲속에서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음이온(-)의 역할 때문입니다.

음이온이란, 공기 중에 떠 있는 전기적 성질을 가진

공기 에너지(분자) 중 음(-)전하를 가진 전류를 총칭하며,

우리 인체에 해로운 노폐물을 몸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을 합니다.

또한 혈액을 깨끗하게 하여 머리를 맑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키며

피로회복, 소염작용, 피부미용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음이온은 불일폭포와 같이 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수면 또는 바위와 부딪칠 때

물분자가 분쇄되면서 물방울을 이루는 수소층은 양극의 전기가 되고,

수소 주위의 산소층은 음극(음이온)을 띠면서 발생합니다. 









이제 불일암으로,

그리고 향로봉능선을 넘어 소은산막으로(12:00 - 12:10)





불일폭포 위에 자리 잡은 불일암(佛日庵),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부속 암자로,

신라 말에 쌍계사를 중창한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창하고  수도도량으로 삼은 후,

그가 죽은 뒤 희종이 내린 시호인 불일보조(佛日普照)에 따라 불일암이라 하였으나,

그 후 폐허화된 것을 1911년에 쌍계사 승려 양용은(梁龍隱)이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모습은 1980년대 초 불타버린 걸 2004년엔가 다시 지은 것이라는데,

불일암을 둘러보고선 불일폭포골을 건너 향로봉능선으로 올라가기로 








절간이라 그런지 엄숙하기만,

1인자 배엔 뭐가 들었을까?

설마하니 석이버섯은 아닐테고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딱






고뇌에 빠진 1인자,

이런 날에 내가 여길 왜 왔을까?


나무다리를 건너자마자 불일폭포골 갈림길로,

위쪽으론 불일암 텃밭을 지나 상불재와 불일폭포 삼거리를 잇는 정규 등산로로 이어지고(12:11)








불일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바로 아래 불일폭포 상단부로 내려가고(12:14 - 12:26)


불일폭포 상단부,

불일폭포 전망데크가 내려다보이고








불일폭포골에서 향로봉능선으로 올라가고






향로봉능선에 걸린 주유천하(문대성) 표지기,

내가 아는 진주 주유천하가 아닌 광주원산우회 소속이라나?


청학봉(靑鶴峰)이라고도 부르는 향로봉(香爐峰) 정상부,

비로봉(백학봉)과는 불일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셈이며,

소은산막으로 가자면 곧장 조금 내려서다 왼쪽으로 꺾거나,

아니면 되돌아서서 1분쯤 뒤 오른쪽으로 꺾어도 되는데,

어디로 가든 잠시 후 부안임공원영지묘에서 만나게 되고(12:35 - 12:39)


나무 사이로 불일암이 살짝 보이고



부안임공원영지묘,

멧돼지들이 득실거릴 텐데도 용케 버틴다고나?(12:42)


소은산막·내원수행촌 갈림길 지능선 삼거리,

곧장 내원수행촌으로 내려서지 않고 소현로를 따라 소은산막으로,

 선유동계곡으로 오른 지난해 7월 24일엔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이야 그다지 서둘 것도 없는데(12:44)


돈선암(豚禪岩),

산돼지가 참선하던 바위라던가? 





하심목(下心木),

마음을 낮추게 하는 나무라던가?


망운암 (望雲岩),

높다랗게 앉아 바람에 떠도는 한두 점 구름을 즐기는 바위라던가?





향불암(向佛岩), 

부처를 향한 간절한 마음의 바위라던가?





촛대봉과 황장산 부근의 불무장등능선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너구리쌍굴,

얼마 가지 않아 공습경보와 함께 비상사태가 벌어질 줄이야?

앞서가던 나랑 산사나이가 땅벌떼의 습격에 당하고 마는데,

오른쪽과 왼쪽 귀에다 그 귀한 봉침을 공평하게 한방씩 놓더니,

오른쪽 팔에도 덤으로 한방을 더 선사하는 게 아닌가?

아파서가 아닌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핑





나지막한 무덤이 자리 잡은 활인령,

내원수행촌과 소은산막 갈림길이기도 한데,

여기서도 곧장 내원수행촌으로 내려가지 않고 소은산막으로 올라가기로,

소은산막을 갔다 와도 시간이야 널널하니까.(13:10)


활인령(자료사진)















소은산막(素隱山幕),,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최병태(당시 82세) 영감님 부부가 살았다는데,

그동안 무슨 변고가 생겼는지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는 듯,

<증미당, 蒸米堂>이란 <쌀을 찌는 집>이란 뜻이니,

<밥을 해서 나눠 먹는 곳>이란 건가?(13:20 - 13:45)


內外明徹(내외명철),

<안과 밖이 사무쳐 밝음>이라는 뜻으로,

<안이 밝으면 밖도 밝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안과 밖을 가로막는 벽이 사라지고 안과 밖이 통한다.>는 수행의 요체(要諦)라던가?


소은산막 별채엔 菩果農園(보과농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요렇게 심각하더니



찍사가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러는지?

혹시 눈구녕?


찍사가 바뀌자 다시 심각 모드로












잘 있거라,

언제 또다시 오게 될지?








활인령에서 내원수행처로 내려가고(13:53)












내원수행촌



내원수행촌 아래 내원골을 건너고(14:07)









다시 한 번 내원골을 건너고(14:19)







































쌍계사 대웅전(14:41)



쌍계사에서 국사암으로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나무 소나무,

소나무는 솔나무에서 유래하였는데,

'솔'은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의 '수리'에서 변했다고 합니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소나무 땔감으로 불을 지피고 연기를 맡으며 살다가

소나무관에 담겨 솔밭에 묻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한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무를 소중하게 가꾸어 와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소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 소나무 숲은 쌍계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사찰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다시 만난 국사암 삼거리,

이제 불일폭포나 쌍계사가 아닌 국사암으로(14:54)


국사암주차장으로 돌아와 걸음을 멈추는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꿩 대신 닭이 되고 말았지만,

 꿩이면 어떻고 닭이면 또 어떠리.

그저 산이 좋아 어디서든 터벅거리면 되지,

불일폭포와 소은산막에다 쌍계사까지,

어쩌면 닭이 아닌 봉황이었을지도,

시원스레 알탕을 하고선 차에 오른다.

그리곤 떠난다.

푸짐한 하산주가 기다리는 화개장터로(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