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정기산행 하동군 서산대사길(신흥 - 의신 옛길)
* 날 짜 : 2017년 7월 12일(수요일)
* 날 씨 : 구름 조금
* 산 행 지 : 하동군 화개면 서산대사길(신흥 - 의신 옛길)
* 산행거리 : 4.5km
* 산행시간 : 3시간 50분
* 산행인원 : 7명(정봉근, 송문영, 김기대, 조호제, 유달수, 이완희, 조광래)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1교에서 시외버스에서 내려 서산대사길 들머리가 있는 신흥교로 올라가고
범왕리 푸조나무,
우리나라에 있는 푸조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높이 25m, 둘레 6.25m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동서 25.9m, 남북 29.2m에 이른다.
나이는 500살 정도이다.
범왕리 푸조나무는 통일신라 말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꽂아두었던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자란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나무 바로 앞 개울가에는 최치원이 세상에서 더러워진 귀를 씻었다고 하는 세이암(洗耳岩)이 있다.
푸조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성 수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경남과 전남지역 산기슭이나 계곡 주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느티나무처럼 우산 모양으로 넓게 퍼져 정자나무로 알맞고,
바닷바람에 잘 견뎌 방풍림으로도 활용된다.
신선(神仙)이 된 최치원 선생,
고운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기 전
화개천(세이암)에서 귀를 씻고 지팡이를 꽂아 놓고 산으로 들어가며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자신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학을 타고 속세를 떠났다고 전한다.
세이암과 게,
지리산 대성계곡은 유리알처럼 맑아 잔잔한 흐름을 이루고 계곡마다 바위를 휘돌아 흐른다.
주변에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반석하상에는 하천의 마식작용으로 의해 형성된 포트홀군(바위구멍)이 확인되고,
세이암(洗耳嵒)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세이암에는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 - ?)이 세속(世俗)의
비속(卑俗)한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신선이 되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는 전설을 전한다.
이곳이 귀를 씻은 곳이라 한다.
한편 최치원이 지리산 옥류(玉流)에 목욕을 하는데, 게가 선생의 발가락을 물었다.
선생이 이것을 고약하게 여겨 그 게를 잡아 멀리 던지며,
다시는 여기서 사람을 물지 말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 게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이암
신흥교 앞에서 서산대사길로
화개동천과 선유동계곡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자리 잡은 대성교 공원지킴터가 보이고
돌아본 불무장등능선,
토끼봉에서 화개장터와 섬진강으로 흘러내린 산줄기이고
지리 34 - 01지점,
의신 2.7km·신흥 1.7km를 가리키고는데,
의신과 신흥의 거리가 왜 4.4km로 되어 있는 걸까?
이정표에선 4.2km라 하더니(224m)
의자바위
서산대사의 도술 의자바위,
서산대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승군(義僧軍)의 궐기를 호소하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의자바위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쳐들어와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훔쳐가려는데,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왜병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의신사 범종은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앉아서 의자바위의 편안함을 느껴보세요.
지리 34 - 02지점,
의신 2.4km·신흥 2.0km를 가리키는데,
여기도 의신과 신흥의 거리가 4.4km로 되어 있고(239m)
서산대사길에선 가장 좋은 쉼터인 정류석(停留石),
일행들은 모르고 그냥 지나치지만 나마저 모른 척할 수야?
정류석에다 초서체로 새긴 동초 김석곤의 칠언절구
一經一緯有誰知
雖由縱橫亦不知
疑惑人人莫深究
相從織者自然知
東樵又題
날줄이 하나이면 씨줄도 하나임을 누가 있어서 알리오.
비록 종횡으로 오고가더라도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
의혹하는 사람들아 깊이 궁구하지 마소.
베 짜는 사람들과 상종하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동초가 또 짓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는데
性者心之理
心者性之器
성은 마음자리의 핵심이고,
마음은 본성의 그릇이네.
金彰坤(김창곤), 高炳斗(고병두), 秀當 金敎潤(수당 김교윤),
동초와 함께 유람하던 사람들이라고
외딴집과 화장실
지리 34 - 03지점,
의신 2.0km·신흥 2.2km를 가리키는데,
여긴 신흥과 의신의 거리가 4.2km라 하고(263m)
서산대사길에선 가장 멋진 폭포와 물웅덩이가 자리 잡은 곳으로 내려가,
이미 때가 되었기에 점심을 먹고 가기로
샘
샘과 가까운 지리 34 - 04지점 이정표,
의신 1.6km·신흥 2.6km를 가리키는데,
여기도 신흥 - 의신 옛길이 4.2km로 되어 있고(12:24, 271m)
서산대사와 함께하는 우리의 옛길,
서산대사(1520 - 1604)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출가(1546년)하여,
휴정(休靜)이란 법명을 얻었습니다.
신흥 - 의신 주변에는 쌍계사, 칠불사, 의신사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도 여러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신흥사가 있었던 신흥마을과 의신사가 있었던 의신마을을 연결한 4.2km의 이 길은,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무르던 동안 오가던 옛길입니다.
지금의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길이었답니다.
지리 34 - 05지점 쉼터,
의신 1.4km·신흥 2.8km를 가리키고(280m)
의신마을이 보이고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인 지리산국립공원 의신베어빌리지에서
화개동천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 의신마을로 올라가고
의신마을 버스정류소에서 4.2km에 이르는 신흥 - 의신 옛길은 끝이 나고,
서산대사가 출가했다는 원통암은 1km쯤 더 발품을 팔아야 하고
의신마을 버스정류소 이정표,
신흥 4.2km·삼정 2.5km·세석 9.2km를 가리키고
원통암(圓通庵),
원통암은 조선시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한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출가(出家)한 절이다.
서산대사(법호(法號) - 휴정(休靜), 속명(俗名) - 최여신(崔汝信), 자(字) - 현응(玄應),
호(號) - 사명당(四溟堂), 1520 - 1604)가 15세 때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원통암에 들렀다가 숭인장노(崇仁長老)의 법문을 들고 출가했다.
서산대사는 삼철굴암(三鐵窟庵), 의신사(義信寺), 원통암 등에서 수행하던 어느 날,
인근 구례 성촌마을을 지나가다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덕평봉 남쪽 아래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 온다.
옛날에 의신마을 터에 있었던 의신사의 31개 산내 암자 중 하나로
벽송지엄(碧松智儼, 1464 - 1534),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 - 1571),
경성일선(敬聖 一禪, 1488 - 1568), 숭인장노(崇仁長老), 추월조능(秋月祖能),
원오일진(圓悟一眞) 스님 등 많은 고승대덕(高僧大德)이 머물렀다.
유서 깊은 문화유산인 원통사는 구한말(舊韓末) 화재로 폐사(廢寺)됐으나,
1997년 복원사업(復元事業)이 시작돼 인법당(人法堂 또는 因法堂), 산신각(山神閣)
등을 새로 짓고 서산대사 영정(影幀)을 청허당(淸虛堂)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천공사를 하는 바람에 길이 헷갈려 우왕좌왕하다,
푹푹 찌는 따가운 땡볕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는,
0.7km가 남았다는 원통암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